표적 치료제는 암세포와 같은 특정 표적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일종의 정밀 타격기술이다. 정상세포 사이에 숨어있는 타깃 세포만 선별 공격하기 때문에 ‘미사일 치료제’라고도 불린다. 타깃 세포에 달라붙어 치료제를 주입, 성장을 막거나 세포 자체를 파괴해 소멸시키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층 진일보한 3세대 다중 표적 항암제들의 경우 암세포의 선별 공격에 더해 암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경로까지 차단해 치료효과를 극대화한다.
원미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나노입자에 치료제를 넣어 특정 표적을 공격하는 기법은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데다 치료제가 정상세포를 파괴함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부작용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표적 치료제는 전 세계 의학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의학 최초의 역발상
이런 표적 치료제의 등장은 산업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산업화 시대의 전형적인 대량 생산 시스템에 따라 초창기 제약산업은 제약사가 개발해 놓고 작용기전을 밝혀내서 그에 맞는 환자들에게 투약했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인간의 DNA 구조가 밝혀지면서 변화의 단초가 마련된다.
1950년대 영국의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윗슨은 DNA가 세포의 기본 유전물질이자 모든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단위며, 세포핵 속에 46개의 염색체가 있고 그 속에서 유전정보를 화학적으로 전달하는 물질이 DNA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암이 외부에서 침입한 질병이라 여겼지만 두 사람에 의해 분자유전학 차원의 암 연구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연구를 통해 드러난 암의 발병기전은 이렇다. 일생 동안 정상 세포는 수백만 번의 분열과 복제를 반복한 뒤 사멸한다. 이 과정에서 작은 오류가 일어나면 유전자 속에 저장돼 있다가 특정조건이 형성되는 갑자기 세포에게 정상보다 빨리 분열하라는 성장촉진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 결과로 인해 변형되거나 미성숙한 유전자, 즉 암 유전자가 생성되며, 이 유전자가 세포를 무한정 증식할 때 암이 발병한다.
이처럼 인간의 DNA 구조, 암 유전자를 포함한 인간 유전자들의 신호 전달체계가 밝혀지면서 암을 근본적으로 치료·예방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 암 유발 유전자만을 공격하거나 암 세포의 성장을 지시하는 신호 전달 경로를 방해하는 형태의 표적 치료제 설계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제약산업 최초의 역발상을 통해 등장한 첫 번째 표적 치료제가 스위스 노바르티스의 ‘글리벡’. 특정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로, 한 번 걸리면 5년을 전후에 사망에 이르는 불치병이었던 만성골수성백혈병을 통제 가능한 만성질환의 영역으로 옮겨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오직 문제가 되는 표적만을 공격하고,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도록 설계된 덕분에 기존 치료제에서 감수해야만 했던 약의 독성과 부작용 유발 개연성도 현저히 낮다.
‘개발’에서 ‘설계’로 진화
의학계는 이러한 글리벡을 현대의학의 새로운 역사라고 평가한다. 암 치료의 새 장을 열어젖힌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분자 단위에서 약물을 설계한 수많은 표적 치료제의 개발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국립암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 암 환자들의 10년 생존율은 49.4%다. 암 환자 2명 중 1명은 10년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 수치는 10%나 더 낮았다. 의학계는 글리벡을 필두로 하여 골수암, 유방암, 폐암, 위암, 혈액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혁신적인 표적 치료제가 지속적으로 개발된 결과로 보고 있다.
글리벡과 함께 표적 치료제의 또 다른 대표주자로 로슈의 ‘허셉틴’과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 등을 꼽을 수 있다. 허셉틴은 전 세계적으로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 유방암의 치료제다.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에 작동하도록 설계됐는데 침윤성 유방암 환자의 약 20~25%에서 나타나는 성장인자 수용체 유형이라는 유전자의 과발현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18~36개월이지만, 허셉틴으로 치료한 환자들은 5년 생존율이 81~84%에 달할 정도로 치료효과가 뛰어나다.
이레사의 경우 폐암 치료제로 폐암은 유전자 변이에 따른 표적 치료제 개발이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다. 실제로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와 확산 속도, 모양에 따라 7종 이상으로 구분되며, 각 형태에서 나타나는 변이 유전자가 다르다. 표적 치료제 개발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체 폐암의 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 폐암으로서 이를 유발하는 원인 유전자의 약 60%가 규명된 상태다.
이레사 외에도 타세바, 잴코리 등이 폐암표적 치료제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며 혈액암, 피부암 등 불치병으로 인식됐던 희귀 암종에서까지 유전자 이상이 속속 규명되고 있어 표적 치료제 개발도 활기를 띠고 있는 상황이다.
경구용 표적 치료제
한편 표적 치료제와 관련해 최근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올해 한국노바티스가 차세대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 치료제인 ‘타시그나’와 관련해 치료제 투약을 중단한 이후에도 치료효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무치료관해(Treatment Free Remission)’에 대한 임상시험에 돌입한 것.
이 회사에 의하면 타시그나는 그동안 여러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글리벡에 비해 높은 분자학적 반응성을 나타냈으며,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무치료관해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에 연구팀은 현재 타시그나 투약 후 혈액 내에서 암 유전자가 보이지 않는 ‘완전 분자학적 반응’에 도달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제의 투약을 중단해 재발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김동욱 교수는 “이전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완전 분자학적 반응에 도달한 환자들은 타시그나 투여를 중단하더라도 재발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환자들에게 실제로 투약 중단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유전자 검사 결과에 기반한 추가적인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번 대규모 임상연구를 통해 향후 더 많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이 항암제 투약 중단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확인될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는 수준의 성과가 검증된다면 이식이나 수술 없이 경구용 치료제만으로 암을 완치시켰다는 점에서 현대의학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을 사건임에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표적 치료제의 개발은 인간의 생명 연장과 직결된다. 그만큼 사회경제적 파급력도 상당하다. 경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신약 연구개발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할 경우 1년에 160만명의 수명이 연장되고, 2억7,000만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온다고 한다. 더욱이 암과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10% 감소시키면 10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삶의 질 측면도 마찬가지다. 표적 치료제가 정교해질수록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과 이상 반응이 줄어들어 일반인과 유사한 수준의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경구용 치료제나 주사제 투약 이외에는 입원 및 내원이 필요한 치료가 줄어들어 항암 치료의 시간적, 비용적 부담도 반감된다.
여기에다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가족들의 부담이 경감된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표적 치료제는 숫자로 표현되는 것 이상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Osteoporosis Sniping]
골다공증 스나이퍼
골(骨) 형성은 촉진하고 흡수는 억제하는 단백질 ‘타즈(TAZ)’를 조절하는 방식의 골다공증 표적 치료제 신약 후보물질이 한국화학연구원 신약플랫폼기술팀 배명애 박사팀에 의해 개발됐다. 타즈는 성체줄기세포로부터 지방세포 분화를 억제하면서 골세포 분화를 촉진하는 조절단백질이다.
소리 없는 도둑이라고 불리는 골다공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노화다. 그래서 평균수명이 증가할수록 발생률도 높아져 노령화 사회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여성의 경우 폐경 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상실에 의해 발병하는 비율이 가장 많으며, 남성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 스테로이드 복용의 부작용이나 류마티스성 관절염 환자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이처럼 빈도가 높다보니 골다공증을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 골다공증에 의한 고관절골절과 연관된 사망률이 유방암 사망률과 유사한 2.8%나 된다.
하지만 현재의 약들은 치료제라기보다는 현상 유지나 부분적인 골 손실 회복 기능 정도가 전부다. 반면 이번 배 박사팀의 후보 물질은 소실된 뼈를 정상화해 골다공증의 궁극적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배 박사는 “이 물질은 기술적 혁신성으로 볼 때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신약 개발에 성공할 경우 경제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화학연은 신풍제약과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고, 전임상과 임상시험 등을 거쳐 오는 2018년까지 치료제를 출시한다는 목표다.
표적 치료제 신약 개발 단계
① 목표 분야 선정
현재까지 만족스러운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는 분야를 선정한 뒤 생물학, 화학, 유전학은 물론 환자의 경험과 질병의 역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질병 유발 요인을 찾아낸다.
② 단백질 표적 특정
질환 유발 인자에서 분자 단위의 단백질을 선별한다. 특정 단백질(잠재적 표적)과 질병의 연관성이 확인되면 해당 단백질을 공격하거나 활동을 차단시킬 화합물 또는 항체를 물색한다.
③ 최적의 화합물 설계
적합한 후보물질을 찾고나면 공격력 향상을 위한 작업, 즉 이들의 효과와 함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고도화 설계를 진행한다.
④ 전 임상연구
임상시험 실시 전 후보물질의 안전성(독성)과 효능의 입증을 위해 컴퓨터 모델링 및 실험실에서의 소규모 실험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후보물질의 흡수도, 작용기존, 분해·대사과정을 밝힌다.
⑤ 1상 임상시험
5~15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후보물질을 직접 투약해 인체 내에서의 작용기전을 살펴보는 개념증명 단계를 거쳐 20~80명 규모의 1상 임상시험을 실시한다. 여기서 기본적인 효능과 안전성, 복용량이 평가된다.
⑥ 2상 임상시험
1상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100~300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좀더 광범위한 수준의 2상 임상시험에 돌입한다.
⑦ 3상 임상시험
2상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후보물질의 효과를 확정하고, 특수한 상황에서의 이상반응까지 관찰하기 위해 1,000~3,000명 단위의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⑧ 등록·출시
효과가 확정되면 모든 연구 및 제조과정을 규제기관에 제출하여 심사를 받고, 공식허가를 획득해 신제품을 출시한다. 출시 이후에도 부작용 모니터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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