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포로’가 된 신흥국들에게 미국의 돈 풀기 축소에 대한 영향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이 양적완화(QE) 축소를 한다면 주가는 결국 펀더멘털로 돌아간다. 미국의 QE 축소에 따른 방어능력을 보면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강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미국의 QE 축소 언급은 신흥국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3조 5,000억 달러를 풀어 금융위기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유럽은 여전히 부채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기대를 모았던 신흥시장은 다시 금융위기로 내몰렸다. 농업이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 아니라 금융이 천하지대본이다. 미국이 경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가 부채의 덫에 빠졌다. QE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미국, 유럽의 무지막지한 돈 풀기는 국가부도를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진실은 단기에 과도하게 투여한 스테로이드주사다. 지금 유럽의 위기는 PIGS에서 프랑스를 포함한 FISH로 전이되고 있다. 부채의 절대 금액은 줄이지 못했고 표심에 목숨 건 정치인들의 빚 돌려 막기 정책일 뿐이다. 선진국은 망하지는 않았지만 고성장은 어렵고 빚은 결국 후손들의 눈물로 남는다.
그러면 신흥시장 이 대안이 될까? 2001년 소위 ‘신경제(New Economy)’ 로 불리던 IT산업의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찾은 새로운 투자대상은 바로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이었다. 2003년 골드만삭스는 ‘벽돌론(BRICs)’을 들고 나와 신흥시장 투자에 바람을 넣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2003년 BRICs 붐 이후 10년이 흘렀지만 BRICs의 본질은 여전히 ‘미국에 물건 공급하는 공급업자’인 중국, ‘미국의 저가 싸구려 용역 대행국가’인 인도, ‘중국 공장에 원자재를 납품하는 하청업체’인 브라질과 러시아에 불과하다. ‘BRICs’네 ‘신흥시장’이네 하고 금융가가 떠들었지만 2003년 이후 중국만 ‘용(龍)’이 되었고 나머지는 ‘이무기’ 신세다. 중국만 10년만에 세계 GDP 6위에서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을 순차적으로 제치고 2등으로 올라섰다. 나머지는 여전히 후진국의 반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신흥시 장 붐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 금융의 힘, 더 정확히 말하자면 FRB의 통화 확대 과정에서 생겨난 선진국 유동성이 만들어 낸 붐이다. 그러나 1981년 FRB가 금리를 19%까지 올리면서 라틴아메리카가 거덜났고, 1990년대에 2번의 금리인상과 긴축이 멕시코, 아시아, 러시아, 브라질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2007년 이후 대규모의 통화방출 이후 2013년 들어 긴축모드로 전환한다고 하자 ‘인(印)’자 돌림의 인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터키가 난리가 났다.
미국이 다시 긴축으로 들어가면 언제가 가장 위험할까? 역사가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미국의 긴축과 신흥국의 금융위기와의 관계를 보면 금리상승 시작 1년이 가장 위험한 때이고 금리의 상승폭은 대략 110~190bp 정도 올라가면 위험수위였다. 지금 일부 아시아 신흥시장의 주가와 환율이 속락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것은 아직 초반전이고 본 게임의 시작은 좀더 있어야할 판이다.
이제부터 관심 갖고 볼 것은 첫째 미국의 금리다. 경기가 살아나 자금수요의 증가로 자연스럽게 금리가 오른다면 OK지만 금융기관의 자금중개능력이 회복도 안되었는데 지레 겁먹고 통화환수를 하는 바람에 금리가 올라간다면 그건 재앙이다. 지금 미국의 국채발행액은 16조 달러를 넘어섰다. 현재 3%대인 국채수익률이 6%대로 올라간다면 미국 국채의 차환발행이 이루어질 때 금융비용만 5,000억 달러다. 그러면 미국은 국방비와 국채이자 그리고 의료보험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쓸 예산이 없다.
둘째는 화폐의 유통속도다. 지금 미국, 중국, 일본 할 것 없이 모든 경제대국의 화폐유통속도는 50%도 안된다. 돈을 한 단위 풀었을 때 GDP의 증가가 절반도 안된다는 의미다. 진정 미국의 경제가 살아나고 월가의 고장 난 시계를 고쳤다면, 그간 방출한 3조 5,000억 달러의 돈이 지금보다 2배만 회전속도를 높인다면 QE 중단은 아무 문제없다. 경기회복과 금융기관의 자금 중개 기능의 정상화로 QE 중단이 이루어졌다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하이퍼 인플레를 걱정해야 한다.
QE중단 이후 세계의 유동성은 어디로 몰릴까? 이젠 ‘Emerging Market(신흥시장)’아니라 ‘Diverging Market(차별화된 시장)’을 찾는 게임이 시작됐다. 금융업은 그 자체로는 불임산업이다. 두 사람이 서로 주식을 사고 팔아 주가를 높이고 돈을 빌려주고 받고 대출 잔액을 높인들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금융은 제조업을 매개체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돈은 이제 제조업이 강한 나라로 간다. 선진국은 미국과 유럽이지만 IT가 강한 미국과 자동차와 기계가 강한 독일 외에는 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어떤 상황이든 달러의 포로가 된 신흥국들에게 미국의 돈 풀기 축소의 영향은 피할 수 없다. 그간 수 차례 신흥시장 금융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경직된 환율제도와 자본항목의 맹목적인 개방, 국가와 기업의 높은 부채비율, 국가의 높은 외채의존도, 단기외화채무 편중의 채무구조가 금융위기에 부도난 나라의 특징이다. 금융위기에서 이머징 시장의 안전판은 무엇일까? 첫째는 외환 보유고이고 둘째는 경상수지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남아공, 인도, 인도네시아 금융 쓰나미의 본질은 과도한 외화부채와 경상수지 적자다. 외채가 외환 보유고의 1.4~3.1배나 된다.
미국이 QE 중단을 한 다면 주가는 결국 펀더멘털로 돌아간다. 모든 신흥국이 위험하다. 하지만 ‘위험은 있지만 위기는 없다’고 판단되는 나라는 금융긴축이 일단락 되면 주가든 환율이든 제자리로 빨리 돌아온다. 금융위기에서 보면 금융 쓰나미에는 역시 실물이 센 나라가 강하다. 유럽의 독일, 아시아의 중국이 그 예다. 경상수지, 부채비율, 재정적자의 측면에서 미국의 QE 축소에 따른 방어능력을 보면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강하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의 신흥국들과는 차이가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대비 외환 보유액을 보면 인도네시아가 3 배, 태국이 4배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한국은 9배가 늘었다. QE 축소의 수혜자로 한국과 중국을 주목할 만하다. 지금 일부 아시아 신흥시장의 주가와 환율이 속락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것은 아직 초반전이고 본 게임의 시작은 좀더 있어야 할 판이다.
전병서 소장은…
대우증권 리서치 본부장과 IB본부장을 역임했다. 한화증권 리서치본부장을 거쳐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원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석사), 푸단대 관리학원(석•박사)에서 공부한 그는 현재 중국 자본시장 개방과 위안화 국제화, 중국 성장산업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저서로는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5년 후 중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