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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배후 인물

THE MAN BEHIND THE LARGEST PROJECT IN U.S. HISTORY

부동산 재벌 스티븐 로스 Stephen Ross는 200억 달러 규모의 허드슨 야드 개발을 통해 뉴욕시의 거대한 지역을 탈바꿈시키려 한다.
by SHAWN TULLY
Photograph by stephen wilkes


약간의 과장을 섞자면, 스티븐 로스는 ‘꿈’을 개발하고 있다. 릴레이티드 사 Related Co.의 회장 겸 설립자인 로스는 낡은 고가 철도 하이 라인 High Line 위에 서 있다. 이 철도는 허드슨 강 Hudson River이 흐르는 맨해튼 Manhattan과 웨스트 사이드 West Side, 첼시 Chelsea를 통과한다.

철로 아래로는 암울한 산업화 시대의 풍경-펜실베이니아 역을 드나드는 기차들로 붐비는 대형 철도차량기지-이 펼쳐져 있다. 차량기지 주위로는 주차장과 차량 정비소들이 들어서 있다. 웅웅거리는 기관차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일요일 아침, 로스는 “여기는 뉴욕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이곳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곳은 록펠러 센터*역주: 뉴욕시 중심에 있는 고층건물 지대보다 더 근사하게 변할 것이고, 뉴욕의 새로운 심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의 달인 로스는 한 통의 청사진을 손에 쥐고 앞으로 10년 동안 어디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설 예정인지 설명했다. 그는 ‘도시 안의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는 두 개의 은색 마천루가 들어설 장소를 가리켰다. 한 곳은 패션 브랜드 코치 Coach의 본사, 다른 한 곳은 ‘미디어 거인’ 타임 워너 Time Warner의 사옥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건물에는 돌출된 삼각형 모양의 야외 전망대(1,053피트·321m)가 설치될 예정이다. 로스는 “이 전망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몇 피트 더 높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두 빌딩은 뉴욕의 가장 큰 쇼핑몰 양 끝에 위치할 예정이다. 쇼핑몰의 넓이는 도시 블록 하나, 높이는 최소 5층이 될 것이다. 최고 레스토랑 경영자 대니 메이어 Danny Meyer가 조직한 복합단지에는 14개의 레스토랑이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선 대니얼 볼루드 Daniel Boulud부터 토머스 켈러 Thomas Keller까지 유명 요리사들의 독점메뉴가 제공된다. 로스는 “세계의 어떤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건축물들을 여기 한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차일즈 David Childs, 로버트 스턴 Robert Stern, 데이비드 로크웰 David Rockwell, 윌리엄 페더슨 William Pedersen, 엘리자베스 딜러 Elizabeth Diller 같은 권위 있는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대비를 이루며 전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드슨 야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곳에서 미국 역사상 최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로스가 추진했던 최대 프로젝트들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세계 최대의 부동산 개발 기업 릴레이티드 사는 이 부지의 소유주로 17개 빌딩의 건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1,800만 평방 피트(약 50만 5,850평)가 소요되며 사무실과 매장, 아파트, 호텔, 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리고 시 정부 지원을 받아 패션쇼나 콘서트가 열리는 대형 문화 복합단지도 들어선다. 5만 5,000명이 이곳에서 일하거나 거주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규모는 기존 미국 최대 프로젝트(라스베이거스에 들어선 1,680만 평방 피트(약 47만 2,100평) 규모의 시티센터 CityCenter)와 맞먹는데, 더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예상소요 비용은 200억 달러로 비교가 안된다).

릴레이티드 사는 5년 전 시 정부로부터 10억 달러에 차량기지 부지를 매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 가격은 공식 부지에 대한 것이다. 26에이커 넓이(여섯블록 규모)의 이 부지는 30번가와 33번가 사이, 10번가와 12번가 사이를 아우른다. 그럼에도 릴레이티드 사는 프로젝트 파트너 (캐나다의 거대 부동산 개발업체) 옥스퍼드 프로퍼티스 Oxford Properties와 함께 주변 부지를 매입하며 허드슨 야드에서의 입지를 늘려가고 있다. 로버트 모지스 Robert Moses *역주: 뉴욕 도시계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건축가가 그랬던 것처럼 로스는 뉴욕 파워의 축을 이동시킬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뉴욕에는 최신식 사무실과 아파트가 크게 부족하다. 허드슨 야드는 그런 부족함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280억 달러를 운용하는 사모펀드 콜로니 캐피털 Colony Capital의 CEO 톰 버락 Tom Barrack은 “훌륭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완전히 ‘새로운 지구’를 세울 26에이커 넓이의 부지를 찾는 건 이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공식 착공됐고, 첫 번째 빌딩은 2015년 문을 열 예정이다.

뉴욕 한가운데서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0년에 걸쳐 진행되는 공사의 복잡한 상황을 조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기반 시설도 구축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6피트(1.8m) 두께의 콘크리트 플랫폼 위에 구현된다. 아래에서 계속 기차가 운행되기 때문에 차량기지 위로 플랫폼을 설치하는 것이다. 뉴욕에서는 새롭지 않은 방식으로, 19세기에 파크 애비뉴 Park Avenue 북쪽 고급 주택 지구를 동일한 방식으로 건설한 바 있다.

다행히도, 상황은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맨해튼 부동산 시장은 세계 금융위기 여파에서 회복했다. 메트로폴리탄 교통 당국(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ority)은 반세기만에 24억 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해 맨해튼 웨스트 사이드 지하철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 7호선 신규 라인은 타임 스퀘어에서 허드슨 야드 근처 종점까지 운행된다. 한때 고립됐던 이 지역은 2014년 중반이면 미드타운 Midtown 및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Grand Central Terminal과 다시 연결될 예정이다.

모든 상황이 부동산 개발 거물 로스(72)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60억 달러 자산가이자, 부업으로 NFL팀 마이애미 돌핀스 Miami Dolphins(2009년 11억 달러에 인수)를 운영하는 로스는 편안히 여행이나 즐기는 은퇴생활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세계 전역에서 야심 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부다비 Abu Dhabi에선 중동 최대 프로젝트 중 하나인 280에이커 규모의 알마르야 아일랜드 Al Maryah Island 복합단지를 공동 개발 중이며, 브라질 상파울루 Sao Paulo에선 오랜 친구 조지 페레즈 Jorge Perez와 파트너십을 맺고 두 개의 고급 콘도 타워를 건설 중이다(페레즈는 플로리다 소재 릴레이티드 그룹 Related Group의 창업자다. 이름이 비슷한 릴레이티드 사가 이 기업 지분의 25%를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LA 시내의 그랜드 애비뉴 Grand Avenue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호텔, 상점, 아파트 등을 포함한 세 블록 규모의 복합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뉴욕에선 낙후된 윌레츠 포인트 Willets Point-메이저리그 뉴욕 메츠 New York Mets의 홈구장 시티 필드 Citi Field로 유명한 퀸즈 Queens 내 23에이커 넓이 지역-의 역사적 재개발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허드슨 야드야말로 그의 오랜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 될 것이다. 로스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기회를 포착하는 비전과 리스크를 감수하는 과감함-세입자와 자금 조달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로 사업에 뛰어들었다-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제 프로젝트가 시작됐기 때문에 변호사 출신 개발업자 로스는 (자신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발휘되는) 지칠 줄 모르는 세심함으로 진행 과정을 감독할 것이다. 포춘은 로스의 사업 방식을 엿볼 귀한 기회를 얻었다. 또 로스는 부동산 개발분야에서의 오랜 커리어가, 허드슨 야드처럼 다소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설명해 주었다.


른 개발업자들과 차별화되는 로스만의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고도로 복잡한 프로젝트를 조직하는 역량이다. 그는 다양한 요소를 균형 있게 운영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몇 년에 걸친 사업기간 동안 임대료나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는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로스는 이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 1972년 릴레이티드 사를 설립할 때 로스가 사용했던 전략에는 그의 철학이 반영돼 있다. 로스는 개발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개발 프로젝트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경기가 바닥을 칠 때 자본부족으로 파산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개발업자들은 아파트나 쇼핑센터가 완성되자마자 즉각 처분하고,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반면, 릴레이티드의 전략은 자사가 건설한 건물을 직접 소유·관리하는 것이다.

오늘날 릴레이티드 사의 포트폴리오에는 200억 달러 가치의 자산들이 포함돼 있는데, 주로 쇼핑몰과 (엄청난 수의) 아파트다. 이 회사는 뉴욕시 20개 빌딩 내 최고급 아파트 5,000채를 소유한 뉴욕 최대의 임대업체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에도 아파트 1,000채를 소유하고 있다. 로스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저가 주택분야는 여전히 회사의 기반 사업이 되고 있다. 릴레이티드 사는 19개 주에 4만 5,000채의 저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최대 규모다. 회사 측은 여유 자금에 대한 공개를 거부했지만, 포춘은 연 수억 달러에 달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풍부하고 정기적인 수익 덕분에 회사는 부동산 개발업계에서 보기 드문 안정성을 구가하고 있다.

로스는 이런 탄탄한 재정 기반을 등에 업고 라이벌 기업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왔다.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 뉴욕 시장의 어포더블 하우징 프로그램 *역주: 저·중 소득자를 위한 주택 공급 정책의 책임자 라파엘 세스테로 Rafael Cestero 는 “로스는 벼랑 끝까지 가지만 절대로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로스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도 탁월해 프로젝트가 전혀 수익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사업 초 유치한 세입자와 구매자들이 전체 비용의 대부분을 충당하도록 만든다.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도 이 전략을 기반으로 한다. 사무용 빌딩은 미끼 상품에 불과하다. 수익성이 훨씬 더 높은 쇼핑몰이나 아파트는 한참 후에야 완공된다.

이것이 로스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전략이다. 그는 미국 최대의 ‘복합 용도(mixed-use)’ 전문 개발업자다. 아파트, 쇼핑몰, 사무용 빌딩 중 하나에 집중하는 대신 세 가지 목적의 건물을 복합적으로 하나의 구역에 녹여낸다. 세 종류의 건물이 한 번에 완성된 모습은 수십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개발된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스의 생각은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 한 가지 건물만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버락은 “대부분의 개발업자들은 복합 개발을 좋아하지 않고 하나를 전문화 하길 원한다. 복합 개발은 훨씬 더 복잡하지만, 그만큼 잠재 수익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 덕분에 로스는 최근 몇 년간 일고 있는 뉴욕 재개발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12년 임기 동안 블룸버그 시장의 최대 업적은 넓은 미개발 구역을 공업·상업지구(수요가 이미 다 죽었다)가 아닌 주거·사무지구로 전환한 것이다. 현 블룸버그 LP의 CEO이자 전 뉴욕 부시장 댄 닥터로프 Dan Doctoroff는 “뉴욕시는 로스와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로스는 허드슨 야드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과감히 추진할 유일한 인물이며 복합 개발의 최고 권위자다. 로스가 그리는 뉴욕의 모습은 다른 어떤 개발업자보다 블룸버그의 비전과 가장 닮아 있다”고 평가했다.


나무 패널로 된 그의 집무실은 맨해튼 미드타운 타임 워너 센터 Time Warner Center 19층에 위치해 있다. 사무실 안은 마이애미 돌핀스와 미시건 대학교의 마스코트 울버린 Wolverine 관련 기념품으로 가득하다. 로스는 자신의 커리어를 대성공을 거둔 프로젝트에 따라 순차적으로 설명했다. 타임 워너 센터는 그가 추진한 최초의 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였고, 그 과정에서 허드슨 야드를 위한 소중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인터뷰 장소로 아주 적절했다. 로스는 더 큰 프로젝트에 뛰어들 때마다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방법을 찾아 낼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로스는 디트로이트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자판기와 연료첨가제를 발명한 발명가였지만 큰돈을 벌진 못했다. 삼촌은 디트로이트 주유소 업계의 거물이자 훗날 경기 불황 때 로스를 구해 준 것으로 유명해진 맥스 피셔 Max Fisher다. 로스는 그런 삼촌을 비즈니스 롤 모델로 삼았다. 로스는 고등학생 시절 마이애미로 이사했다. 그리고 마이애미 비치 시니어 고등학교(Miami Beach Senior High School)를 440명 중 400등으로 졸업했다. 1962년 간신히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현재는 모교의 최대 기부자가 되었다. 2004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스티븐 M. 로스 비즈니스 스쿨(Stephen M. Ross School of Business)에 1억 달러를 기부했다. 그의 휴대폰 벨소리는 울버린스의 응원가 ‘승리’다.

몇 년간 디트로이트에서 세금관련 변호사 일-그는 “맥스 피셔의 조카로 더 유명한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을 했지만, 1970년 베어 스턴스에 취직해 월가에 입성했다. 고집 센 로스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을 리 만무했다. 그는 한 거래 건을 두고 파트너와 의견충돌을 빚었다. 격양된 파트너는 “당신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로스도 “나도 당신을 전혀 못 믿겠다. 그러니까 꺼져!”라고 맞받아쳤다. 로스는 바로 다음날 해고됐다. 전문 분야인 세금법을 부동산 개발에 활용할 방법을 찾는 동안, 어머니로부터 1만 달러를 빌려 방세와 식비를 충당했다.

그는 중·하층에 공급되는 저가 주택 분야를 특화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세제혜택이 투자자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의 첫 프로젝트는 운소켓 R.I. Woonsocket R.I. 에 위치한 150가구 아파트 단지였다. 이것이야말로 로스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비즈니스였다. 어포더블 하우징 프로그램은 무척 다양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공식은 거의 비슷했고, 로스는 그 공식을 마스터했다. 그는 보통 건설 자금을 저리 지방채 수익과 은행 및 자산가들이 받는 세금공제를 통해 충당했다. 로스는 “투자자들은 세금 공제를 받고, 그 돈은 개발업자들에게 재투자 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로스 본인은 소액을 투자해 빌딩을 소유했고, 경제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임대료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로스는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 Upper East Side에 주거 단지를 건축하며 주류 부동산 개발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로스는 “1988년 내 재산가치는 3억 5,000만 달러였지만 1990년대 말쯤에는 파산보다 더 나쁜 상황에 빠졌다. 은행 빚이 1억 2,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회상했다. 주택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해 완공되거나 건설 중인 빌딩들을 담보로 내놓았다. 삼촌 맥스와 친구 페레즈는 릴레이티드 사 주식에 1,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훗날 투자금의 4배를 회수했다. 로스도 담보로 맡겼던 자산 대부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벼랑까지 내몰렸던 그때의 경험은 그의 생각을 영원히 바꿔놓고 말았다. 그후로 로스는 대부분 개발업자들이 사용하는 높은 비율의 레버리지를 지양하게 됐다. 현재 그는 프로젝트 비용의 절반가량을 회사나 파트너가 제공하는 순자본으로 충당한다. 동시에 경기가 좋을 때는 최대한 많은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

로스는 인재를 찾고, 유지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1988년 미시건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 부동산학과 교수가 로스에게 “꼭 이 친구를 고용하게. 내 평생 이렇게 똑똑한 학생은 본 적이 없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영리한 학생이 바로 로스의 에이스 협상가 제프 블라우 Jeff Blau였다. 로스 아래서 일할만한 충분한 배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블라우-그의 아버지는 퀸즈에서 배관공사 도급과 소규모 부동산 개발을 했다-는 로스에게 주말에 뉴욕에 가야하는데 전용기에 태워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블라우는 “뉴욕으로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단지 비행기 안에서 나를 고용하도록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1990년 블라우가 정식 직원이 됐을 때, 릴레이티드 사는 아무런 프로젝트도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개발 담당 직원은 20명에서 4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블라우는 와튼 스쿨 Wharton School에서 MBA를 취득하기 위해 필라델피아까지 통학하며 남는 시간을 보냈다. 블라우는 로스에게 자신은 2년만 릴레이티드 사에서 일할 것이고, 이후에는 자신의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는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면, 나는 어떻게든 너를 붙잡을 것”이라고 답했다. 2012년 9월 블라우(45)는 로스를 대신해 릴레이티드 사의 CEO에 올
랐다.

블라우가 회사에 남은 이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로스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제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능한 인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직원이 아닌 파트너로 승격시켰다. 릴레이티드 사의 사장 브루스 빌 Bruce Beal과 블라우는 회사 지분의 30%(20억 달러 이상의 가치다)를 보유하고 있다. 다수의 다른 뉴욕 개발업자들과 달리 로스의 회사에는 친인척이 전혀 없다(그에겐 첫 결혼 때 얻은 친딸 2명과 의붓딸 2명이 있다).


90년대 중반 프로젝트들이 모두 대성공을 거둔 뒤 로스는 릴레이티드 사를 일류 기업 반열에 올릴 귀한 기회를 얻었다. 바로 타임 워너 센터다. 루돌프 줄리아니 Rudolph Giuliani 시장이 콜럼버스 서클 Columbus Circle에 위치한 낡은 뉴욕 콜로세움 컨벤션 센터를 상업 중심지로 변모시킬 기획안을 공모했다. 로스는 맨해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감한 복합개발 안을 제시했다. 그 계획은 무척 복잡하고 비용도 엄청났다. 하지만 로스는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수직 매장(vertical retail)’의 광범위한 채택이었다. 4개 층이 상점과 식당으로 구성되는데 맨 위층에는 일류 요리사가 있는 최고급 식당이 들어서게 되어 있었다. 켄 히멜 Ken Himmel이 당시 프로젝트에서 상업부문을 담당했다.

그는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 복합 개발 전문가다. 그는 “이 방식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입찰에 참여한 다른 개발업자들은 모두 상업 구역을 은행이나 약국 위주로 1층에 위치시킬 계획이었다. 독립된 가게들을 고층 복합단지에 위치시키는 ‘수직 매장’ 방식은 맨해튼에서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뉴욕 시민들은 주로 메이시스 Macy‘s나 블루밍데일스 Bloomingdale‘s 같은 백화점이나 매디슨 애비뉴 Madison Avenue 같은 고급 부티크에서 쇼핑을 했다.

로스는 자신의 방식이 성공하리라 믿었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 사무용 공간의 간판이 될 일류 기업이 필요했다. 그는 1998년 초 딕 파슨스 Dick Parsons 타임 워너(포춘의 모기업이다) 회장과 5분간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파슨스는 “원하는 게 뭐요? 콜럼버스 서클 입찰에 참여 중인 8개 기업 모두 내게 왔지만, 우리는 더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소”라고 말했다. 로스는 곧바로 설득 작업에 들어가 “딕, 이것은 단순한 공간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최고 미디어 기업의 자태를 뽐내는 것이 진짜 목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파슨스는 자신의 회사 이름을 딴 거대한 빌딩을 가졌을 때 얻을 수 있는 브랜드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파슨스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곳이 상징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거래를 통해 릴레이티드 사는 지도에 등장하게 되고, 맨해튼 웨스트 사이드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시동이 조금 늦게 걸렸지만, 결국 타임 워너 센터는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새로운 타임 워너센터가 허드슨 야드에 완공되면, 타임 워너는 현재 사옥을 떠날 것이다). 중간 층에 휴고 보스 Hugo Boss와 토너 Tourneau 같은 고급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이 쇼핑몰에선 막대한 임대수익이 나온다. 1층의 평방 피트당 매출은 매디슨 애비뉴의 동일 브랜드 매장과 맞먹는다. 마사 타카야마스 마사 Masa Takayama‘s Masa와 토머스 켈러스 퍼 세 Thomas Keller‘s Per Se 같은 최고급 레스토랑은 쇼핑객들이 세포라 Sephora, 제이 크루 J. Crew 쇼윈도를 지나 한 층 위로 향하도록 손짓한다. 다양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결합한 이 성공 사례는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를 위한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으로 보기에 비즈니스(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로스의 접근법은 상당히 위험하고 즉흥적으로 보인다. 그의 친구들은 로스를 ‘시끄러운’, ‘거친’, ‘극단적인’, ‘막무가내’ 같은 단어로 다양하게 묘사한다. 페레즈는 “로스는 일단 목표를 정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완전히 미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모든 논쟁에서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신축 빌딩에 관한 미팅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모두 빌딩 용도는 3가지면 충분하다고 동의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3가지는 너무 많다고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똑같은 회의에 불쑥 찾아와 4가지 용도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빌은 “로스는 자신의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일부러 반대 주장을 펼친다. 사실,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로스는 다가올 어려움을 대비하고,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 입찰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두 가지 전략을 고안했다. 그는 임박한 위기를 감지했다. “세계에 큰 변화가 닥치리란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로스는 삼촌 맥스 피셔의 주유소 사업에서 힌트를 얻었다. 피셔는 석유 공급량이 풍부하던 대공황 시절 장기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 로스는 “삼촌은 석유부족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본받아 로스는 자금사정이 넉넉할 때도 최대한 현금을 확보했다. 2007년 12월 릴레이티드 사의 지분 25%를 5개 투자업체-마이클 델 Michael Dell의 MSD 캐피털 MSD Capital, 골드만삭스, 쿠웨이트 투자청(Kuwait Investment Authority), 아부다비 Abu dhabi의 무바달라 개발공사(Mubadala Development), 사우디 Saudi의 올라얀 그룹 Olayan Group 등-에 14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그 수입의 일부는 마이애미 돌핀스의 제1주주가 되는 데 썼지만, 대부분은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었을 때 로스, 블라우, 빌은 두 번째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기 위해 사업 운영에 극적인 변화를 준 것이었다. 우선 로스는 아직 착공되지 않은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이라 발표했다. 블라우의 임무는 열악한 시장 상황에도 회사 인력을 이용해 수익을 올릴만한 일을 찾는 것이었다. 블라우는 “시장 상황이 회복될 때 다시 치고 나가기 위해 직원들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발 담당 직원들을 워크아웃 관련 업무로 돌렸다”고 말했다. 일례로, 차압된 30억 달러 가치의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호텔·카지노를 회생시키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100명의 직원을 파견했다. 예산 범위 내에서 계획대로 호텔 구조 및 디자인 개선 작업을 완료했고, 그 대가로 엄청난 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2008년 초 허드슨 야드 입찰에 뛰어들 기회가 찾아왔다(로스는 기회를 거의 놓칠 뻔했다). 원래 차량기지는 2012년 뉴욕이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경기장 부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최지가 런던으로 결정되자 블룸버그 시장은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개발업체들로부터 다양한 안을 요구했다. 로스는 다국적 미디어 기업 뉴스 코퍼레이션 News Corp.을 빌딩 가치를 높여줄 주력 입주 업체로 판단하고 계약을 했다. 낙찰을 거의 확신하고 있던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파산하며 더 큰 위기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뉴스코퍼레이션은 최종 입찰 바로 전날 계약을 해지하고 로스는 사실상 입찰을 포기했다. 뉴욕시는 티시먼 스파이어 Tishman Speyer를 선택했고, 로스는 크게 좌절했다. 그는 그 후 며칠간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넋두리를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이성적일 필요는 없었다. 주력 입주 업체 없이도 입찰에 참여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폴 해스팅스 Paul Hastings의 부동산 변호사이자 로스의 오랜 친구 마티 에델먼 Marty Edelman은 “첫 입찰에서 실패했을 때 로스는 장황한 변명을 끊임없이 늘어 놓았다. 또 괜한 트집을 잡아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야기가 자책 단계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수위를 제외한 누구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기적적으로 그는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2008년 5월 티시먼 스파이어가 갑작스럽게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것이었다.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어했던 뉴욕 시는 기존 입찰자들에게 기회를 줬는데 유일하게 릴레이티드 사만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블라우는 뉴욕 시와 부지 소유주 MTA와의 협상에서 중요한 계약 조건 하나를 바꾸려 했다. 기존 거래 조건은 개발업자가 넉 달 안에 부지를 매입하고, 2년 후인 2010년 말부터 대금 지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블라우와 로스는 암울한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몇년간 입주자를 찾지 못하면 아무런 수익 없이 시 정부에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MTA는 공식 거래 개시일(closing date) 이후 5년간 임대료를 부과하지 않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로스는 프로젝트로 실질적 수익을 올리기 훨씬 전에 대금 지불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여전히 불안해했다. 그러다 이를 타개할 묘안이 떠올랐다. 부동산 시장의 반등을 상징하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만 공식 거래가 개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거래 당사자들은 주택가격과 건설 현황을 반영한 관련 기준을 마련했고, 로스는 결국 허드슨 야드 거래에서 필수적인 ‘시간 벌기’라는 옵션을 얻게 됐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블라우는 “2012년 초까지만 해도 입주자를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부동산 시장이 회복됐다. 첫 번째 타워의 대표 브랜드로 코치 Coach를 입점시킨 건 큰 성과였다. 릴레이티드 사는 기획과 MTA에 지불할 보증금, 기초 공사 등에 3억 달러를 투자한 뒤 2013년 4월이 돼서야 공식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블라우는 뉴욕 시 건설 조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덕분에 코치와 타임 워너를 비롯한 초기 입주자들에게 처음 지은 두 빌딩의 공간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조건을 제공할 수 있었다. 로스는 초기 사무실 임대 비즈니스는 잘해봐야 손익 분기점을 맞추는 데 그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현재 더 높은 가격에 계약을 한 입주자들로부터도 그리 큰 이익을 챙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허드슨 야드는 상당히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될 것이다. 진짜 큰 수익은 상업과 주택부문에서 오기 때문이다. 사실, 주택 부문이 프로젝트의 절반을 차지한다.

오늘날 맨해튼의 콘도 및 임대 빌딩은 평방 피트 당 3,000달러에 거래된다. 같은 크기 사무실 가격의 두 배가 넘는다. 릴레이티드 사가 누리는 이점 중 하나는 동결된 것과 다름없는 낮은 땅값과 플랫폼 설치 비용이다.

블라우는 “주택 가격이 오를 때, 땅값도 따라 오르기 때문에 수익 대부분이 상쇄된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간 땅값을 고정시켜놨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릴레이티드는 앞으로 가격 측면에서 엄청난 이익을 누릴 것이다.

다시 고가철도로 돌아와 보자. 로스는 5에이커 넓이의 허드슨 야드 공공 광장을 가리킨다. 그는 광장에 설치할 대형 조각품을 의뢰했는데 이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크다고 한다. 로스가 뉴욕에 바치는 선물이자 허드슨 야드의 장엄함에 어울리는 작품이 될 것이다. 평소 그의 스타일을 봤을 때, 최고 조각가 6명의 작품을 놓고 장대한 조각품 대회를 열 것으로 보인다.

소문에 의하면 전설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제프 쿤스 Jeff Koons, 토머스 헤더윅 Thomas Heatherwick,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를 비롯한 일류 조각가들이 경쟁한다. 한 직원의 말에 따르면, 로스는 이 유명 조각가들에게 ‘판을 키워’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거대한 조각품은 건물 몇 층 높이에, 제작비용도 1억 달러를 호가할 것이다.

로스는 야심 찬 목소리로 “이 조각품은 뉴욕 최고의 관광상품이 될 것이다.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달리 1년 내내 관광객을 끌 것이며, 파리의 에펠탑처럼 뉴욕의 상징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로스가 잘 아는 것처럼, 꿈을 크게 꾸지 않고서는-혹은 원대한 계획을 말하지 않고서는-결코 미국 역사상 최대의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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