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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아트 가미해 세계적 브랜드로 급부상

시계 이야기 ⑤ 위블로

위블로는 최근 가장 핫한 브랜드다. 유럽 왕가의 선물로나 사용되던 이 ‘조용한’ 브랜드는 희대의 풍운아 장 클로드 비버가 CEO를 맡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하이엔드급 시계 브랜드들은 자존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로 평가 받는 브랜드들조차도 서로 비교되는 것을 꺼린다. 그렇다 보니 경영도 굉장히 비밀스러운 면이 많다. 얼마나 많은 시계를 팔았는지, 매출액은 어느 정도인지 등 중요한 경영사항은 ‘노코멘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정보 하나하나가 다른 브랜드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핫한 브랜드가 어디냐’는 질문의 답은 그래서 어렵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한 데다 소비층이 워낙 얇기 때문이다. 하이엔드급 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보니 어느 브랜드가 인기인지 확인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모든 브랜드의 적, 흔히 짝퉁이라 불리는 모조품 시장을 모니터링하면 대강의 흐름을 읽을 수가 있다. 모조품 시장은 해당 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바로미터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모조품 시장의 메카로 불리는 동대문시장에서 최근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시계 브랜드는 단연 위블로 Hublot다. 굵직하게 떨어지는 선, 클래식하면서도 역동적인 위블로의 이미지가 최근 젊은 화이트칼라 층의 기호에 부합하면서 모조품 시장이 이를 재빠르게 반영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위블로는 이탈리아의 시계 제작자 카를로 크로코 Carlo Crocco가 1980년에 만든 브랜드다. 카를로 크로코는 우아하면서도 정열적인 이탈리아 스포츠 정신에서 위블로의 영감을 얻었다.

카를로 크로코는 창립 당시 위블로의 성격을 ‘유행과 상관없이 편안하고 우아하며 미니멀하고 스포티한 브랜드’로 정의한 바 있다. 위블로가 클래식하면서도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창립자인 카를로 크로코의 영향이 컸다.

비교적 최근에 론칭한 브랜드이지만, 위블로의 가치를 알아본 시계 마니아들 덕분에 위블로는 단숨에 하이엔드 워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히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 Carl XVI Gustaf가 노벨상 수상식에 위블로 시계를 차고 참가한 것이 알려지면서 ‘왕들의 시계’라는 타이틀을 얻은 게 주효했다. 위블로는 현재에도 유럽 왕정 국가들 사이에서 왕들의 공식 선물로 건네진다. 모나코 왕족들부터 앤디 워홀 Andy Warhol 같은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위블로에 대한 사랑은 세계 도처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특별한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탔던 위블로지만, 위블로가 세계워치 메이커사들 중에서도 좀 더 특별한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04년 CEO에 오른 세계 시계 산업계의 풍운아 장 클로드 비버 Jean-Claude Biver의 역할이 컸다. 스위스 출신의 장 클로드 비버는 현재도 세계 시계 산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장 클로드 비버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계 산업계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세계 시계 산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스와치그룹 및 리치몬트그룹과도 깊숙이 관계된 인물로, 이전에 이들 그룹 산하의 브랜드들을 맡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경험이 있다.

장 클로드 비버는 취임하자마자 위블로의 브랜드 정체성에 ‘퓨전아트 Art of Fusion’를 추가시켰다. 위블로는 시계 제조 역사상 처음으로 고무소재와 골드를 결합한 시계를 창안하는 등 이전부터 ‘퓨전’과는 밀접한 관계에 있던 브랜드였다. 장 클로드 비버는 이런 위블로의 특징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 첫 결과물은 2005년에 론칭한 ‘빅뱅 Big Bang’ 컬렉션이다. 장클로드 비버 취임 1년 만에 나온 빅뱅 컬렉션은 위블로가 추구하는 퓨전 콘셉트의 진수를 보여준다. 외관에서 보여주는 선과 곡선, 클래식과 다이내믹의 이미지 퓨전은 물론 골드와 세라믹, 탄탈과 러버 등 이질적인 소재들의 결합이 이전 하이엔드 워치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빅뱅 컬렉션은 각국의 시계 마니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쳤다. 2004년 약 2,600만 달러 매출을 올리던 위블로는 빅뱅 컬렉션 론칭 3년 만인 2008년 약 3억 달러 매출을 올리면서 무려 10배가 넘는 성장을 하게 된다.

2008년, 위블로는 또다시 브랜드 역사의 변곡점이 될 큰 사건을 맞는다. 세계 최대 명품 유통업체인 프랑스의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Louis Vuitton Mone··t Hennessy)사가 인수를 추진한 것이다.

스위스 시계기업인 위블로가 프랑스에 본사를 둔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에 인수되는 것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위블로로서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경쟁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들이 스와치나 리치몬트 등의 거대그룹에 편입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 클로드 비버는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가 위블로를 인수한 후에도 여전히 위블로의 CEO를 맡았다. 그의 마케팅적 역량을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가 몰라볼 리 없었다. 업계에서는 장 클로드 비버와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의 결합을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둘의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위블로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FIFA와 F1 등 시장에서 압도적인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단체의 공식 후원사로 발탁된 배경도 장 클로드 비버와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의 결합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위블로는 이외에도 영국의 축구클럽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페라리 등의 공식 파트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위블로는 기술적인 면으로도 크게 진화했다. 콤플리케이션 제작을 함께했던 BNB 콘셉트의 인력들을 상당부분 흡수, 2010년 최초의 인하우스 칼리버 HUB1240 유니코 무브먼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유니코 무브먼트 개발을 위해 위블로 개발자들은 무브먼트라는 핵심부품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들은 시계의 안정성과 내구성 향상을 위해 복잡한 연동기관을 최대한 단순화시키길 원했다. 단순할수록 오차가 적어질 것이란 명확한 논리였다.

그런 점에서 유니코 무브먼트는 기타 무브먼트와 차별화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점퍼 없는 크로노그래프라든가 카운터를 직접 작동시키는 배럴, 따로 제거 가능한 플랫폼 위에 고정된 실리콘 소재의 팔렛 포크와 이스케이프먼트휠 등이 그 예다. 승승장구하던 위블로는 2012년 또 다시 경영에 변화를 꾀한다. 장 클로드 비버의 오랜 친구인 리카르도 구와달로프 Ricardo
Guadalupe가 새 CEO로 선임된 것이다. 장 클로드 비버의 업계 은퇴수순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지만, 장 클로드 비버가 회장직에 오르면서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올해는 위블로 론칭 33주년이자 장 클로드 비버가 65세를 맞이한 해이다. 올해도 위블로는 빅뱅 유니코 Big Bang Unico, 라 페라리 La Ferrari 등 혁신적인 모델들을 내놓으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위블로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예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 클로드 비버라는 최고의 워치 마케팅 천재가 키를 잡고 있고,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라는 큰 산이 뒤를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시계 마니아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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