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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파산, 그 이후

After the Fall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재앙을 촉발시킨 리먼 브라더스 파산사태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제2의 리먼 사태가 걱정되는 이유 중 하나다.
by KATIE BENNER SCOTT CENDROWSKI, and MARTY JONES

금융위기가 본격화 된 것은 2008년 9월 15일이었다. 월요일 새벽 1시 45분, 리먼의 변호사들은 온라인으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 보호신청을 제기했다. 재무부 장관 행크 폴슨 Hank Paulson의 주도하에 정부는 리먼에 긴급구제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리먼은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 여섯 달 전 JP모건이 베어스턴스를 헐값에 인수한 것과 같은 방식의 막판 급매 처분도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방식으로 월가에서 명망이 높았던 메릴린치도 주말 협상을 통해 급히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매각됐다.

그날 아침 해고통지서를 받은 리먼 직원들이 줄지어 타임스퀘어 본사에서 걸어나올 때 수십 개의 TV 뉴스 채널이 그 광경을 보도했다. 세로 줄무늬 셔츠를 입은 은행가들이 박스에 짐을 담아 나오는 모습은 리먼이 받아 마땅한 처벌을 한눈에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광경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리스크와 불확실성에 대한 미묘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5년 전만 해도 전혀 미묘할 것이 없었다. 리먼의 부도는 단순한 증권 중개회사의 몰락 이상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날 4시, 다우지수는 6년 만에 최대폭인 4.4% 급락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올 때, 투자자들은 1989년과 1997년에 있었던 부도사태처럼 리먼의 부도여파도 제한적이기를 기대했다. 이 근거 없는 미국의 낙관주의 덕분에 화요일 주가는 오히려 1% 상승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금방 사라졌다.

파산보호 신청 2주 만인 9월 29일 다우지수는 사상 최대폭인 778포인트 폭락했다. 주가는 단순히 급락한 것이 아니라 향후 몇 달간 예상할 수 없을만큼 요동쳤다. 다우 118년 역사상 최대 일간 변동폭을 기록했던 10일 가운데 9일은 그 해 가을에 발생했다. 그렇게 2008년 마지막 날까지 뉴욕 증시는 시가총액의 4분의 1을 잃었다. 채권펀드 핌코의 CEO 모하메드 엘 에리언 Mohamed El-Erian은 리먼 부도 직후 부인에게 ATM에서 최대한 많은 현금을 인출하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은행들이 문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런 대혼란을 야기시킨 건 주가 폭락이 아니었다. 원인은 더 심층적인 곳에 있었다. 리스크 높은 복잡한 모기지 파생상품이 팔리고, 재조합되고, 헤징 및 레버리지에 사용되고, 수 없이 많은 작은 상품으로 쪼개졌다. 월가의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 이런 파생상품들은 가치가 거의 없는-있다 하더라도 알 수 없는-종이조각이 돼 버렸다. 이 난해한 파생상품에 크게 베팅한 기업들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수천 명의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건전한 은행들은 파생상품 관련 거래를 중단했다. 문제는 이들이 위기에 처한 다른 은행들에게만 대출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신용거래를 일제히 동결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몇 주가 지나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없는 기업들마저 혼란과 파산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미국 실업률은 6%에서 10%로 치솟았다. 1분마다 주택 6채가 압류됐다. 사상 최대 예치 자금을 자랑하던 퇴직연금 401K에서도 순식간에 엄청난 규모의 예치금이 빠져나갔다. 의회와 금융 당국은 출혈을 막기 위한 시도를 간헐적으로 해나갔다. 우선 납세자들에게 몰래 50억 달러의 빚을 지우며, 초대형 모기지 그룹 패니 매 Fannie Mae와 프레디 맥 Freddie Mac을 구제했다. 또 연방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신용디폴트(CDS)를 과도하게 판매하다 파산에 이른 AIG를 구제했다. 뒤이어 골드막 삭스와 모건 스탠리에 구제금융을 지급하고,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부실자산 매입 프로그램(이하 TARP·Troubled Assets Relief Program)과 자동차산업 구제조치 등을 실시했다. 금융위기 동안 미 정부는 인수 및 대출보증 등의 형태로 공적 자금 14조 달러를 금융부문 곳곳에 투입했다. 이런 조치의 목표는 제2의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막자는 것이었는데, 그 점에서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주식 시장은 다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401K도 밸런스를 되찾았다.

주택 가격도 완만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으며, 포춘 500대 기업들은 매출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수백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7.4%로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24세 미만 인구의 실업률은 16%에 달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실업난이 완전 해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1940년대를 기점으로 발생했던 세계 금융 위기들을 살펴보면 실업률은 10년이 지나도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큰 정신적 충격을 줬던 기억도 점차 무뎌지는 듯, 우리에게도 금융 위기의 공포를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리먼 사태의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회상해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그래프 참조). 또한 이런 대참사의 주범들이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소수의 중간급 은행가들만이 담보저당채권과 관련해 유죄를 선고받았을 뿐이다. 복역을 한 유일한 골드만삭스 직원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그에게 부과된 혐의는 금융위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금융위기에 일조한 세 신용평가기관이 다시 채권의 90%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도 소름이 끼치는 현실이다. 광범위하고, 상호 연결된, 자본 차입비율이 높고, 불투명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제2의 금융위기에 대비하고 있나(Are We Ready for the Next Meltdown?)’ 기사를 참조하라). 대형은행들은 여전히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인 상황이다. 리먼은 부도에서 회생한 후 사실상 지불능력을 회복했다(물론,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변제가 끝나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채무상환에 복잡하고 구조화 된 수단을 쓴다고? 거기에는 나름의 비즈니스 모델이 있을 것이다.


리처드 펄드
전 리먼 브라더스 CEO
금융위기 주범들의 근황은 현재 미스터리다. 펄드는 의회에서 간략한 증언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삶과 리먼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펄드를 아는 몇몇 인물들은 그가 잃어버린 부와 권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 말한다. 펄드는 2008년 말 매트릭스 어드바이저스라는 소규모 자문회사를 설립, IBM을 비롯한 복수의 기업들에 M&A 및 기타 거래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는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 자택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해 하루 종일 은행가들에게 전화를 건다. 그의 친구는 “펄드는 열의가 넘친다”고 말한다. 재기를 꿈꾼다면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조 카사노

AIG의 악명 높은 리스크 테이커
AIG를 엄청난 리스크에 노출시킨 금융상품 계열사를 이끌었던 카사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의 가치처럼 한 순간 사라져버렸다 (포춘은 카사노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2010년 의회에서 질문공세를 받은 뒤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옛 동료들은 그가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 자택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런던으로 여행을 다니며 지낸다고 말한다.


에린 캘런

전 리먼 브라더스 CFO
월가에서 전 리먼 CFO 캘런만큼 높이 올라간 여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뉴욕 타임스에 20년 동안 커리어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여기에 사랑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기고문에서 그녀는 “누구도 내 지난 20년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리먼에서의 마지막 시기 동안 있었던 일들을 아주 자세히 말하진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리먼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딕 펄드에 의해 해고된 이야기들 말이다. 회사를 떠난 후 캘런은 은행관련 일을 멀리하고 있다. 대신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와 결혼한 뒤 플로리다로 이사를 갔다. CFO 시절 저축한 돈에 햄프턴과 맨해튼 센트럴 파크 15번가에 있는 집들을 판 돈으로 편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기고문에서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인생 최악의 시기처럼 느꼈던 그 당시의 경험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매각된 리먼의 주요 자산들
Who Was on the Grassy Knoll With AIG?

AIG는 금융 위기 최대의 미스터리다. 애초에 투자은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보험사가 구제 대상에 포함된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AIG는 월가 위험 투자의 상당 부분에 보험 서비스를 제공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보증 채권 4,410억 달러 중 580억 달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품이었다). 가능성이 없는 디폴트 상황이 발생하면 AIG가 지불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리먼 사태-리먼뿐만 아니라 월가의 대기업 대부분이 큰 타격을 입었다-가 발생했을 때, 과도하게 많은 보험 상품을 판매했던 AIG가 필요한 모든 고객의 위험을 보장할 방법은 없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New York Federal Reserve)과 재무부는 이 상황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들의 개입 의도에 대한 음모론이 일기 시작했다. AIG를 구하려는 것인가? 희생시키려는 것인가? AIG는 회사주식 92%를 넘기는 대가로 연방 정부로부터 1,820억 달러를 차입했다. 다른 기업들은 기존 CEO를 유임시켰지만, 리먼 사태 전부터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CEO 로버트 윌럼스태드 Robert Willumstad는 해고됐다. 다른 금융회사들처럼 AIG는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AIG의 행태를 “어처구니 없다”고 비난했다. 아이오와주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그레슬리 Charles Grassley는 AIG 경영진은 “사퇴하거나 나가 죽어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AIG직원들은 끊임없이 살해 협박을 받았다. 금융시스템을 망친 주체는 AIG가 아니지만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대상은 AIG였다.

정부는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AIG로부터 661억 달러를 비밀리에 빼냈고, 어떻게든 그 흔적을 숨기려 했다. 오랫동안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인식됐던 골드만 삭스가 최대 수혜자로 129억 달러를 지급받았다. 월가가 이식 받을 심장과 신장이 필요했는데, 정부가 AIG에서 장기를 빼간 것과 다름없었다. TARP 특별 감독 담당자 닐 바로프스키 Neil Barofsky는 재무부장관 팀 가이트너 Tim Geithner의 비밀스런 태도를 비난하며 은폐의혹을 재기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고발 조치를 할 것이라 위협했다(결국 고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AIG는 건전한 사업 부문을 매각해 정부에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본 미국인들은 공적자금이 AIG와 AIG의 파생상품보험에 가입한 80개 업체를 구하는 데 사용됐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1년 11월의 소송신청 내용을 보면 전임 CEO 행크 그린버그 Hank Greeberg(상단 사진)는 여전히 AIG가 분해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정부가 다른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AIG 주주들의 합법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비난했다. 밴 버냉키 연준의장은 이와 관련해 법정에서 증언하라는 법원명령을 받았다(정부는 이 결정에 대해 항소 중이다).

상황은 더 흥미롭게 진행됐다. 아메리칸 로이어 미디어 American Lawyer Media의 기자 수 라이징거 Sue Reisinger가 AIG가 대마불사가 될 때까지 당국은 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찾아낸 것이다. 2004년 미 법무부는 AIG가 다른 기업의 부실자산 은폐를 도왔다고 주장하며 전직 연방검사 제임스 콜 James Cole을 독립 감사원으로 선임할 것을 명령했다. 포춘은 이에 관해 콜(현 법무차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콜은 AIG가 추락을 앞둔 월가의 아래로 안전망을 쳐줬던 것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일까?

라이징거는 2008년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근거로 콜의 감사보고서 열람을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의회와 소수의 규제기구만 열람했던 이 보고서는 현재도 봉인된 상태다. 그리고 2월 연방 상소법원은 보고서 공개를 불허한다는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라이징거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지만 보고서는 2017년 초 파기될 예정이다. 어쩌면 51구역(Area51) *역주: CIA의 비밀 군사기지으로 이관되고, 우리는 계속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은 AIG의 단독 소행이라 믿게 될지도 모른다.


잠깐 반짝한 천재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는 소수의 현명한 투자자들을 부유하고 유명하게 만들었다. 존 폴슨은 이들 중 가장 큰 유명세를 탔다.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을 공매(short-selling)한 그의 결정은 ‘가장 위대한 트레이더(The Greatest Trader Ever)’라는 책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스티브 아이스먼은 모건 스탠리의 프런트 포인트 파트너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의 펀드를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해 81%의 수익률을 올렸다. 그리고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더 빅 숏(the Big Short)’에서 주요 인물로 다뤄졌다. 카일은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가올 모기지 붕괴에 대해 경고했다(편지는 유명세를 타고 퍼져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리기까지 했다). 그의 헤이맨 캐피털은 그 해 217%의 수익을 올렸다. 반면 은행 전문 애널리스트 메레디스 휘트니는 2005년 리스크가 큰 모기지가 전례 없는 신용위기를 유발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부실 자산이 은행을 망칠 것이라고 정확히 예견했다. 이들은 어떻게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을까? 우선, 위 인물들 모두 지금은 예언자 같아 보이지 않는다. 폴슨은 대대적인 경제회복에 베팅했지만 성공과 실패가 뒤섞인 결과를 얻었다. 아이스먼, 바스, 휘트니는 특정 어떤 부문의 붕괴를 예견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언가가 되기란 쉽지 않다. 아래에 그들의 성적표가 있다.

폴슨
그는 2011년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2012년 금과 기업개편에 베팅한 후 어느 정도 손실을 만회했다. 운용 자산의 75%는 지금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성적: B-

아이스먼
프런트 포인트가 문을 닫자, 홀로서기를 시도했지만 1억 달러의 자금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사설 학교와 주택시장에 베팅했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성적: C+

바스
일본 국채 하락에 베팅했지만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가 운용하는 주요 펀드는 2009년 수익률이 14% 감소했지만, 2012년 16.7% 올랐다.
성적: B-

휘트니
스스로 리서치 회사를 설립한 이 화려한 애널리스트는 지방채 붕괴를 예견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경제 붕괴에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성적: C-


[트랑셰 토크: 금융위기의 핵심이 되는 11가지 용어]

아바쿠스 Abacus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의 요청으로 골드만 삭스가 만든 CDO의 상품명. 골드만 삭스가 아바쿠스 판매를 개시한 이후 존 폴슨은 아바쿠스 가격 하락에 10억 달러 가량을 베팅했다.

검은 백조(Black Swan)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의미한다. 블랙 스완은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 결과를 낳는다. 뉴욕대 교수 니컬러스 탈레브에 의해 널리 알려진 용어다. 검은 백조는 금융 모델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자주 나타난다. 부채 비율이 높은 은행들이 검은 백조에 취약하다.

CDO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은 모기지 담보증권을 비롯한 복수의 자산을 기초로 하는 신용파생상품으로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범이었다.

CDO²
다른 CDO를 담보로 하는 CDO. 모래사장 위에 카드로 집을 지은 것과 다름없다.

3천4백만 달러 리먼이 파산하기 1년(2007년) 전 당시 CEO 리처드 펄드가 받은 보너스 액수.

6조5천억 달러 2006 년부터 지금까지 ‘손실’주택 지분 가치

26% 정점을 찍었던 2006년 이후의 미국 주택가격 하락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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