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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사 강력한 브랜딩 전략이 되다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 | ⑨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은 상호의 익숙함을 넘어 우리에게 불굴의 영감을 주는 브랜드다. 현대중공업이 쌓아올린 기업의 역사는, 또 그 역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화와도 같은 에피소드는 그 어떤 브랜딩 전략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뿜어낸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현대중공업의 주요 회사 연혁엔 굉장히 기이한 점 하나가 있다. 회사 설립은 1973년 12월인데 이전에 이미 주요 연혁 2개가 더 올라 있다. 1972년 3월 ‘조선소 건설 기공식’도 물론 특이하지만, 그보다 이전인 1971년 12월 ‘26만 톤급 대형 유조선 2척 계약’을 보면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회사가 설립되기도 전에, 그것도 배를 만들 수 있는 조선소 하나 없을 당시 대형 유조선 계약부터 따낸 독특한 이력이다.

현대중공업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창업했다. 창업 당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대형 조선소를 짓기 위해 차관을 빌리러 영국에 간 정 회장은 ECGD(영국 수 출신용보증국·Export Credits Guarantee Department)로부터 ‘배를 살 구매자’를 먼저 찾아오라는 요구를 받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소에서 만든 배’를 살 선주를 찾는 일이었다. 찾더라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곳에서 만들 배를 선뜻 산다고 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결국 그런 인물을 찾았고, 또 수주 계약을 받아냈다. 그리고 차관 계약에 성공했다.

이렇게 받은 차관으로 울산 미포만에 첫 삽을 뜬 게 1972년 3월 23일의 일이다.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울산 미포만은 1972년 3월부터 1974년 6월까지 2년 3개월 만에 부지 60만 평, 건조 능력 70만 톤, 70만 톤급 드라이 도크 2기를 갖춘 국제 규모 조선소로 탈바꿈한다. 현대중공업의 창업은 조선소 기공식이 있은 지 1년 9개월 후인 1973년 12월의 일이었다. 창업 이전에 수주 실적과 조선소 기공식이 먼저 있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처럼 상식과 정반대의 수순을 밟은 현대중공업 창립 일화는 우리 기업사에서 ‘신화’로 불렸다.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 창립에 대해 “확실히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비교적 최근에 주로 언급되는 ‘발상의 전환’ 또는 ‘혁신’ 이슈는 현대중공업 역사에선 ‘신화’라는 이름으로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세계는 발상의 전환 또는 혁신 등의 단어에 열광했다. 기업들은 이들 이미지를 자사에 덧씌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원래부터 자사의 경영 사고에 혁신 유전자가 있었다는 식으로 포장했다. 혁신이라는 단어를 두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B2C기업들이 이런 종류의 홍보 마케팅에 첨병 역할을 했다면, B2B기업들은 부분적인 성과를 혁신 사례에 짜 맞추는 데 급급했다. 이렇게 기업으로부터 강요된 혁신 이미지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거부감만 심어줄 뿐이었다. 현재에도 진정 대중의 마음에 와 닿는 혁신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혁신 사례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으로, 또 하나의 ‘현대중공업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구체적으론 ‘조선소·배 동시 착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반드시 다 지어진 조선소에서 선박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다소 황당한 정 회장의 논리는 1972년 3월 조선소 기공식과 함께 현실이 됐다.

그리고 1974년 6월. 울산 미포만 조선소 완공 기념식에서 현대중공업은 수주 받은 배 두 척의 명명식 행사를 함께 치른다. 배 명명식은 배를 다 만들고 나서 시운전을 한 후, 고객사에 인도하기 바로 직전에 치르는 행사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착공과 배 건조를 동시에 진행해 조선소가 완공되기도 전에 선박 진수식을 치렀던 것이다. 조선소를 만들면서 배도 함께 만드는 것, 이는 굉장한 발상의 전환이었을 뿐만 아니라 설사 생각했더라도 실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현대중공업은 당시까지 배를 만들어본 경험조차 없었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2004년 10월 세계 최초로 도크 없이 대형선박을 만드는 ‘선박 육상 건조’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도크는 완성된 배가 바다로 나가기 쉽도록 일정 공간에 바닷물을 채우고 뺄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선박 육상 건조 기술의 관건은 완성된 거대 선박을 바다로 안전하게 진수시키는 것이다.

당시 세계 조선업계는 기술력과 경제성 면에서 선박 육상 건조가 불가능한 일이라 단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APS(Air Pad System)와 특수 바지선을 이용해 10만5,000톤급이나 되는 거대 유조선을 바다로 안전하게 이동시킴으로써 업계의 상식을 뒤엎었다. 세계 조선의 역사가 새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태생부터가 세계 조선업계의 핫이슈였던 현대중공업은 그 후 성장도 가파르게 했다. 창립 1년 만인 1974년 ‘수출 1억 불 탑’을 수상하더니 급기야 1980년에는 조선 분야 세계 톱 10으로 치고 나갔다. 3년 후인 1983년에는 설립 10년 만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선박 건조량 세계 1위 조선업체로 올라섰다.

일본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 창립 당시 ‘5만 톤급 선박 건조 능력만 갖추면 한국 경제규모에는 충분할 것’이라든가 ‘경험과 기술이 없어 대형 선박은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말들을 공공연히 퍼뜨리고 다녔다.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조선업체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우리 기업사에 있어서도 아주 통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1983년 이후 벌써 30년째 1위를 수성 중이라는 것이다. 이 전설과도 같은 성장 스토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성공의 역사는 조선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도전을 좋아했던 창업자처럼 현대중공업 역시 1980년대부터 엔진기계사업, 해양사업, 플랜트사업, 건설장비사업, 전기전자시스템사업, 그린에너지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름에 걸맞은 ‘진정한 종합 중공업 체제를 확립한다’는 비전을 차근차근 현실화한 셈이다.

물론 결과도 좋았다. 현재 세계 엔진 생산량의 30%이상이 현대중공업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나로호 발사대 및 발사장, KTX 추진 제어장치, 주 변압기 등도 현대중공업의 손에서 탄생했다. 현대중공업이 종합중공업사의 면모를 갖추면서, 또 각 부문에서 세계 톱 수준의 기술력을 과시하면서, 세간에는 ‘우리나라에서 로보트태권V를 만든다면 분명 현대중공업에게 제작을 의뢰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현대중공업이 종합 중공업 체제 확립을 선언한지 겨우 30년 만에 이룬 업적이다.

현대중공업은 한 편의 대서사시와도 같은 기업사를 기업 브랜딩 활동에 잘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 광고 중 한 편이었던 ‘정주영편’은 정 회장이 현대중공업 창업을 회고하는 강연 모습이 광고의 전부였다. 단순할 뿐만 아니라 일견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 광고였지만 이 광고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정주영이 직접 말하는 ‘어려운 것은 우리가 다 극복할 수 있다’는 북돋움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삶에 지친 대중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거인 ‘정주영’은 어떤 난관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직접 부딪쳐 극복해온 희대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롤모델이 절실했던 때에 현대중공업은 정 회장을 광고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대중이 그에게 가지고 있던 아련한 향수를 자극했다. 자사의 슬로건인 ‘불굴의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현대중공업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최근 선보인 ‘기술로 세계를 봅니다’ 광고도 그 맥락은 같다. ‘기술이 신념을 품을 때 기술은 마침내 작품이 됩니다’라는 내레이션은 현대중공업의 기술력과 정 회장의 ‘신념은 불굴의 노력을 창조할 수 있다’는 유명 어록을 융합시킨 말이다. 현대중공업은 벌써 30년째 매년 세계 우수 선박 제조사에 이름을 올려 놓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 정 회장이 살아생전 끊임없이 강조했던 정신의 힘, 바로 ‘신념’을 결합시킴으로써 현대중공업의 정통성을 은연 중에 내세웠다.

창립부터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기업, 그리고 신화처럼 경외시 되는 여러 편의 에피소드들, 그러면서도 아직 현재진행형인 성공 신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주인공이 현대중공업이다. 우리는 현대중공업이라는 브랜드에 묘한 긍지를 느낀다. 신화와도 같은 그 이야기를 곁에서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역사가 그 자체로 엄청난 브랜딩 효과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현대중공업이 끊임없이 자사의 역사를 브랜딩 전략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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