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미국의 칼훈 비전은 시술 후에도 자외선 레이저를 활용, 초점력 제어가 가능한 신개념 합성 수정체를 개발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유럽에는 6년 전부터 공급되고 있는 이 제품의 혜택을 미국 환자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 승인받은 혁신적 의료제품이 미국에서 쓰이지 못하는 사례는 결코 드물지 않다. 개발자가 미국 기업인 경우도 다수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금이라도 최신 의료기기의 보급을 지체시키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의료기기의 안정성만 입증하면 상용화가 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반창고 수준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미 유사한 제품이 상용화돼 있지 않다면 극히 까다로운 임상시험을 거쳐 효능을 입증해야 한다.
미 정부는 인공 엉덩이 관절 등 연간 700여종의 의료기기가 안전문제로 리콜되고 있음을 지적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FDA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승인이 지연된 제품이 아무 문제없이 유럽에서 판매된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필자는 FDA의 우려는 과도한 수준이며, 그것이 환자들의 적절한 치료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변화가 없지는 않다. FDA는 2012년 중증질환 치료제 중 최초의 약품을 신속 승인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희귀병 치료를 위해 ‘인도적 의료기기의 적용면제(HDE)’ 범주에 속하는 의료기기의 승인절차도 간략화 했다.
또 올해 FDA는 반창고보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임플란트보다 덜 위험하며,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의료기기에 대한 규정 개정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개정된 규정이 적용되면 승인절차는 한층 빨라지겠지만 여전히 철저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효능시험을 받아야 한다.
필자는 완전히 새로운 의료기기의 경우 환자와 의사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감내할 위험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믿는다. 이미 선례도 있다. 담배가 그것이다. 모든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삽입토록 규정하고, 구매여부는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고 있는 것. 의료 신기술에도 이런 조치를 취하면 어떨까.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은 확인됐으나 잠재적 부작용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형태로 말이다.
이때는 저품질의 이식장치나 의료기기 불량에 대한 정보가 대중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지 못할 위험은 있지만 작년 9월 발효된 FDA의 최신 감시체계가 안전장치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이 체계에 따라 새로운 의료기기 대부분은 제작일과 로트번호 등이 담긴 코드를 표시해야하며, 이 코드는 누구든 접속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바로 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FDA가 특정 기기에 대한 중요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현 규제시스템을 앞서나가고 있다. 그에 걸맞는 규제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환자와 의사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감내할 위험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8종
FDA가 1997년 기존보다 신속한 승인을 목표로 ‘인도적 의료기기의 적용면제(HDE)’ 규정을 신설한 이래 지금껏 실제 승인된 의료기기.
초점력 (focusing power) 수정체나 각막이 빛을 굴절시키는 정도.
로트 번호 (lot number) 동일 재료를 사용해 특성이 일정하다고 판단되는 제품들에게 동일하게 부여되는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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