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나 부하직원을 세심하게 관리할수록 이들의 능력은 더 취약해질 수 있다.
고현숙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겸 코칭경영원 대표코치 helenko@kookmin.ac.kr
워킹맘으로서 교육열 높은 동네에서 두 아들을 키울 때 나도 고민이 참 많았다. 책에 나오는 자녀 교육의 원칙은 옳지만 이상적이고, 현실은 극성 엄마들이 판을 주도하는 것만 같았다. 최신 정보와 나름의 논리, 게다가 빠른 실행력과 조직력까지 갖춘 극성 엄마들, 그들은 진정한 트렌드 세터이자 얼리 어답터요, 업계의 리더였다. 학원들의 장단점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정보, 기출시험 경향, 심지어 과거 학교에서의 출제경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수하다는 아이들끼리 그룹을 짜서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를 함께 시킨다. 엄마가 매니저 역할까지 수행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업계의 리더들을 당황케 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학기 초에는 듣도 보도 못한 수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듣보잡’ 수재들이다.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 수재들, 극성 엄마들의 메뉴에는 그런 게 없다. 변수들이 미리 걸러지고 모든 게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관리의 실패는 성적 불량이나 사고로 나타나지, 느닷없는 재능의 출현으로 불거지지는 않는다.
내 경우에는 늘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자식을 키웠다는게 맞을 것 같다. 극성 엄마들이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관리할수록 이상하게 그 아이들이 취약하게 느껴졌다. 하나의 기준만을 추구할수록 사고는 딱딱해지게 마련이었다. 현실은 그와 반대로 복잡하고 유연하고 때로 모순되며 가변적이었다. 그러니 맞지 않을 밖에.
자녀 교육만 그러겠는가? 세심하게 관리할수록 더 취약해지는 것이 많다. 우울할 때 항우울제를 먹으며 이를 회피하고 감정의 가변성을 제거하다 보면, 결국 항우울제가 없을 때 더 큰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된다. 면역이 생기려면 약간의 독성물질이 필요하다. 우리 몸에는 자연치유력이란 게 있다. 이를 무시하고 잠재적 부작용이 있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몸은 오히려 더 취약해진다.
깨질수록 강해지는 안티프래질
멋있는 근육은 근육이 찢어졌다가 재생되는 반복적인 과정에 의해 생성된다. 몸을 쓰지 않고 편안히 있으면 근육이 소실되지만, 힘든 운동으로 지기 쉬운 것, 그래서 ‘취급 주의’를 해야 할 물건에 ‘프래질’ 이란 표시를 한다. 그와 정반대인 안티프래질은 깨뜨리고 상처를 줄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다. 달궈진 쇠가 급랭으로 담금질되면서 더욱 강한 쇠가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블랙 스완’이란 저서로 유명해진 월스트리트의 이단아 나심 탈레브는 경제 시스템을 안티프래질하게 놔둬야 한다고 말한다. 식당이 망하는건 식당 주인에겐 나쁜 일이지만, 자꾸 새로운 식당이 나타나야 결국 업계 전체가 강화되는 것처럼, 작은 경기 침체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 이런 작은 실패와 리스크를 감당해야지, 자꾸 인위적 지원으로 살려내다 보면 전체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가 눈에 보이지 않게 점점 쌓여간다는 것이다. 그는 개입주의 정책가들이 경제 시스템을 고장난 세탁기처럼 다룬다고 일갈한다. 경제 시스템은 복잡계로 이루어진 유기체라서 자꾸 부분적인 고장을 고치려고 들수록 전체 시스템은 더 큰 리스크를 안게 된다는 것이다. 산불은 재앙 같지만, 자연계 전체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메커니즘이다. 불이 나지 않으면 산 밑에 인화성물질이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실수를 장려하고 몰아붙여라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산업이 있다. 은행이나 증권시스템 같은 것이다. 작은 실수도 없어야 하는 프래질 체질이라, 역설적으로 조그만 실수도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안티프래질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번성하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것이다.
자녀 교육에서도 행여 잘못될까 두려워 모든 걸 챙기며 자녀를 쫓아 다니는 극성엄마들이 프래질이라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해주고 친구들과 싸움도 해가면서 독립적으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 안티프래질 방식이다.
조직에서 사람을 키우는 것도 그렇다. 직원들을 배려하고 자상하게 감싸기만 해서는 인재가 크지 못한다. 때론 상사의 역할을 떠넘겨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지침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일을 처리하는 경험을 하면서 직원들은 성장한다. 직원들에게 언제 자기가 컸는지를 물어보면 꼭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상사의 부재로 역할을 대신했을 때’이다.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 사람의 역량 중 아주 부분적인 것만 말해줄 뿐이다. 수업에 집중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할 줄 안다는 것, 즉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인 환경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은 명확하게 정의된 일이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수하면 어떡하나’, ‘내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 라고. 하지만 바로 그런 작은 마음을 극복하면서 성장은 이뤄진다. 부하들에게 그런 도전과 시련을 주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상사들에게 예비 후계자를 정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항상 직원들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현재의 자기 역량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도 처음 그 위치, 그 역할을 맡았을 때는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현재가 아닌 이 일을 처음 맡았을 때와 비교하는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직원들의 장점과 가능성도 보일 것이다.
다이내믹한 삶의 균형
경주마는 자기보다 열등한 말과 경쟁하면 지고 우수한 말과 경쟁하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스트레스 요인이 없으면 나을 것 같지만,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항공기 운행이 자동화 되어 조종사에게 지나칠 정도로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면 오히려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론 엄청난 책임이 있는데도 책임의식이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돌면 게을러지고 시간을 더 허비하는 경향이 있다. 바쁠수록 다른 일을 더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경향도 보인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과 삶에 반반을 쓰는 식의 균형, 마치 천칭저울의 수평을 맞추는 식의 균형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맞지도 않는다. 산술적으로 하루에 꼭 8시간은 여유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바쁠 때 더 창의적이 되고, 도저히 시간이 없을 때 새로운 일을 더 많이 벌일 수도 있다.
자신의 커리어와 일의 상황, 개인적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끊임없이 기울어진다. 과도하게 기울어져서 쓰러지기 직전에 다시 반대 방향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식의 균형, 예컨대 스키 타는 사람이나 서핑하는 사람이 취하는 식의 균형이다. 이걸 해내는 것이 안티프래질의 균형일 것이다.
고현숙 교수는…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겸 코칭경영원 대표 코치,(사)한국코치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리더십센터 사장, 한국코칭센터 대표 등을 역임했다.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LG전자, 두산중공업 등에서 임원 코칭을 한 바 있다. 저서로 ‘티칭하지 말고 코칭하라’ ‘유쾌하게 자극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