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볼커 룰: 복잡함이 상식을 이기다

[INSIGHTS]

By Allan Sloan

훌륭한 정치적 구상들은 종종 형편없는 정책으로 변질되곤 한다. 언뜻 멋지고 단순해 보이는 것들을 실생활에 적용하려 할 때 끔찍할 정도로 복잡한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볼커 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그렇다. 볼커 룰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연방 금융감독 기관들이-현실 세계의 복잡함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최종 승인을 한 12월 중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볼커 룰은 총 71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폴 볼커의 단순한 제안을 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단어들이 등장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미 알겠지만, 그의 구상은 대형 금융 기관들이 연방정부가 보증한 예금을 주식 투기에 활용해 납세자를 위험에 빠트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볼커 룰 자체는 복잡함의 시작에 불과했다. 여기엔 892 페이지에 달하는 세부 설명이 따라 붙는다. 이 둘을 합치면 신약 성서(New Testament) 길이의 1.5배가 되는 작품이 나오는 셈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리스어로 쓰인 원작과 다름 없는 난해한 내용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더 길고 복잡해질수록, 실행하기도 더 어렵고 장난을 칠 기회도 더 많아진다. 총 29만 7,000단어(데이비스 포크 앤드 워드웰 Davis Polk & Wardwell 법률 회사가 계산했다)가 있으니, 숨어 있는 허점도 엄청 많다.

볼커가 2009년 초반 자신의 생각을 밝힌 이후 필자는 줄곧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은행들이 고객을 대신해 주식 시장 조성(market making)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 조성은 주식을 사고 파면서 일부 주식을 항상 보유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주식 거래와 은행의 자기 계정 거래를 구분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규칙과 설명만 1,000페이지가 넘는 상황에서, 특정 사례의 무엇이 투기이고 무엇이 허용 가능한 시장 조성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금융감독 기관의 판단에 달려 있다.
다양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은행의 주식 거래를 허용하는 예외조항까지 포함하면, 그 복잡함은 제곱이 될 것이다. 아니! 그 복잡함이 세 제곱(cubed) 혹은 네 제곱(the fourth power)까지 커질 수 있다.

볼커 룰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소위 호닉 룰 Hoenig Rule이다. 호닉 룰은 당시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이자 현재 연방예금보험제도(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 부회장을 맡고 있는 톰 호닉 Tom Hoenig이 2011년 제안한 것으로, 은행들의 모든 주식 거래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고문 출신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필자는 아니지만-신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 볼커와 달리, 호닉의 이름은 워싱턴 정가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다.

호닉은 성명서에서 볼커 룰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형 금융 기관들이 시장 조성은 물론, 관련된 거래 활동(최근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너무 쉽게 악용될 수 있다)을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거래 활동은 안전망과 관계 없이 이뤄져야 하고, 상업은행 업무와 관련 없는 회사에만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호닉 룰도 일부 수정이 필요하지만 그 출발부터 볼커 룰보다는 훨씬 낫다.

볼커 룰을 적용 받는 금융 기관 최고경영자들이 규칙을 준수하고 있음을 개인적으로 보증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마음을 쓸 필요는 없다. 사베인즈-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은 엔론과 월드컴의 회계부정 사태가 발생한 뒤 2002년 시행됐다. 이 법도 볼커 룰과 비슷하게 서명(Sign Off) *역주: 최고경영자가 회계보고서 내용이 정확하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보증하도록 함을 요구했고, 재무제표 수정보고(Earnings Restatement)를 못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볼커 룰은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볼커 룰에 소요된 노력과 비용, 혹은 지금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발생할 문제점들을 고려해 볼 때 그만한 가치는 없다. 이른바 ‘존엄사 유언(living will)’ *역주: 살아날 가망이 없는 사람이 차라리 죽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힌 유언과 마찬가지로 이 선언은 감독기관이 납세자 돈을 낭비하지 않고, 대형 부실 금융회사들을 청산하게 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세금 ‘개혁(reform)’ 또한 마찬가지로 가치가 없다. 필자는 법의 허점으로 보지만 독자들은 합법적 공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필자는 명료함과 단순함을 적극 지지한다. 주식 거래를 할 때도 가장 크게 고려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볼커 룰이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하게 들리는 구상을 법제화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해법을 제안하는 것과 법으로 만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