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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가 바꿔놓을 도시의 스카이라인

the world’s most advanced building material is . . . wood

2013년 10월 초의 어느 흐린 날. 건축가 앤드류 워는 런던 동부 쇼어디치의 평범한 빌딩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급으로 폐허가 됐었다. 그렇게 강제적인 재개발이 이뤄진 뒤에는 수십 년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랬던 이곳이 최근 다시 시끄러워졌다. 처음에는 저렴한 임대료에 이끌려 나이트클럽과 신생기업들이 찾아오더니 거주를 위한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건물 신축 수요가 늘면서 건축가와 도시계획자, 엔지니어들이 늘어난 것은 당연지사다. 이들 건축관계자들은 쇼어디치에 오면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앤드류가 지금 서 있는 9층짜리 ‘슈타트하우스(Stadthaus)’ 빌딩을 보러 온다.

앤드류가 파트너인 안소니 디스틀톤과 함께 설계한 이 빌딩은 외관상 화려하지도 않고, 특별한 구석도 없다. 그러나 그 내부는 더 없이 특별하다. 바닥과 천정, 엘리베이터와 계단 통로에 철골이나 콘크리트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대신 모두 목재로 만들어졌다. 물론 평범한 목재는 아니다. 이 건물은 최첨단 자재인 직교적층목재 (CLT)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디스틀톤의 설명을 빌리면 CLT 패널은 목재들을 평행하게 배치한 뒤 그 위에 직각방향으로 다시 목재들을 평행하게 올려놓는 방식으로 여러 번 적층하여 접착한 자재로서 두께가 최대 15㎝에 달하며, 강철에 버금가는 강도를 자랑한다.

“그래서 많은 엔지니어들은 CLT를 ‘스테로이드를 맞은 합판’이라 부릅니다. 이미 목조 건축 현장에서 기존의 목골(timber frame) 구조보다 흔한 자재가 됐습니다.”

2009년 준공된 슈타트하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현대식 목조 건물에 등극했다. 2012년 호주 멜버른에 ‘포르테(Forte)’라는 10층 CLT 목조 건물이 준공하며 1등 자리를 빼앗겼지만 슈타트하우스는 세계 곳곳에 CLT 건물의 붐을 일으켰다. 앤드류와 디스틀톤도 2011년 슈타트하우스 인근에 7층짜리 CLT 아파트를 지었고, 현재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프린스 조지 지역에 27m 높이의 목조 건물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 같은 CLT 건물에 대한 열기는 최근 더욱 거세졌다. 스웨덴 당국이 스톡홀름에 34층 목조 건물의 건축허가를 내주었고, 캐나다의 건축가 마이클 그린은 밴쿠버에 30층 목조 건물의 건축허가를 받으려 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 건축설계기업 SOM은 최근 CLT를 주재료로 삼은 42층 빌딩의 건설 타당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마치 건축가들 사이에 고층 목조빌딩 건설 경쟁이 붙은 듯한 모습이다.

도대체 왜 갑자기 건축계가 목재인 CLT에 흥미를 보인 걸까. 이유는 명확하다. CLT는 강철이나 콘크리트보다 저렴하며, 조립이 쉽다. 놀랍게도 내화성 역시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CLT, 즉 목재의 최대 메리트는 탁월한 친환경성이다. 나무는 재활용이 가능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흡수한다. 심지어 벌목된 후에도 CO₂ 흡수가 지속된다.

디스틀톤의 계산에 따르면 슈타트하우스에 쓰인 목재가 흡수한 CO₂의 양이 186톤에 이른다. 반면 강철과 콘크리트로 이 건물을 지었다면 건설과정에서 137톤의 CO₂가 배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재를 건축 재료로 사용한 덕분에 CO₂ 순발생량을 무려 323톤이나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인구학자들은 향후 36년 내에 전 세계의 도시 거주 인구가 현재의 2배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만큼 고층빌딩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이때 고층빌딩을 철근과 콘크리트로 건설할지, 아니면 CLT 같은 재생가능 소재로 지을지에 따라 지구환경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전 세계 도시의 미래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건축자재인 나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목조 건축을 말할 때 경골구조를 떠올린다. 19세기 중반 처음 등장한 주거용 건물 건축 기법으로 도시 중에서는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유행해 ‘시카고 건축’이라 불리기도 한다. 경골구조의 장점은 가벼우면서도 견고하다는 것. 또한 저렴하고 건설도 쉽다.

그러나 경골구조는 층이 높지 않은 주택이라면 모를까 고층건물의 하중은 견디지 못한다. 이는 도시가 커지고, 건물이 고층화되던 19세기말 문제가 됐다. 다행히 공학자와 건축학자들이 강철과 콘크리트로 고층빌딩을 건설할 방법을 찾아냈고, 1885년 시카고에 42m 높이의 세계 최초 철골구조 빌딩인 ‘홈 인슈어런스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시카고, 볼티모어, 샌프란시스코 등의 도시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나 수㎢ 면적에 걸쳐있던 목조 주택들을 태워버리기도 했다. 이런 사고가 목조 건축에 좋은 영향을 끼쳤을 리는 만무했다. 여러 도시들은 주거용 목조 건물의 높이를 5층 이하로 규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그 뒤의 일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20세기 전 세계 모든 도시에 세워진 마천루들은 예외 없이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현재 CLT 건축에 열중하고 있는 런던 소재 건축회사 dRMM의 건축설계사 알렉스 드 리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오래전에 나무를 건축에 이용하는 방법을 잊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건축가와 공학자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어 건축자재로서 나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 정부는 자국에서 과잉 생산되는 나무를 가공해 새롭고 강력한 소재를 개발하려는 연구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했고, 그 결과 CLT가 탄생했다. 기존 목재의 경량성에 견고함을 배가시킨 CLT는 건설현장에서 가공할 수도, 공장에서 사전에 가공을 마친 뒤 현장에서는 조립만 할 수도 있다.

일반 목재는 세로결에는 강한 반면 가로결, 다시 말해 나뭇결 방향으로 가해지는 힘에는 약하다. 이와 달리 CLT는 목재들을 가로와 세로로 번갈아가며 적층한 덕분에 어느 방향으로도 강한 내구성을 발휘한다. 각 층을 다수의 작은 목재들로 제작하기 때문에 이상한 모양의 옹이진 나무들도 사용할 수 있다. 자원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

CLT가 처음 등장한 것은 건축기술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과거 건축가는 손으로 그린 도면을 엔지니어에게 줬다. 그러면 엔지니어는 도면에 맞춰 목제 빔과 철판의 치수를 정했다. 이후 공장에서 자재를 재단한 후 현장에서 건설이 이뤄졌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들고, 종종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하는 공정이었다.

이에 반해 지금은 이 모든 과정을 컴퓨터로 처리한다. 건축가가 오토캐드라는 3D 소프트웨어로 건물을 설계하면, 프로그램이 각 부품의 규격을 생성해준다. 자동화된 재단기계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급 정확성을 가지고 재단을 수행한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 적은 인원을 투입해 수주일 만에 조립을 끝낼 수 있다. 슈타트하우스만 해도 목조 부분은 단 4명이 1주일에 3일씩 27일간의 작업으로 완료했다. 비슷한 규모의 강철·콘크리트 건물 건설기간 대비 30%나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CLT의 판매는 최근까지 원활치 않았다. 앤드류와 디스틀톤이 세운 건축설계회사 워 디스틀톤 역시 2003년 작은 아트클럽을 CLT로 건설한 이후 수년간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객과는 CLT 건축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고객이 찾아올 때마다 CLT를 제안했죠. 하지만 1시간 정도 미팅을 진행했을 때쯤 CLT는 항상 배재돼 있었어요.”
사람들은 목재를 건축자재로 여기지 않았고, 그에 따른 저항감이 컸다. CLT 목조 건물이 과거의 경골구조와 동일한 약점, 다시 말해 구조적으로 취약하며 화재에 약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실망감에 휩싸였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일반 목조 건축과 CLT 목조 건축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걸요.”
물론 화재는 목조 건축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그렇지만 CLT는 강철보다 화재에 더 강한 소재다. 두꺼운 목재를 불에 태우면 겉이 숯으로 변하면서 내부가 타지 않도록 막아주지만 철은 특정 온도에 이르면 휘거나 녹아내린다. 미국 공학목재협회(APA) 기술서비스부장 B.J. 예이는 화재 시 철근은 스파게티처럼 변한다고 표현할 정도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CLT 건축의 이점을 인지한 사람들이 워 디스틀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존 최고층 목조 건물인 포르테 빌딩을 설계한 다국적 부동산개발기업 렌드 리스조차 처음에는 CLT를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약한 지반에도 세울 수 있는 가벼운 건축 구조물을 찾던 중 CLT가 경제적으로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로 워 디스틀톤의 분석으로는 CLT 공법이 철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재래식 공법 대비 건설비가 15% 가량 저렴하다.

목조 건물에서 사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포르테가 준공되자 세입자들이 속속 입주했고, 오래지 않아 완판으로 이어지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빌딩이 됐다. 이 소식이 중국에서 보도되기까지 했다. 이에 힘입어 현재 렌드 리스의 호주 지사는 모든 신축 건물 설계 시 자재의 30~50%를 CLT로 쓴다.



앤드류는 건축자재로서 CLT가 지닌 강점에 더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핵심 동력으로 건축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건축가들이 인식한 것을 지적한다. 강철과 콘크리트의 제작 및 운송에 엄청난 에너지가 투입되고, 그에 비례해 막대한 CO₂가 배출된다. 그러나 나무는 CLT처럼 절단, 압착 등의 공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강철과 콘크리트보다 훨씬 환경 친화적이다.

목조 건축을 옹호하는 단체인 ‘우드 포 굿(Wood for Good)’에 따르면 벽돌 1톤을 생산하는 데는 동일 중량의 연질 목재보다 4배 많은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다. 콘크리트의 경우 5배, 강철은 24배, 그리고 알루미늄은 무려 126배의 에너지가 사용된다. 목재는 성능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목재의 단열 성능은 콘크리트의 5배, 강철과 비교하면 350배 우수하다.

이러한 CLT를 고층건물 건설에 활용다면 가히 방대한 양의 CO₂ 배출이 저감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예컨대 슈타트하우스에 쓰인 목재가 흡수한 186톤의 CO₂는 이 건물에서 20년간 배출되는 CO₂의 양에 해당한다. 즉, 이 건물은 완공 후 적어도 20년 동안은 탄소 배출은커녕 오히려 탄소를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워 디스틀톤을 포함한 많은 건축설계기업들은 비교적 낮은 건물들에 CLT 공법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CLT를 이용해 명실공이 고층빌딩이라 불릴만한 수십층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 앞서 언급한 스톡홀름의 34층 빌딩이나 SOM의 42층 아파트 재설계 연구가 그 실례다.

특히 시카고의 ‘드위트 체스넛(Dewitt-Chestnut)’이란 아파트를 CLT로 재건축하는 SOM의 ‘팀버 타워 연구 프로젝트(Timber Tower Research Project)’는 CLT의 밝은 미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회사는 전체 건물의 80%를 목재로 사용하고, 강철과 콘크리트로 연결부위를 보강해 강도를 높인 설계안을 내놓았다.

이는 단순한 연구에 불과하지만 세계무역센터와 부르즈 할리파를 설계한 세계적 건축설계기업이 CLT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CLT 목조 건축이 이제 더 이상 전위적인 기술이 아닌 주류 건축 기술의 하나로 편입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CLT로 부르즈 할리파 수준의 초고층 빌딩이 건설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40층 이내의 건물만 타깃으로 삼더라도 목조 건축의 잠재력은 지대하다. SOM의 연구를 감독했던 구조엔지니어 윌리엄 F. 베이커도 이에 동의한다.

“CLT 건축 기술의 시장성은 충분합니다. 고층빌딩이 많기로 유명한 뉴욕에도 그러나 40층 이상의 마천루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맨해튼의 건물 대부분은 CLT로도 충분히 건설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한 번 상상해보자. 런던 동부에 자리 잡은 한 건물이 혼자 186톤의 CO₂를 흡수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건물들로만 이뤄진 도시는 어떨까.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이었던 건축업계가 대표적인 온실가스 배출 저감 산업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다. 건축회사 dRMM의 설계사 드 리케의 말이다.

“나무는 차세대 콘크리트입니다. 강철이 19세기, 콘크리트가 20세기의 소재였다면 21세기의 소재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목조 고층건물 해부도

1 강철 또는 콘크리트 건물은 기둥 모양의 골조를 통해 하중을 지지한다. 반면 CLT 건물은 수직으로 세운 벽체 전체로 하중을 견뎌낸다.
2 강철이나 콘크리트 소재의 L자형 브래킷(bracket)을 이용해 수평 또는 수직으로 배치된 CLT 패널들을 고정한다.
3 강철이나 콘크리트 기둥을 사용했을 때보다 CLT 패널로 벽체를 세웠을 때 벽체 사이의 간격을 더 넓게 떨어뜨릴 수 있다.
4 내벽의 경우 CLT 패널 겉면에 석고보드를 덧대어 강력한 방화 능력을 부여한다.
5 두께 5㎝의 바닥 단열재 2장을 7.5㎝의 빈공간을 두고 배치한다. 그 위에 두께 5㎝의 콘크리트를 덮어 층간 음향진동 소음을 억제한다.
6 CLT 패널은 주문에 따라 창문 구멍이 뚫린 상태, 배관 및 전기 시설이 설치된 상태로 제작된다. 때문에 패널들을 조립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건물을 세울 수 있다.
7 엘리베이터용 CLT 패널은 2개의 패널 사이에 단열재가 삽입돼 있다. 덕분에 방화성과 방음성이 확보된다.



CLT 제작법
직교적층목재(CLT)의 제작법을 보면 건축가들이 왜 ‘스테로이드를 맞은 합판’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CLT는 목재들을 직각방향으로 교차 적층하기 때문에 가로와 세로 방향 모두에서 탁월한 강도를 나타낸다. 목재의 소재는 주로 가문비나무가 쓰인다.

1.적층
목제 빔을 옆으로 나란히 놓아 한 층의 패널을 만든다. 그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또 다른 패널 층을 적층한다. 이때 위층의 목제 빔 방향이 아래층과 직각이 되도록 한다. 두께가 최대 30㎝가 될 때까지 적층을 반복한다.

2.압착
적층을 완료한 패널을 거대한 프레스기에 넣어서 압착한다.

3.샌딩
압착된 패널의 모서리를 매끄럽게 샌딩한다. 필요하다면 모서리를 톱니바퀴 모양으로 처리하여 다른 패널과 맞물려 접착하는 방식으로 최대 23.5m의 CLT 패널을 만들 수 있다.

4.재단
건축설계사가 보내온 3D 설계파일에 기반해 패널을 재단한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창문 구멍을 낼 수도, 전기와 배관 시설을 미리 장착해 놓을 수도 있다.

34층 스웨덴 스톡홀름에 건설 중인 목재 빌딩의 층수. 정식 인가를 획득한 역대 최고층 목조 건물이다.

CLT Cross Laminated Timber.
SOM Skidmore, Owings & Merrill.
경골 구조 (balloon frame construction) 얇은 샛기둥을 이용해 프레임을 세운 뒤 외장 패널을 붙이는 방식의 목조 건축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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