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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 명품의 희소가치를 지킨다

시계 브랜드 이야기 ⑩ 보베

보베는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로 꼽힌다. 연간 시계 생산량이 2,000여 개에 불과하며 시계 가격은 대부분 억대를 넘는다. 보베는 오랜 기간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2001년 제2의 창업자라 불리는 파스칼 라피가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예전의 위상을 되찾았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요즘 마케팅 업계에서는 ‘혁신’ ‘명품’이란 수식어들을 모든 제품에 습관적으로 붙이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최근 명품업계에서는 이들 단어를 기피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들 단어의 고유 의미가 희석돼 ‘막연한 의미의 싸구려 수식어가 됐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명품업체들은 ‘명품’ 대신 ‘하이엔드 High End ’라는 수식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하이엔드는 명품 중에서도 최상급 명품을 지칭하는 말이다. 마케팅 업자들은 아무 물건에나 명품 수식어를 붙여대지만 하이엔드라는 표현은 쉽게 붙이질 못한다. 단어 자체가 가진 아우라가 워낙 크다 보니 사용하는 데에도 심리적인 벽이 높기 때문이다.

시계업계는 명품업계 중에서도 브랜드 간 네임밸류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시계 마니아들은 명품으로 꼽히는 시계 브랜드들도 다시 일반 명품과 하이엔드로 구분한다. 시계 마니아들이 이 둘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신기하게도 특정 브랜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한 분류를 한다.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중에서도 또 구별되는 아주 소수의 브랜드가 있다. ‘시계 황제’ 혹은 ‘시계 끝판왕’이라 불리는 파텍필립을 비롯해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피게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많이 노출된 브랜드이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와는 달리 일반인들은 물론 시계 마니아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가 있다.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로 꼽히는 보베 Bovet가 그중 하나이다. 보베는 시계 마니아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그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희귀한 0.01%를 위한 브랜드다. 보베는 한 해 시계 생산량이 2,000여 개가 될까 말까다. 보통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의 10분의 1 수준이다.

보베는 스위스 출생의 워치메이커 에두아르 보베 Edouard Bovet가 창립했다. 에두아르 보베는 1797년 스위스 뉴샤텔 지역의 워치메이커 장-프레데릭 보베 Jean-Frederic Bovet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프레데릭 보베는 시계 기술 중에서도 특히 다이얼 공예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에두아르 보베는 17살까지 아버지 밑에서 관련 기술을 배웠다.

그가 18살이 되던 1814년, 그는 두 동생 알폰스 Alphonse와 프레데릭 Frederic 을 데리고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런던에서 일버리 Ilbury와 매그니악 Magniac 과 교류하게 되는데 이들과의 만남은 에두아르 보베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됐다. 일버리와 매그니악은 후에 영국에서 손꼽히는 시계장인 및 세계적인 무역업자로 성장한다.

1818년 에두아르 보베는 매그니악의 권유로 중국 여행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자신이 만든 시계 넉 점을 현재 가치 100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으로 판매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에두아르 보베가 중국 시장의 거대한 성장 잠재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에두아르 보베는 그 사건 이후 중국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고 보베를 창립하게 되는데 이때가 1822년의 일이다. 그는 영국 런던에 보베 회사를 세우고 그와 함께 런던으로 유학 왔던 두 동생 알폰스와 프레데릭에게 스위스 및 중국, 영국을 오가는 선박 관리 일을 맡겼다. 시계 제작과 관리는 그의 또 다른 동생 찰스 앙리 Charles-Henri가 맡았다. 보베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최초의 시계 브랜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보베 특유의 섬세한 에나멜 페인팅 기법과 인그레이빙 기법이 중국인들한테 큰 인기를 얻으면서 보베는 급속도로 인지도를 확대해 나갔다. 1820년대 중후반에는 후발주자인 보베가 훨씬 이전에 중국 시장에 진출한 바쉐론 콘스탄틴과 중국 시장을 양분하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중국 남부지방에서 보베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보베의 중국 발음 ‘보 웨이 Bo Wei ’가 시계를 부르는 일반명사로 쓰일 정도였다.

중국에서 승승장구하던 보베는 의외의 곳에서 암초를 만난다. 1840년에서 1842년까지 일어난 중국과 영국 간 아편전쟁으로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시계 브랜드들의 중국 시장 진출 가속화와 중국산 모조품들의 득세는 보베를 경영 위기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1849년 창업자였던 에두아르 보베가 52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경영 공백마저 나타났고, 1864년에는 아편전쟁 때의 세관 문제가 뒤늦게 불거지면서 보베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보베는 1888년 경영권을 보베 가문 이외의 인물에게 내주고 만다.

1888년부터 2001년까지 보베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큰 혼란을 겪는다. 보베를 사들였던 대부분의 인물들은 보베 브랜드의 상품가치를 이용하는 데에만 골몰했을 뿐, 제대로 된 투자는 하지 않았다. 보베는 점점 세상으로부터 잊혀져 갔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보베에게 2001년 혜성과 같이 등장한 파스칼 라피 Pascal Raffy는 제2의 창업자이자 구세주였다. 파스칼 라피는 보베를 빠르게 추슬렀다. 2006년에는 기술적 부분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브먼트 회사 디미에 1738과 STT(Swiss Time Technology) 등을 인수했다. 동시에 그는 전 회장의 낙하산 인사들과 품질에 관계없이 대량생산 제일주의를 외치던 임원들을 모조리 해고했다. 파스칼 라피의 등장과 함께 보베는 급속히 예전의 아우라를 되찾았다는 평가다.

보베에서 제작된 시계들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S자 곡선 모양으로 휘어진 핸즈라든가 핸드 크래프트 샹레브 기법의 인그레이빙 장식, 예술적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에나멜 페인팅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마데오 컨버터블 기능 시계들의 독특한 디자인이다.

보통 시계들은 케이스 3시 방향에 크라운이 위치하지만 보베의 아마데오 컨버터블 기능이 장착된 시계들은 12시 방향에 크라운이 위치한다. 스트랩과 케이스가 이어지는 부분에는 부드럽게 휘어진 곡선 보우 bow가 있어 크라운을 보호한다.

크라운이 12시 방향에 위치하게 된 까닭은 회중시계의 크라운이 12시 방향에 위치한 이유와 같다. 보베는 브랜드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1930년에 포트폴리오 워치 기술을 개발했다. 포트폴리오 워치는 손목시계가 탁상시계로 변형될 수 있도록 시계 케이스 뒷면 일부가 시계 받침으로 변형되는 시계다. 파스칼 라피는 포트폴리오 워치 기능을 업그레이드해 2010년 아마데오 (Amadeo는 파스칼 라피 회장의 아들 이름이다) 컨버터블 기술을 개발, 특허로 등록한다. 아마데오 컨버터블 기술은 시계 사용자가 시계를 손목시계에서 회중시계나 탁상시계로 손쉽게 변형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아마데오 컨버터블 기술이 장착된 손목시계는 가죽 스트랩을 빼고 백 케이스를 열면 탁상시계가 되고, 가죽 스트랩 대신 회중 시곗줄을 달면 회중시계가 된다. 리버스 핸드 피팅이 된 경우 시계 앞뒷면을 바꿔 양면시계로도 사용할 수 있다.

회중시계는 케이스 양 사이드를 손으로 감싸 쥐기 때문에 3시 방향에 크라운이 위치하게 되면 뜻하지 않게 시간조정 기능을 건드릴 수가 있다. 때문에 컨버터블 기능이 있는 보베의 시계들은 회중시계와 같이 크라운이 케이스 12시 방향에 위치하게 됐다. 보베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아마데오 컨버터블 기술의 개발과 파스칼 라피의 경영 정상화 노력으로 보베는 빠르게 브랜드 가치를 회복했다. 오히려 지금이 예전의 아우라를 넘어선다는 평가도 많다. 자존심도 되찾았다. 보베는 여타 브랜드들처럼 좀 더 많은 시계를 팔기 위해 속 빈 강정식 마케팅을 할 생각이 없다. 어디까지나 고고한 한 마리 백조처럼 우아한 브랜드로 남겠다는 방침이다.

파스칼 라피 보베 회장은 말한다. “대량 생산과 판매는 명품의 희소가치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저를 비롯해 보베의 시계를 선택한 고객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계’에는 흥미가 없죠. 저는 좀 더 시계 마니아적 입장에서 보베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저는 회사의 오너이기 전에 시계 수집가이죠. 마케팅 강화 등 업계의 추세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보베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시계로 재탄생시키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게 보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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