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흐 인더스트리스 Koch Industries는 석유회사로만 알려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억만장자 형제 찰스 코흐 Charles Koch와 데이비드 코흐 David Koch가 운영하는 이 거대 비공개 기업은 식품, 물, 개인 기술 등 주요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코흐 인더스트리스(이하 코흐) 본사는 정보기술의 전도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장소는 아니다. 실리콘 밸리 Silicon Valley에서 1,600마일 떨어진 이곳은 정치·문화적으로는 더 소외돼 있다. 도심의 거리 대신 넓은 목초지가 펼쳐진 위치타 Wichita 북동쪽 끝에 위치한 본사는 지난 수년간 미국 최대의 비공개 기업 중 하나인 코흐가 석유 및 가스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줬다.
BY CHRISTOPHER LEONARD
얼마 전 코흐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 스티브 페일마이어 Steve Feilmeier는 미국 경제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자 미국 첨단산업의 밝은 전망에 대해 열정적 독백을 늘어놓았다. 그는 다른 이사들의 사무실과 나란히 있는 소박한 집무실에서 블랙베리 BlackBerry 스마트폰을 들고는 점점 더 흥분해 “블랙베리 같은 작은 제품들은 8~1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기술들은 우리 삶의 질을 엄청나게 향상시켰다. 이런 추세는 더 빠르게 지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초, 코흐는 그런 믿음에 거액의 투자를 했다. 일리노이 Illinois 주 라일 Lisle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전자 부품 생산업체 몰렉스 Molex를 72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몰렉스는 아이폰 iPhone을 비롯한 다양한 전자기기의 부품을 생산하며, 인수 전까지 나스닥에 상장돼 있었다. 코흐는 몰렉스가 임박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역주: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시키는 기술 혁신에서 큰 기회를 얻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같이 건장하고 터프한 페일마이어(52)는 “센서와 커넥터를 생각해 보라. 이런 부품들이 얼마나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가? 기술은 더욱 사용자 친화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기계는 인터넷과 연결돼 더욱 더 주도적으로 변하고 있다. 산업 로봇, 자동화 시스템, 그리고 운전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사고를 방지해주는 자동차까지 아주 다양하다. 몰렉스는 그러한 발전에서 이익을 얻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페일마이어는 현재 36억 달러인 몰렉스의 매출이 10년 내 1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더 작은 규모의 잠재적 인수대상 기업들은 수백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단순히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업이나 기술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입 과정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흐(‘코크’라고 발음된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면 그것은 코흐의 주요 주주(찰스, 데이비드 코흐 형제)들의 정치활동 덕분일 것이다. 70여 년 전에 그들의 아버지 프레드 Fred가 설립한 이 가족기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코흐 형제는 세계적인 부자 대열에 오르게 됐다. 각자 순자산이 36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증가하는 자산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 해왔다. 코흐 형제는 강경한 자유 의지론자다. 데이비드는 1980년 자유당(Libertarian Party) 공천 후보자로 부통령에 출마했다(그는 혹자들이 기업 수익성에 해가 된다고 주장하는 규제 및 큰 정부를 몹시 싫어했다). 코흐 형제는 티파티 운동을 탄생시킨 모금단체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정치적 뜻을 펼치기 위해 코흐 형제가 후원한 주요 단체로는 정치자문 그룹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Prosperity, 이하 AFP)’이 있다. AFP는 오바마케어(Obamacare) *역주: 오바마 대통령이 실시한 의료보험 제도 철폐부터 위스콘신 Wisconsin의 공무원 노조 탄압까지 수많은 정치적 투쟁에 참여했다. 최근 미국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AFP는 2012년에만 1억 2,200만 달러를 지출했다. 하지만 코흐 형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지출한 금액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다양한 보수 단체 네트워크 지원을 위해 수천만 달러를 후원했다. 그 결과 코흐 형제는 미국 정당 정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이 됐다(그리고 모든 진보성향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코흐 형제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뜨거운 관심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코흐를 미국 최대의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는지는 덜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코흐 인더스트리스가 상장된다면 1,150억 달러에 달하는 매출액구글 Google, 골드만 삭스 Goldman Sachs, 크라프트 푸드 Kraft Foods의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크다은 코흐를 포춘 500대 기업 중 17위에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코흐의 기업규모는 지난 10년간 무려 2배나 커졌다. 하지만 코흐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큰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코흐는 규모의 성장과 동시에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더 많은 고객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 코흐는 2005년 220억 달러에 조지아 퍼시픽 Georgia Pacific을 인수했다. 덕분에 스테인마스터 Stainmaster, 퀼티드 노던 Quilted Northern, 브로니 Branwny, 딕시 Dixie 등 유명 카펫, 화장지, 컵 브랜드를 소유하게 됐다.
코흐는 석유회사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대형 사모펀드처럼 운영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수익 잠재력이 큰 곳을 찾아 투자하는 방식이다. 코흐는 매우 전략적이고, 침착하게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한다. 일례로 10년 전만 해도 코흐는 비료업계에서 비주류 기업이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게 지속적인 투자를 감행했고, 덕분에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비료 생산 및 유통업체가 됐다. 현재는 전 세계 식량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이런 위치를 교두보로 삼아 농산업 분야에 추가적인 투자를 꾀하고 있다).
코흐의 전략과 방법론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포춘은 지난 몇 달간 코흐의 전·현직 이사들을 인터뷰했고, 코흐에 관한 가용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으며, 경쟁업체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코흐는 전기, 식품, 기술, 심지어 물 산업에서도 주요 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을 하고 있는 대단히 체계적인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코흐는 찰스 코흐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코흐 형제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생 데이비드(73)의 직급은 분명히 형보다 한 단계 아래다. 데이비드의 직함은 총괄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이지만, 오랫동안 뉴욕에서 살고 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선활동 등 대중을 상대하는 데 할애한다. 2008년에는 링컨 센터 Lincoln Center *역주: 미국 뉴욕의 무대예술 및 연주예술을 위한 종합예술센터에 1억 달러 기부를 약속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극장도 생겨났다. 형 찰스(78)는 위치타에 거주하고 있으며, 1967년 선친 프레드 코흐가 사망한 이후로 줄곧 회장 겸 CEO 직을 맡고 있다. 찰스와 데이비드는 이번 기사와 관련해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코흐의 성장을 보면, 찰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최고의 엘리트 경영자 중 한 명이다. 50년 전 그가 코흐를 맡았을 때 회사 매출은 2억 달러에 불과했다(현재는 1,150억 달러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꾸준히 키워왔다. 네덜란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프레드 코흐는 MIT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1920년대 초 원유를 가솔린으로 정제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이오시프 스탈린 Joseph Stalin이 집권하던 구소련에서 일했고, 1940년 미국으로 돌아와 정유회사를 설립했다. 미국의 반공 우익단체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의 원년 멤버였던 프레드는 보수적 가치관을 네 아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렇다. 네 명이다. 데이비드의 쌍둥이 형제 빌 Bill은 사업가이자, 1992년 아메리카스 컵 America’s Cup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요트선수기도 하다. 더욱 최근에는 케이프 코드 Cape Code 연안에 풍력 발전용 터빈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이끈 것으로 언론에 등장했다. 코흐 형제의 큰 형 프레드릭 Frederick(80)은 수집가이며 자선운동가이다. 1983년 찰스와 데이비드는 단 10억 달러에 빌과 프레드릭의 지분을 매입했다(이와 동시에 가족 간의 긴 반목이 시작됐다. 1990년대 빌과 프레드릭은 대금을 지급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2001년 형제간의 불화는 비공개 합의로 끝이 났다).
오늘 날 코흐 인더스트리스의 구조는 프레디 시절과 판이하게 다르다. 코흐 자산개발(Koch Equity Development)이라는 공식명칭을 가진 중앙 그룹은 찰스를 비롯한 이사진에게 직접 보고를 하며 고위급 싱크탱크처럼 운영된다. 때로는 10~15년의 긴 시간에 걸쳐 가능성 있는 거래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코흐 퍼틸라이저 Koch Fertilizer, 코흐 미네럴스 Koch Minerals 등 각 사업 부문별로 이보다 작은 규모의 개발그룹들이 배치돼 있다. 이러한 그룹들은 잠재적 거래를 모색하기 위해 각 업계의 동향을 살피고, 중앙 그룹에 정보를 전달한다. 페일마이어에 따르면, 코흐는 매년 개발그룹의 연구에 약 1억 달러를 투자한다.
코흐는 다른 정보취득 수단들도 이용한다. 예를 들면, 대규모 원자재 거래 비즈니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로이터 Reuters의 2011년 순위에 따르면, 코흐는 휴스턴 Huston, 뉴욕 New York, 제네바 Geneva, 싱가포르 Singapore, 위치타에 거래소를 둔 세계 4위의 원자재 거래업체다. 코흐의 트레이더들은 은부터 오렌지 주스까지 다양한 원자재를 구입하고 판매한다. 원자재 거래부문의 전ㆍ현직 고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트레이더들은 수익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시장을 관측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코흐가 새로운 거래나 인수대상을 찾는 것을 돕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흐는 1990년대 말 올레핀 olefin이라는 석유화학제품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한 전직 고위 트레이더는 “당시 올레핀이 저가에 거래됐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거래품목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코흐는 7억 7,000만 달러 거래의 일환으로 헌츠맨 주식회사 Huntsman Corp.로부터 올레핀 공장을 인수했다. 이 거래는 상당 부분 트레더들이 실시한 올레핀 시장조사 분석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코흐의 주요 사업부들은 찰스 코흐와 다른 이사진에게 최소 분기에 한 번씩, 최신 사업현황에 대해 보고한다. 이런 보고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사업부는 언제나 잠재적 매각대상이며, 이사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감히 찰스 코흐 앞에서 수치를 조작하거나 단점을 호도할 수 없다. 찰스는 질문 하나로 설득력 없는 주장을 꿰뚫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코흐의 내부 벤처캐피털 펀드중앙 개발그룹과 긴밀히 협조한다의 부사장을 역임한 제러미 존스 Jeremy Jones는 “사업현황 보고는 대단히 까다롭다”고 말한다. 존스는 찰스에게 생물연료에 대한 투자제안을 했을 때 그 점을 톡톡히 깨달았다. 존스가 설명을 끝내자 찰스는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에탄올은 가솔린 에너지의 66.7%밖에 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했는지, 그의 전망치가 향후 변경될 수 있는 에탄올 사용에 대한 정부명령을 염두에 뒀는지 등을 물었다. 존스는 “내 분석은 엉터리 추측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찰스는 그 점을 빠르게 간파했다. 모르는 점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 어설프게 둘러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단 투자가 시작되면, 찰스가 수십 년간 갈고 닦은 엄격한 방식에 따라 진행된다. 찰스는 자칭 ‘시장중심의 경영ⓡ(Market-Based Managementⓡ, 이하 MBM)’그렇다, 찰스는 저 등록마크를 사용했다이라는 경영철학을 성문화했다. 2007년 코흐의 시스템에 대해 기술한 ‘성공의 과학(The Science of Success)’이라는 저서를 발간한 것이다. 직원들이 MBM이라 부르는 이 철학은 코흐의 일상 업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본사 벽에 많은 예술작품들이 걸려 있지는 않다. 대신 곳곳에 MBM 10대 원칙이 걸려 있다.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공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때 사용하는 1회용 컵에도 이 원칙이 새겨져 있다.
MBM이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오랫동안 찰스 코흐의 측근으로 일했던 한 전직 고위간부는 “그것은 내 삶과 다름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MBM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구체적인 지침이라서가 아니라, 코흐 직원들을 단결시켜주고 그들에게 공통의 언어와 목표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부에서 MBM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외부인들에게는 그저 상투적 컨설팅 문구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MBM 10대 원칙에는 가치 창출, 정직, 변화, 원칙이 있는 기업가정신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용어들이 사용됐다. 하지만 MBM의 핵심, 나아가 코흐 인더스트리스의 핵심에는 아주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다. 코흐의 운영방식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구체적 사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한 최적의 사례연구는 바로 비료사업부문이다.
2002년 질소 비료 공장 네트워크를 소유한 팜랜드 인더스트리스 Farmland Industris라는 기업은 파산 선언을 하고, 보유한 사업부문들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팜랜드는 미주리 Missouri 주 캔자스시티 Kansa City에 위치한 본사 회의실에서 비료공장들의 경매를 진행했다. 입찰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내부는 반짝이는 공장 포스터들로 장식돼 있었다. 하지만 딱 2개의 기업만 그곳에 나타났다. 대형 비료업체 애그리움 Agrium과 코흐 인더스트리스였다.
코흐의 등장은 외부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무엇 때문에 석유회사가 수익성이 가장 떨어진 상황에 처한 비료공장을 매입하려 한다는 것인가? 당시 그들은 코흐가 팜랜드를 수년간 관찰해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코흐는 똑같은 방식으로 오늘날 다른 산업과 기업들을 관찰하고 있다. 코흐의 중앙 개발그룹이 이런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인수거래를 평가할 때 코흐 이사진은 3가지 주요 기준에 초점을 맞춘다.
1. 반드시 인수대상 기업은 어려움에 처해 있어야 한다. 잘나가는 기업에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만약 어떤 큰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코흐가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2. 거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부분의 상장 기업들은 분기별로 성과를 내야 한다. 심지어 비상장 사모펀드마저도 큰손 투자자들에게 최소 몇 년 내로 투자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코흐는 경우는 다르다. 개인 소유회사는 수십 년 단위로 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
3. 코흐에 도움이 되는 핵심기술(MBM 용어로는 ‘핵심 역량’)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코흐가 괜히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이다. 코흐가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해당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개발그룹을 운영했던 브래드 홀 Brad Hall을 포함한 전·현직 이사진의 말에 따르면, 코흐의 개발그룹들은 가능한 모든 거래를 자세히 검토하고, 수많은 시나리오에 대해 연구하고, 10~15년 후에 해당 산업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려 한다. 그 후에는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종형곡선(bell curve)에 나타내는데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중앙에,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검은 백조(black Swan)’ 시나리오는 가장자리에 표시한다.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상에서 인수거래가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행동에 착수한다.
2000년대 초 코흐의 소규모 비료사업은 이런 분석과 일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비료사업부문의 젊은 직원 스티브 패커부시 Steve Packebush는 비료에 대한 글로벌 수요 및 공급을 분석하는 팀에서 일했다. 당시 코흐는 작은 비료공장 한 채와 비료 원료를 운송하는 파이프라인 몇 개만을 소유하고 있었다. 2002년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질소 비료의 생산비용이 급증했다. 팜랜드와 같은 기업들은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 질소 비료는 농산품처럼 들리지만 사실 에너지 제품이다. 질소 비료를 생산하는 주요 원료가 천연가스이기 때문이다.
패커부시 팀은 천연가스 가격 폭등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장상황을 이용해 더 많은 비료 공장의 인수를 제안했다. 당시 미국 비료 산업은 깊은 수렁에 빠졌고, 미국 비료생산 업체의 40%가 파산했다. 바꿔 말하면, 가장 효율적인 공장들만 살아남고 업계 상황이 반등했을 때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게 패커부시의 주장이었다. 팜랜드의 비료공장들은 오클라호마 Oklahoma에서 아이오와 Iowa로 이어진 콘 벨트 Corn Belt *역주: 옥수수가 많이 나는 미국 중서부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특히 더 매력적이었다. 이러한 입지 덕분에 멕시코만 연안(Gulf Coast)으로 수입되는 비료들에 비해 약간의 가격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기회가 찾아오자 찰스 코흐와 이사회는 비료사업 부문의 투자를 허락했다. 2003년 패커부시는 팜랜드 본사에서 열린 경매에 참가해 애그리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결국 코흐는 2억 9,300만 달러 가치가 있는 팜랜드 비료공장을 헐값에 매입했다. 코흐는 10년간 5억 달러를 투자해 비료공장 및 다른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며 자사의 ‘핵심 역량’을 비료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유사업에서 보여줬던, 효율성을 추구하는 날카로운 분석력을 비료사업에서도 그대로 활용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코흐의 비료사업은 큰 힘을 얻었다. 2008년 초 ‘프래킹 fracking’으로 알려진 수압파쇄 기술이 도입되면서 미국에서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가 채굴됐다. 덕분에 천연가스 공급량이 크게 증가했고 가격은 급락했다. 일순간에 팜랜드가 도산했던 시기의 절반 가격에 주요 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비료제품의 소매가는 여전히 높았다. 기록적으로 높은 옥수수 가격 때문에 농민들은 최대한 많은 양의 비료를 구입해 사용하려 했다. 값싼 천연가스와 높은 비료가격의 조합은 코흐의 순이익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운과 능력이 합쳐져 코흐 퍼틸라이저는 코흐의 최대 사업부문 중 하나로 부상했다. CFO 페일마이어는 “농산업이 수년 내 사업확장을 계획하는 최우선 분야 중 하나”라며 “상당수 거래는 비료부문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비료사업은 농산업의 중심이다. 여기에 세계가 직면한 문제가 있다. 현재 인구는 70억인데, 2030년에는 90억까지 증가할 것이다. 어떻게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릴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코흐의 경제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페일마이어에 따르면 코흐는 당분간 경기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전자 제품의 지속적 혁신이 첨단 제조업의 수요를 진작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몰렉스를 인수한 것은 그런 흐름 속에서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코흐가 발견한 또 다른 장기적 트렌드는 공익기업들이 전기 그리드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코흐의 계획은 놀랍게도 철강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최근 코흐는 빅 리버 스틸 Big Reiver Steel이 아칸소 Arkansas 주 오시올라 Osceola에 건설 중인 11억 달러 규모 철강소에 투자했다. 투자규모는 공개되지 않겠지만 철강업체 뉴코 Nucor는 코흐가 1억 2,5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의 40%를 얻게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투자지만, 코흐는 자주 이런 방식으로 신규 시장에 진입한다. 처음에는 소규모 거래로 시작한다. 위험이 크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면서 업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흐는 2004년 조심스레 목제사업에 발을 들였다. 제지기업 조지아 퍼시픽 Georgia-Pacific으로부터 6억 1,000만 달러에 펄프 제작소 및 기타 자산을 매입했다. 그리고 얼마간 제작소들을 운영해 본 뒤 이듬해 갑작스레 조지아 퍼시픽 전체를 인수했다.
페일마이어에 따르면 코흐는 빅 리버 스틸과의 거래에 매우 흡족해 했다. 빅 리버스틸은 머지않아 변압기, 전선, 차세대 특수 그리드 등에 사용되는 ‘전기 강종(electronic steel grade)’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미국 유일의 철강업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전기 그리드 개선을 지원하면서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이 공장은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우리는 연구와 투자에 많은 공을 들였다. 덕분에 10년, 20년 후에 지금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조지아 퍼시픽 때처럼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뉴코 같은 철강기업을 인수,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인가? 페일마이어는 “우리 도움으로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철강과 전기에 대한 코흐의 투자는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는 다른 사업들도 추진 중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구에가장 소중한 천연자원인 물에 대한 투자다. 코흐는 민간 물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투자 논리는 간단하다. 깨끗한 담수는 점점 더 부족해지는 반면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개도국의 폭발적 인구증가는 담수 공급을 초월할 것이다. 때문에 해수를 담수화하거나,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기계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시장 조사기업 테크나비오 TechNavio에 따르면, 담수화 시장은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해마다 9.5%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흐 벤처 캐피털 펀드의 전직 부사장 존스는 “훌륭한 사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임기 동안 물 산업에 대한 투자를 추진했던 그는 “민물, 깨끗한 물, 사용 가능한 물 등은 당장 가치가 증대하는 자산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코흐는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 주 윌밍턴 Wilmington에 소재한 코흐 맴브레인 시스템스 Koch Membrane Systems(이하 맴브레인)라는 사업부를 통해 조용히 물 사업을 추진해 왔다. 맴브레인의 설립목적은 코흐의 정유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를 정화하는 장비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맴브레인 소속 과학자들은 협소한 공간에 설치 가능한 정수시설을 제작하는 전문가들이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맴브레인에서 일했고, 맴브레인 개발그룹 부사장까지 지낸 스티븐 이언넬리 Steven Iannelli는 1990년대 맴브레인은 정유공장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정화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기술을 획득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코흐는 다양한 물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사추세츠 프랭클린 Franklin 같은 도시에 정수 시스템을 판매하고 있으며 해외수출까지 추진 중이다. 중국 발전소와 칠레 광산에는 담수화 시스템을 판매하기도 했다. 또 미 국방부 협력업체에도 정수시설 기술을 판매했다. 핵 폐기물에 오염된 물을 정화하고, 소금물을 담수화해 마실 수 있는 물로 만드는 기술이다. 그리고 퓨론 플러스 Puron Plus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조립식 정수시설로 도시나 공장의 주문에 따라 설치된다. 코흐는 퓨론을 주문에 따라 빠르게 설치되는 ‘패키지 시설’로 만들었다. 정수 시스템은 협소한 공간을 고려해 제작된 다양한 평면도에 따라 설치된다. 이런 제품들은 새로운 정수시설이 필요하지만, 부지가 부족한 인구과밀 도시에 큰 도움이 된다.
아직 물 사업의 규모는 정유나 비료 사업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마어마한 잠재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페일마이어에 의하면 코흐가 보유한 각종 정수기술 특허를 수억 달러에 매입하겠다는 제안이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수기술들을 상업화할 것이기 때문에 판매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코흐의 장기 전략 중 여전히 불분명한 한 가지는 누가 찰스 코흐의 후임자가 되느냐는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78세의 찰스는 당분간 은퇴할 계획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년에 걸쳐 투자를 하는 기업에 있어 후임자 선정은 무척 중요하다. 이번 기사를 위해 인터뷰했던 인물 중 그 누구도 데이비드 코흐를 후임자로 예상하지 않았다. 찰스의 몇몇 측근들 위주로 추측이 나오고 있다. CFO 페일마이어, 부사장 데이비드 로버트슨 David Robertson 등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유망한 젊은 인물만큼 하마평에 오르진 못했다. 바로 찰스 체이스 코흐 Charles Chase Koch다.
찰스 코흐의 아들 체이스를 아는 이들은 모두 그가 아버지의 치열한 경쟁의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체이스는 12세에 미국 국내 랭킹에 오른 테니스 선수가 됐다. 현재 36세인 그는 텍사스 A&M Texas A&M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20대 때 코흐에 입사했다. 체이스는 리더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입사 이후 고위 간부는 물론 여러 부서 직원들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녔고, 현재는 농산업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다. 올해 초에는 비료부문 사장으로 승진해 사업 확장을 이끌도록 예정돼 있다. 코흐는 이번 기사를 위한 체이스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누가 되든 차기 CEO는 코흐 인더스트리스가 단순히 찰스 코흐의 사업 수완으로 만들어진 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어떤 면에서는 애플 Apple의 CEO 팀 쿡 Tim Cook이 스티브 잡스 Steve Jobs의 사망 후 극복해야 했던 과제와 유사하다). 또 차기 CEO는 완전히 바뀐 코흐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잘 관리해야 한다. 페일마이어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수할 때는 영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코흐 인더스트리스가 기술기업으로 불릴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숫자로 본 코흐
1,150억 달러
지난 10년간 거의 2배가 증가한 코흐의 연 매출. 만약 코흐가 상장기업이었다면 포춘 500대 기업 중 17위에 올랐을 것이다.
6만 명
코흐가 지난해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채용한 직원 수. 위치타 본사에는 약 3,000명이 근무한다.
72억 달러
코흐가 몰렉스를 인수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 몰렉스는 글로벌 전자부품 생산업체로 매출은 36억 달러, 직원 수는 3만 6,00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