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 재판에서 배심원 전원 일치 유죄 의견이 내려지자, 국민참여재판 대상에서 정치 사건을 제외하자는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시행된 지 6년이 지났다. 이제 이 제도 전반을 돌이켜보고 그 의미와 개선방향 등에 대해 살펴볼 시점이 됐다.
글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카이스트 겸직교수
국민참여재판이란?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1월 1일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국민참여재판법률)이 제정·시행됐다. 형태는 영미의 배심제와 독일 등의 참심제가 혼합된 형태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경우 일부 형사사건에 한해 5~9인의 배심원을 선임하여 재판이 진행된다. 배심원은 유무죄의 평결 및 양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나, 이는 법원을 기속하지는 않는다. 다만 법원이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판결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기재하도록 규정돼 있다.
배심원제도는 영국에서 유래돼 미국에서 발전한 제도다. 시초는 1066년에 노르만족이 정복자 윌리엄을 앞세워 영국을 점령한 이후, 분쟁에 관련된 정보나 지식을 제공하는 담당자를 도입한 데서 유래한다. 14세기 들어 이들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등 사법적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이 제도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1735년 존 피터 쟁어의 반란선동사건에서 배심원이 무죄평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미국인들의 자유를 지켜내는 제도로 발전하였다. 현재 미국의 배심원단은 12인으로 구성되며, 전원 일치에 의한 평결의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독일 등의 국가에서 도입한 참심제는 한 명의 전문 법관에 두 명의 일반시민으로 구성되는 형태로, 의사결정 역시 과반수의 원칙에 따른다.
국민참여재판이 지닌 의미
국민참여재판의 기초가 되는 배심원 제도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슨 사건이나 로드니 킹 사건 등에서 본 바와 같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배심원의 평결이 많은 것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미국이 여전히 배심원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제도가 사법권의 행사를 적절히 견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사법권 행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무엇보다 일반 국민이 재판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법의 중요성과 법 준수에 대한 생생한 교육의 현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배심원평결의 구속력 인정 여부
현행 국민참여재판법률에 의하면 배심원의 평결 및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 이는 헌법상 보장되는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위헌 가능성 때문이다. 그렇지만 배심원 평결의 구속력을 인정하더라도 위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피고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을 받기 때문에, 법관에 의한 재판 청구권 자체를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사실관계의 인정 등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배심원 평결의 구속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전원 일치 무죄평결의 구속력
배심원 평결의 구속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배심원이 전원 일치로 무죄의 평결을 내렸는데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법리상 문제가 있다. 형사 사건에서 국민의 대리인인 검찰은 공소사실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 책임을 지며, 만약 이러한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법원은 무죄의 선고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특정사안에서 배심원 전원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면 이는 해당 범죄의 입증에 합리적인 의심이 있어 유죄의 입증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증거법 원칙에 따라 검찰의 입증이 미흡한 것으로 보아 피고인에게 무죄 선고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배심원 평결은 전원 일치를 원칙으로 하고, 사실 인정에 관한 한 법원에 구속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 물론 법률적 사항에 대하여는 법원이 배심원의 결정을 변경·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심원이 과도한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평결하였다면, 법원이 그 금액을 실제 손해액의 3배 정도로 제한하여 조정하는 판결을 내린다.
정치사건의 국민참여재판 대상 제외 여부
일각에서는 정치사건의 경우 일반인인 배심원이 이성적 판단이 아닌 정치성향에 따라 평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일반 국민의 참여에 의해 그 시대의 범사회적 상식에 기초한 판단을 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정치사건이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에 적합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상식에 기초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판단의 위험성이 관료주의적이며, 정부 기관의 하나인 법관의 경우에 오히려 더 심각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고, 필요할 경우 현행 배심원 수를 확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국민참여재판제도의 나아갈 방향
국민참여재판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지만, 제도의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다. 재판에 일반 국민이 깊숙이 관여함으로써 모든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하고, 법관에 의한 사법권이 관료적 혹은 권위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하는 ‘견제와 균형’의 역할이 그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이 범사회적인 발전적 논의를 통해 개선·보완됨으로써 이와같은 제도의 장점들이 충분히 부각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및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