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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의 부부 공존지수 높이기

100세 시대 스마트라이프

21세기는 ‘NQ시대’라고 한다. NQ(Network Quotient)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나타내는 ‘공존지수’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지능지수(IQ)나 감성지수(EQ)만으론 부족하다. 우리 사회가 점차 수평적인 관계 중심의 네트워크 사회로 변해감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 윤성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공존지수는 노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버드 의대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하버드 대학생, 저소득층 남성, 그리고 천재 여성 814명의 인생을 약 70년간 추적조사하면서, 행복한 노년의 조건들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연구대상자들이 대부분 80세에 접어든 최근 “50대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47세 무렵까지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노후의 삶의 질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간관계를 점검해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미시간대 심리학과의 로버트 칸과 토니 안토누치 교수는 노후의 건강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를 호위대 모델(convoy model)로 설명한 바 있다. 이 모델은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 즉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여준다. 먼저 4개의 동심원을 그리고, 가장 안쪽 원에는 ‘나’를 적는다. 두 번째 원에는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친밀한 사람들을 적고, 세 번째 원에는 두 번째 원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친하고 중요한 사람들을 적는다. 가장 바깥 원에는 직장이나 공적인 활동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적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가이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이 원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이 원 안에 있을 사람들, 내 곁에서 인생의 호위무사가 되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렇게 네트워크를 점검하다 보면, 나이 들수록 중요한 관계는 바로 가족관계, 특히 배우자와의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시간대 노년학연구소의 루이 버브루그와 제임스 하우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은 병에 걸릴 확률이 약 35% 높고 수명은 평균 4년 정도 단축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가족치료학자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서는 결혼생활이 행복한 부부일수록 백혈구가 외부공격에 잘 증식하고, 암세포를 억제하는 킬러세포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면역체계를 강화시킴으로써 건강과 장수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행복한 노후를 위해 부부간의 공존지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부부가 서로 바라는 노후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함께 설계해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부부의 인생계획 중 부모로서 세운 계획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부부 중심의 삶에서 의미와 활기를 찾아야 한다. 평균수명의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는 이제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0세 시대란 가장 많이 사망하는 연령대를 뜻하는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되는 시대로, 우리나라는 2020년경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대개 환갑에 이르면 수명을 다했던 시절에는 열심히 돈을벌고 자식을 키워 시집·장가보내면 거의 인생도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직장에서 은퇴하고 자녀들을 독립시킨 후에도 부부가 함께 30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 지도가 필요해진 것이다. 신혼생활을 준비하는 예비부부처럼 중년의 부부들도 또 한 번 머리를 맞대고 나머지 반평생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미국의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에서 은퇴 전후의 부부 50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 쌍 중 한 쌍은 은퇴 후에 기대하는 생활방식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은퇴생활은 부부 두 사람이 그리는 노후가 동상이몽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은퇴 후 삶에서 부부 각자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은퇴 후에 어디서 살고 싶은지, 부부 각자가 꿈꾸는 삶의 모습을 서로 확인하고 그 간격을 좁혀나가야 한다. 둘째, 배우자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가족학자들은 나이 들수록 부부 사이에 우정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가슴 떨리는 열정은 쉽게 무뎌지지만 우정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져서 함께 사는 기쁨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은퇴기에 돌입한 중장년층, 특히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남성들은 아내와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데 서툴다. 현역 시절 과중한 업무와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려온 만큼, 가족관계와 같은 삶의 질적인 측면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튼튼하게 묶어 주는 신뢰와 우정, 친밀감 등은 모두 시간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는 것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가트맨 박사는 헬스클럽에서 매일 운동하는 것보다 하루에 20분이라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건강과 장수에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매일 20분이라도 부부간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나누고 관심사를 공유해나간다면, 노후에도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훌륭한 호위무사가 될 것이다.

셋째, 부부간에 상호 돌봄의 관계를 정립해나가야 한다. 은퇴 부부들이 가장 많은 갈등을 경험하는 영역이 바로 가사분담 문제다. 특히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성들이 퇴직 후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들을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하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퇴직남편재가 증후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건강한 가족의 특징은 변화된 상황이나 역할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가족의 적응성을 높이려면 지금까지 적용해왔던 가족의 규칙을 융통성 있게 변화시켜야 한다. 은퇴 후 부부는 자녀양육자로서의 역할,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 등을 마치면서, 새로운 역할조정의 단계로 돌입하게 된다. 이때 부부는 ‘남자의 일’ 혹은 ‘여자의 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집안일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돌봄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 아내는 지금까지 땀 흘리며 수고한 남편을 인정하고, 은퇴 후 혼란스런 변화의 시기에 있는 남편의 입장을 이해해 주자. 그리고 집안에서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얘기해보자. 남편은 아내도 집안일에서 은퇴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남편이 앞치마를 두르는 것은 남자로서 자존심 구기는 일이 아니라, 아내의 파트너로서 협력하고 돌보는 일이다. 매일의 삶에서 서로 돕고 배려하는 돌봄의 능력이야말로 100세 시대의 부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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