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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나노 세계의 지배자들

The Rulers of Nano Universe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질병을 치료하는 마이크로봇, 피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하는 휴대용 진단 키트, 손목시계 크기의 슈퍼컴퓨터. 이는 더 이상 SF 영화 속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나노과학 기술이 머지않은 미래에 구현해줄 일상의 모습이다. 단, 나노과학이 선사할 이 미래는 반드시 계측과학이 뒷받침돼야 현실화 가능하다. 정확한 계측 없이는 양질의 제품을 신뢰성 높게 대량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세계에서 미래 세상을 창조하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나노계측과학 전공 교수진과 학생들을 소개한다.

“나노계측과학은 나노 영역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의 측정과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물리, 화학, 재료 등 다양한 전공이 소통할 수 있는 다학제적 융합과학이라 할 수 있어요. 특히 나노계측과학에서는 측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노 영역(1~100㎚)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만 제품의 물리적 현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UST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캠퍼스에서 나노계측과학 전공을 이끌고 있는 김진희 책임교수는 나노계측과학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 나노계측과학 전공에는 김진희 책임교수, 김경중 교수, 문대영 교수 등 10여명의 교수와 12명의 학생들이 세계 최고의 나노과학측정기술 확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실험과 이론 모두에서 나노계측 전반에 대해 철저하고 폭넓게 이해하며, 융합적 사고관을 지닌 글로벌 인재 양성이 궁극적 목표다.





국내 나노기술의 인큐베이터

표준과학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점하고 있는 표준연의 일원답게 나노계측과학 전공 교수진의 면면은 명실공히 국내 최강이자 세계 톱클래스다. 김진희 책임교수만 해도 탄소나노 튜브, 반도체 나노선 같은 저차원 나노구조체의 전기적·기계적 특성을 정밀 측정하고 이를 이용한 전자소자를 개발하는 등 국내 나노소자 연구의 기틀을 다진 나노계측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이미 다수의 세계적 성과들을 도출해냈음은 물론이다.

그만큼 소속원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김경중 교수는 “나노과학, 우주과학 등 과학분야 전반에 걸쳐 측정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측정의 극한에 있는 것이 나노계측이고 나노계측의 중심에 바로 UST 표준연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표준연 나노계측과학 전공의 강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측정분야의 여타 국내 연구소들과 비교해 표준연은 사실상 완벽한 연구·개발·교육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또한 나노계측 외에 나노소재의 합성과 응용, 나노광학소자 개발, 이론 등 다양한 분야와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나노기술과 관련된 전반적인 논제를 논의할 교수진이 갖춰져 있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는 메리트다. 국내 나노계측기술의 모태가 되는 학과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차세대 양자점 태양전지 개발

나노계측과학 전공의 여러 연구주제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김경중 교수팀의 차세대 양자점 태양전지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결정체인 양자점을 이용한 박막태양전지로 가시광선에 더해 적외선 영역까지 전력 변환이 가능하고, 또 다른 차세대 태양전지인 염료감응 태양전지보다 공정비용도 적다는 게 장점이다. 아직 효율은 낮지만 김 교수팀은 이미 표준연이 보유 중인 나노소재 제작기술과 특성평가기술을 접목, 양자점 태양전지 개발에 성공했다.

과거 김 교수팀은 반도체 소자 공정의 최대 분석 난제 중 하나였던 산화막 두께의 나노미터급 정밀 측정기술과 박막 두께 측정용 인증표준물질(CRM) 개발에도 성공한 바 있다. 이중 삼성전자의 의뢰로 개발한 CRM은 새로운 반도체 개발과 생산라인 적용을 위한 필수 교정물질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한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CRM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춰 국익에도 기여했다. 때문에 양자점 태양전지에서도 세계적 성과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김 교수팀의 백현정 학생(석사과정)은 “그동안은 소자 개발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적어 고생도 많이 했다”며 “이미 보유 중인 나노소자제작공정에 나노측정기술이 더해지면 상당한 시너지가 예견된다”고 말했다.



김경중 교수는 이어 “현재 개발된 양자점 태양전지는 효율이 약 13%로 양자점 제어가 다소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효율인 25%대를 목표로 기술고도화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은 것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

그런데 학생들은 어쩌다가 나노라는 작디작은 물질에 빠져든 것일까. 백현정 학생은 자신과 나노의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를 졸업했어요. 학부시절 기존 태양전지의 아킬레스건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죠. 그러던 중 김경중 교수님이 차세대 태양전지 분석기술계의 권위자라는 사실을 알고 UST 입학을 결심했습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양자점의 오묘한 매력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드네요.”

홍성웅 학생(박사과정)은 양자역학과 고체물리에 대한 관심이 단초가 됐다고 한다. “양자역학, 고체물리 등 실험을 통해 미시 세계를 이해하고, 그 현상을 이용한 기기의 개발에 큰 흥미가 있었어요. 어떤 대학원보다 나노기술을 심도 깊게 연구할 수 있는 UST 표준연 캠퍼스의 나노계측과학 전공은 제게 있어 이 갈증을 해소할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

또한 베트남에서 온 뉴엔타치 학생(석사과정)은 “표준연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측정표준 전문기관”이라며 “반도체 관련 측정 표준을 연구하고자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혹여 나노계측과학을 공부하면서 힘든 점은 없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백현정 학생은 “물리, 화학 같은 기초과목 공부가 개인적으로 힘든 편”이라며 “하지만 30여개 정부출연연구원을 캠퍼스로 활용하는 UST의 특성상 다른 출연연의 동기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어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과학계와 기업이 요구하는 실무형 인재

나노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졸업 후 학생들의 진로는 상당히 넓다는 것이 교수진의 설명이다. 출연연을 포함한 과학기술계는 물론 반도체, 조선, IT 등 많은 산업분야에서 나노계측과학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덕분이다.

김진희 책임교수는 “전공이 생긴 지 약 5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박사학위 졸업생이 없다는 부분이 조금 아쉽지만 대기업이나 출연연에 취업하는 학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앞으로 나노계측과학 전문가들의 국가적·사회적 가치는 더욱 증대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졸업을 앞둔 백현정 학생은 이미 삼성전자 입사가 확정됐다. 홍성웅 학생의 경우 학위 취득 후 그동안 습득한 지식과 실무 노하우를 살려 출연연에서 국가와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공익적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며, 뉴엔타치 학생은 고국으로 돌아가 나노측정 관련 연구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김진희 책임교수는 “나노계측과학은 융합학문이므로 이공계가 아닌 학생들도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분야”라며 “체계적 연구와 혁신적 성과 도출을 위해 연구인력의 확충이 필요한 만큼 상대적으로 적은 학생 정원수를 늘릴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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