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형 소매업체 JC페니 JC Penny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는 원대한 꿈, 거만함, 내분, 망상 등이 모두 얽혀 있다. 이 실패한 혁명의 뒷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자.
by Jennifer Reingold
구세주를 찾을 때는 아주 세세한 사항으로 옥신각신 하지 않는다.
JC페니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부진의 늪에 있던 중저가 백화점 JC페니는 2011년 6월 론 존슨 Ron Johnson의 영입을 발표했다. 그는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 애플 스토어 Apple Store의 책임자이자 스티브 잡스 Steve Jobs의 오른팔이었다. 또한 타깃 Target의 CEO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의 영입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뻐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가 어떻게 휘청대던 JC페니를 회생시킬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존슨에게는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그가 내렸던 지시는 ‘변화’라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었는지 잠시 후 살펴보겠다.
12월 7일 존슨은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구상한 전략을 페니의 이사회에 공개했다. CEO 부임 후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존슨은 지겹게 실시했던 가격할인 행사에서 탈피해 JC페니를 한층 더 고급스럽고, 젊은 층을 겨냥한 백화점으로 만들기 위한 비전을 발표했다.
존슨은 이제 전설이 된 스티브 잡스에게 배운 무대연출 기법을 뽐냈다. 미리 텍사스 주 플래이노 Plano에 위치한 본사 지하실을 빌려 두 개의 룸을 설치했다(존슨이 그 이상을 원했었다. 구내식당에 떠다니는 무대를 설치하려 했으나 담당 소방국장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화려한 시청각 효과로 방점을 찍기 위해 이사진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첫 번째 방은 고함소리와 (각종 신호, 쿠폰, 할인제안, 잡동사니 등으로 뒤섞인) 피로한 시각효과로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당시 JC페니의 불협화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반면 뒤이어 들어간 두 번째 방은 하얗고, 소박하며 마치 천상의 평화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JC페니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존슨은 이사들을 데리고 구내식당으로 갔다. 몇 시간 동안이나 서서 기다리고 있던 5,000명의 직원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그리고 파티가 시작됐다. 공식적으로는 존슨의 전임자 마이런 마이크 울먼 3세 Myron Mike Ullman III를 위한 작별행사였지만, 실제로는 JC페니의 재탄생을 축하하는 환영행사 같았다. 일말의 반대 없이 109년 역사의 JC페니는 수십 년간 지속해온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근본적인 사업방식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존슨은 1년 4개월 만에 CEO직에서 물러났고, JC페니는 막대한 금액의 손실을 입었다. 존슨이 CEO로 있던 1년여 간 기록한 손실액만 약 10억 달러에 달한다. 주가는 끝없이 추락했고, 언론마저 그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존슨을 추천했던 두 명의 주주 중 한 명도 JC페니를 떠났다. JC페니의 이사진은 존슨을 구세주로 찬양할 때만큼이나 성급히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존슨의 퇴임 후 JC페니의 이사진은 존슨의 임기가 마치 그들이 모두 찬성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일시적인 쿠데타였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존슨의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 전임자 울먼을 CEO로 복직시켜 옛 방식으로 회귀했다. 어차피 잊혀질 기업이라면 최소한 그 속도라도 늦추자는 의도로 보인다. 일부 업계관계자들은 (이전의 막대한 손실과 비교했을 때) 최근 개선된 실적에도 여전히 JC페니의 부도 가능성을 제기한다.
현 시대는 거대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얼룩져 있다. 월가의 탐욕과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의 파산, 수십 년간 하향세를 겪다 마침내 부도를 선언한 미국 제조업의 상징 제너럴 모터스 General Motors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야심과 오만, 희망, 망상 그리고 어처구니 없지만 치명적이었던 실수가 어지럽게 혼재된 JC페니의 케이스는 어떤 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페니의 CEO 시절 존슨은 “이사진은 내가 JC페니를 탈바꿈 시키길 원했고 그것이 내가 온 이유다. 단순한 경쟁이나 개선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었다(존슨은 이번 기사를 위한 인터뷰에 응했지만 “성공을 위한 페니의 노력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며 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거절했다). 존슨은 실제로 JC페니를 탈바꿈 시켰다. 중산층을 주요고객으로 삼는 활기 잃은 대형 소매업체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급진적인 가격 및 판매전략을 바탕으로) 자기애에 심취한 야심 찬 신생기업으로 탈바꿈 시켰다. 그에 대한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새로운 고객은 한 명도 유치하지 못한 채 기존 고객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이다.
모두 존슨의 시도가 완전한 실패로 끝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의 전모는 아직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다. 현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나빴고, 또 어떤 면에서는 많이 달랐다. 지금부터 JC페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살펴보자. 이는 몇 달에 걸쳐 32명의 전·현직 이사 및 판매직원, 20명 이상의 투자자, 애널리스트, 경쟁사 관계자를 인터뷰해서 알아낸 ‘실화’다.
이 서사시에는 중복된 세력이 뒤엉켜 있다. 급진적 변화에 몰두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주인공이며 실패로 돌아간 ‘애플 흉내내기’-희한한 이름만큼이나 희한하게 끝이 났다-가 주요 내용이다. 어쩌면 회사의 운명보다 식후에 무슨 디저트를 먹을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이사회도 등장한다. 그리고 5억 달러의 손실을 일으킨 치명적인 판단 착오도 있었다(사실 JC페니는 논란의 중심이 된 존슨의 가격정책을 그의 퇴진 전부터 철회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존슨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는지도 의문이다). 거기다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대형 헤지펀드도 개입했다. 그 결과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2만 명 이상의 직원들-대부분 페니의 재탄생을 환영했었다-이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미국 오프라인 소매업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 됐다. 이 서사시에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큐브 속으로
소위 말하는 ‘정화’작업이 시작되었다. 2012년 2월 6일 투명한 아크릴로 만든 가로·세로 10피트 크기의 큐브가 JC페니 본사의 두 구내식당 사이에 설치되었다. 이 모형은 JC페니의 새로운 사각형 로고의 3D버전이었다. 존슨은 직원들에게 건물 내에서 옛 로고가 보이지 않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는 따분한 옛 로고를 폐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라 생각했다. 이론상 이 큐브는 과거의 페니를 담아 묻히게 될 (정확히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대한 타임캡슐이었다. 하지만 사실 굉장히 세련된 투명 쓰레기통일 뿐이었다.
바로 다음 주 직원들은 페니의 100년 전통의 흔적을 버리기 위해 줄을 섰다. 큐브 안으로 T셔츠, 머그컵, 문구류, 팬, 손가방 등을 던져 넣었다. 심지어 가장 명예로운 상인 ‘회장 상’-전직 회장 겸 CEO 울먼이 가장 훌륭한 직원들에게 수여한 유리 상패다-도 던져 넣었다. 이전 로고가 박힌 물품을 버리고 나면 새로운 로고가 박힌 대체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화작업이 끝날 때쯤 투명 큐브는 9,000파운드의 쓰레기로 가득 찼다.
이러한 대변신은 1년여 전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2010년 10월 7일 새벽 4시 당시 CEO 울먼의 집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명에 스티븐 로스 Steven Roth가 이끄는 매출 28억 달러의 부동산투자업체 보르나도 Vornado가 떴다. 메이시스 Macy’s에서 수 차례 기업인수를 경험한 울먼은 전화를 받기 10분 전 페니의 주가가 32달러로 10% 오른 것을 알아챘다. 그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고, (전화를 건) 로스에게 “적대적 인수인가?”라고 물었다. 사실 울먼은 과거 로스와 함께 기업인수거래를 한 적이 있었다. 로스는 “이제 나는 당신의 최고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그런데 또 다른 파트너가 있었다. 로스는 헤지펀드 퍼싱 스퀘어 캐피털 Pershing Square Capital을 이끄는 빌 애크먼 Bill Ackman과 손을 잡고 JC페니의 지분 26%를 매입했다. 페니의 주식이 (어느 정도 변화가 수반된다면) 쉽게 60달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울먼은 2004년부터 페니를 운영해 왔다. 시작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2007년 주가는 86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화장품 브랜드 세포라 Sephora를 입점시킨 ‘매장 안의 매장 store-within-store’ *역주: 커피숍의 내 서점같이 매장 내에 다른 매장이 영업할 수 있는 공간을 임대해 주는 방식 전략을 포함해 전통을 지녔으나 쇠퇴하는 쇼핑몰 밖에 아웃렛을 여는 등 혁신을 추구한 결과였다. 하지만 대침체가 닥쳤고, 페니의 핵심 소비자 층인 중산층 기혼 여성고객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경쟁업체들이 활기를 찾기 시작할 때도 페니는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허덕였다.
첫 번째 원인은 울먼이 랄프 로렌 Ralph Lauren과 체결한 대형 계약에 있다. 이를 통해 2008년 (폴로 Polo의 중·저가 브랜드) 아메리칸 리빙 American Living의 독점판매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명과 폴로의 로고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 실패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분명 페니는 반전의 요소가 필요했다. 매출은 2006년 199억 달러에서 2011년 172억 달러로 떨어졌고,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JC페니는 애크먼과 대립하는 그와 로스를 이사회로 초빙했다(거만하지만 매력이 넘치는 억만장자 애크먼은 대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과는 위임장 전쟁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울먼은 “이 둘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이사회에 필요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2011년 2월 애크먼과 로스는 첫 이사회에 참석했다. 회의 후 만찬 자리에서 애크먼은 JC페니의 잠재력을 찬양하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발생했다. 만찬을 끝내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던 울먼의 차량을 다른 차량이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해 당시 64세였던 울먼은 의식을 잃었다. 두개골과 척추의 연결 부위에 여러 골절상을 입은 울먼은 12주 동안이나 목에 깁스를 해야 했다. 사실 그의 건강상태는 사고 전에도 그리 좋지 못했다. 신경 손상으로 몇 년간이나 제대로 걷지 못했고(세그웨이 Segway라는 2륜 스쿠터를 타고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JC페니 CEO 임기 동안 두 차례 큰 수술을 받기도 했다.
교통사고는 울먼의 건강에 대한 이사진의 염려를 (그리고 울먼의 리더십에 대한 신규 이사진의 은근한 불만을) 심화시켰다. 페니의 이사 제럴딘 레이본느 Geraldine Laybourne는 2012년 필자에게 “깨어나 보니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저질렀고, 누군가 회사 지분의 26.8%를 매입한 것을 알게 된 격이었다”고 말했다.
JC페니에는 울먼의 후계자감이 없었다. 울먼은 바로 미니애폴리스 Minneapolis 출신의 론 존슨을 떠올렸다고 한다. 존슨은 애플스토어를 기획하기 전 타깃에서 디자인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존슨이 있던 시절 애플스토어는 미국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매장으로 등극했고, 존슨은 애플의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미 몇 년 전 울먼은 존슨에게 전화를 걸어 이사직을 제안했었지만 존슨은 이를 거절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 악화되던 시점 울먼은 한 리쿠르터로부터 존슨을 설득하기가 수월해졌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2011년 3월 존슨은 애크먼과 로스를 만났다. 그리고 울먼과도 따로 자리를 가졌다. 대화를 거듭하면서 존슨은 이사가 아니라 차기 CEO 후보로 거듭났다. 중형 백화점 머빈스 Mervyn’s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존슨은 줄곧 소매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혁신이 결여된 백화점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는 단순히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을 넘어 사람을 끄는 새로운 종류의 백화점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인간미가 넘치는 긍정주의자 존슨(53)은 JC페니에 실리콘 밸리 Silicon Valley의 ‘할 수 있다는 정신’-소매업분야에서는 애플을 제외하고는 이런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었다-을 불어넣으려 하는 것 같았다. 당시 애크먼은 필자에게 “론슨을 믿는다. 이미 그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었다.
든든한 지원군 애크먼을 등에 업고, JC페니의 이사회는 존슨에게 CEO직을 제안했다. 2011년 6월 14일 이 소식이 발표되자 소매업계는 크게 놀랐다(그리고 동시에 감격했다). 11월 1일에야 존슨의 CEO 임기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존슨에 말에 따르면 당시 암투병 중이던 스티브 잡스의 부탁으로 애플을 빨리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소식만으로 JC페니의 주가가 17%나 올랐다. 마치 마이너리그 팀이 베이브 루스 Babe Ruth *역주: 전설적인 메이저리그의 홈런타자와 계약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침내 존슨이 자신의 전략을 공개했고, 이는 다음의 몇 가지 사안이 중점이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끊임없이 시행했던 가격할인 행사와 관련된 것이었다(JC페니는 2011년에만 590회 가격할인 행사를 시행했다). 새롭게 태어날 JC페니는 절대 가격할인 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제품에는 세 가지 가격이 존재했다. ‘거품 없는 정가’, 특정 상품에 대한 ‘한 달 단위 정찰가’, 두 달에 한 번씩 실시되는 재고정리 ‘최저가’ 등이다. 이제 재고정리용 가판 판매와 그로 인한 혼잡함이 사라지고, 훗날 만들어진 슬로건처럼 소비자와 백화점은 ‘공정하고 진실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소매업계는 누가 더 싸게 재고정리 판매를 하느냐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결정되었다. 때문에 JC페니의 새로운 가격정책은 그런 의미 없는 경쟁을 멈출 수 있는 환영할만한 정책이었다.
전략의 두 번째 요소도 만만치 않게 급진적이었다. 존슨은 백화점에서 ‘구획(department)’개념을 없애 100개의 각기 다른 매장을 입점시키고, 그 가운데에 일종의 ‘광장(town square)’을 설치하려 했다. 제품구성도 물론 달라졌다. 새로운 JC페니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더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유명브랜드 제품을 늘리고, 자사 브랜드 제품은 줄일 계획이었다. 자사 브랜드가 매출의 50%를 차지하고, 제품들을 ‘마사 스튜어트 Martha Stewart 콜렉션’ 같이 브랜드별로 전시하지 않고 ‘욕실용품’ 같이 종류별로 진열하던 JC페니에게는 실로 파격적인 계획이었다.
페니가 고급 브랜드를 다수 입점시켜 세일 없이도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할 만한 전략이었다. 아이폰 판매에는 분명 효과를 발휘했던 전략이었다. 하지만 매트리스 패드나 팬티스타킹 판매에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을까?
존슨은 이에 대한 답을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 한 이사가 그에게 언제 아이디어를 시험할지 묻자 존슨은 코웃음을 쳤다. 위와 같은 가격정책을 실시했던 다른 소매업체들은 오히려 고객이 줄었는데도 말이다. 존슨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의 롤 모델 스티브 잡스는 시험 대신 오롯이 직감에만 의존했었다. 뿐만 아니라 울먼에 따르면 존슨은 페니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울먼은 이사회에 보내는 정기 보고서에서 존슨은 페니의 현 운영방식에 대한 질문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사회의 집중력도 부족했다는 정황들이 포착됐다. 애크먼은 이사회에서 제공되는 초코칩에 대해 계속해서 불평을 했다. 부드럽고, 쫄깃하지 않고 너무 딱딱하다는 것이었다. 애크먼을 비롯한 세 이사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 페니는 티프스 트리츠 Tiff’s Treats라는 제과점에서 신선한 초콜릿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사들도 이사회에서 제공하는 식사의 품질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불평이 너무 심해져 이사 한 명이 식사 전 미리 시식을 해 본 경우도 한 차례 이상 있었다(애크먼은 초코칩에 관한 언급을 거절했고, JC페니 측도 시식과 관련한 일을 부인했다).
혁명의 시작
2011년 11월 1일 존슨은 빛의 속도로 JC페니를 변신시킬 채비를 마치고 본사에 등장했다.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2012년 1월 24일 그는 새로운 JC페니의 비전을 공개한다. 일 주일 후에는 새로운 가격정책마저 공개했다. 2012년 가을까지 수백 개의 매장을 개조하고,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2015년 말까지 이런 변신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지나치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존슨은 오히려 이점이 동기를 부여하고, 결집력을 향상시키리라 믿었다. 존슨 자신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취임 2주 차 때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에서 리바이스의 신임 CEO 칩 버그 Chip Bergh를 만났다. 페니는 이미 리바이스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었지만, 존슨은 아예 JC페니 매장 내에 리바이스의 매장을 입점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버그에게 가장혁신적인 리바이스 매장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물었고, 버그는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Orange County의 투스틴 Tustin이라고 답했다. 존슨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좋은 계획이 있으니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존슨은 청바지가 걸려 있는 데님 바 denim bar, 모바일 계산대, 피트 스페셜리스트 fit specialist *역주: 고객의 몸에 가장 적합한 치수를 찾아주는 전문 직원 등을 특징으로 하는 투스틴 매장의 디자인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존슨과 버그는 (1년도 채 남지 않은) 2012년 개학시즌에 맞춰 전국 페니 백화점 내에 700여 개의 리바이스 매장을 열기로 합의했다. 대부분의 비용은 페니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비용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리바이스 매장을 개설하는 데 1억2,000만 달러가 소요됐다. 존슨은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 Martha Stewart Living Omnimedia *역주: 마사 스튜어트가 설립한 가정생활정보 관련 종합회사에 이 대규모 투자에 대해 자랑했고, 마사 스튜어트도 페니에 입점시키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존슨은 몸값이 비싼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타깃의 마케팅 책임자였던 마이클 프랜시스 Michael Francis를 영입해 저렴한 소매업체 페니에 세련된 이미지를 더하려 했다. 프랜시스는 페니의 사장이자 판매 및 마케팅 부문의 책임자가 되었다. 또한 패션업체 켈리우드 Kellwood에서 자신과 같은 애플 출신 마이크 크레이머 Mike Kramer를 COO로 영입하고, 애플의 베테랑 댄 워커 Dan Walker를 최고인재책임자(Chief Talent Officer, CTO)로 영입했다. 프랜시스, 크레이머, 워커가 받은 특별 보너스와 수백만 주의 스톡옵션을 합하면 2억 4,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제 존슨의 쇼가 시작됐다. 이사회는 ‘대변신’ 계획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존슨의 계획을 늦추려 하거나 고객들은 혼란스러운 가격정책에 진절머리가 났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존슨에게는 새로운 팀, 그를 지지하는 이사회, 그리고 JC페니를 재창조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이제 2012년 1월 25부터 26일까지 뉴욕 57부두에서 열릴 JC페니 ‘재탄생’ 갈라 행사에서 공식 데뷔할 일만 남았다. 57부두는 흰 색으로 뒤덮히고, 행사장 구석구석 새로운 JC페니의 로고가 없는 곳이 없었다. 완벽한 조명, 잔잔한 음악과 함께 최고의 식사가 제공되었다. 마사 스튜어트를 포함한 수많은 소매업 전문가들이 자리해 행사를 더욱 빛내주었다(페니와 체결한 계약이 자사와의 계약을 위배한다며 메이시스가 마사 스튜어트에 소송을 제기한 직후였지만 마사는 개의치 않고 존슨을 무대 위로 올려 환영했다).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 미키 드렉슬러 Mickey Drexler, 신디 크로포드 Cindy Crawford, 메리 메이트 Mary-Kate, 애슐리 울슨 Ashley Olsen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자리했다.
존슨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행사를 진행했다. 버튼다운 셔츠 위로 브이넥 스웨터를 입고 스티브 잡스에게 배운 교훈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마치 형제 같아 보이는- 존슨과 프랜시스는 세련되고, 재미있는 영상을 틀었다. 페니의 새로운 대변인 엘런 드제너러스 Ellen DeGeneres가 등장한 영상은 새롭고, 강렬한 미국 백화점을 약속했다. 낡아빠진 JC페니는 더 이상 없었다. 새롭게 추구하는 모던하고, 맵시있는 이미지에 어울리도록 브랜드명도 JCP로 교체했다. 애크먼을 비롯한 이사진은 미소를 지으며 앞 좌석에 앉아 있었다.
청중 중 다수는 존슨의 계획이 성공할지 의심하면서도 그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했다. 그날 존슨은 필자에게 제이 크루 J. Crew의 CEO 미키 드렉슬러가 “신중하라.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다. 스티브 잡스는 한 명 뿐이다”라며 경고했다고 말했었다(드렉슬러는 당시 “존슨이 내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중 중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존슨이 ‘6개의 P(Product. Place. Presentation. Price. Promotion. Personality)’로 계획의 핵심을 설명할 때 골드만 삭스 Goldman Sachs의 애널리스트 애드리언 샤피라 Adrianne Shapira는 “피플 People 이라는 P가 하나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COO 크레이머는 한술 더 떠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싶지 않다”라는 이유를 대며 매출 예상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음 날 페니의 주가는 34달러에서 41달러로 크게 올랐다.
본사 직원들도 모두 큰 기대에 부풀었다. 다수는 JC페니에게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2월 1일 사기충천한 존슨은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300만 달러를 들여 화려한 쇼를 개최했다. 각 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섹션을 특징으로 하는 무대가 설치되었다. 구내식당에 설치된 겨울 섹션에는 인공제설기가 비치되었다. 여름 섹션은 소풍에 어울리는 잔디를 뽐냈으며, 봄 섹션에는 물이 흐르는 벽이 설치됐다. 칵테일 바, 라이브 밴드는 물론 긴 막대에 꽂힌 카라멜 애플까지 제공됐다. 벽에는 존슨의 취임 첫날 환영 야유회에서 찍은 직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걱정거리가 산적해 있었다. 이미 페니는 9억 달러 규모 경비절감 계획을 발표했었다. 모두 정리해고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 속 축하하는 직원들 중 다수는 곧 직장을 잃게 될 것이었다. 몇몇 사진은 몇 달간 벽에 걸린 채 급격한 변화가 가져온 인적 비용을 상기시켜 줬다.
잘나가는 친구들의 등장
기대에 부풀었던 시기는 금방 끝이 났다. 존슨의 계획은 신속히 진행되기는커녕 곧바로 실패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JC페니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크래머는 “존슨은 (변신작업을) 이종교간 결혼처럼 진행하려 했다. 기존 경영진과 새로운 인물들이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둘의 관계는 물과 기름 같았다”고 말한다.
존슨이 자주 주장했던 것처럼 페니를 신생기업처럼 운영하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페니는 15만 9,000명의 직원과 1,100개의 지점을 거느린 역사 깊은 기업이다. 좋든 나쁘든 이미 페니만의 문화가 뿌리박혀 있었다. 새로운 인물들은 기존 직원들과 거리를 두었다. 우선, 신규 임원진은 댈러스 Dallas *역주: 본사가 있는 플래이노는 댈러스 북쪽 교외에 위치해 있다로 근무지를 옮기는 대신 매주 제트기를 타고 방문하는 것을 택했다. 존슨과 대다수의 고위 임원들이 머무는 리츠칼튼 Ritz-Carlton 호텔은 고위인사들의 비공식 회담장소가 되었다. 존슨, 프랜시스, 워커는 각자 다른 도시에 머물렀고, 다른 임원들도 원거리 출퇴근을 택했다. 댈러스로 사무실을 옮긴 유일한 인물은 크레이머였다.
새로운 팀에 끼지 못한 일부 임원들은 소외감을 느꼈고, 동시에 퇴직 날이 점점 더 가까워 오는 것을 알았다. 기존 임원 중 한 명은 “고등학교 시절처럼 잘나가는 친구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로 나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스스로가 둔하고, 멍청하고, 나약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애플출신 임원들은 실리콘 밸리식 절차 간소화 작업을 시행하려 했다. 인사 책임자 워커는 업무평가서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없앴다. 결과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기가 훨씬 더 쉬워졌다. 모든 의사결정은 상사에게 달려 있고, 업무평가 자료를 참고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워커는 “나는 불필요한 인사 요식체계를 혐오한다. 이는 회사와 직원들의 역량강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존슨의 성격은 페니의 변신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는 상냥한 -존슨은 주일학교 선생님, 어린이 야구단 코치처럼 태생적으로 활기찬 인물이다- 만큼 열의가 넘쳤다. 그를 따르는 이들을 감동시킬 만큼 흔들림 없는 노력과 열정을 보여준다(그리고 페니의 주가가 올랐을 때만 수익을 내는 스톡옵션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자신의 계획에 대한 확신을 보여 주었다). 존슨의 사전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이 있다.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다. 그는 당시 필자에게 “나는 더 많은 이들이 믿음을 갖게 만들고, 또 그들을 고무시킬 것이다. 혁신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회의주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효성 여부와 상관없이 비판적 의견을 낸 사람들은 모두 회의론자로 낙인 찍혔다. 부사장 스티브 로렌스 Steve Lawrence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가격할인 행사를 없애기 전에 적합성 테스트를 실시해 보아야 한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2월 말 최고 판매담당자를 2명에서 1명으로 줄인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좌천한 인물은 존슨의 새 계획을 지지했던 리즈 스웨니 Liz Sweney가 아닌 로렌스였다.
기존 직원들 중 최고의 성과를 보인 60명은 i팀 iTeam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대변신 과정에 동참할 기회를 얻었다. i팀은 JC페니를 발전시킬 방안을 논의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영국의 셀프리지스 Selfridges나 프랑스 쁘렝땅 Printemps 백화점 같은 소매업체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4월 정리해고가 시작되었을 때 i팀 멤버 중 상당수가 해고됐다. 그 결과 JC페니의 사업을 잘 이해하고 있던 인재들이 부족하게 되었다.
남은 직원들에게 새로운 경영진은 기존 직원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때에 따라 노골적인 경멸을 표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두 직원의 말에 따르면 최고 창의성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 마이클 피셔 Michael Fisher와 다른 애플 출신 간부는 직원들에게 패션에 대해 더 공부하라고 설교를 해댔다. 피셔는 전 직원들이 자신처럼 위장무늬가 들어간 패션 아이템을 매일 하나씩은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직원 6명의 제보에 따르면, 피셔는 심지어 기존 직원들을 ‘DOPES’라 부르며 조롱했다. ‘멍청하고(dumb), 오래된(old) 페니의 직원들(Penny’s employees)’이라는 의미다(피셔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일부 베테랑 직원들은 신규 팀을 ‘썩은 애플(Bad Apples)’이라고 부르며 복수했다.
이러한 경멸은 고객에게도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새롭게 탄생한 JCP는 비비안 탐 Vivienne Tam, 나네트 레포르 Nanette Lepore 같은 고급 브랜드와 협력투자를 늘리면서 기존 주요 브랜드들을 저버렸다. 흑인과 라틴계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의류브랜드 사우스폴 Southpole을 없앴고, 다소 칙칙하지만 연 매출 10억 달러를 올려주던 여성복 자가 브랜드 세인트 존스 베이 St. John’s Bay 또한 폐점시켰다.
수많은 내부 관계자들은 존슨이 자신의 계획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팀원들의 업무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상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부하 직원은 없기 때문에 CEO가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획득하기란 힘들다. 그런데 회의적인 의견은 듣기 싫다고까지 공포했다면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과 마찬가지였다. 존슨은 모두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엘런과 흰 담장
존슨과 경영진은 단기적으로 매출이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부적으로는 ‘대변신’ 이후 1분기 동안 10~15%의 동일 매장 매출감소를 예상했었다. 때문에 2012년 5월 실적이 발표되었을 때 JC페니는 큰 충격에 빠졌다. 1년 이상 영업한 매장들의 전년 1분기 매출이 19%나 하락한 것이다. 흰 담장이 쳐진 이상적인 미국 가정집의 모습과 좋은 가격, 훌륭한 제품을 강조한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고객들은 등을 돌렸고, 이를 대체할 신규고객도 보이지 않았다.
페니의 광고는 공감을 얻기는커녕 엄청난 논란만 일으켰다. 페니는 인기 유명인이자, 공개적인 레즈비언 엘런 드제너러스를 광고모델로 삼았다. 원 밀리언 맘스 One Million Moms 같은 보수 단체는 보이콧을 외치며 반발했다. 이 단체는 “드제너러스는 JC페니에서 쇼핑하는 가족들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JC페니 고객의 대부분은 불쾌감을 느꼈고, 더 이상 JC페니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날 광고 전단지에 레즈비언 부부의 사진을 실은 뒤 엄청난 항의 편지를 받았다. 포용적 마케팅이라며 이를 지지했던 존슨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존슨은 게이 부부의 사진이 담긴 아버지 날 광고 전단이 제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도했던 포용적인 메시지가 정치적으로 변질되었다고 판단했다. 뒤늦게 프랜시스도 존슨에게 이에 대해 말했지만 사진은 이미 인쇄된 상태였다. 존슨이 이사회에 참석했을 때 이사회는 광고를 추진하는 쪽을 지지했다. 존슨은 프랜시스에게 마케팅 부분에서 자신이 더 많은 권한을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마케팅의 결정의 대부분은 프랜시스가 대규모 커뮤니케이션 및 광고 활동을 지휘하던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뤄졌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달라졌다. 프랜시스는 “주방에 주방장이 두 명이나 필요한가?”라고 물었다. 며칠간의 회의 끝에 프랜시스는 페니를 떠났다. 드제너러스도 더 이상 페니의 광고에 등장하지 않게 됐다(측근에 따르면 페니와의 관계는 아름답게 마무리됐다고 한다). 프랜시스는 “(내가 제작한) 광고를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본래 의도한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존슨은 자신이 직접 프랜시스의 역할을 이어 받기로 결정했다. 많은 부분에서 개입을 하지 않던 존슨은 마케팅에 관해서는 직접 관여하게 되었다. 전직 마케팅 부사장 그레그 클라크 Greg Clark는 “존슨은 모든 광고문구를 읽었고, 절반은 직접 작성했다. 모든 페이지와 사진들도 직접 검토했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에 대한 내부적인 타격은 엄청났다. 1차 정리해고가 4월에 시작되었고 몇 달 만에 1만 9,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얼마 후 존슨이 질의응답 세션을 열었는데 분위기가 매우 침울했다. 사람들은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추가적인 정리해고가 단행될 것이라 짐작했다. 추가 정리해고가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존슨은 당황하지 않고 “해고된 사람들이 나를 쫓아 올까봐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며 재치 있게 답했다.
일부 이사들은 JCP의 화려한 시작을 알린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은 5월부터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격정책에 대한 뜨거운 논쟁도 일어났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달 이사회에서 제공된 식사-버번·앤초비 소스를 뿌린 뉴 멕시코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사프란 소스를 뿌린 저린 농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사진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존슨은 변신 과정은 힘들 것이라 이미 경고했었고, 그럼에도 이사회는 그의 계획을 지지했었다. 때문에 그저 모른 척하는 것 외에는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페니의 지출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존슨은 고객들의 더 편리한 결제를 위해 애플스토어처럼 점원들이 아이패드 iPad를 들고 다니며 결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매장마다 무선인터넷을 설치했고, 2013년 초 모든 제품에 RFID 태그 *역주: 극소형 칩에 상품정보를 저장하고 안테나를 달아 무선으로 데이터를 송신하는 장치를 달도록 했다(자금난이 심화됨에 따라 이 계획은 철회됐다). 2012년 7월 포춘의 브레인스톰 기술 회의(Fortune’s Brainstorm Tech Conference)에서 존슨은 점점 더 심화되는 부정적 여론과 갈라 행사 이후 반 토막 난 주가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침착하고 자신감 가득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모두에게 애플 스토어가 성공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기술기업의 간부 출신임에도 존슨은 인터넷과 관련해 큰 실수를 범했다. 온라인용 재고와 매장용 재고의 연계를 중단시키며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웹페이지(JCP.com) 담당 구매팀과 매장 구매팀을 분리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온라인관련 의사결정 팀은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반면, 매장 구매팀은 플래이노에 있었다. 그 결과 더 이상 여성의류 코너에서는 특정 색깔 팬티가 판매되지 않았고, 대신 온라인 매장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과거 울먼은 이 두 팀을 통합했었다). 한순간에 웹사이트는 방향성과 지원이 결여되었다. 존슨은 오프라인 매장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에만 주력했다. 당시 그는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곳은 오프라인 매장”이라고 말했다. 또 “그렇다고 온라인에 그만한 큰 기회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분기가 끝나는 2012년 10월, 온라인 매출은 전기대비 37%나 급감했다. 다른 소매업계가 모두 모바일과 온라인 판매를 촉진하려 고군분투할 때 실리콘 밸리 출신 존슨은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울먼에 따르면 JC페니는 존슨의 잘못된 판단 한 번에 5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계획들도 역풍을 맞았다. 고객신뢰를 쌓겠다는 좋은 취지와 달리 영수증 없이 교환과 환불을 가능하게 한 존슨의 결정은 페니의 교환정책을 느슨하게 만들고 말았다. 선반에서 물건을 집은 뒤 계산대로 들고 가 환불을 받는 식으로 정책을 악용하는 이들이 곧바로 나타났다. 지나치게 잦은 환불요청을 받은 제품이 최소 하나 이상 있었고, 한동안 그 제품의 총매출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존슨 전략의 두 번째 핵심요소-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마사 스튜어트 입점 계획-도 실패로 돌아갔다. 2012년 8월 메이시스는 페니에게 소송을 제기하며 기존의 경고를 행동에 옮겼다. 메이시스는 이미 신규매장 개점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이에 주목한 주식 투기꾼들 덕분에 메이시스의 주식 공매액은 유동주식 시가총액의 40%에 달했다.
존슨의 전략에서 더 근본적인 부분이었던 가격할인 폐지도 조금씩 철회되고 있었다. 존슨은 커져 가는 이사회의 반대와 냉담한 소비자 반응에서 메시지를 얻었다. 그는 한정 판매와 아이들을 위한 무료 이발 같은 행사를 허가했다(물론 존슨은 이런 행사를 가격할인이 아니라 홍보 이벤트라 불렀다). ‘창고정리’ 같은 말도 조금씩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 즈음 줄곧 대변신에는 4년이 걸린다고 말하던 존슨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듯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CBS 디스 모닝 This Morning에 출연해 성공지표는 2013년 2월에 나올 것이라 말했다. 또한 “고객들이 새로운 가격정책에 적응하는 데 1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내년에는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점점 더 부담이 커져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당장 올해가 아니라 JCP의 100년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개의치 않는 듯 답했다.
THE OVERTHROW
존슨의 공개적인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지는 순식간에 위태해졌다. 페니의 이사회는 두 부류로 나뉘기 시작했다. 애크먼을 지지하는 ‘뉴욕’파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exas Instruments CEO 출신 톰 엔지보스 Tom Engibous 회장의 지지파였다. 애크먼은 “존슨은 여전히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에게서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 지지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JC페니의 손실이 커져 가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자신을 재정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해 주지 않으면 보유한 모든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이사회를 협박했다. 결국 애크먼은 재정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됐고, 투자은행 블랙스톤 Blackstone과 구조조정 전문업체 알릭스파트너스 AlixPartners를 고용해 실적을 향상시킬 방안을 모색했다.
2월 나온 2012년 성적표는 끔찍했다. 매출은 43조 달러나 줄었고, 동일매장 매출도 25% 하락했다. 손실은 10억 달러에 달했고, 전반적인 주식시장이 살아나고 있음에도 페니의 주가는 1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달러로 급락했다. 현금자산 보유량도 15억 달러에서 9억3,000만 달러로 크게 줄었다. 게다가 유동성에 대한 우려로 스탠다드 앤 푸어스 Standard & Poor’s 는 페니의 채권등급을 투기등급인 CCC+로 강등했다. 존슨의 CEO직은 위태로워 보였다. 존슨은 사의를 표했지만, 엔지보스는 이사회의 지원을 약속하며 그를 만류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마사 스튜어트 소송 건이 재판에 부쳐졌다. 존슨은 증인석에 섰다. 메이시스 CEO 테리 룬드그렌 Terry Lundgren에게 겁먹게 할 자신이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 공개될 때 그의 모습은 좋게 보면 순진하고, 나쁘게 보면 거만해 보였다. 팀원들에게 쓴 서한에서 존슨은 “메이시스가 마사 스튜워트와의 계약을 갱신하는 것을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공세를 강화해서 그들이 짐을 챙겨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애크먼에게 쓴 이메일에서는 “언론을 이용해 룬드그렌에게 압박을 가할 생각이다. 이 문제가 JCP와 마사에게 유리하게 비칠수록 룬드그렌은 더욱 개입을 꺼려할 것”이라고 흡족한 듯 말했다.
나쁜 소식은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소송사건과 거의 동시에 (존슨의 CEO취임을 지원한 투자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비수가 날아와 존슨의 등에 꽂혔다. 2013년 3월 페니의 이사이자 보나도 Vornado의 CEO 스티브 로스는 최소 1억 달러의 손실을 감수하고 갑작스레 보유한 JC페니 주식의 43%를 매각했다. 2011년 12월 7일 그가 존슨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는 180도 달라진 행동이었다. 편지에서 그는 “수준 높은 성과와 창의적 아이디어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놀라운 일을 이뤄 냈다”고 말했다. 페니의 CFO 켄 한나 Ken Hannah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한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스티브는 최근 이사회에서도 언제나처럼 존슨을 지지하고, 건설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의 태도변화를 짐작하게 하는 어떠한 신호도 없었다”고 말했다.
갑자기 로스가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런데 로스는 스스로 수많은 압박에 시달려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갑작스레 보나도의 CEO직을 사퇴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보나도의 회장이었다- 복귀한 적이 있었다. 보나도의 주주들은 주식 실적에 불만을 표했고, 부동산 투자회사가 왜 소매업체에 투자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어찌됐든 분명한 사실은 로스가 주주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존슨의 목으로 올가미가 점점 더 죄어왔다. 한 차례 더 사의를 표했지만 이사회는 다시 한번 거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이사회는 오래 된 핵 폭격기 사출의자(nuclear bomber’s ejector seat)로 장식된 애크먼의 회의실에서 열렸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존슨은 프랑스 남부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두 이사의 말에 따르면 휴가에서 돌아온 존슨은 엔지보스의 전화를 받아 이사회가 4월 8일 월요일 그의 사표를 수리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사회는 존슨의 비전을 환영한 지 1년 반도 되기 전에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페니는 곧바로 존슨의 사퇴에 대해 발표했다.
가장 놀라운 소식은 존슨의 후임자가 이미 잊혀진 줄 알았던 CEO 마이크 울먼이라는 것이었다. 은퇴 당시 노쇠한 것처럼 보이던 울먼은 마치 복수를 위해 세그웨이를 타고 돌아온 슈워제네거 Schwarzenegger 같았다. 존슨은 끝내 플래이노 집무실로 돌아오지 않았고 단 몇 주 만에 그의 모든 계획들이 철회되었다.
(존슨이 기획한 제품들이 판매되기 바로 직전에) 존슨의 거대한 실험은 막을 내렸다. 5월 1일 JC페니는 고객들에게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사과광고를 냈다. 진심 어린 여성의 목소리로 “우리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존슨이 심혈을 기울였던 가정용품 코너가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독특한 조나단 에들러 Jonathan Adler 램프, 모던한 콘란 Conran 테이블과 팬톤 Pantone 시트로 꾸며진 인테리어는 무척 근사했지만 판매상품들의 가격은 전통적인 JC페니 고객의 지출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이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법정 공방으로 난처한 상황에 처한 페니의 마사 스튜어트 매장은 진열상품을 일부 파티용품이나 창문 커튼 같이 메이시스와 경쟁하지 않는 제품들로 축소했다. 마이클 그레이브스 Michael Graves가 디자인한 찻주전자를 광고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컬버시티 Culver City에 설치한 빌보드는 의도치 않은 이유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찻주전자의 옆면은 왠지 모르게 콧수염을 기르고 나치식 거수경례를 하는 히틀러와 꼭 닮았다. ‘히틀러를 닮은 찻 주전자’라는 주제는 레딧 Reddit이라는 소셜 미디에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덕분에 다른 그레이브스의 제품과 달리 히틀러 찻주전자는 완판됐다.
THE UNWINDING
울먼이 돌아오면서 애크먼의 날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 처음 애크먼은 이사회가 시급히 울먼의 대체인물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울먼의 복귀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이 묵살 당하자 이사회에 신랄한 비판을 담은 두 통의 편지를 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 Wall Street Journal은 이 편지를 입수했다. 편지에서 애크먼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업과 이사회는 분열하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이사진들은 모두 뜻을 모은 상태였다. 2013년 10월 12일 애크먼은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4억 7만 달러의 손실을 감수하고 페니의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울먼은 존슨의 모든 계획을 지워버렸다. 새 단장한 가정용품 매장도 폐장했다. 여름이 될 때쯤 신제품들의 가격은 50-70% 인하되었고, 대부분 매장 뒤편에 쌓여 있는 신세가 되었다. 좋은 위치를 약속받았던 브랜드들의 제품 대부분은 토막 난 가격에 재고정리 판매대로 올라갔다. 바로 이 때문에 페니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보덤 Bodum은 12월 계약위반으로 JC페니를 고소했다(JC페니 측은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다시 고객들의 편지함은 ‘소란스러운’ 할인 행사 소식으로 가득 차게 됐다.
울먼은 JC페니의 재정상태를 개선 시키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다. JC페니는 유동자산이 충분하다고 말한 지 몇 주 만에 8,400만주를 신규 발행했다. 막대한 희석효과를 불러 일으킬 이 소식에 페니의 주가는 다시 한번 급락했다. 증권거래위원회(the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울먼의 복귀와 관련해 간략한 조사를 실시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매장과 연계된 JC페니 웹사이트는 주요 수입원이 돼 여전히 미약한 오프라인 판매실적을 상쇄해주었다. 2014년 2월 26일 드디어 페니에게도 좋은 소식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2년 만에 처음으로 동일매장 매출이 증가한 것이다. 작년 4분기 대비 2% 증가였다(당시 매출이 32%나 하락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수익은 전년보다 더 떨어져 14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울먼은 사업을 안정화 시켰고, 매출 감소세를 낮췄고, 최소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마케팅 이사를 채용했다. JC페니가 존폐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해도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존슨 이전의 구태로 돌아가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프라인 매장은 여전히 깊은 어려움에 빠져 있다. 리테일넥스트 RetailNext에 따르면 최근 소매업계 전반의 온라인 매출은 급증한 반면 동일매장 고객 수는 6.5% 감소했다.
존슨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실 어떤 전략도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미국에는 너무 많은 상점들이 있다. 3월에만 보더라도 라디오 섀크 Radio Shack는 무려 1,100개 매장을 폐점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스테이플스 Staples도 전체의 12%에 달하는 225개 매장의 폐점계획을 전했다. 그리고 JC페니 같은 기업 때문에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리면서까지 넓은 매장 공간을 넘겨받을 거물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물론 JC페니의 실패는 대부분 자초한 것이다. 이사회의 성급한 지지에 힘입어 단기간에 기적적 성과를 만들려 했고, 뿌리 깊은 문화를 없애려 했으며, 고객들마저 저버리려 했다. 존슨이 영입한 한 이사는 “마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 하려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와 결혼식은 뒷마당에서 치르면서 집의 80%를 뜯어 고치려 한 것이다”라고 비유했다.
존슨을 지지하는 일부 직원은 그를 강렬히 옹호한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의 계획이 성공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전직 인사책임자 워커는 “전략 자체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매장이 완전히 변신할 때까지 기다렸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아무도 모른다. JC페니는 완전히 다른 백화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기회는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존슨의 전략 중 일부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리바이스 매장은 (유사한 디즈니 Disney 매장처럼) 건실한 매출세를 보이고 있다. 존슨의 또 다른 야심작 조 프레시 Joe Fresh *역주: 캐나다 의류브랜드도 선전하고 있다. 또한 넓어진 통로와 광택을 낸 콘크리트 바닥은 JC페니에 현대적인 느낌을 더해 준다.
존슨의 야심 찬 계획은 칭찬할 만하다. 그는 애플 스토어, 버버리 Burberry, H&M, 타깃, 제이크루, 룰루레몬 Lululemon 등 내부공간과 제품 디자인의 예술성을 강조한 일부 매장에서 성공했던 쉽지 않은 전략을 펼치려 했다. 밸러스 캐피털 어드바이저 Belus Capital Advisors의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소지 Brian Sozi는 “존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소매사업의 발전 방향에 맞게 JC페니의 성공기반을 닦으려 했다. 다만 그 방식이 잘못 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존슨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대신 그는 분명한 유산을 남겼다. 당분간 누구도 그와 같은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