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산업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인 제임스 다이슨. 그는 세계 최초로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하고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들었다. 그는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함을 해결하려고 스스로 제품을 만들고 회사를 창업했다. 그가 창업한 다이슨은 발명과 혁신을 통해 성장했다. 신제품을 내놓으며 한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 하려는 제임스 다이슨에게 제품 개발 철학과 회사 성장 스토리를 들었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1979년, 어느날 집에서 청소를 하던 제임스 다이슨은 사용할수록 흡입력을 잃어가는 진공청소기에 불편함을 느꼈다. 몇 번이나 진공청소기를 뜯어본 그는 먼지가 먼지봉투의 미세한 구멍을 막으면서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임스 다이슨은 제대로 작동하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방문한 제재소에서 공기와 톱밥을 분리하는 데 싸이클론(회오리바람) 원리를 이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싸이클론 원리를 진공청소기에 적용하기로 했다.
다이슨이 개발한 진공청소기는 먼지봉투 대신 싸이클론 기술을 이용해 공기에서 먼지를 뽑아낸다. 청소기 안으로 빨려든 공기와 먼지가 깔때기 모양의 실린더로 들어가면, 깔때기 표면에 있는 곡선을 따라 돌면서 점점 가속도가 붙게 된다. 이때 빠른 속도 때문에 먼지 알갱이가 상대적으로 큰 중력을 받게 되고, 실린더 끝에 있는 먼지통 바닥에 모이게 된다. 싸이클론 방식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다이슨이 만든 첫 번째 진공청소기 DC01은 1993년에 출시된 이후 18개월 만에 영국 진공청소기 판매 1위를 차지했다.
2009년 다이슨은 또 다른 혁신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세계 최초의 날개 없는 선풍기(에어 멀티플라이어)다. 4년간의 연구 끝에 탄생한 에어 멀티플라이어는 공기를 본체로 빨아들인 뒤 고리 모양으로 생긴 증폭기의 틈으로 흘려보낸다. 이때 공기는 1.5배 증폭되면서 가속도를 얻어 강력한 제트기류를 형성한다. 일반 선풍기와 달리 부드러운 공기를 초당 405리터씩 내보낸다. 제임스 다이슨은 영국 왕립예술대학 (London’s Royal College of Art)에서 기능적인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졸업 후 영국 기술기업인 로토크 Rotork에 취직한 그는 첫 프로젝트로 무거운 화물을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는 고속 상륙선 씨트럭 Sea Truck을 개발했다.
다이슨에서 디자인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다. 다이슨은 기계·전기·화학·유체·소프트웨어·음향공학은 물론, 미생물학까지 연구하는 RDD(Research Design and Development)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RDD센터는 기술과 전체적인 디자인을 함께 고려하는 ‘디자인 엔지니어’들로 구성돼 있다. 다이슨 제품의 외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부분은 기능에 의해 디자인된 것으로, 디자인 엔지니어들은 기능에 맞춰 제품을 설계한다. 다이슨은 연구개발(R&D)에 디자인을 더한 RDD센터에 매주 200만 파운드(약 35억2,000만 원)를 투자하고 있다.
당신은 디자이너인 동시에 엔지니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두 가지 모두를 잘할 수 있는 배경이나 비결이 궁금하다.
기능에 초점을 두는 것이 비결이다. 우리는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가 가능한 한 모든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일을 시작한다. 이것이 이전에 사용되지 않았던 방법이라 해도 상관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때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이슨의 에어 멀티플라이어를 예로들 수 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사실 터무니없어 보이기까지 했지만, 이 아이디어로 다이슨은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선풍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CEO대신) 최고기술자 직함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이슨은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다이슨의 제품은 회의실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디자인 엔지니어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기고 이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RDD 센터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가?
다이슨의 엔지니어들이 더 크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다이슨 RDD센터 곳곳에서 디자인 아이콘으로 불릴만한 수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센터 주차장에는 수직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 점프 제트기 Harrier jump jet 실물을 전시해놓고 있다. 물론, 로트링 샤프펜슬과 같은 작은 일생생활용품도 있다. 우리가 수집해 전시해놓고 있는 제품들은 차별화된 방식을 통해 재정의된 기술공학의 산물들이다. 다이슨의 엔지니어들은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수많은 시제품을 제작하고 또 제작하며 새로운 발명과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이슨은 소수의 엔지니어들이 모여 만든 회사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발명은 다이슨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이슨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이슨은 전체직원의 3분의 1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로 구성돼 있다. 제임스 다이슨은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한 남다른 생각을 강조한다. ‘다른 생각 (wrong-thinking)’이 바로 그것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어떻게 보이는가를 바꾸는 것은 한시적이다. 그러나 어떻게 작동하는 가를 바꾸는 것은 혁신이 될 수 있다. 디자인 기술공학은 크게 생각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이 라고 말한다.
그는 “발명이 짜릿하다”고 말한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핑계로 사용하지만 사실 실패는 꼭 필요한 요소다. 실패할 때마다 무언가를 배울 것이고, 그것이 성공의 해법을 찾는 방법이다.”
경력 직원보다는 갓 학교를 졸업한 신입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다이슨은 다양한 전공과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엔지니어를 채용한다. 특히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이 다이슨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나는 다이슨 창립 당시 소수의 대학 졸업생들과 함께 DC01을 개발했다. 그중 몇 명은 현재까지도 나와 함께하고 있다. 다이슨이 갓 졸업한 대학생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직 가능성에 대한 한계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롭고 혁신적인 생각을 가로막는 관습이나 방법에 물들지 않았다. 때문에 다이슨은 그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그들이 다이슨과 함께 성장해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디자인 과정에 있어 ‘실패’는 중요하다. 나의 디자인 우상 중 한 명인 토마스 에디슨은 “나는 결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1만 개의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다이슨 RDD센터에서는 이와 같은 에디슨적 디자인 접근법을 통해 제품을 개발한다. 더 나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 과정을 거쳐 실패한 부분을 확인한 후 그것으로부터 학습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제임스 다이슨 재단은 언제, 왜 설립했나?
10년 전 다이슨은 제임스 다이슨 재단(James Dyson Foundation)을 영국에 설립했다. 이 재단의 설립 목표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기술공학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디자인 엔지니어링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다이슨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조금은 껄끄러운 기억을 남겼다. 다이슨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진공청소기의 방향전환과 이동성에 대한 조정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영국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가 자진 중단했다. 이후 다이슨 아시아지역 PR매니저는 “공식적인 성명서를 발표했고 그 외에 추가할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프리미엄 진공청소기 시장이 커지면서 나타난 경쟁의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이슨은 올해 한국 시장에서 60~70% 성장세를 자신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까다롭다. 완벽한 품질은 물론, 세심한 A/S까지 원한다. 쟁쟁한 외국 기업(제품)이 한국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현상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다이슨의 대답은 역시 ‘연구와 발명’이었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영국법원에 진공청소기 기술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가 취하한 배경이 궁금하다.
아이디어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극소수의 엔지니어들이 모여 다이슨을 창립한 이래, 발명은 우리의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특허제도는 충분한 보호장치가 될 수 없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전의 발명품들이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관련 특허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다시 디자인 되기도 한다. 다이슨이 있어야 할 곳은 법원이 아니라 연구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연구와 발명에 매진할 것이다.
다이슨은 올해 한국 시장에서 60~70%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성장을 자신하는 배경이 궁금하다.
소비자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술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해주길 바란다. 더 좋은 성능과 높은 효율성, 콤팩트한 디자인을 기대한다. 엔지니어에겐 흥미롭고 도전적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이슨 제품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것을 제공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새로운 기술을 선보인다. 최근 한국에 출시한 DC62는 유선 진공청소기만큼 강력한 흡입력을 제공하는 무선 진공청소기다. DC62를 비롯한 다이슨의 다양한 제품과 기술들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부 회로가 연소돼 끊어지는 현상이 발생한 다이슨 핫&쿨 팬 히터 AM04, AM05 두 제품을 리콜했다. 혁신적인 제품이 곧 완벽한 제품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다이슨은 완벽한 제품을 내놓는 기업이 아니었나?
현재 AM04, AM05에 영향을 준 생산 관련 문제에 대해 조사 중이다. 우리는 다이슨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 문제의 원인 파악에 힘쓰고 있다.
영국에서는 다이슨이 제품 판매와 애프터서비스를 직접 책임지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는 판매와 애프터서비스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궁금하다.
다이슨은 전 세계 67개국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애프터서비스는 각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이고 우수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유통사(총판)인 코스모글로벌이 다이슨 제품 판매와 애프터서비스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코스모글로벌과 오랫동안 일해왔다. 다이슨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국과 같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다이슨을 설립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이를 극복했던 과정이 궁금하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처음 기술을 개발했을 때에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시제품 5,127개를 만든 끝에 완벽한 싸이클론 기술을 발명했지만, 제품화를 의뢰한 모든 제조사들로부터 거절당했다. 먼지봉투 시장의 수익성이 좋았기 때문에 제조사들이 싸이클론 기술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기술을 라이선스로 판매하거나 다른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대신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최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