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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에서 캐낸 사업 비전 ‘에코’에서 새 희망을 찾다

INTERVIEW/ 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대표

파나소닉은 세계 최대 가전회사 중 하나다. 연매출이 소니나 LG전자보다 앞선다. 하지만 국내에선 존재감이 없다. 삼성전자, LG전자에 치여 설 자리가 없다. 파나소닉코리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빅데이터에 길을 물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 김태환 circus-studio.net


“파나소닉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사람들에게 물으면 흔히 ‘소니’를 말한다. 국내 소비자에게 파나소닉은 소니와 한 묶음으로 생각되는 일본 가전 회사다. 그렇지만 막상 파나소닉이 소니보다 매출 규모가 더 크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파나소닉의 2013년 매출은 86조 원으로 소니(80조 원)에 앞서 있다. 포춘 글로벌 500순위는 83위로, 일본 내 최대 종합 가전브랜드다.

그렇지만 파나소닉은 국내 소비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파나소닉은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소니가 매출 중 80%를 해외 시장에서 거두는 것과는 달리, 파나소닉은 일본 내수 시장에서 절반 가까운 매출을 얻고 있다. 파나소닉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안정된 시장이 아니면 해외로 잘 눈을 돌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파나소닉과 도요타가 진출한 국가는 개방된 국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2000년이 되어서야 법인을 세웠다. 1992년 진출한 소니보다 8년이 늦었다.

국내에 진출했지만 시장에 내놓은 아이템은 많지 않았다. 사실 파나소닉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 라인업은 상당하다.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제품 카탈로그만 봐도 1,000페이지가 넘을 정도다. 일본에선 파나소닉 제품이 없는 가정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국내에선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굴지의 기업이 가전시장을 꽉 잡고 있다. 외국계 가전사가 뚫고 들어올 틈이 거의 없다. 그래서 파나소닉코리아는 경쟁이나 리스크를 피해 니치 마켓을 찾았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파나소닉코리아가 주력하는 상품은 크게 세가지 군으로 나뉜다. 우선 디지털카메라와 AV액세서리를 중심으로 한 ‘컨슈머 상품군’이 있다. 두 번째는 ‘웰니스 상품군’이다. 안마의자와 승마기, 이미용, 오럴케어 제품 등이다. 세 번째는 ‘시스템 솔루션 상품군’으로 프로젝터, CCTV, 방송장비, POS시스템 등이 포함돼 있다. 시스템 솔루션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컨슈머와 웰니스가 25%씩을 점유하고 있다. 모두 합쳐 연 매출 800억 원 가량을 올리고 있다. 파나소닉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중소기업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노운하(54) 파나소닉코리아 대표이사는 말한다. “파나소닉코리아는 대기업을 배경에 두고 있지만, 사업 규모나 접근방식은 중소기업에 가깝습니다. 국내 대기업이 해외 시장에 나갈 때 직면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노 대표는 파나소닉코리아 창립 멤버로 이전에는 아남전자 외자구매팀장과 수입상품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파나소닉코리아에선 영업마케팅 총괄부장을 거쳐 2010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파나소닉코리아는 2008년부터 ‘웰빙 가전의 명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왔다. 국내 대기업이 손 대지 않는 건강 상품과 이미용 상품에서 시장을 개척했다. 승마기와 안마의자, 헤어드라이어, 네일케어, 오랄케어 제품 등이다. 이 밖에도 파나소닉코리아는 디지털카메라 부문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2010년을 전후부터 조금씩 축소되고 있었다. ‘웰빙’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도 퇴색했다. 때문에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했다. 노 대표는 매년 광고대행사와 브랜드 인지도 조사를 벌였지만, 해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때 돌파구로 찾은 것이 ‘빅데이터’다. 노 대표는 과거 한 경영자 포럼에서 빅데이터 성공 사례를 접한 적이 있었다. 노 대표는 그때 받은 깊은 인상을 떠올리며 당시 강연을 맡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에게 빅데이터 분석을 의뢰했다. 올 초의 일이었다. 질문은 단 하나. ‘컨슈머 시장에서 무엇을 메인으로 내세워야 하는가’였다. 다음소프트는 파나소닉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파나소닉을 소니와 밀접하게 연관 짓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 가전회사라는 인식이 가장 강했다. 그 다음으론 카메라, 음향기기 같은 AV상품군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브랜드로 인지하고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굳이 빅데이터가 아니더라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세 번째. 다음소프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보석을 발견했다. ‘에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매년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관심도가 높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수치가 나왔다. “파나소닉이 일본 가전사로서 지닌 이미지나 AV 제품의 특장점 같은 것들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였어요. 그래도 보다 객관적인 근거를 찾았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었죠.” 노 대표는 말한다. “그렇지만 에코에 대한 관심은 의외였어요. 예상보다 크게 발현되고 있었거든요. 일본 본사에선 오래전부터 에코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희로서는 가장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일본에서 파나소닉은 친환경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일본 시장조사기관 MM총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파나소닉은 에코 기업 넘버원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나타냈다.

파나소닉은 수년 전부터 ‘에코 아이디어(Eco Idea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관련 제품을 출시하고 환경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 임직원 모두가 가슴에 달고 있는 ‘파나소닉’, ‘에코 아이디어’라는 두 개의 뱃지만 봐도 파나소닉이 얼마나 환경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파나소닉은 에코 제품군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발군의 기술력도 자랑하고 있다. 태양열 발전, 전기배터리, LED 조명 등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제품에서부터 빌딩 환기시스템, 가정용 공기청정기, 정수기, 연수기, 그리고 필터 같은 소재에 이르기까지 제품 포트폴리오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안에도 파나소닉의 환기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또한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코 관련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선 ‘에코 아이디어’가 ‘파나소닉’만큼이나 낯선 게 사실이다. 파나소닉코리아가 관련 제품을 국내 시장에 다양하게 출시하지 않고, 관련 홍보에도 힘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공기청정기 같은 에코 가전을 렌털 사업으로 해보는 문제를 검토한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프리미엄급으로 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았는데, 시장이 그만큼 성숙되어 있지 않다는 게 파나소닉의 판단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빅데이터 조사에서 ‘에코’가 튀어나온 건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파나소닉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았다. 매년 황사와 미세먼지로 환경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더해가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기청정기와 같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매우 깐깐한 소비자들이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공기청정기를 찾는 사람들은 시판 제품을 일일이 비교 검토하며 더 성능이 나은 제품을 찾고 있다. 공인된 인증서와 테스트 결과 등을 직접 검토한다. 소비자가 직접 우수 제품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파나소닉 제품이 주목을 받았고, 빅데이터가 이런 흐름을 잡아낸 것이었다.

“저희로서는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이 저희제품에 만족을 보이고 있었어요. 파나소닉만의 특화된 기술과 제품으로 소비자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죠. 파나소닉이 나아갈 방향을 소비자들이 제시해준 것으로 보고 있어요.” 노 대표는 말한다. “에코 사업은 파나소닉의 기업 문화와도 부합됩니다. 에코 비즈니스는 ‘인류 공헌’이라는 창업 정신이나 ‘더 나은 삶과 세상(A Better Life, A Better World)을 추구하는 브랜드 지향점과도 일치하기 때문이죠.”

이 밖에도 주목할 만한 것이 또 있다. 친환경·생태·내추럴·녹색·저탄소·청정 같은 환경 관련 용어가 많은데 왜 유독 ‘에코’라는 단어가 선택된 것일까? 이 역시 빅데이터 조사에 근거하고 있다. 각 단어들의 뉘앙스를 구별해 비교한 결과, 사람들은 다른 유사어보다 ‘에코’에서 ‘기술’과 ‘전통’을 연관 짓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친환경’은 주로 가볍다, 대체하다, 비싸다, 인증하다 같은 단어와 함께 사용되지만 에코는 기술, 선진, 고급, 전통 등과 이미지를 같이하고 있었다. 에코야말로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가진 일본 가전기업’이라는 파나소닉 브랜드와 어울리는 단어였다.

이제 파나소닉에겐 방향이 정해졌다. 지금은 구체적 전술을 찾고 있다. 지난 4월 내부직원, 광고대행사, 홍보대행사 등과 머리를 맞댄 워크숍도 열었다. ‘에코 아이디어’를 그대로 쓸 것인지, 국내에 맞게 변형할 것인지도 고민 중이다.

파나소닉코리아는 에코 제품이 당장 회사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현재 에코 상품이 파나소닉코리아 연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자릿수에 머물 정도로 작다. 일단은 일본시장에서 검증된 상품을 위주로 들여올 계획이다. 노 대표는 말한다. “일본에선 스마트 배수나 정수기, 공기청정기, 제습기 등이 젊은 소비자들, 특히 신혼 부부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저희도 이런 제품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어요.”

파나소닉코리아는 토털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사실 에코는 제품 한두 개를 갖추는 것만으론 충분한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기존 소비자도 실망하고 시장에서 멀어지게 되죠. 파나소닉은 폭넓은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 ‘종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태양열 패널을 달고 LED 조명을 쓰고 에너지 등급이 높은 가전 제품을 사용하면 에너지 효율성이 당연히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파나소닉의 기술력이 이 같은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 일본 본사는 주택설비 사업에도 뛰어들었는데 소비자 반응이 뜨겁습니다.”

파나소닉코리아가 종합 솔루션을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덩치가 커지게 된다. 하지만 패스트 팔로어가 많은 한국 시장에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본사가 리스크를 떠안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빅데이터 분석은 그래서 여기까지다. 어차피 미래를 만드는 건 파나소닉코리아의 몫이니까.


파나소닉은 어떤 회사?
파나소닉은 알고 보면 우리에게 꽤 익숙한 회사다. 파나소닉의 전신은 마쓰시타 전기산업이다. 경영의 신으로 유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1918년 설립했다. 마쓰시타 전기산업은 ‘나쇼날’이란 브랜드로 일본과 동남아 시장에서 이름을 날렸다. 국내에서도 아남과 합작해 ‘한국 나쇼날’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컬러TV를 시장에 내놓았다. 마쓰시타 전기산업은 1966년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면서 ‘파나소닉’이란 브랜드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마쓰시타 전기산업은 모든 브랜드를 파나소닉으로 통합했고, 2008년에는 회사 이름까지 파나소닉으로 변경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만화 ‘시마과장’ 시리즈의 배경이 된 ‘하쓰바 전기산업’도 마쓰시타 전기산업을 모델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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