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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연비 과장광고 소송 북미와 국내는 왜 판결이 다를까

김승열의 ‘Law & Business’

1년여 전에 국산 자동차의 북미 판매 일부 차량의 연비가 과장되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미국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연비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집단 소송 (class action)을 제기했다. 비슷한 시기 국내 소비자들도 같은 소송을 국내 법원에 제기했으나 결론은 판이하게 달랐다. 어떤 점이 달랐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카이스트 겸직교수


2012년 11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일부 한국산 차량의 ‘연비 부실 기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이 소송은 집단 소송으로 인정받아 규모가 확대됐다. 캘리포니아 중부지방 연방법원에서 진행된 이 소송에서 해당 회사는 연비 부실 기재를 인정하고 보상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후 회사와 피해 소비자들은 2011·2012년형 모델 구매자에게 일시금을 주거나 계속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화해안에 합의했다. 합의안 금액은 최대 3억 9,5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캐나다에서도 같은 이유로 집단 소송이 제기됐고 최대 7,000만 캐나다 달러에 이르는 화해안 합의가 나왔다.

국내에서도 연비 과장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소송이 있었다. 위 국가들과의 차이점은 국내에서는 집단 소송제가 도입되지 않아 소수가 집단을 대표해 개별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뿐이었다. 이들은 표시된 표준 연비와 실제 연비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이는 표시 광고법 위반 혹은 신의원칙에 따른 고지 의무 위반이므로 자동차 회사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동차 회사들은 연료비 차액만큼의 손해를 소비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법원은 표준연비 표시는 에너지 이용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이루어진 것이어서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또 비록 표준 연비 표시가 실제 주행 연비와 차이가 난다고 해도 표시 광고에 ‘실제 연비와 차이가 있다’는 주의 문구를 기재했으므로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미와 국내 판결의 차이는?

유사한 사안에서 나온 전혀 다른 판결에 대해 국내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법리형식상으로 북미에서는 해당 국가의 관련 법령을 위반했기에 배상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고, 국내에서는 법령 위반이 없으므로 보상 등의 조치가 불필요하다는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북미의 경우, 연비 측정 방법의 엄격함과 해석상의 오류가 결과적으로 연비 부실 기재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즉 미국 도로의 일반적인 형태인 시멘트 도로가 아닌 아스팔트 도로에서 연비 측정을 함으로써 오차범위인 3%를 넘게 된 것은 회사 측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국내 표준 연비 규정은 미국에 비해 좀 더 느슨하고, 허용되는 오차 범위도 5%로 좀 더 넓다. 부실한 규정일지언정 해당 기업은 이를 위반하지는 않았고, 이에 법원은 문제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후 표준 연비 규정은 해외 판례에 자극을 받아 개정되었다. 개정 규정으로 표준 연비를 측정해보니 개정 전과 비교해 20%나 연비 차이가 났다.

개정 이전의 부실한 규정이 적용되는 사안이었더라도 만약 미국이었다면 판단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전 표준 연비가 실제 연비와 현저한 차이가 있고, 이를 알면서도 표준 연비라는 미명 아래 소비자를 오인하게 했다면, 이는 고의적 기망 행위로서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도 청구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는 이가 없었다. 정부는 표준 연비를 설정함에 있어서 가능한 한 실제 연비와 가깝도록 모든 주의의무를 다했어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했고, 업체는 이러한 허술한 법제도의 보호를 받았다.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정부와 업체, 사법부의 태도에 대해 몇 가지 개선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합리적인 정부라면 표준 연비가 가능한 한 실제 연비와 가깝게 만들도록 모든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시 이후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통량 증가 등의 이유로 연비 기준이 변화될 조짐이 보인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재조정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잠정적으로 인위적인 수치 조정을 통해 연비 등급 일정 비율을 줄이는 등 합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 당국도 소비자인 국민으로부터 보수를 받고 공공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리인으로서 합리적인 주의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에 하나 이를 게을리한 경우에는 법적인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표준 연비 규정 고지, 면죄부 안돼

표준 연비가 실제 주행 연비와 너무 큰 차이가 발생한다면, 또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표준 연비만 강조한다면 해당 업체의 광고 행위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표준 연비 규정에 따른 내용을 미리 고지했더라도, 실제 연비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표준 연비만 강조하는 광고 행위는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다르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소비자의 눈높이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북미에서 연비 허위 기재 등으로 문제가 된 상황에서, 여전히 과장된 표준 연비를 강조하는 행위는 법 이전에 일반 상식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물론 곧 법적인 책임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개정 전의 표준 연비가 실제 연비와 상당한 차이가 발생될 수밖에 없다면, 단지 상투적 면책 문구의 표시를 통해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즉, 어떤 주행 조건에서 표준 연비가 책정되었는지 주요 내용을 공지하여야 한다. 단지 면책 문구와 함께 표준 연비를 광고하는 행위는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개정 전 고시의 경우는 관계 당국이 정한 고시 내용과는 상관없이 소비자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표준 연비 사정 조건에 관한 공시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법과 상식에 부합하는 조치일 것이다. 예컨대, 여론조사 공개 시에 일정한 표본 대상 인원, 신뢰도, 오차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여 소비자가 그 공개 내용의 신뢰성을 판단토록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이와 같은 법리에 의해 사안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치 않고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분석으로 판결을 내린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됨은 물론 판결의 신뢰성 역시 크게 훼손될 것이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및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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