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1억 달러 가치로 키울 수 있게 해준 제이콥스 형제의 작은 용기와 커다란 긍정주의의 힘.
Interview by Dinah Eng
여러분이 대학을 갓 졸업했고, 예술에 미쳐 있고, 9시부터 5시까지의 근무를 피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올해 49세의 베르트 제이콥스 Bert Jacobs와 46세의 존 제이콥스 John Jacobs 형제는 이에 대한 답을 밴을 타고 미 동부를 오가며 자신의 작품이 그려진 티셔츠를 파는 데서 찾는다. 그들은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5년간 은행 잔고가 단 78달러에 불과한 상황에서, 티셔츠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기로 했다. 얼핏 별거 아닌듯한 변화를 통해 그들은 1억 달러 가치의 의류 사업을 이끌게 됐다. 오늘날 라이프 이즈 굿 Life Is Good 티셔츠와 모자, 그리고 여타 제품들이 전국 4,500개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엽서 전문업체 홀마크 Hallmark와는 합작으로 연하장 및 문구류를, 식품업체 J.M. 스머커 J.M. Smucker와는 고급 커피 라인을, 플래닛 도그 Planet Dog와는 애완견용 액세서리를 출시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전파하고 있다.
존 제이콥스: 우리는 매사추세츠 주 니덤Needham에서 자랐다. 베르트와 나는 6남매 중 다섯째와 막내다. 아버지는 공구점 점원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베르트 제이콥스: 부모님은 우리가 열린 사고로 다양한 이들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영향을 미쳤다. 나는 여덟 살 때 씨앗을 팔았고, 대학생 때는 포지티브 페인팅 Positive Painting 이라는 도배사업을 했다. 이 사업이 어쩌면 라이프 이즈 굿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1987년 빌라노바 Villanova 대학 정보·통신학과를 졸업했다.
존: 나는 1990년 영어 전공, 예술 부전공으로 애머스트 Amherst에 있는 매사추세츠 대학을 졸업했다.
베르트: 졸업 후 차를 몰고 콜로라도 Colorado로 가서 스키 타운에서 일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밤에는 피자 배달부로, 낮에는 스키 강사로 일했다. 존은 노던 캘리포니아 Northern California에 교환 학생으로 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다시 보스턴 방향으로 미 대륙을 횡단하기로 결심했다. 여행 중에 우리는 함께 사업을 구상했다.
존: 베르트와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일자리 대신 예술과 사업을 접목할 방법을 찾았다. 우리는 티셔츠가 예술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1989년 보스턴 시내와 하버드 광장 (Harvard Square), 그리고 쇼핑센터 파뉴일 홀 Faneuil Hall 같은 곳에서 티셔츠를 팔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한 후 일 년 동안 대체 교사로 일하면서 수입을 보충했다.
베르트: 오후 내내 12~15장의 티셔츠를 팔면 장사가 잘된 날이었고 안 좋은 날에는 한 장도 팔지 못했다.
존: 1~2년 정도가 지난 후 우리는 중고 밴을 사서 거리로 나섰다. 6~7주 동안 여러 대학을 돌며 티셔츠를 팔았다.
베르트: 대학 기숙사에서 티셔츠를 팔았는데, 판매율은 거리에서 팔 때보다 높았다. 그곳에는 분명한 목표 고객들이 있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여학생이 어떤 티셔츠를 좋아하면 그 티셔츠가 자동으로 팔리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이것이 바로 ‘여왕벌 효과 (queen bee factor)’라는 것이다. 우리는 남학생들과 친구가 돼 남자 기숙사에서도 같은 전략을 썼다. 꿈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었기 때문에 일자리는 구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티셔츠를 판 지 5년 반 정도 지났을 때 통장 잔고는 78달러에 불과했다.
존: 1994년 우리는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부정적인 정보에만 초점을 두는 것에 사람들이 얼마나 지쳐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계기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그림을 전시하고, 맥주 파티를 열었다.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여러 파격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러나 작품 옆에 코멘트를 달아 달라고 요청했을 때, 유독 어떤 디자인(선으로 그린 웃고 있는 사람)에 코멘트가 많이 달린 것을 봤다. 우리는 그 그림에 라이프 이즈 굿이라는 문구를 넣기로 결정하고 48장의 티셔츠를 제작했다. 이 티셔츠를 거리 축제에서 팔았는데 한 시간 만에 모두 다 팔려나갔다. 이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보다 좋은 것을 보며 긍정적인 것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우리는 이 티셔츠를 장당 15달러에 팔거나 세 장에 40달러에 팔고 가게에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베르트: 갑자기 소매상에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혹시 아이즈크림을 먹는 그림은 없나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그림은요?” “다른 그림은 뭐가 있죠?”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반응하며 삶을 더 멋지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존: 우리는 캐릭터에 우리 형제의 별명인 제이크 Jake라는 이름을 붙였다. 친구들도 나를 제이크라 부르고, 베르트의 친구들도 그를 제이크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존과 베르트라고 불렀다. 우리가 만든 디자인은 유행에 민감하고, 허세에 찬 노골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당시의 티셔츠와는 분명 달랐다.
베르트: 긍정주의는 강력하다는 것이 우리의 콘셉트였다.
존: 우리는 동부 해안 전역에서 티셔츠를 팔기 위해 영업 담당자를 고용했다. 70일 동안 매일 계좌를 개설할 때도 있었다. 당시 우리는 아파트 밖에서도 일하기 시작했다. 스크린 인쇄소에서 티셔츠를 찍은 후 직접 포장해서 배송했다. 90년대 말 우리는 대형 트럭을 빌렸고, 후에 이를 창고로 썼다. 그리고 이 트럭을 인쇄소 바로 옆에 주차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당시 우리는 시리얼과 땅콩 버터 젤리 샌드위치(peanut butter and jelly, PB&J), 그리고 매일 밤 파스타를 먹으며 지냈다. 우리는 동네 가게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후에는 레저용품 쇼핑몰 레이 REI나 스포츠용품 사이트인 딕스 스포팅 굿즈 Dick’s Sporting Goods 같은 체인점에도 납품했다. 1996년에는 26만 달러의 연매출을 달성했다.
베르트: 윗집에 살던 케리 그로스 Kerrie Gross라는 여성이 주문 처리를 도와줬다. 그래서 1998년 그녀를 사무실 관리와 영업 담당자로 고용했다.
존: 케리는 현재 우리의 사업 파트너다. 90년대 말 우리는 니덤에 처음으로 사무실을 열었다. 진짜 창고를 갖게 된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1998년 매출 100만 달러를 올렸을 때, 투자자들이 찾아와 주식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도권을 유지하고 싶어 벤처기업이 되기보다 은행 대출을 선택했다.
베르트: 우리가 처음으로 사업 계획을 세운 건 바로 그때였다. 먼저 우리 상표를 부착한 티셔츠를 제조하기 위해 대출 50만 달러를 받았다. 지역 스크린 인쇄소에서 티셔츠를 찍었고, 헤인즈 Hanes에서 나온 무지 티에 디자인을 새겨 넣었다. 라이프 이즈 굿 상표권을 위해 옷에 품질표시와 자체 상표를 부착했고, 또 몇 가지 다른 조치를 취했다.
존: 우리에게는 사실상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 사람들이 광고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을 때, 별로 올바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암 치료를 받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등 곤경에 처한 이들이 편지와 이메일을 통해 라이프 이즈 굿 티셔츠가 도움이 됐다고 전해왔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감을 얻어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는 광고 대신 페스티벌을 통해 폭력과 가난, 그리고 질병을 극복한 어린이들을 도와주며 라이프 이즈 굿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베르트: 처음에는 우리 회사를 제이콥스 갤러리 Jacobs Gallery라고 불렀지만 이후 라이프 이즈 굿으로 바꾸기로 했다. 라이프 이즈 굿이 전하는 메시지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존: 지금 우리는 여러 지역에서 우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집단을 팀원으로 두고 있다. 그 덕분에 베르트와 나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2012년 홀마크와 파트너십을 맺고, 우리 디자인과 문구가 새겨진 연하장과 문구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또 포춘 500대 기업인 스머커스 Smucker’s, 플래닛 도그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출판과 영화제작 등 다른 분야에도 도전하고 싶다.
베르트: 우리는 미디어와 정보·통신에 좀 더 초점을 둔 회사로 키울 것이다. 의류 사업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10억 달러 가치의 회사로 성장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세계를 위해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가치를 널리 알리고 강화할 것이다.
존: 소비자들은 존재 이유가 있는 기업을 원하고, SNS 때문에 투명성과 진실성은 필수적인 것이 됐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기업은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베르트: 우리는 회사의 단기 전략에 대해 하루 종일 대립한다. 그러나 장기 전략과 브랜드 가치에 대해서는 100% 의견이 같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며 절대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10분만 지나면 함께 맥주를 마신다. 라이프 이즈 굿은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사람들이 삶의 어두운 측면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소 짓고, 크게 웃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안다. 큰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긍정주의는 인내심을 길러준다. 삶은 쉽지 않은 여정이다. 하지만 분명 삶은 멋진 것이다.
우리의 조언
존과 베르트 제이콥스
라이프 이즈 굿 창립자
일과 놀이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라.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하면서 보낸다. 따라서 일에 즐거움과 웃음,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회의 시간에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함께 눈썰매를 타러 산에 가기도 한다. 회의에서는 진짜 정보를 주고받고, 그 이후에는 함께 긴장을 푼다.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신속히 대응하라.
우리는 첫 무역 박람회에서 고객들에게 회사가 갓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친절한 소매업자가 우리에게 신생기업이란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일러줬다. 검증되지 않은 상품을 사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투명성을 유지하라.
우리는 반드시 올바를 필요도, 모든 해답을 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선 바로 알려야 한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추하든 말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천재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도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우리를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