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물을 잠가야죠. 과학자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필자는 지금도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변명의 여지없이 완벽히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상시 자원을 절약해야만 과학자들이 자원문제의 해법을 찾아낼 시간을 벌 수 있다. 특히 수자원에 국한하면 그 사실은 더욱 명백해진다.
현재 물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분쟁의 소지가 가장 큰 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가 지정학적 갈등을 야기한 국가 전략 자원이었다면 앞으로 는 물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200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스몰리 박사는 한 에너지·나노기술 콘퍼런스에서 인류가 향후 50년간 직면하게 될 10대 문제에 대해 강의를 했다. 당시 그가 중요도에 따라 나열한 10대 문제는 에너지, 물, 식량, 환경, 빈곤, 테러리즘, 전쟁, 질병, 교육, 민주주의, 그리고 인구였다.
에너지와 물을 맨 앞자리에 놓은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들의 심각성도 순차적으로 경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컨대 깨끗하고 안정적이며 경제성 높은 에너지가 개발될 경우 우리는 깨끗한 물을 풍부하게 생산할 수 있다. 또 깨끗한 물이 풍부해지면 식량 생산이 늘고,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식으로 파급효과가 계속 이어진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는 에너지 패권의 시대였다. 석유자원을 놓고 군사적 충돌이 빈발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대대적 투자에 힘입어 화석연료 의존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효율 상승과 발전단가 하락세도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금세기 내에 물이 에너지를 제치고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순간을 목도할 공산이 크다. 만일 그때까지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수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물 문제의 해결은 녹록치 않다. 일단 물은 석탄이나 석유와 달리 대체재가 없다. 그리고 물은 사회의 다른 분야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농업과 공업, 하물며 에너지의 생산에도 물은 필수적이다. 덧붙여 기후변화 때문에 가뭄과 홍수는 더 빈발할 것이며, 물의 위치와 출현 시기도 바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물을 찾아 이동해야할지, 물을 우리에게 가져올지를 놓고 선택을 강요당할 처지다. 다행히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륙간 송수관, 차세대 수력발전 댐, 해수담수화 플랜트 등이 그것이다. 공기 중의 습기를 응축시켜 물을 얻는 소형 응축장치도 유용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은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천명하기 한 달 전인 1961년 4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바닷물을 담수화할 수 있다면 인류의 오랜 숙원이 해결됩니다. 그 앞에서 다른 과학적 발견들은 한없이 초라해질 겁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69년 인류는 달 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큰돈과 막대한 에너지의 투입 없이 해수를 담수화하는 기술은 여전히 개발되지 않았다. 이는 물 문제가 인류의 주요 기술혁신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일 화성에서 물을 찾기 위해 쓴 비용만 물 문제에 투입했어도 현실은 전혀 달라졌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든 물 문제를 해결해낼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물 절약을 실천하며 과학자들에게 시간을 벌어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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