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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발전의 성지를 가다!

프랑스 카다라쉬 ITER 건설현장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은 무한한 에너지를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꿈의 기술이다. 현재 이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7개국이 힘을 합쳐 프랑스 카다라쉬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하고 있다.

유인 달 탐사와 인간 게놈 해독 이후 가장 혁명적 거대과학 프로젝트로 꼽히는 ITER의 건설 현장을 파퓰러사이언스가 현지 취재했다.



핵융합은 기본적으로 가벼운 원자 2개의 핵이 합쳐져 무거운 원소가 될 때 감소된 질량이 막대한 열에너지로 방출되는 현상을 이용한다. 핵융합로를 인공태양이라 부르는 것도 이처럼 태양과 동일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또한 핵융합은 핵분열 반응을 활용하는 원자력보다 안전성이 뛰어나며, 바다에서 추출 가능한 중수소와 리튬을 원료로 사용하는 만큼 사실상 무한에너지라 해도 실언은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욕조 하나 분량의 바닷물과 노트북 배터리 1개에 들어가는 리튬으로 최대 석탄 100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전혀 없이 말이다.

다만 태양의 핵융합을 지구상에서 재현하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원소들을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로 만들어야 하는 탓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자기장이나 레이저를 가지고 이런 태양 내부와 유사한 초고온·고압 환경의 구현이 가능하다.

바로 이 역할을 하는 장치가 핵융합로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손을 잡고 지난 2007년부터 프랑스 남부의 카다라쉬에 위치한 프랑스원자력청(CEA)의 연구센터 내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 중에 있다.

미래 인류 문명의 버팀목

현장에서 만난 오사무 모토지마 ITER 사무총장은 “핵융합은 인류가 무한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상용화가 이뤄진다면 미래의 인류가 에너지 고갈 위기에서 벗어나 문명을 유지하는데 버팀목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ITER의 건설 장소가 이곳으로 낙점된 것은 CEA 연구센터 때문이다. CEA는 핵융합 토카막 장치인 ‘토레수프라(Tore Supra)’를 개발하던 1980년대부터 미래 에너지 개발을 위해 부지를 확보해 놓는 등 ITER 건설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를 충분히 갖춰놓았다. 특히 카를로스 알렉야드로 ITER 안전담당 사무차장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염두에 둔 듯이 ITER의 안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핵융합로에서는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사실상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원자력과 달리 핵융합은 소량의 핵융합 연료만 내부에 존재하고, 전원이 차단되면 자연적으로 핵융합 반응도 멈추게 됩니다.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 저장장치의 화재 등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주변 지역에는 자연 방사능량보다 적은 양의 방사능이 방출될 뿐이에요.”

현재 ITER 건설 현장에서는 핵융합로의 심장이라할 수 있는 토카막이 들어설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지금은 철골구조뿐이지만 건설이 완료되면 높이 30m, 지름 30m, 그리고 에펠탑 3개에 해당하는 2만5,000톤급 중량의 토카막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또한 토카막 건물 외에도 토카막 운영에 필요한 39개의 부대시설이 더 지어질 예정이다.

토카막은 핵융합이 일어나는 플라즈마를 오랫동안 유지시키기 위한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로 초전도 자석의 자기장을 이용해 태양의 중심부보다 10배 높은 1억5,000만℃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역할을 맡는다.

모토지마 사무총장은 “핵융합은 허리케인보다 더 복잡한 난류가 발생하는 플라즈마를 제어하는 문제가 최대의 난제”라며 “토카막의 기본 형태인 원형 철골 구조의 하단부에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비해 내진 설계도 이뤄져 있다”고 전했다.

ITER 건설부지는 총 60만㎡로 축구장 60개를 붙여놓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약 25%의 공사가 진행된 상태며, 완공까지는 앞으로도 6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ITER 참여국들은 각국에서 장비를 직접 제작·조달해 카다라쉬에서 조립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전도도체, 진공용기 본체, 조립장비류 등 총 10개 장비의 조달을 맡았으며, 올해 연말까지 첫 임무로서 초전도체의 조달을 완료할 계획이다.

예정대로 오는 2020년 ITER가 완공되면 23년 동안 운영 및 방사선 감쇄를 거쳐 해체가 이뤄진다. 이후 참여국들은 이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각국에 핵융합 발전소를 건립,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게 궁극적인 마스터플랜이다. 한편 ITER에서는 우리나라 산업체들의 제작기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예컨대 6월 중 카다라쉬에 도착하는 첫 품목인 변압기는 명목상 미국 조달품이지만 현대중공업이 수주해 제작한 것이다.

아녹 로벨트 ITER 건설 담당자는 “한국의 조달품은 사업 일정에 맞춰 차질 없이 제작되는 것은 물론 완성도가 뛰어나다”며 “ITER 참여국과 연구자들은 한국의 핵융합 상용화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곤 국가핵융합연구소 기술 본부장도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국내기술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를 개발해 국제적으로 핵융합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며 “KSTAR와 ITER를 통해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2040년대에 한국형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체의 역할이 중요

ITER 프로젝트는 유관 산업체들과의 상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핵융합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되는 원천기술은 기업의 세계화 및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고, 산업체가 축적하고 있는 기술은 핵융합 장치의 건설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ITER는 1억℃ 이상의 초고온과 영하 268℃의 극저온, 고열 차단을 위한 고도의 열차폐체 기술, 극진공, 초고압 등 온갖 극한기술이 하나의 장치 안에 공존해야 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또한 EU 회원국을 감안하면 ITER 프로젝트는 전 세계 35개국에서 130억유로(18조원)에 달하는 예산투자가 이뤄지는 국제 공동프로젝트다. ITER의 건설과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산업적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의미다.

물론 가장 큰 부분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이미 ITER 건설 과정에서 개발된 최첨단 기술들이 항공우주와 천문과학, 가속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에도 핵융합 연구에서 유래된 고열재료 기술들이 접목된 바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ITER 국제기구와 각 참여국의 사업전담기관(DA)들이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조달품과 기반시설 등을 위해 산업체에 발주하는 계약이 800건 이상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수주 계약은 참여국의 대학, 연구소, 기업과 맺는 것으로서 경제적 효과가 상당하다. 일례로 토카막 건설 현장에서만 최소 3,000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으며, ITER건설공사를 유치한 프랑스 기업과는 15억 유로에 달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그만큼 ITER가 지역 경제 부흥에 직접적으로 공헌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03년 6월 ITER 회원국으로 가입한 우리나라는 현재 30여명의 연구원들이 ITER 국제기구에 파견돼 ITER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순수 국내기술로 2007년 완공한 KSTAR의 건설·운용 노하우를 바탕으로 ITER 건설에서 10개 조달품목을 책임지고 있다. 이의 조달을 위해 20여개의 국내기업이 주계약 업체의 자격으로 조달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ITER 국제기구나 타 회원국이 발주한 조달에 참여해 수주한 금액은 2,700억원에 이른다.

EU 핵융합 연구기구인 F4E의 소장으로 ITER 프로젝트의 EU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핸릭 빈드슬레브는 “ITER 건설비용의 절반에 해당하는 60억 유로를 지원하는 EU에게 있어 산업체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며 “기업들의 입장에서 최첨단 과학기술 프로젝트인 ITER 사업에 참여하는 자체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 다른 산업분야로 진출할 발판이 된다”고 말했다.

[INTERVIEW]
ITER 사무총장 오사무 모토지마


“한국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에 있어 아주 중요한 국가입니다. 한국의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AR)는 ITER 건설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죠. 앞선 기술력은 물론 한국 연구진들의 적극적 임무 수행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오사무 모토지마 ITER 사무총장은 ITER의 건설에 있어 한국의 역할에 많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 산업체들이 조달 품목을 적기에 제작하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 2010년부터 ITER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며, 카다라쉬 현지에 살면서 ITER 건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ITER는 지난 2006년 우리나라와 중국, 유럽, 인도,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이 조약에 서명한 이후 2007년 국제기구가 조직됐다. 현재 ITER 국제기구에는 한국 기술진 30여명이 근무 중에 있으며, 재정은 유럽이 45.46%를 부담하고 나머지 국가가 9.09%씩 분담하고 있다.

모토지마 총장은 “ITER 참여 7개국은 전 지구촌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은 80% 정도에 이른다”며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ITER의 성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모토지마 총장은 또 ITER의 건설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핵융합 에너지를 개발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ITER의 건설과 운용 과정에서 개발되는 신기술은 다른 산업분야에 응용돼 혁신을 촉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국의 조달 품목 납품이 일부 지연되면서 ITER 준공시점도 순연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러 현안사정 때문에 조금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여국들이 최선을 다해 조달 품목을 공급하고 있는 만큼 크게 문제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다.

중수소(Deutrium)와 삼중수소(Tritium)의 반응, 즉 D-T 핵융합 실험이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서도 “원래 계획에는 탄소(C) 디버터를 텅스텐(W)으로 교체하는 기간이 필요했었는데 처음부터 텅스텐을 사용함으로써 예정된 일정에 맞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핵융합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ELM)을 두고 “ELM 제어 코일은 ITER 장치에 기본적으로 설계돼 있다”며 “뿐만 아니라 얼린 펠릿을 주입하는 방안 등 ELM의 제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모토지마 총장은 이어 지금까지 핵융합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토카막 방식은 성능면에서 최고라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토카막 외의 다른 핵융합 방식에 대해서도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ITER의 성공을 발판으로 향후 핵융합발전소가 상용화되면 인류는 획기적 변화를 맞게 된다고 자신했다. 화석연료와 같은 유한자원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의 서막이 열린다는 것이다.

“KSTAR와 ITER를 통해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2040년대에 한국형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이현곤 국가핵융합연구소 기술 본부장

7,570ℓ ITER의 핵융합로가 0.8㎎의 중수소-삼중수소 연료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난방유로 환산한 양.
15,000.000°C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는 태양 중심의 온도. ITER의 토카막은 이보다 10배 높은 온도를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

토카막 (tokamak) 초전도 자석으로 자기장을 생성해 플라즈마가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
디버터 (Divertor) 플라스마의 불순물 제거와 입자 제어를 위한 중요 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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