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블로그와 SNS를 결합한 신개념 SNS서비스인 텀블러(Tumblr)에 ‘밴쿠버 태들러(Vancouver Taddler)’라는 새 블로그가 나타났다. 미국 인기드라마 ‘가십 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이 블로그는 10대들이 특정인에게 복수할 때 활용하는 도구를 표방했는데 10대들의 누드사진과 약물 사용 및 성경험에 대한 소문, 그리고 개인적으로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 등이 무분별하게 포스팅됐다.
경찰 당국이 1주일 만에 블로그 개설자의 신원을 파악하면서 폐쇄됐지만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트라우마와 명예훼손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10대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사이버 왕따’의 한 단편이다.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사이버 왕따는 SNS와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게임 서비스의 확대에 비례해 위협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사이버 왕따 방지 단체인 디치 더 라벨(Ditch the Label)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사이버 왕따가 다른 어떤 사이트에서보다 2배나 흔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고된 사이버 왕따의 4분의 1 이상이 ‘콜 오브 듀티’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발생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페이스북이 작년 11월 이른바 ‘사이버 왕따 예방 허브’를 출범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여기서 사이버 왕따의 대응법을 배우거나 가해자를 신고할 수 있으며, 신고가 접수되면 페이스북은 문제가 된 포스팅을 삭제하거나 포스팅을 올린 사용자를 강제 탈퇴시키고 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레딧 등 여타 사이트들도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분명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사전 예방이 아닌 사후처리에 불과하다는 부분이다. 이보다는 사이버 왕따 자체를 근절시킬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 올해 봄 마이크로소프트(MS)가 X박스 라이브 커뮤니티에 도입한 ‘평판 추적 시스템’은 그 첫걸음이 될 만하다. 이 시스템은 별도의 알고리즘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의 대화를 음소거(mute)하거나 차단하는 회수 등을 파악해 색깔로 등급을 매긴다. 녹색은 ‘좋은 플레이어’, 황색은 ‘주의요망 플레이어’, 적색은 ‘회피 대상 플레이어’를 뜻한다. MS는 평판이 나쁜 플레이어들의 경우 게임플레이 방송 등의 권한도 빼앗는다.
결국 이 시스템 하에서 사이버 왕따를 자행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플레이어로부터 회피 당함으로써 좋은 게이머들과 게임을 즐길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또한 사이버 왕따를 방지할 마법의 탄환은 아니다. 미국 사이버 왕따 연구센터(CRC)의 사미르 힌두자 소장은 사이버 왕따 가해자들은 커뮤니티의 일부 구성원과 교류가 차단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개연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른 가해자들과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서로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만족감을 느낄 테니까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사이버 왕따 가해자들을 격리시키는 것만으로도 피해자 발생을 최소화하면서 인터넷 공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MS의 평판 추적 시스템이 마법의 탄환은 아닐지라도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얘기다.
25% 미국 10대 중 사이버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학생의 비율
사이버 왕따 (cyber bullying)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 ‘사이버 불링’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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