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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1세대 빅뱅 2라운드] 이해진-김범수-이재웅 벤처 거물들의 리턴매치

대한민국에는 경제 성장을 이끈 세기의 라이벌이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다. 두 거목(巨木)은 때로는 경쟁을, 때로는 협력을 하며 한국 경제의 고도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 이끈 강력한 라이벌이 있다. 바로 이해진 NHN 창업주(현 네이버 이사회 의장)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IT 생태계 속에서 이들 3인방도 경쟁과 협력을 반복해왔다. 최근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IT업계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이들 벤처 1세대 간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30년 지기 이해진-김범수, 같은 꿈을 꾸다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86학번 동기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이 의장과 산업공학을 전공한 김 의장은 졸업 후 1992년 나란히 삼성SDS에 입사한다. 이후 두 사람은 1990년대 말 소위 ‘닷컴열풍’으로 벤처 붐이 일자, 약속이라도 한 듯 삼성SDS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먼저 창업을 준비한 이는 김범수 의장이었다. 김 의장이 퇴사 후 처음 시작한 사업은 PC방 사업. 당시만 해도 PC방은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더불어 블루오션으로 각광 받던 사업이었다. 그가 PC방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더 큰 창업을 위한 밑천을 마련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김 의장은 당시 2억 4,000만 원을 투자해 서울 한양대 앞에 PC방을 차렸다. 김 의장의 PC방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특히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다른 PC방에 판매하는 사업도 병행했다.

김 의장의 PC방은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금이 마련되자 곧바로 새로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바로 ‘게임’이었다. 그가 게임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PC방을 운영해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 의장은 온라인 게임, 나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인터넷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있었다.

이 같은 김 의장의 생각은 삼성SDS 근무 시절부터 자라나고 있었다. 대학 시절 PC통신을 처음 접한 김 의장은 삼성SDS 입사 이후 PC통신 ‘유니텔’의 개발과 기획을 담당했다. 유니텔은 나우누리, 하이텔과 더불어 국내 3대 PC통신으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김 의장은 PC통신 이후를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 속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김 의장은 말한다. “PC통신 이후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어요. PC통신은 엄청난 장비가 필요하지만 인터넷은 그렇지 않았죠. 인터넷 활용방안을 찾던 중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과 게임을 즐긴다면?’이라는 물음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온라인 게임의 미래를 확인한 김 의장은 PC방 사업을 아내에게 일임하고 1998년 인터넷 게임 포털 사이트 한게임을 창업했다. 이는 국내 최초 게임 포털이자 온라인 게임시장의 성장을 알린 서막이었다.

이처럼 김범수 의장의 창업이 도전적이었다면 이해진 의장의 창업은 좀 더 전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삼성SDS 근무 시절부터 명확한 아이템을 설정하고 창업을 준비했다. 이 의장은 삼성SDS 근무 시절 자신의 근무시간 중 25%가량을 자기계발에 쏟았다. 한 외국 기업이 직원들에게 요구했다고 전해지는 ‘25% 룰’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이 의장의 자기계발 원칙은 ‘내가 설계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프로그래밍 전반에 능통했던 이 의장이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원칙이었다. 3년 이상 고민한 끝에 그가 결정한 프로젝트는 바로 검색 엔진이었다. 그는 구글, 야후와 같은 검색 엔진이 향후 인터넷 시대를 이끌 것이라 확신했다.

그 후 이 의장은 3명의 신입사원과 함께 삼성SDS 사내 벤처 1호인 ‘웹그라이더’를 만들고 검색엔진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김 의장보다 1년 늦은 1999년, 현 네이버의 전신인 ‘네이버컴’을 설립했다.

이해진과 김범수, 그리고 이재웅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이 창업에 발을 디뎠을 당시, 국내 인터넷 시장에선 글로벌 1위 포털 야후와 한메일을 앞세운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초짜 사업가였던 이 의장이나 김 의장과는 달리 다음의 창업주 이재웅은 업계의 전도유망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1995년 자본금 5,000만 원, 직원 3명으로 설립된 다음은 운영 초기만 해도 인터넷 갤러리 수준의 서비스만을 제공했다. 하지만 다음은 창업 2년이 지난 1997년에 들어와 일대 변화를 겪었다. 바로 인터넷 무료 이메일 서비스 ‘한메일’이 시작된 때가 바로 1997년이었다.

웹이라는 개념이 없던 1990년대 중반, ‘한메일’은 국내 인터넷 시장에서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특히 한메일은 인터넷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을 알려주는 매개체로서 톡톡히 한몫을 담당했다.

이후 이재웅 전 대표와 다음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1999년 시작된 ‘카페’서비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인터넷을 단순한 가상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커뮤니티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카페서비스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온라인 여론 형성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와 기능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은 2000년대에 들어 글로벌 포털 야후를 밀어내고 국내 검색 포털 시장 1위에 올랐다. 불과 창업 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때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각자의 위치에서 성장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실 양사 모두 그리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한게임은 김 의장이 개발한 PC방 관리 프로그램 덕분에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PC방 프로그램을 원하는 PC방에 무료로 프로그램을 설치해주는 대신, 한게임을 PC방 컴퓨터의 초기화면에 표출시켰다. 한게임은 출범 3개월 만에 무료 회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장을 바라보는 김 의장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가입자가 증가하면서 한게임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이 한게임 자체 서버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가능성을 알아본 투자자들에게 자금 지원도 받았지만 서버 증설과 운영을 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해진 의장의 네이버도 마찬가지였다.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인지도를 넓혀 갔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검색 이외에 뚜렷한 킬러 콘텐츠가 없었다는 점도 네이버의 문제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2000년 초 김 의장과 이 의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다음에 필적할 만한 거대 포털을 만들어 보자는 게 만남의 목적이었다.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네이버컴은 한게임의 풍부한 콘텐츠를 통해 수익모델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기로 결정했다. 김 의장의 한게임, 이 의장의 네이버컴, 그리고 이준호 서치솔루션 대표(현 NHN엔터테인먼트 의장)가 손잡고 인터넷 포털 NHN을 출범시켰다.

이후 NHN은 광폭행보를 이어갔다. 2002년 선보인 ‘지식in’ 서비스를 통해 다음을 턱 밑까지 추격했다. 2004년에는 다음을 제치고 국내 인터넷 포털 업계 1위에 올라섰다. 이해진-김범수 연합이 이재웅을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해진-김범수 연합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동지에서 적으로, 적에서 동지로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의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던 NHN은 이 의장이 NHN 최고전략책임자(CSO)로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김 의장은 NHN의 전면에서 경영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NHN내부에서 이른바 ‘한게임파’와 ‘네이버파’가 충돌했다. 이해진, 이준호로 대표되는 ‘네이버파’와 김범수, 남궁훈 NHN USA 대표(현 게임인재단 이사장)의 ‘한게임파’는 회사의 사업방향과 전략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게임의 주력 콘텐츠였던 고스톱·포커 등 웹보드 게임에 대한 사행성 논란이 일며 한게임파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결국 김범수 의장은 2007년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사직서를 남기고 퇴사를 결정했다.

이후 야인 생활을 하던 김범수 의장은 ‘벤처기업 100개 설립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로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과 케이큐브벤처스 등을 설립하며 업계로 복귀했다. 숱한 실패도 있었지만 결국 카카오톡이라는 일생일대의 킬러 콘텐츠를 내놓으며 ‘왕의 귀환’을 알린 셈이었다. 그리고 최근 김범수 의장은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계기로 새로운 동지를 맞이했다. 바로 ‘어제의 적’ 이재웅 다음 창업주다.

이재웅 창업주는 이해진 의장과도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두 사람은 20년 지기 동네 친구다. 같은 아파트 위 아래층에 살았던 두 사람은 같은 연배, 같은 전공이라는 이유로 친분을 쌓아갔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포털 업계 맞수로 진검승부를 펼쳤다. 동네친구에서 경쟁자로 상황이 바뀐 것이었다.

그러나 이재웅 창업주는 네이버의 급성장을 바라보며 쓰디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2004년을 기점으로 검색 포털 1위에 안착한 네이버가 다음을 멀찌감치 밀어낸 것이었다. 때론 새로운 시도로, 때론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다음의 상황은 그 후에도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이재웅 창업주는 지난 2007년 다음 대표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네이버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것에 대한 책임 때문은 아니었다. 표면적 이유는 전도유망한 예비 창업가들을 후원·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이재웅 창업주는 당시 다음의 상황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범수 의장과 이재웅 창업주는 모두 벤처 1세대라는 점 외에도 이해진 의장과 네이버에 쓴 맛을 봤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때 네이버와 다음 소속으로 뜨거운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다시 뭉쳐 ‘다음카카오’라는 한 배에 올랐다.


김범수 vs 이재웅
다음카카오에서의 역할은?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법인 ‘다음카카오’는 다음이 카카오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카카오가 다음을 합병해 우회상장 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직접 상장에 부담을 느낀 카카오가 우회상장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기업 가치를 따져봐도 카카오의 다음 합병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합병 발표 당시 주식 1주당 평가액은 다음이 7만 원대, 카카오는 11만 원대를 유지했다. 합병비율 역시 다음과 카카오가 1대 1.557이다.
사실상 다음카카오의 중심에 카카오가 있다는 점 때문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향후 역할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 의장은 통합법인 다음카카오 지분 22.2%에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케이큐브홀딩스의 지분 17.6%를 합치면 40%에 육박하는 최대주주가 된다. 무엇보다 다음카카오가 카카오 사업을 중심으로 신규 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 김 의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반면 이재웅 창업주의 지분은 불과 3.4%에 그치게 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보유 지분 14%가 다음카카오에선 3%대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분 보유 규모와 상관없이 이재웅 창업주가 다음카카오의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지난 2007년 다음 대표직에서 사퇴한 데 이어 2008년에는 이사직에서까지 물러나며 약 6년간 경영일선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출범 이후 최대 변화를 맞게 된 시기인 만큼, 이 창업주가 물밑에서 지원을 이어갈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KAKAO
김범수
1966년 서울 출생
1990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
1992년 서울대 산업공학 석사
1998년 한게임 창업
2000년 한게임과 합병 NHN창업
2008년 아이위랩(현 카카오) 창업
2014년 현재 카카오 의장

DAUM
이재웅
1968년 서울 출생
1991년 연세대 전산학과 학사
1993년 프랑스 파리 6대학 연구원 인지과학 박사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
2000년 세계경제포럼 선정 ‘미래의 세계 지도자 100인’
2007년 다음 대표직 사퇴
2014년 현재 소셜벤처인큐베이터 소풍 대표

NAVER
이해진
1967년 서울 출생
1990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학사
1992년 카이스트 전산학 석사
1999년 네이버컴 창업
2000년 한게임과 합병 NHN창업
2012년 포춘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인 25’ 선정
2014년 현재 네이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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