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그림이다.
모바일 시대,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며 인포그래픽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단순함에 이끌린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 김태환 circus-studio.net
호모 모빌리쿠스(모바일 시대의 인류)는 읽지 않는다. 호흡도 짧고, 관심사도 수시로 바뀐다. 이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짧은 글이나 그림이다. 트위터나 웹툰이 흥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요즘 기업의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기업이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면, 소비자는 기다려 주지 않고 화면을 쓸어 넘긴다.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실감한 곳은 잡지 업계다. 잡지의 생명은 ‘심도’에 있다. 독자는 깊이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잡지를 사보곤 했다. 그렇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독자들이 떠났다. 잡지가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야 했다. 미국의 비즈니스 매거진 포춘지가 선택한 비전은 ‘보여주는 잡지’였다. 심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으로 다가서는 잡지. 이를 위한 첨병이 ‘인포그래픽’*이었다.
국내에도 이 같은 변화를 일찌감치 포착한 이들이 있었다. 바이스버사(Vice Versa) 디자인스튜디오의 김묘영(30), 정다은(30) 공동대표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대학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하며 인포그래픽에 눈을 떴다. 인터랙션 디자인이란 사용자 행동패턴을 분석해 보다 나은 제품을 설계하는 디자인으로, 각종 실험 데이터를 배경 근거로 제시하는 일이 많다. 두 대학생은 데이터를 수치로 나열하는 대신 직관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해외 인포그래픽 사례를 참고했다. 그리고 남다른 학구열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말한다. “4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인포그래픽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외국에선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각광받고 있었기 때문에 조만간 국내에서도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둘은 2010년 졸업 후 바로 창업을 했다. 초기 투자금은 각자 마련한 50만 원씩과 노트북PC, 맥북프로가 전부였다. 사무실도 없이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공모전에 희망을 걸었다. 재학시절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는 만큼, 국내외 공모전에서 바이스버사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창업 첫 달 뜻밖의 일감이 들어왔다.
코워킹 스페이스를 함께 쓰던 스타트업들이 발주를 했다. 또 전부터 알고 지내던 트위터 팔로어들에게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트위터 도입 초기부터 함께 활동하던 터라 친숙한 이들이었다. 작업 내용이 인포그래픽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월세와 식대를 해결할 수 있었다.
첫 인포그래픽 주문은 창업 5개월 뒤에 들어왔다. 카카오다음(옛 다음)에서 운영하는 비영리재단 ‘다음세대재단’의 작업이었다.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그간 해온 일을 홈페이지에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첫 작품은 기폭제가 됐다. 우연히 작품을 접한 삼성화재 측에서 새 일을 맡겼다. 그리고 삼성화재 프로젝트는 다른 대기업의 관심을 이끄는 마중물이었다. 주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난 4년 동안 삼성전자, 삼성생명, SK텔레콤, GS칼텍스, KBS,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작업을 했다.
KBS와는 2012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인포그래픽으로 제작하는 일을 함께했다. GS칼텍스와는 매월 인포그래픽을 제작해서 내부 보고용이나 소셜용으로 활용하는 작업을 했다. 삼성전자와는 키보드가 탈착 가능한 노트북 ‘아티브’ 홍보물을 만들었다. 해외여행객을 위한 ‘터치 잇 페이퍼(Touch It Paper)’를 만든 한국관광공사와의 작업은 지난해 대한민국 인포그래픽 어워드(한국인포그래픽포럼 주관) 공공부문 최우수상 작품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두 공동대표는 일이 재미 있었다. 아니 재미있는 일만 골라 했다. 김 대표는 말한다. “돈 되는 제품보단 재미 있고, 포트폴리오가 되는 작품을 우선으로 했죠.” 정 대표도 끼어든다. “일이 재미있으니 회사 운영도 어렵지 않았어요. 사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힘든지 모르고 한 거죠. 답답했지만 힘들진 않았어요.”
작품만으로도 홍보가 되고 있다. 바이스버사는 작품을 마칠 때마다 SNS에 올리는데, 이를 보고 연락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SNS는 실력 하나만 믿고 시작한 바이스버사에 다양한 인맥을 이어주었다. 취미로 시작한 SNS지만 이제는 마케팅 수단이 됐다. 홈페이지, 각종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핀터레스트와 유튜브 등 수많은 SNS를 동시에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효과는 만점이다.
홈페이지 한쪽에는 동영상도 여럿 모아놓았다. 김 대표가 각종 포럼에서 발표한 강연 동영상과 스케치다. 애초엔 내부 직원을 교육하기 위해 모았지만, 기업 관계자나 디자이너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강연 초청도 많아지고, 제품 수주도 늘었다. 강의가 영업이 된 셈이다.
올해엔 책 ‘인포그래픽: 정보로 소통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출간했다. 이 역시 직원 교육용으로 조금씩 정리한 자료를 기초로 했다. 이 책은 관련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좋은 인포그래픽이란 어떤 것일까? 김 대표는“첫째도 메시지 전달, 둘째도 메시지 전달, 셋째도 메시지 전달”이라고 말한다. “점선이든 실선이든 그래픽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멋 내려고’ 들어가는 다른 그래픽 작품과는 다르죠.” 이를 위해 인포그래픽 전문가는 기획력과 디자인 실력을 고루 갖춰야 한다. “인포그래픽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에요. 관련 정보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이를 시각화 할 수 있는 기획력도 필요해요. 우리가 기획과 디자인을 겸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거기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더욱 주목 받고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될 수 있어요.”
바이스버사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장점은 ‘열린 분위기’다. 정 대표는 말한다. “서로 상대방의 시안에 대해 자유롭게 지적해요. 머리는 하나보다 여러 개가 낫잖아요. 감정이 조금 상할 때도 있지만, 나중에 고객에게 깨지는 것보다는 낫죠. 더 나은 작품을 위해 협업을 하는 게 바이스버사의 문화예요.” 두 공동대표들도 감정이 고조되면 직접 충돌을 피하고 메신저나 메일로 서로의 감정을 꼭 풀어낸다고 한다. 역시 소통의 달인들이다.
*인포그래픽: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그래픽(graphic)이 더해진 합성어다. 많은 양의 정보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이미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