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는 한 해의 상반기를 끝내고 후반기로 들어서는 전환점, 축구경기로 치면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전략을 짜는 하프타임이라 할 수 있다.
글 고현숙 국민대 교수 겸 코칭경영원 대표코치 helenko@kookmin.ac.kr
하프타임에는 전반전을 평가하고, 휴식을 취하고, 후반전의 승리 작전을 짜는 일이 이뤄진다. 일과 삶의 하프타임에는 더 많은 걸 벌이려고 하기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 나머지는 버리는 단순화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화의 힘
에너지는 단순화하는 데서 나온다. 집중해야 할 목표가 분명한 한두 가지면 거기에 매진하기가 쉬워진다. 실행력 향상 전문가들은 “업무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많을수록 달성률은 떨어진다”는 걸 조사로 입증한 바 있다. 자신의 업무 목표가 11~20개라고 말한 사람은 탁월하게 달성한 목표가 하나도 없었다. 4~10개인 사람은 그중 1~2개의 목표를 탁월하게 달성했고, 목표가 2~3개인 사람은 그 2~3개를 모두 탁월하게 달성했다(Franklin Covey, ‘4 disciplines of execution’).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탁월하게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집중해야 할 2~3가지로 명쾌하게 목표를 좁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원 씽(One Thing)’이란 책의 저자 게리 켈러는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애쓸 때 자기 인생이 망가졌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 한 가지를 잘하는 데 집중했을 때 삶의 모든 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도미노가 차례로 다음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걸 보자. 물리학자 론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한 개의 도미노는 자신보다 1.5배가 큰 것도 넘어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순차적으로 에너지가 축적되면서 처음에 세운 조그만 도미노가 순식간에 엄청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나중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큰 것도 무너뜨리게 된다. 만약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모든 것을 다하려 애쓰지 말고, 순차적으로 접근하지도 말고, 산술적인 균형에 집착하지도 말고, 삶에서 집중할 한 가지 테마를 정해 몰입하면 분명히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돋보기로 초점을 맞추면 햇볕이 종이를 태울 수 있듯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핵심 목표에 정확히 조준한다면 거기에서 반드시 성과가 나오게 된다는 얘기다.
‘우선순위 매트릭스’라는 게 있다. 이 매트릭스의 가로는 현재, 미래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세로는 우선순위가 높은 순서로 A, B, C로 나뉘어 있어서 총 6개의 칸이 생겨난다. 너무 많은 목표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면, 포스트 잇에 목표를 하나씩 적어보자. 그런 다음, 이 목표가 당장 해야 할 일이면 현재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해도 되면 미래 칸에 우선순위가 높은 순으로 분류해서 넣어보자. 이렇게 분류하면 자연스럽게, 현재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이 구별될 것이다. 업무목표 숫자도 줄어든다. 이 매트릭스를 이용해 업무 팀과도 함께 업무분류를 하면 우선순위에 대한 공유도 높아진다.
긴 회의와 보고서의 해악
한 대기업에서 ‘사내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회사에서 줄이거나 버려 할 것’으로 ① 결론 없는 긴 회의, ② 무분별한 보고서와 자료 남발로 인한 의사결정 지연이, ‘개인적으로 줄이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① 뱃살 ② 게으름이 나왔다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긴 회의는 당연히 생산성의 적이다. 방향이 없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수록 회의는 길어지게 마련이다. 또 회의가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딴짓하는 참가자들이 늘어난다.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선 훌륭한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리더가 회의장에 와서야 생각이란 걸 시작하고 이것 저것 물어가며 의견을 형성하려고 한다면, 그건 구성원들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회의는 콤팩트해야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토론에 참여하지 않을 사람이 회의에 참가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참여했다는 어떤 중역을 그 자리에서 내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어느 글로벌 기업에선 아예 스탠딩 회의를 권장한다.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회사는 참가자들이 다른 부서 일에 의무적으로 코멘트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배우고 회의 효율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길지 않다. 핵심 아이디어, 핵심적인 전략, 핵심적인 도구 요소는 길 필요가 없다. 핵심에 자신이 없을 때, 여러가지 자료로 보충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엘리베이터 프리젠테이션’을 시킬 필요가 있다. 중요한 잠재고객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고 가정하고, 엘리베이터가 20층까지 올라가는 시간 안에 어떻게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소개하겠는지를 훈련해보는 것이다. 시간이 짧으면 그 만큼 핵심을 연마하게 된다.
주기적인 일과 삶의 구조조정
개인이나 조직이나 단순화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일과 삶의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집안 청소만 해도 그렇다. 청소란 대체로 버리는 게 일이다. 집안을 채우고 있는 쓸데 없는 물건을 내다 버리고 새롭게 정리 정돈하면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잡동사니 물건들은 공간에 소음을 만들어낸다’는 표현이 있다. 정리 안 된 공간에서 일하는 건 늘 잡음이 들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내가 버린 물건만큼 생활은 가벼워진다. 생활을 무겁게 하면서 나를 잡아 끌어내리는 것들을 한 번씩은 정리하고 내다 버려야 한다. 그것이 늘어가는 뱃살이든 게으른 습관이든, 내 삶의 구조 조정이 그런 것이라면 아주 상쾌한 결과를 가져올 듯하다.
밥 버포드가 쓴 ‘하프타임’이란 책이 있다. 그는 인생의 전반전에 맹렬하게 추구하던 ‘성공’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후반전에는 남은 삶을 이끌어갈 ‘의미’를 추구하라고 권한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성공했다’는 표현은 비문으로 쓰기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비문에 새길 것은 그의 기여,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 그가 추구한 가치, 그런 것들일 것이다. 인생에는 성취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 달리기 경주로 비유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휴가도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는 의미 있는 내적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비우고 휴가에서 돌아와 다시 집중할 수 있는 핵심 목표 두세 가지로 마음이 정돈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후반전 경기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 전력을 다할 수 있게. 공간으로 치자면 젠 Zen 스타일처럼, 아주 단순하고 치장이 없는 아름다움, 여백의 미학과 고요한 집중이 있는, 그런 멋진 일과 삶이 있는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일종의 편집증에서 벗어나고 싶다.
고현숙 교수는…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겸 코칭경영원 대표 코치, (사)한국코치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리더십센터 사장, 한국코칭센터 대표 등을 역임했다.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LG전자, 두산중공업 등에서 임원 코칭을 한 바 있다. 저서로는 ‘티칭하지 말고 코칭하라’ ‘유쾌하게 자극하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