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에 홈쇼핑 업계 순위가 바뀌었다. 줄곧 취급액 1위을 지켜오던 GS홈쇼핑이 경쟁사인 CJ오쇼핑에 왕좌를 내주고 만 것이다. 시장에서는 모바일 시장에서의 엇갈린 명암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은 유통 컨버전스 시대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GS홈쇼핑은 왕좌를 되찾아 올 수 있을까?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GS홈쇼핑은 우리나라 온라인 유통시장의 문을 연 기업이다. 우리나라 온라인 유통시장은 1994년 TV홈쇼핑 사업자 선정을 그 시작으로 하는데, 이때 한국홈쇼핑(채널명 하이쇼핑, 현재의 GS홈쇼핑)과 홈쇼핑텔레비전(채널명 39쇼핑, 현재의 CJ오쇼핑)이 TV홈쇼핑 사업권을 따내며 우리나라 온라인 유통시장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2000년 6월 홈쇼핑텔레비전이 CJ그룹에 인수되면서 CJ홈쇼핑(이후 또다시 CJ오쇼핑으로 사명 변경)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한국홈쇼핑은 이름만 몇 차례 바뀌다가 현재의 GS홈쇼핑이 되었다. 사실상 시장 초기부터 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기업은 GS홈쇼핑이 유일한 셈이다.
GS홈쇼핑은 국내 홈쇼핑시장의 성장을 이끈 맏형이기도 하다. GS홈쇼핑은 홈쇼핑 업계에서 그동안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여 왔다. 1995년 방송 첫해 GS홈쇼핑의 취급액은 수십억 원에 불과했으나 2001년 업계 최초로 취급액 1조 원을 돌파하며 홈쇼핑 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10년과 2012년에 업계 최초로 2조 원과 3조 원의 취급액 기록을 세운 것도 GS홈쇼핑이었다. 이 시기는 GS홈쇼핑의 황금시대라 부를 만했다. 이 시기 GS홈쇼핑은 TV 유통채널에서 벗어나 인터넷 유통채널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유통 컨버전스 시대의 온라인 유통시장을 석권한 듯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GS홈쇼핑이 한창 시장의 관심을 받으며 축배를 들고 있던 이때가 가장 뼈아픈 실기를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모바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봤으면서도 민첩한 대응에는 실패했다. 올해 1분기에는 급기야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던 취급액 1위 타이틀을 경쟁사인 CJ오쇼핑에 내주고 말았다.
유통 컨버전스 시대의 도래
올해는 온라인 유통채널이 등장한 지 20년째를 맞은 해다. 업계는 그동안 치열하게 달려왔다. 한정된 내수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채널 내 경쟁은 물론 채널과 채널 간 경쟁도 치열했다. 사업 프로세서나 기본 인프라가 비슷했던 까닭에 채널 간 월담 행위가 빈번했고, 아예 다른 채널로 완전히 전환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바야흐로 유통 컨버전스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통 컨버전스 시대에 가장 선제적으로 대응한 온라인 유통업체는 GS홈쇼핑의 라이벌 CJ오쇼핑이었다. 당시 CJ홈쇼핑 상호를 쓰고 있던 CJ오쇼핑은 2009년 3월 CJ오쇼핑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본격적인 유통 컨버전스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CJ오쇼핑의 ‘오’에는 집에서 쇼핑한다는 ‘홈쇼핑’의 개념을 넘어 On-line, On-air로 언제 어디에서나 쇼핑한다는 ‘Omnipresent’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같은 해 11월, GS홈쇼핑도 컨버전스 모델로의 전환을 천명했다. GS홈쇼핑은 자사의 유통채널을 통합한 GS숍을 론칭하며 ‘온라인과 모바일을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가 되었다. 당시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의 “국내 홈쇼핑 산업이 앞으로도 뻔한 판매방식에 머문다면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발언은 언론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홈쇼핑 업계를 넘어 유통업계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었다.
컨버전스 모델 천명의 속사정 GS숍 론칭 이전에도 GS홈쇼핑은 온라인과 모바일 부문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GS홈쇼핑은 당시 온라인 부문의 취급액과 비중이 TV 부문에 이어 2위를 차지할 만큼 이미 상당한 양의 매출을 온라인에서 올리고 있었다. CJ오쇼핑보다 8개월이나 늦은 시점에 굳이 기자간담회까지 자청하며 ‘우리도 컨버전스 모델로 간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업계에서는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GS홈쇼핑을 자극했을 것이란 추측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GS홈쇼핑은 수년째 홈쇼핑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이었지만 CJ그룹이 시장에 진입(CJ그룹의 홈쇼핑텔레비전 인수)한 이후에는 경계심도 많이 가졌을 겁니다. 실제로 CJ그룹 인수 이후 CJ오쇼핑이 가파른 성장을 하기도 했고요. CJ오쇼핑은 GS홈쇼핑과 취급액 차이가 제법 많이 났을 때에도 업계에서는 경쟁사로 불렸습니다. 이게 내심 불편했겠죠. 비교되는 경쟁자가 있다는 게 기업 경영진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을 겁니다. 항상 비교되니까요. 특히나 쫓기는 입장의 기업이라면 더욱 부담이 컸을 테죠.”
당시 GS홈쇼핑은 퍼포먼스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09년 2월 CJ홈쇼핑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해선 대표이사는 취임 1개월 만에 사명을 CJ오쇼핑으로 바꾸며 유통 컨버전스 시대라는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마케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인 만큼 시장의 관심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는 당시까지 업계를 주도해온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다른 관계자는 말한다. “분명 신경 쓰였을 겁니다. 두 사람은 57년(허태수), 55년(이해선) 생으로 연령대도 비슷하거든요. 이미 GS홈쇼핑도 유통 컨버전스 시대에 대응 중이었는데, 언론에서는 마치 CJ오쇼핑이 선도하는 양 기사가 나가니까 더 신경이 쓰였겠죠. 벼르던 차에 같은 해 10월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하면서 치고나갈 거리가 생긴 겁니다. GS홈쇼핑은 온라인과 함께 모바일을 함께 강조함으로써 (CJ오쇼핑보다) 더 진보한 수준의 유통 컨버전스를 추구하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듬해인 2010년은 GS홈쇼핑에게 역사적인 한 해였다. 2001년 취급액 1조 원을 돌파한 이후 9년 만에 취급액 2조 원을 돌파했다. 또 그 후의 성장도 가팔랐다. 2년 뒤인 2012년에는 취급액 3조 원을 넘어섰다. 이 모두 업계 최초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눈부신 외형성장과는 별개로 시대의 변화에는 점점 더 둔감해지고 있던 GS 홈쇼핑이었다.
모바일 시장의 성장과 업계의 대응
2010년은 우리나라 온라인 유통시장이 대전환점을 맞았던 해였다. 그해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가 홈페이지를 오픈, 사업을 개시한 게 그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어 쿠팡과 위메이크프라이스 같은 후발 업체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이들은 등장과 동시에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는데, 그 배경에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확산이 있었다. 이들 업체는 모바일을 주된 유통채널로 활용했다.
기존 온라인 업체들은 소셜커머스 업체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큰 위협을 느꼈다. 이들은 부랴부랴 모바일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는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던 여타 홈쇼핑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의미의 유통 컨버전스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시기였다.
대부분의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모바일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음에도 GS홈쇼핑은 딱히 조급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GS홈쇼핑의 취급액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기에 모바일 시장 공략이 다른 업체들처럼 간절하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루 한두 개 상품만 취급했던 초기 소셜커머스 업체들과는 달리 다품종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업체들에겐 모바일 플랫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다른 관계자는 말한다. “당시 모바일 시장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착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1등 업체인데 이 정도 하고 있으니 다른 곳은 우리보다 더 못하겠구나’ 하고요. 사실 GS홈쇼핑의 초기 대응은 상당히 좋았어요. 2010년 3월에는 홈쇼핑 업계 최초로 모바일 웹 방식의 스마트폰 쇼핑 서비스를 개시했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이었습니다. 국내에 소셜커머스가 생겨나기도 전이었죠.”
시장의 변화, 뒤바뀐 운명
이유야 어쨌든 GS홈쇼핑은 초기 모바일 시장 경쟁에서 CJ오쇼핑에 크게 밀리고 말았다. GS홈쇼핑은 모바일 사업을 개시한 2010년 고작 취급액 8,000만 원을 기록했지만 경쟁사인 CJ오쇼핑은 18억 원을 올려 대조를 이뤘다. 무려 22.5배 차이로 GS홈쇼핑의 완패였다.
시작부터 벌어진 모바일 사업 취급액 차이는 그 후 좀처럼 역전되지 않았다. 문제는 전체 취급액에서 모바일 사업 취급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2010년 1%도 안 되던 모바일 사업 취급액 비중은 올해 1분기 20%까지 늘어났다. 홈쇼핑 업계에서 TV, 인터넷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유통채널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급기야 최근 모바일 사업 외 다른 사업의 취급액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업계 전체 취급액 순위가 뒤바뀌는 일까지 벌어졌다. TV, 인터넷, 카탈로그 등 기존 사업 부문의 취급액은 전년 동기 대비 일제히 감소한 반면, 모바일 사업 부문 취급액은 수백 퍼센트씩 상승하면서 전체 순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지난 수년간 한 번도 업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GS홈쇼핑은 올해 1분기 전체 취급액 규모에서 CJ오쇼핑에 밀려 2등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올해 1분기 CJ오쇼핑과 GS홈쇼핑의 전체 취급액은 각각 7,827억 원과 7,816억 원이었고, 모바일 부문 취급액은 1,453억 원과 1,249억 원이었다. 전체 취급액 차이는 11억 원에 불과하지만, 모바일 부문의 취급액 차이는 204억 원까지 벌어져 모바일 사업에서의 엇갈린 명암이 순위 바뀜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반전 기회 노리는 GS홈쇼핑
풀이 죽을 법도 한 GS홈쇼핑이지만 최근엔 오히려 더 자신만만해졌다. 왕좌에서 미끄러진 건 계면쩍은 일이지만 복귀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GS홈쇼핑은 모바일 시장 주도권이 CJ오쇼핑에서 자사로 넘어올 날이 멀지 않았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시장도 이 같은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모양새다. 1등 프리미엄이 사라진 1분기 실적발표 이후 21만6,800원까지 급락했던 GS홈쇼핑의 주가는 최근 28만 원대까지 올라왔다.
이 같은 주장은 CJ오쇼핑과 GS홈쇼핑 간 모바일 사업 부문 취급액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2010년 22.5배나 났던 둘의 격차는 2011년 2.74배, 2012년 1.66배, 2013년 1.09배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GS홈쇼핑의 모바일 사업 부문 취급액은 59억 원에서 2,789억 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무려 47배나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CJ오쇼핑도 162억 원에서 3,050억 원으로 그 규모가 크게 늘었지만 증가 폭은 18배로 GS홈쇼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절댓값 비교에선 CJ오쇼핑이 앞서지만, 성장률 비교에선 GS홈쇼핑이 앞선다는 얘기다.
시장 일각에는 GS홈쇼핑의 시장 1위 복귀가 GS홈쇼핑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GS홈쇼핑이 쌓아두고 있는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그 근거로 든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GS홈쇼핑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현금만 8,000억 원에 달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GS홈쇼핑이 거대 M&A 등으로 이 자금을 집행할 경우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겁니다. 유통 컨버전스 시대의 역학 구도가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죠. GS홈쇼핑이 이 돈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시장이 대단히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GS홈쇼핑은 과연 시장 1위 자리를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유통 컨버전스의 시대에 온라인 유통시장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