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를 내세운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는 포스코가 누렸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철강 본연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게 핵심이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지난 6월 21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서울 대치동 포스코 본사에서 조촐하게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취임 100일을 맞아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떠들썩한 잔칫집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날 권 회장은 “임기 기간 내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 등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철강명가 재건의 기틀을 확실히 다지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포스코 8대 회장에 오른 권 회장은 자신이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 소방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포항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 제철소 근무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쇳물로 철강제품을 만드는 포스코 본연의 역할을 스스로 상기시킨 것이었다. 권 회장은 “글로벌 철강시장은 매우 심각한 공급과잉으로 포스코가 자랑하던 경쟁우위도 곧 사라질 위기”라며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철강 경쟁력을 높이고 재무와 조직구조를 쇄신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 회장이 취임 당시부터 포스코 혁신과 쇄신, 경쟁력 강화를 외치고 나선 데에는 극심한 불황 속에 놓여 있는 철강업계 사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존의 시대에 들어서다
전 세계 철강업계는 지금 불황에 빠져 있다. 철강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원인이다. 원재료 가격이 내려가면서 제품 가격도 하락했다. 국내에서는 건설, 조선 등 철강을 필요로 하는 수요 산업 침체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세계철강협회는 2012년 기준 세계 철강 수요는 11억 1,238만 톤, 공급은 15억 4,501만 톤이라고 밝힌 바 있다. 4억 톤 넘는 물량이 과잉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철강 수요가 지난해에 비해 3.1%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김주한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저성장, 저마진 상태에 빠져 있다. 철강 수급 회복이 안 되니 투자를 해도 시장이 따라오지 않는다. 겨우 영업이익은 나고 있지만 최소 2015년까지는 암흑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외형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 덩치를 불려 온 철강업체들이 당분간 생존 전략으로 수익성 개선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철강 업황 자체가 곧바로 반등하긴 어렵지만, 포스코에 대한 시장 평가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포스코는 최근 고심 끝에 동부제철 인천공장 등의 인수검토를 중단했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 M&A를 통한 외형 확장보다 기술 개발과 공정 개선 등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를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려는 경영 목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재광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동부 패키지 인수 포기에서 보듯, 경영진의 재무구조 개선 의지가 확인되고 있다”며 “앞으로 자회사 구조조정과 투자비 감축이 계획안대로 뚝심있게 진행되면서 주주 가치 상승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기 KD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1분기에는 영업이익 뿐만 아니라 연결실적 역시 기대치를 만족시켰다”며 “환율 하락으로 외화이익이 발생하고 원재료비도 하락해 올 하반기나 내년 초부터는 실적 개선을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스코는 올해 1분기 매출 7조 3,638억 원과 영업이익 5,177억 원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은 7%를 기록했다. ‘월드 프리미엄’ 제품 비율을 높여 수익성 악화에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월드 프리미엄’은 포스코가 신기술을 적용한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포스코는 현재 월드 프리미엄 판매 비율이 31%에 달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 비중을 2016년 41%까지 늘릴 계획이다.
다시 처음으로… ‘혁신 포스코 1.0’
포스코는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철강사다. 권오준 회장이 취임 100일을 맞기 전인 6월 17일, 미국에서 낭보가 날아 들었다.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가 포스코를 세‘ 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에 5년간 7회 연속으로 1위에 선정했다는 소식이었다.
포스코는 기술혁신, 인적자원 등 4개 항목에서 최고 점수를 획득하는 등 7.91(10점 만점)의 점수를 받아 종합 1위를 기록했다. WSD는 전 세계 36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생산 규모·수익성·기술 혁신·가격 결정력·원가 절감·재무 건전성·원료 확보(2014년 6월 기준) 등 23개 항목을 평가했다. 특히 포스코는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 및 기술 기반의 솔루션 마케팅 활동 등 본원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이 높은 평가를 받아 기술혁신, 고부가가치 강재 생산 등에서 전년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권오준 회장이 키를 잡은 포스코는 ‘위대한 포스코 (POSCO the Great)’라는 깃발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위대한 포스코를 창조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권 회장은 “포스코가 지난날 이뤄낸 업적과 영광의 역사를 되살리고 또 넘어서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혁신 포스코 1.0’으로 정했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신속히 벗어나 또 다른 50년을 준비하는 비상 계획으로 4가지 혁신 아젠다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권 회장이 제시한 4대 혁신 아젠다는 철강 본원경쟁력 강화·신성장사업의 선택과 집중·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경영인프라 쇄신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권 회장 취임 이후 개선된 성과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4대 혁신 어젠다
4대 혁신 어젠다 중 최우선은 철강사업의 본원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술과 마케팅을 융합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포스코의 경쟁력 제고라고 권 회장은 생각한다. 포스코는 이를 위해 기술기반의 솔루션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경쟁사와 차별화된, 고객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포스코는 자동차강판을 예로 들고 있다. 자동차강판은 강성이 세야 한다. 하지만 고강도강은 성형성이 떨어진다. 포스코는 단순히 고강도강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형과 용접기술 등을 함께 고객사에 제공하고 평가해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포스코는 최근 한국GM과 함께 GM의 차량 설계기술과 포스코의 강재기술을 융합해 경량 차체를 개발하고, 첨단 초고강도 강판 등을 GM의 글로벌 사업장에 적용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키로 했다. 이를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성장사업의 선택과 집중 역시 빠르게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그동안 소재,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신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앞으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중단, 매각, 통합 등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단행할 생각이다. 또 권 회장은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청정에너지와 원천소재분야를 선택했다. 포스코는 지난 4월 합성천연가스(SNG·Synthetic Natural Gas)를 생산· 판매하는 ‘포스코그린가스텍’을 설립했다. SNG는 저가의 석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한 후 정제 및 합성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 액화천연가스(LNG)와 성분이 동일해 직접 대체도 가능하다.
포스코는 재무구조 쇄신을 위한 행보도 빠르게 진행했다. 권 회장은 취임 직후 비핵심자산인 호주의 구리광산 샌드파이어 지분을 미국계 사모펀드인 EIG글로벌파트너스에 매각하기로 하고 매각 양해각서를 체결해 연내 1,300억~1,400억 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해외 비핵심 자산 매각의 첫 테이프를 끊은 셈이었다. 재무구조의 획기적인 개선은 철강 본원 경쟁력 향상을 통한 수익력 확보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포스코는 올해 만기가 도래한 7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을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7% 포인트 가까이 저렴한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해 상환했다. 이를 통해 연간 570억 원의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당분간 양적 성장을 위한 신규투자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상장요건을 갖춘 그룹사들은 적절한 시기에 기업공개(IPO)나 보유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할 예정이다.
조직과 제도, 프로세스, 기업문화 등 경영인프라 쇄신도 이미 진행 중이다. 권 회장은 취임하기 무섭게 조직의 군살을 빼고 철강 본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을 슬림화했다. 기존 기획·재무, 기술, 성장투자, 탄소강사업, 스테인리스 사업, 경영지원 등 6개 부문을 철강사업, 철강생산, 재무투자, 경영인프라 등 4개 본부제로 개편했다.
또한 회사 전반에 걸쳐 전문 역량과 경험을 보유한 이들을 전문임원으로 임명해 개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매년 성과를 평가받는 제도를 새로 도입함으로써 성과를 내는 조직으로 분위기를 쇄신한다는 방침이다. 전문직 임원제도 도입으로 포스코의 관리부서 임원은 50% 이상 줄어들었다.
‘위대한 포스코’로
그동안 포스코는 다양한 전략을 펼치면서 위기를 타개해왔다. 주력 사업이던 철강에서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고 소재산업에도 투자를 확대해왔다. 뿐만 아니라 국내와 미주, 아시아 지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성장 위주의 전략을 펼쳐왔다. 이제 포스코는 다시 신발 끈을 조여매고 철강을 만드는 본원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권오준 회장은 포스코가 누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처음부터 ‘혁신’을 외쳤다. 그는 지난 3월 22일 토요학습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3.0이 대세이고 심지어 4.0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왜 ‘혁신 포스코 1.0’인지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1‘.0’은 우리가 앞으로 새롭고 위대한 포스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일심동체가 되겠다는 의미, 기존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 기술력과 판매·생산성·품질 등 모든 면에서 1등이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만 달성된다면 위대한 포스코를 다시 이뤄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권 회장의 고뇌와 의지가 반영된 혁‘ 신 포스코 1.0’은 결국 자만과 허울을 벗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위대한 포스코 (POSCO the Great)’를 향한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