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

DISPATCHES FROM THE FUTURE<br>공상과학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수십~수백년 이후 외계 행성에 식민지를 세우고 삶의 터전을 개척한 인류의 생활상을 미리 들여다봤다.

featuring
다니엘 아브라함
‘더 익스팬스(The Expanse)’ 시리즈 중 ‘시볼라 번(Sibola Burn)’ 공저자
엘리자베스 베어
‘애꾸눈 잭(One-Eyed Jack)’ 저자
메리 로비네트 코월
‘글래머리스트 히스토리(Glamourist Histories)’ 시리즈의 저자 (휴고상 수상자)
앤 레키
‘부수적 정의(Ancillary Justice)’ 저자. (2014년 네뷸러상 수상자)
스코트 린치
월드판타지상, 로커스상 후보 지명자
시난 맥과이어
‘스패로우 언덕길(Sparrow Hill Road)’ 저자
존 스칼지
‘붉은 셔츠(Redshirts)’ 저자 (2013년 휴고상 수상자)
칼 슈뢰더
‘락스텝(Lockstep)’ 저자
멜린다 스노드그라스
‘에지(Edge)’ 시리즈 저자
이언 트레길리스
‘더 메커니컬(The Mechanical)’ 저자 (11월 출간 예정)

[featured artist]
“전쟁에서 항공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항공기를 이용하면 병력과 장비를 신속히 전선으로 보낼 수 있다.” - 리처드 틸버리, <전쟁>

진공의 날개
이언 트레길리스, <교통시스템>
그녀는 시가에 불을 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수소를 사용했어요. 우주에서 제일 가벼운 기체죠. 하지만 가연성?폭발성 기체라는 있었어요.”
그녀가 숨을 내뱉자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바람을 따라 비행선 밖으로 흩어졌다. 하늘에는 이 비행선과 유사하게 생긴 화물 비행선, 여객 비행선, 그리고 레저용 비행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 모두는 스스로 하늘에 떠 있었고, 외피에 코팅된 생체모방 색소세포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광발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사용한 것이 헬륨이에요. 수소보다는 무겁지만 불연성이어서 불이 붙지 않아요.”
그녀는 희미하게 빛나는 비행선의 벽에 시가를 던졌다. 불똥과 담뱃재가 마구 날렸지만 비행선이 폭발하지는 않았다. 투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꽤 유용한 자원이었는데 인간이 고갈시켰죠. 사람들은 지구의 헬륨이 엄청난 시간 동안 진행된 방사성 붕괴의 산물이라는 걸 몰랐어요. 인공적으로는 충분한 양을 만들 수 없어요. 핵융합으로도 안돼요.”
그녀는 산탄총 가방을 열면서 말을 이었다. “헬륨 다음으로는 질소가 선택됐어요. 대기 중에 가득 들어있는 쓸모없는 기체랍니다.”
그때 한 승객이 물었다. “그럼 이 비행선은 뭐를 사용하나요?”
그녀가 답했다. “아무 것도 쓰지 않아요. 아무 것도. 진공은 어떤 물질보다 양력이 좋습니다. 고갈될 걱정도 없고요. 다만 진공상태를 유지하려면 튼튼한 외벽이 필요하죠. 그만한 강도를 갖추면서도 가벼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답니다.”
이윽고 그녀가 비행선의 초고강도 나노복합재 외피를 향해 산탄총을 조준했다. 시연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신호를 보내자 비행선의 진공 주머니 하단의 색소세포가 깜박이며 투명하게 변해갔다.
주머니 속은 정말 텅 비어 있었고, 내부를 지지해주는 것도 전혀 없었다. 종이 두께의 외벽 안에 들어 있는 것은 5만㎥에 달하는 진공뿐이었다.
그녀는 자신 있게 진공 주머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행복 마트
이언 트레길리스, <교통시스템>
셀프와치(Selfwatch)는 행복 마트에서 17종의 자동차용 전원공급장치를 팔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3종 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복 마트에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광대뼈에 장착된 스트립(strip)이 메시지 전송이 불가하다고 속삭였다.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고 먼 곳까지 간다. 하지만 오늘은 셀프와치에 의존하면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한다. 언제나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
계산대로 이동한 나는 한 노인의 뒤에 섰다. 그 노인은 스트립 대신 흠집이 난 투박한 아이글래스를 쓰고 있었고,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이제 노화와 비만은 치료가 가능하다. 내 나이만 해도 올해로 146세지만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을 만큼 건강하고, 힘이 넘친다. 반면 이 노인의 체력은 나의 50%도 되지 않을 게 확실했다.
렌틸 콩을 구입한 노인은 계산대의 젊고 뚱뚱한 여성직원에게 15달러를 건넸다. 그녀의 스트립은 행복 마트의 상징인 밝은 오렌지색이었다.
“흔히 렌틸 콩을 슈퍼 푸드라고 하죠. 하지만 저는 이걸 요리하지 못해요. 집에 전기가 자주 끊기거든요.”
전기가 자주 끊긴다고? 월급은 받아서 어디다 쓰는 걸까? 다시 천천히 뜯어보니 교육을 못 받은 티가 나고, 의지도 약해보였다.
“게다가 렌틸 콩은 너무 비싸요. 하지만 고객님께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포장지에는 렌틸 콩을 먹으면 노화와 심장병, 암이 예방된다고 적혀 있지만 지금껏 방치해온 인생이 렌틸 콩 몇 줌으로 바뀔 리 없었다. 젊었을 때 돈을 모아서 노화방지 치료를 받는 것이 정답이다.
내 차례가 되자 여직원에게 조언을 했다. “잘 아시겠지만 렌틸콩은 싹이 나요. 가격이 비싸면 직접 길러서 먹으면 돼요. 흙과 햇빛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죠.”
그녀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저희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싹이 안 나는데요.”
나는 밝게 웃었다. “그렇군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화방지 치료를 위해 저금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치료를 받기 전까지는 운동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줄이세요.”
“그러죠. 한번 해볼게요.”
그녀가 생활태도를 바꿀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디에 있든 주변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공상과학 작품을 읽다보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스코트 윌러비 미 항공우주국(NASA)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프로젝트 책임자

내일의 힘
멜린다 스노드그라스, <엔터테인먼트>
예능국장: 반가워요. ‘별들의 나라’는 정말 대단했어요. ‘머나먼 태양’도 6년이나 방송됐었죠? 저희 솔라 시스템 커뮤니케이션즈(SSC)에서도 그만한 활약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작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 SSC에서는 뭔가 색다른 걸 시도해보려 했어요.
예능국장: 저희도 색다른 프로그램을 선호해요. 이미 SSC는 타 방송국과는 차원이 다른 오락프로그램으로 유명하죠. 다른 어떤 방송국이 단 1명의 사람도 없이 오직 동물들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어요. 덕분에 출연료는 한 푼도 들지 않았답니다... 아, 죄송합니다. 남편분이 배우라고 하셨죠? 미마스를 빠져나가는 중이라 정신이 없네요. 조금 있다가 토성의 띠를 보실 수 있게 패널을 열어드리죠.
작가: 감사합니다. 기대가 되네요.
예능국장: 아, 제가 괜히 말을 끊었네요. 말씀 계속 하세요.
작가: 예, 저는 공상과학과 판타지물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대중문화를 이끌었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당시의 TV와 영화, 비디오게임은 모두 공상과학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죠.
예능국장: 그랬었죠.
작가: 그래서 새 프로그램은 그와 정반대의 역사물로 가려고 해요. 세계는 전혀 판타지적이지 않고, 현실이 지배하는 1950년대로 되돌아갈 거예요.
스타트렉도, ET도 세상에 나오기 전의 시절이죠. 당연히 슈퍼 히어로들이 괴상한 복장을 입고 지구를 구한 적도 없고요. 그 시대에 살았던 아이들이 경찰과 의사, 변호사 등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리얼리티 쇼 형태로 다루고 싶어요.
예능국장: 이런, 거의 공포물에 가까운데요.
작가: 맞아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싶어요. 상상력을 버린다면 현재의 세상이 파탄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이는 우리 스스로 내일로 가는 문을 닫아버리는 셈이니까요. 제가 지금 토성에 있는 국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화성과 이오에 식민지가 건설된 것도, 그리고 인류가 은하계 탐사를 준비중인 것도 모두 상상력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featured artist]
“인간은 통신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고독해지는 존재에요. 오락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죠.” - 바스티앙 르코프 디아름, <엔터테인먼트>





와일드 푸드
엘리자베스 베어, <식품>
마르타는 행운아다. 그러나 최고의 행운아는 아니다. 그녀는 이메일과 스트리밍에서 광고를 차단하는 데 돈을 지불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마르타에게 광고를 보내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가족들에게 ‘와일드 푸드’를 먹이지 않고 있음에 죄책감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혁신적인 음식’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쌌다. 때문에 그녀는 전통적 음식에 계속 의지했다. 마을 인근에 농장이 있었기에 신선한 달걀과 유제품을 구할 수 있었고, 때때로 닭고기를 먹는 호사도 누렸다. 특히 마을의 협동조합에는 인공배양 육류가 저장돼 있고, 1년에 한 번씩은 직접 활을 들고 숲에서 사냥을 하기도 한다. 종종 음식이 동이 날 때도 있지만 슈퍼마켓 배달서비스에 의존하는 도시 사람들보다는 그런 상황에 잘 대응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이곳 버몬트에서도 한겨울에 칠레산 버찌와 망고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탄소배출권 가격이 너무 치솟으면서 수지가 맞지 않아 지금은 수입이 중단됐다. 미국에 기후 위기가 찾아왔을 때 라스베이거스와 피닉스에서는 식량 부족과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두 도시가 버려지기 전의 얘기지만 끔찍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딸들이 영양학적 균형을 맞춘 인공식품인 튜브 푸드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기뻤다. 어떤 사람들은 요리를 할 필요가 없다며 선호하지만 마르타는 튜브 푸드에 플라보노이드나 항산화제, 식물성 영양소가 전혀 함유돼 있지 않다고 믿는다. 영양학자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는 아주 가끔씩 초콜릿이나 커피를 구입한다. 가격이 열대 향신료만큼이나 비싸져서 예전처럼 쉽게는 먹지 못한다. 대신 뉴욕산 와인과 버몬트산 맥주를 즐겨 마신다.

“훌륭한 공상과학 작품은 미래에 대비한 백신입니다. 우리 사회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데이비드 볼린스키 이머전 스튜디오 설립자

장미 속에서
시난 맥과이어, <전쟁>
“제대로 되지 않을 거야.” “아니야. 반드시 돼야만 해!”
데이비드가 선박의 해치 위에 종이를 잔뜩 실은 마지막 팰릿을 끌어오며 말했다. “실패하면 우리는 끝장이야. 자, 이제 스위치를 넣어.”
아이린이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누군가 이 모습을 지켜봤다면 현실이 아닌 동화 속의 한 장면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현장에 있었다면 운이 좋아 살아남았더라도 신경독에 중독돼 신경계가 마비되고, 시력을 잃겠지만 말이다.
전쟁이 발발한지 정확히 5년이 되던 이날, 전 세계의 하늘에서 종이로 만든 장미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종이에는 화학작용제가 묻어 있었다.
그날 하루에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전쟁이 끝났을 때 양국의 국경에는 종이 장미가 넘쳐났다.

플래피 버드의 실패
존 스칼치, <엔터테인먼트>
2029년 5월 30일: 안타레스 코퍼레이션 귀하.
지난주 구입한 ‘임프린트 3S 폰’의 성능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단연코 이 제품은 제가 평생 가져본 물건 중 최악의 쓰레기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휴대폰이 제 귀의 레일에 편안히 장착되지 않습니다. 너무 빡빡해서 레일이 피부에서 뜯겨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귀사의 인체역학 설계에 실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2. 제 신경 네트워크는 귀사가 지원된다고 밝힌 베리존 제품임에도 5차례나 시도한 끝에 임프린트를 신경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베리존 매장을 찾아가 기술자들에게 제 신경 네트워크를 내보여야하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머릿속을 주물럭거릴 때의 기분이 정말 좋지 않더군요.
3. 공감각 모듈도 엉망입니다. 모든 문자와 숫자, 감정상태에서 오렌지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문자 A와 숫자 6, 그리고 ‘행복하지만 아쉬워’에서만 향기가 납니다.
4. 러시아제 비아그라 스팸 문제입니다. 두뇌에서 빼낼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절대 그런 사이트에 가 본 일이 없습니다. 설령 갔다면 완벽히 실수에 의한 겁니다. 임프린트의 백신 프로그램이 이런 일 정도는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는데 신경망 제거 수술을 예약해야할 판입니다.
5. 이 폰에서는 플래피 버드가 공짜라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욱 더 화가 난 상태입니다.
이 모든 문제점을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폰과 플래피 버드의 환불도 요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사의 고객 존 스칼치.



비싼 맛
메리 로비네트 코월, <식품>
레니는 우주정거장의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수직 정원을 바라봤다. 식물들이 벽을 따라 빼곡하게 자라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길에는 당근이 널려 있어 행인들은 도둑으로 몰릴까봐 당근들을 피해 다녔다.
녹색 식물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휴양 우주정거장 ‘쥬벨라’의 생활에서 누리는 최대 특혜다. 하지만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들뿐이었다. 수석정원사인 레니는 이 식물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설치해둔 덫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커튼처럼 자라난 덩굴제비콩을 한쪽으로 밀었다. 철사로 만든 이 덫을 지구에서 가져오기 위해 많은 예산을 써야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덫에 딸린 철사로 된 우리를 지구에서 이곳으로 가져오기 위해, 그녀에게 주어진 예산 중 상당 부분을 써야 했지만... 갑자기 레니가 미소를 지었다. 7층 사육장에서 탈옥한 통통한 토끼 몇 마리가 놈이 덫 안에서 순진무구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좋았어! 이런 건 잡은 사람이 임자지.”
상당한 예산 부족을 겪고 있는 와중에 잡혀 준 토끼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당근을 훔쳐 먹고 살이 오른 녀석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 테니까.

[featured artist]
“미래에는 탄소제거기와 담수 발생장치가 일상화되겠지만 적어도 드라이브를 즐길 여유는 있을 겁니다.” - 피터 볼링거, <교통>



빙산
스코트 린치, <노화>
나는 100번째 생일을 네트워크 연결이 불가능한 검은 모래사장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빙산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빙산은 세상이 우리에게 붙여 준 별칭의 하나다. 주변 분위기를 차갑게 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채 방황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의학발전으로 노인병을 극복한 우리 세대들은 표면에 칠해진 코팅제처럼 가난하고 젊은 세대와 겉돌고 있다. 오래전 예견된 바와 같이 우리와 젊은 세대는 잘 섞이지 못했다. 또한 노인들 사이의 세대차이도 심각하다. 120세의 노인과 80세 노인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에 집착했고, 갈수록 이상해져 버렸다.
장수하는 삶은 금전적 문제만 해결되면 육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내 몸은 걸어 다니는 공상과학 소설과 같다. 이미 근세포 재생술, 골격 석회화, DNA 보수효소 치료를 받았고 무릎 관절도 두 번이나 교체했다. 질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은 이런 치료를 받기 전보다도 상태가 나빠졌다. 그렇게 너무 오래 살다보니 미칠 지경이다. 감정은 연약해져 갔고, 외로워졌으며, 편집증에 시달렸다. 금전적, 체력적 한계 때문에 젊음을 유지할 시술을 받지 못한 친구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등졌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문화는 잡음이 되어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는 마치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치료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모든 네트워크 연결을 단절하는 것이다. 전원을 뽑아라. 그리고 안식의 기간을 가져라. 당신의 제국과 야망, 경력과 부채로부터 1년간만 떠나 보라. 모든 데이터 스피어 임프린트의 전원을 꺼라.
그리고 잘 훈련된 사람을 고용해서 당신을 TV와 위성 업링크에서 단절시켜라. 이메일도, 주가 변동도, 뉴스에서조차 완전히 떠나라.
우리는 이곳처럼 참을성을 다시 배울 수 있도록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운동도 하고, 요리도 하고, 캠핑도 한다. 잔뜩 쌓여 있는 종이책도 읽는다. 최소 40년은 묵은 것들이다. 바깥 세계는 우리 없이도 잘 돌아간다. 물론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변화들이 세상을 바꿔놓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가면 사람들은 우리를 외계인처럼 여길 모른다.
조금씩 조여 오는 사소한 변화들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 때 느끼는 충격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영생을 누리기 위한 물리적 조건은 충족됐다. 하지만 정신까지 온전하려면 잠시 동안 삶을 떠나 있다가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놀라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 한다.

“과학자로 살아가면서 공상과학 작품 속에서 가능했던 콘셉트들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나로 두르소 미국 마이애미대학 유전학자

함정 속으로
대니얼 에이브러햄이 바라본 전쟁의 미래
전쟁은 혼합음료와도 같다. 럼주와 콜라 대신 폭력과 비인간성이 뒤섞인 혼합음료 말이다. ‘중력 함정’에 가 보면 그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영구 달기지, 즉 L5 정거장에 대한 확실한 방어책은 없다. 그들은 범접할 수 없이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동안 당해왔던 유성 공격과 그 공격에 대비한 우리의 방어 태세를 생각해보라. 만일 유성들을 원하는 곳으로 조준해 발사할 수 있다면 어떨까.
또 다른 측면을 보자. 달 또는 태양계 어디에서도 지구와 같은 생물권이 구축돼 있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가지 못한다. 아직 지속 가능한 수준의 테라포밍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생산 기지를 박살내 버리면 의약품과 대체 미생물, 고무 밀폐재 등을 만들 수 없게 된다. 농장을 박살내면 식량이 없어진다. 하지만 생태계를 박살내면 아예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우주무기의 위협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다. 전쟁터는 넓어지겠지만 폭력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공멸의 파국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변화가 클수록, 변하지 않는 부분도 커지는 법이니까.

5분 내 배달 보증
칼 슈뢰더, <교통>
오후 3시 44분: 그래요. 알겠어요. 휴대폰에 도시 모든 곳의 지리정보 서비스를 끌어올 수 있으니 저도 한번 해볼게요. 잠시만요... ‘5분 내 배달을 보증합니다. 늦으면 무료!’
라고 하는군요. 모터사이클을 운전자 중에서도 이런 글귀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을 본 것 같네요. 그때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3시 47분: 예, 주문 완료했어요. 이미 주차장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무인기가 제 휴대폰의 GPS 정보와 ID를 동기화했어요. 어디서 날아오나 한번 볼까요.
3시 49분: 아, 그렇군요. 어디에서나 날아올 수 있군요. 오늘날 무인기 배달은 너무 보편화돼서 중앙집중형 물류창고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죠. 작은 쿼드콥터들이 공용 주차장에 주차된 밴에서 상자를 들고 날아오르거나 건물 지붕에서 컨테이너를 들고 날아가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휴대폰 기지국만큼이나 흔하기에 평상시에는 신경 쓰지 않으셨겠지만요. 그런데 이 동네에서는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는 않네요...
3시 50분: 그래요. 그걸 ‘전진 창고’라고 부르나 봐요. 부자 중에는 자기들 물건을 그 비슷한 식으로 보관하는 사람들도 있죠. 검은색 밴에다가 물건을 싣고 자기가 가는 곳 어디라도 따라오게 하는 거예요. 필요할 때면 언제든 3초 만에 손에 넣을 수 있어요.
3시 51분: 대체 어디 있죠? 정말 형편없는 서비스네요. 보이지도 않아요. 앗, 잠시만요. 전깃줄 근처에 검은 점이 보입니다.
3시 52분: 확실히 늦었네요.
3시 55분: 글쎄요.. 모르겠네요. 반품하고 싶어요. 5분보다 늦었으니 무료겠죠? 일단 상자를 열어보죠.
3시 56분: 뭐라구요. 어찌됐건 돈은 내야 하는군요! 아, 알겠어요. 5분 내에 배달이 안 되면 배송료가 무료라는 소리였군요. 형편없는 서비스지만 폼은 확실히 나네요.

[featured artist]
“사이버네틱스와 의학의 발전으로 장수를 누리게 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세대와 세대 사이를 이어나갈 것입니다.” - 줄리 딜런, <노화>

미마스 (Mimas) 토성의 위성.
이오(Io) 목성의 위성.
테라포밍 (Terraforming) 외계행성을 인간의 거주가 가능하도록 지구화하는 것.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