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태 녹십자 대표가 이번에도 웃었다. 시장의 우려와는 달리 수출 부문 성장을 기반으로 올해 상반기에도 호실적을 거뒀다. 업계에서는 내실을 강조하는 조 사장의 거북이식 경영전략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조순태 녹십자 대표는 2010년 취임사에서 수출을 염두에 둔 연구개발 중심의 성장 전략을 천명한 바 있다. 당장의 성장은 더딜지라도 천천히 내실 있는 기업으로 녹십자를 키워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이 같은 거북이식 성장 전략은 현재까지도 다른 경쟁업체들이 고수하고 있는 영업력 위주의 성장 전략과 대조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의료·제약 기업의 실적은 연구개발 비용, 신약 효과, 환율, 수출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최근 시장은 연구개발 비용의 증가와 원화 강대표세 현상의 지속이 녹십자의 단기 실적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전망해왔다.
녹십자는 경쟁사 대비 많은 연구개발비 지출과 높은 수출 비중으로 유명하다. 조 사장 취임 이후 녹십자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은 꾸준히 늘어 2011년 8%대에서 올해 상반기 12%대까지 상승했다. 녹십자는 올해 1분기 연구개발 비용으로만 220억 원을 써 주요 경쟁사로 꼽히는 유한양행의 122억 원을 두 배 가량이나 웃돌았다. 유한양행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5%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장의 전망과 실제는 달랐다. 늘어나는 연구개발비 지출과 원화 강세 현상의 지속도 수출 증가를 등에 업은 녹십자의 전체 실적 성장을 막지는 못했다. 더 많은 수출을 통해 원화 강세 효과를 상쇄했고, 이를 통해 점점 증가하는 연구개발비를 넘어서는 실적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녹십자 관계자는 말한다. “올 상반기 수출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약 60% 성장한 924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연구개발비의 증가나 환율 하락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수출 증가와 판매관리비의 효율적인 집행이 전체 실적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녹십자는 올해 상반기 4,349억 원 매출에 333억 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 15% 증가한 수치다. 2012년 연구개발비 증가에 따른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 감소가 한 차례 있었을 뿐, 녹십자는 2011년부터 올해까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왔다.
올해는 특히 수출 부문의 비약적인 성장이 눈에 띈다. 전체 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4%에서 올해 21%까지 증가했다. 업계 평균이 9%대임을 고려하면 녹십자의 21% 수출 비중은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녹십자는 2020년까지 전체 매출의 절반 수준으로 수출 비중을 끌어올린다는 야심 찬 계획도 내놓고 있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녹십자의 실적 성장은 최근 국내 의료·제약 업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가치가 커 보인다. 정부는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 특허·허가 연계 제도 등의 규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부분의 의료·제약사들은 영업력을 바탕으로 한 국내 시장 위주의 성장 전략을 펼쳐왔기에 출혈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의료·제약사들의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녹십자의 주가 역시 최근 52주 최저가에 근접하는 등 시장의 악재에 고스란히 노출된 듯 보인다. 하지만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녹십자는 여타 제약사들과 구별돼야 한다는 게 녹십자 안팎의 의견이다. 녹십자 관계자는 말한다. “녹십자는 위축된 국내시장만으론 지속성장이 어렵다고 판단, 글로벌시장 영향력 확대를 통해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력품목인 혈액분획제제의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고, 백신제제 또한 국제기구 입찰 수주에 연이어 성공하면서 녹십자는 세계적인 제약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경철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녹십자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백신과 혈액제제 분야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특수의약품에 속하는 분야들이죠. 때문에 다른 제약사들과 달리 약값 인하나 정부 규제 등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입니다. 특수제제는 규제 이슈에 영향을 안 받거든요. 또 특수제제 분야에 있어선 세계적으로도 기술을 인정받고 있어 녹십자의 수출 비중이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녹십자의 실적 상승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