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유명한 성경 구절이죠. 하지만 기부문화에서 만큼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알게 해야 합니다. 능동적인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왼손도 오른손이 한 기부활동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스타트업에겐 아이디어가 생명이다. 대다수 젊은 벤처 창업가들은 저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다. 창업 아이템은 제각각이지만, 꿈꾸는 이상은 거의 비슷하다. 젊은 혈기와 패기로 뭉친 그들은 ‘사람들에게 좀 더 편한 삶을 제공하고 싶다’거나 ‘혁신적 기술과 아이템으로 세상을 뒤흔들겠다’는 포부를 말한다. 하지만 소셜 기부 플랫폼 스타트업 ‘위제너레이션(WeGeneration)’을 창업한 홍기대(30) 대표의 이상은 조금 다르다. 홍 대표는 ‘위제너레이션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는 다소 소박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존 스타트업에서 보기 힘든 ‘기부’라는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새로운 기부문화의 장을 열고 있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홍기대 위제너레이션 대표를 포춘코리아가 만났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지난 7월 초,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위제너레이션 사무실을 방문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맨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신세대 아이콘 클라라의 실물 크기 입간판이었다. 클라라는 최근 위제너레이션과 함께한 ‘저소득 여성 유방재건 수술 지원 캠페인’을 통해 약 1,500만 원 상당의 기부금을 마련했다. 더욱 눈길을 끈 건 클라라 입간판 아래에 적인 문구였다. ‘클라라와 1:1 요트 데이트 하실 분?’이라고 적힌 문구를 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위제너레이션의 기부활동은 기존 자선단체의 활동과 차별화된다. 스타트업이 진행하는 기부활동이라는 점도 분명 독특하다. 하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스타와 함께하는 기부활동이라는 점이다.
선진국에 뿌리박힌 기부의 생활화
위제너레이션은 기부도 하고 스타와의 특별한 이벤트도 경험할 수 있는 자선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다. 지난 2012년 서비스 론칭 이후 가수 산다라박, 카라, 걸스데이, 션(지누션 멤버), 인순이, 클라라 등 60명이 넘는 연예인 및 유명인사들이 재능기부 방식으로 100개 이상의 기부 캠페인을 펼쳤다. 그동안 펼친 캠페인을 통해 거둬들인 기부금 액수는 5억 원 이상이다. 기부를 모티브로 한 신생 스타트업이 이뤄낸 성과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스타와 함께하는 기부는 단지 모금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기부자들은 각 모금 캠페인을 함께한 스타들과의 저녁식사, 파티, 공연, 강연 등 특별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이 같은 아이디어를 사업화 한 주인공은 바로 홍기대 위제너레이션 대표다. 그가 기부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홍 대표는 말한다. “저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직장 때문에 브라질, 스페인, 멕시코 등 남미지역에서 생활했죠.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남미국가는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최근 브라질 월드컵 기간 중에도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를 중심으로 ‘반(反)월드컵’시위가 벌어기도 했었다. 홍 대표는 유년시절, 이 같은 극심한 빈부 격차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며 훗날 이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자연스레 기부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홍 대표가 고등학교 시절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어요. 학교 친구가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었죠. 당시 전교생과 부모들이 합심해 주말마다 그 친구를 돕는 베이크 세일(Bake Sale, 가정에서 구운 빵을 판매하는 행사)을 진행했었습니다. 물론 수익금은 전부 뇌종양 치료 및 수술비로 사용됐죠.” 홍 대표가 당시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베이크 세일이 무려 1년 이상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뿌리박힌 ‘기부의 생활화’가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선진국은 일상 생활 속에 기부가 녹아 있습니다. 기부활동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생활이라는 거죠.” 기부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에 돌아온 홍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야 할지, 창업을 하면 과연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나가야 할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창업, 멘토, 그리고 위제너레이션
그때 홍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멘토 한 명을 만나게 된다. 바로 벤처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안철수 연구소(현 안랩)의 창업자 안철수 당시 교수(현 국회의원)였다. 홍 대표는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한 강의를 수강하면서 안 교수를 처음 만났다. 홍 대표는 당시 안 교수의 강의가 자신의 창업 방향을 정해준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홍 대표는 말한다. “회사의 운영 목적은 분명 이윤창출이지만 이윤창출이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고 안 교수께서 말씀하셨죠.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 했습니다. 제가 기부를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한 데에 아마 안 교수님의 그 말씀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안 교수와의 인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홍 대표가 처음 위제너레이션을 창업하고 얻은 사무실은 경기도 수서에 위치해 있었다. 놀랍게도 그 사무실은 과거 안 교수가 안철수연구소 창업 당시 사용했던 첫 번째 사무실이었다. “최근에도 가끔 안부를 여쭙고 통화도 해요. 위제너레이션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격려를 해주셨죠. 안 교수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영원한 멘토입니다.”
이후 홍기대 대표는 패스트트랙아시아 첫 인큐베이팅 회사 ‘굿닥’에서 인턴 활동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홍 대표는 그곳에서 창업을 배우며 차근차근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멕시코 친구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창업 기회를 모색하던 홍 대표는 우연히 ‘크라우드펀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SNS를 이용해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활동인 크라우드펀딩은 당시 미국 IT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 받고 있었다.
평소 기부활동에 관심을 보여 왔던 홍 대표는 심사숙고 끝에 크라우드펀딩 기반의 창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국내 정서를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홍 대표는 단순히 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기보단 사회적인 목적과 사람들의 참여를 결합시키기 위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것이 바로 스타를 통한 기부캠페인이었다.
우여곡절 겪은 ‘스타 기부 캠페인’
국내시장에서 유명인사, 특히 연예인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홍 대표는 영향력 있는 유명 연예인과 함께 기부활동을 하면 사회적 관심과 참여를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신생업체를 믿고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줄 유명인사를 섭외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때문에 홍 대표는 발로 뛰고, 또 뛸 수밖에 없었다. 홍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스타 섭외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모 연예인의 경우, 섭외를 위해 친척 결혼식까지 가서 서빙을 했었지만 결국 실패했죠. 7전8기 정신으로 도전해 섭외에 성공한 분도 있었고요. 저희의 순수한 의도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스타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홍 대표에게 단비가 된 존재는 바로 배우 정혜영의 남편이자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가수 출신 사업가 션이었다. 우연히 기부행사에서 션을 만난 홍 대표는 식사자리에서 위제너레이션의 기부사업을 설명하며 그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션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한 후, 섭외의 물꼬가 트였다. ‘션이 했다면 믿고 함께할 수 있겠다’는 연예인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위제너레이션은 약 100개 이상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홍 대표가 기억하는 가장 특별한 캠페인은 무엇일까? 홍 대표는 최근 일본 국적 방송인 사유리와 함께한 백혈병 환아 지원 캠페인을 꼽았다. “고3짜리 백혈병 환아가 있었죠. 이 친구는 당장 1년 후부터 성인 환자로 분류돼 지원을 받을 수 없었어요. 당시 사유리 씨가 개인적으로 1,000만 원을 지원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수술 후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그의 말은 이어졌다. “세상을 떠난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수술까지 받았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요. 가볍고 마음 편하게 눈 감을 수 있다고 말이죠. 마음이 울컥하면서도 더 열심히 기부활동을 펼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죠.”
선진 기부문화 정착 꿈꾸는 ‘위제너레이션’
끊임없는 기부캠페인으로 스타트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위제너레이션과 홍기대 대표. 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수익모델 마련이 홍 대표의 떠안은 숙제 중 하나였다.
위제너레이션의 수익모델은 모금 수수료다. 하지만 수수료를 모든 기부활동에서 받는 건 아니다. 현재 위제너레이션이 운영하는 기부모델은 ‘순수 기부’와 ‘스타이벤트 기부’다. 순수 기부는 말 그대로 수수료 없이 모금액 100%를 전액 기부하는 방식이다. 기부자들은 순수 기부와 대표스타이벤트 기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저희는 기부 에이전시입니다. 기부 문화가 정착된 해외 선진국에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는 시스템이죠. 최신 IT기술과 창의적 접근으로 전문적으로 모금을 대신해 자선단체의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부의 생활화, 선진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위제너레이션은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기부형태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홍 대표는 조만간 한류스타를 활용해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현지 기부 캠페인과 자선경매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홍 대표가 추구하는 위제너레이션의 궁극적 목표는 국내에 선진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선진기부문화의 필수 요건은 ‘열린 기부, 능동적 기부, 즐거운 기부’다. “눈앞에 힘든 이가 보여야 감정적으로 기부를 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자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기부를 하기보단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도움을 줘야 하죠. 기부의 지속성은 바로 즐기는 기부에서 나오는 법이니까요.”
홍기대 대표에게 벤처란?
벤처란 꿈을 현실화하고, 현실을 꿈에 가깝게 가게 만드는 매개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