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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건설한 비밀에 싸인 억만장자

THE SECRETIVE BILLIONAIRE WHO BUILT SILICON VALLEY

존 아릴라가 시니어 John Arrillaga Sr. 는 어떻게 캘리포니아 과수원 땅을 구글, 애플, 휼렛-패커드, 시스코 등 첨단 IT 기업들이 들어선 고가의 사무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을까.
BY JP MANGALINDAN


최근 몇 달간, IT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네타 산 호세 국제공항(Mineta San Jose International Airport) 근처에 위치한 약 18.5 헥타르의 대형 사무공간에 입주 예정인 ‘X사’가 과연 어느 회사일지 추측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왔다. 일부 인사들은 애플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쿠퍼티노 Cupertino와 서니베일 Sunnyvale *역주: 실리콘밸리 내 지역들 밖 새로운 곳으로 사옥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7층 건물 10채와 7,000대 이상 주차가 가능한 이 문제의 사무공간은 먼로 파크 Menlo Park에 위치한 페이스북 본사 건물보다 2배나 큰 규모를 자랑한다. 구글 분위기에 딱 맞는 지하 수영장과 구름다리, 청사진에 그려진 축구장 등으로 보아 구글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삼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밖에도 머나먼 샌디에이고에서 드디어 벗어나 실리콘밸리로 오는 퀄컴 Qualcomm이라거나 EMC *역주: 정보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혹은 SAP이라는 의견도 있다. X사는 포춘 100대 기업이라고 실수로 얘기 한 산 호세 시장의 말을 근거로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나 시스코 Cisco라 여기는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부동산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언급되는 여러 이름 중에는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수수께끼, 실리콘밸리의 역사, 더 나아가 어쩌면 실리콘 밸리의 미래와도 밀접하게 관련된 이가 따로 있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 밖 사람들에겐 매우 낯선 이름이다. 바로 이 프로젝트 개발사인 피리 아릴라가 Peery Arrillaga의 공동 창업주 존 아릴라가 시니어(77)가 바로 그 인물이다. 물론 현대 IT산업의 주역은 산타 클라라 밸리 Santa Clara Valley에 ‘실리콘’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준 반도체 사업가 고든 무어 Gordon Moore와 로버트 노이스 Robert Noyce 같은 선구자, 차고에서 시작된 성공 신화를 완성시킨 빌 휼렛 Bill Hewlett과 데이브 패커드 Dave Packard를 비롯한 일군의 기업가, 그리고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존 아릴라가-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 투자가인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sen의 장인이기도 하다-는 IT혁명의 요람이 된 무대, 실리콘밸리를 건설한 실제 주인공이다.

일찍이 1960년대 부동산 개발업자 아릴라가와 그의 동업자 리처드 피리 Richard Peery는 산타클라라 밸리의 과수원을 사들여 수백 헥타르 규모의 대규모 사무공간을 건설했다. 그 후 인텔, HP, 애플, 구글 등 수많은 기업이 입주해 그들의 예상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둘은 약 111 헥타르 규모의 사무공간을 건설했고, 수십억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판매하고 임대했다. 이를 통해 아릴라가는 25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벌어들였는데 아마 실리콘밸리의 주민들 중 IT기업인을 제외하면 최대 자산가일 것이다. 동업자 피리 또한 수십억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다.

아릴라가는 부동산 개발업계의 거물답게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재건축 과정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수억 달러와 함께 160채의 건물을 기부했는데, 이 중에는 아릴라가가 2005~2006년에 철거 및 재건축한 스탠퍼드 경기장도 있다. 스탠퍼드 대는 미국 최고의 대학 체육 프로그램에 수여되는 리어필드 스포츠 디렉터스 컵 Learfield Sports Directors’ Cup을 지난 6월 20회 연속으로 수상하는 등 전미대학경기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NCAA) 주최 대회에서 전대미문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 또한 아릴라가의 꾸준하고 세심한 후원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허황된 주장은 아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아릴라가에겐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IT업계의 분위기와 완전히 반대적인 측면이 있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저스, 래리 엘리슨 Larry Ellison *역주: 오라클의 창업자 등 자기 과시적인 창업자들과 달리 아릴라가는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길 꺼리며 사생활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릴라가는 상 받기를 싫어하고, 건물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으며,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한다(같은 맥락에서 이번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스탠퍼드대 교정 곳곳에 자신의 성(姓)을 딴 건물이 있기는 하지만, 아릴라가는 대부분의 기부 활동을 익명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지인, 친척, 사업 파트너들 (이들 중 상당수는 익명을 요청했다) 수십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아릴라가는 자신에 대한 칭찬을 못 견뎌 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잉글우드 Inglewood의 모닝사이드 고등학교(Morningside High School) 동창인 오랜 친구 두 사람은 “아릴라가는 칭찬을 들으면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고 말했다. 한 친구는 “그의 사전에는 ‘존경 받는다’라는 단어가 없다”고 단언했다.


아릴라가는 로스앤젤레스 남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잉글우드의 중하류층 가정에서 5남매 중 한 명으로 자랐다. 아버지 개브리얼 Gabriel은 프랑스와 스페인에 걸쳐 있는 바스크 Basque 지역 출신의 후예로 작은 도매상을 운영했다. 어머니 프리다 Frieda는 집에서 5남매를 기르며 동네의 세탁부 일을 겸했다. 돈은 언제나 부족해 아이들은 양상추를 넣은 빵으로 배를 채워야 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특별히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그때조차도 일곱 식구가 스테이크 한 접시를 나눠 먹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키 193cm에 몸무게가 74kg이었던 아릴라가는 졸업 사진 촬영 때 입을 양복 재킷과 셔츠, 넥타이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궁핍했다. 화학 선생님에게 빌린 양복은 건장한 몸집의 그에게 소매가 15cm나 짧았다. 1955년 모닝사이드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릴라가는 농구 장학생으로 스탠퍼드대에 입학한 후, 교내 우편 배달부터 정원사까지 온갖 일자리를 전전하며 학비를 벌었다.

아릴라가는 농구선수로서 장학금을 받을 만큼 좋은 모습과 실력을 보였다. 4학년 때는 주장을 맡아 경기당 14.2득점으로 팀 내 1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 올아메리칸 팀 3진 *역주: NCAA가 주관하는 대학농구 최고선수 선정투표에 뽑히기도 했다. 스탠퍼드대 시절은 아릴라가의 인격형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친구이자 윌슨 손시니 굿리치 앤드 로사티 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 로펌 사장인 래리 손시니 Larry Sonsini는 아릴라가에 대해 “가난했던 유년기와 스탠퍼드대 농구선수 시절, 그 이후에 찾아온 일련의 성공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항상 잊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릴라가는 스페인에서 1년 넘게 프로 선수로 활동한 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전신인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San Francisco Warriors로 이적했다. 그러나 6주 만에 팀을 탈퇴했다. 농구 실력 문제라기보단, 유부남이면서도 여성 팬들과 잠자리를 갖는 일부 동료의 무분별한 사생활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성격은 자신의 딸 로라 Laura가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가 중시하는 가치를 소중히 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였다(로라는 마크 앤드리슨의 아내이다. 자선활동에 대해 쓴 그녀의 저서 ‘나눔 2.0(Giving 2.0)’은 2011년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릴라가는 이후 팰로 앨토 Palo Alto에서 상업부동산 회사 르노앤드 핸들리 Renault & Handley의 중개인으로 일했는데, 자신이 맡은 부동산이 돋보이도록 조경을 직접 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아릴라가는 60년대 초반 그의 삼촌을 통해 리처드 피리를 만났다. 당시 웰스 파고의 중역이었던 피리의 삼촌은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많을 것이라며 조카를 소개해 주었다. 팰로 앨토에서 촉망 받는 인재였던 피리는 일찌감치 사업가적인 재능을 보였다. 이미 중학생 때 스탠퍼드대 교정 내 모든 사탕 자판기를 소유했고, 이후 미니골프 연습장을 열어 10대에 사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산타클라라 밸리-실리콘 밸리의 옛 이름이다?는 자두, 아몬드, 체리 과수원이 대부분인 미개발 지역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지역의 엄청난 잠재력을 간파했다. 반도체 산업은 이미 상승세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인텔을 비롯한 신생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업무지구인 약 280헥타르 규모의 스탠퍼드 산업단지(Stanford Industrial Park, 휼렛-패커드 본사는 지금도 이곳에 있다) 만으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피리와 아릴라가는 자기 자본 2,000달러와 약간의 외부 자금을 합한 돈으로 과수원 땅 수백 헥타르를 사들였다. 이어 입주자를 구하지 않은 채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지역 사람들의 눈에는 전대미문의 도박이었지만, 두 사람은 사무실 공간을 일단 지으면 입주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피리 아릴라가사의 초기 주요 사업 모델은 서니베일, 산호세, 마운틴 뷰 등에 틸트 공법-비용 효율성이 높고 공사 기간이 짧다-으로 저층 콘크리트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또 두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본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아릴라가는 남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종말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앤드리슨도 “장인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바로 빚을 안 지려는 태도”였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장점을 활용했다. 부동산업에 다년간 종사한 피리는 어떤 땅이 좋은 투자처인지 파악하는 감각이 탁월했고, 건설허가를 빨리 받는 노하우도 갖고 있었다. 아릴라가는 협력업체 및 입주자들과의 협상을 맡았다. 자신들의 이름을 딴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회사를 앤드리슨과 공동으로 운영 중인 벤 호로비츠 Ben Horowitz는 아릴라가를 “인간 심리를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있는 천재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손시니는 “아릴라가에겐 협상을 통해 상대에게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도록 이끌어낸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이 정도 선에서 합의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아릴라가는 1968년 공립학교에서 6학년 교사로 근무하던 프랜시스 매리언 쿡 Frances Marion Cook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프랜시스는 이후 팰로 앨토 의료 재단(Palo Alto Medical Foundation)과 페닌슐라 시각장애인 센터(Peninsula Center for the Blind and Visually Impaired) 등에서 소장과 이사직 등을 역임했다. 첫 아이인 존 주니어가 태어난 후에는 교사 일을 완전히 그만뒀고, 11개월 후에는 딸 로라가 태어났다. 현재 스탠퍼드대 교수인 로라는 자선활동에 대한 부모의 관심을 이어받아 교육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단체 로라 아릴라가-앤드리슨 재단(Laura Arrillaga-Andreessen Foundation)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 프랜시스는 20개월간의 투병생활 끝에 1995년 폐암으로 타계했다. 스탠퍼드의 동문회관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몇 년 후 아릴라가는 호놀룰루 출신의 전직 변호사 지오이아 파시 Gioia Fasi와 재혼했고, 두 사람은 포르톨라 밸리 Portola Valley에 위치한 약 80헥타르 규모의 주택 단지에서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아릴라가는 16헥타르에 달하는 단지 내 잔디밭을 일주일에 여섯 시간 이상을 들여 직접 손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릴라가와 피리는 사업 초기부터 부동산의 가격과 가치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갖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거래에 임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WSJ 자산개발(WSJ Properties)의 공동 창립자이자 피리 아릴라가사의 오랜 사업 파트너인 보이드 스미스 시니어 Boyd Smith Sr.는 피리가 “돈은 (팔 때가 아니라) 살 때 버는 것이다. 한 달 후면 가격이 오를 물건을 좋은 가격으로 사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물론 두 사람이 산 농지는 한 달 안에 가격이 오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이 되자 그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타 클라라 밸리는 미국의 IT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전 세계 기술자와 기업가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반도체 산업 등 각종 혁신이 융성하는 이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시스코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기존 사무실을 떠나 피리 아릴라가사가 지은 새 업무공간이 완성되기 무섭게 입주를 했다. 그때부터 회사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부동산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 꼭 찾는 임대주나 개발업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피리 아릴라가사는 링크트인, 구글, 애플 등의 사옥을 건설하고 판매했다. 또 입주자를 확보하지 않은 채로 상업업무공간을 건설해 소규모 세입자들에게 분할 임대하기도 했다. 피리 아릴라가 사의 성공 비결 중에는 입지 선정뿐만 아니라 디테일에 집중하는 태도도 빼놓을 수 없다. 디테일에 대한 아릴라가의 관심은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많은 이가 증언하고 있다. 1억 달러가 투자된 스탠퍼드 경기장은 아릴라가와 3개조 교대 근무자들이 시간을 엄수한 덕분에 10개월 만에 완공될 수 있었다. 아릴라가가 직접 일꾼을 뽑았을 뿐만 아니라 구내 식당 메뉴, 좌석의 재질, 스코어보드 주변에 심을 야자수(다른 곳에 있던 나무들을 뽑아왔다)까지도 직접 챙겼다.

요즘 아릴라가는 일주일에 절반 정도를 전용 골프 카트를 타고 스탠퍼드대 교정을 돌아다니며 보낸다. 동시에 진행 중인 최소 11개의 다른 프로젝트들을 챙기면서도 그는 스탠퍼드대 경기장 인근을 추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올여름 개장을 목표로 건설 중인 배구 경기장도 그중 하나다.

이 경기장은 잔디 슬로프와 야자수, 몬터레이 Monterey-아릴라가가 특히 좋아하는 지역이다-해변의 고운 모래가 깔린 경기장 4곳 등을 갖추고 있다. 이전에 진행한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아릴라가는 스탠퍼드 경기장 건설을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감독하고 있다. 주변 풍경과 멋지게 어울리는 합금강 소재를 쓴 외벽 펜스를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을 정도다.

아릴라가는 이처럼 디테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는다. 사업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래 조건과 고용계약에 집착하는 업계의 일반적 모습과 달리, 그는 공사 인부들과 단 한 번도 정식 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


아릴라가의 사업 방식은 일견 구시대적이면서도 매우 뛰어나고 배울 점이 많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유력 인사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차세대 기업가와 중역들이 아릴라가-벤처 기업 이사라는 편안한 자리를 고사했다를 롤 모델로 삼는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부동산 개발 관련 노하우를 얻으려 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지혜를 구하러 꾸준히 다시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앤드리슨이 정기적으로 장인을 찾아 조언을 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호로비츠는 “앤드리슨이 장인의 조언을 간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릴라가는 사위에게 부동산 문제부터(“인수 계약은 과도한 차입으로 부실해진 판매자와 하는 게 최선이다”) 바람을 왜 피우면 안 되는지(자신의 존재로 설명이 되는 셈이다)까지 여러 면을 충고한다. 호로비츠는 아릴라가에 대해 “누구라도 함께 사업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화장실 타일이나 조경 같은 세밀한 요소까지 살피는데도 불구하고, 아릴라가가 지은 건물이 특별히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실리콘밸리의 사무 공간 상당수가 그렇듯 실용성에 중점을 둔 건물들이다. 하지만 일종의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릴라가의 개발 방식은 고유의 미학과 명확성을 자랑한다. 피리아릴라가사의 홈페이지에는 밀피타와 산호세 남부 등 실리콘밸리 남부에 위치한 입주 가능 건물 수십 채가 올라와 있다. 아직 언론에는 정체를 밝히지 않은 X사가 입주(혹은 이주나 확장)할 예정이며, 공항이 위치한 산호세 북부 지역에는 IT 기업 활동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리콘밸리의 시세가 점점 오르는 상황에서 이 지역의 추가적인 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측근들에 따르면, 아릴라가는 앞으로도 성장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 대한 수요 창출은 대부분 사업확장과 인재영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무공간 부족을 겪고 있는 구글, 애플, 링크트인 같은 IT 대기업들이 이끌고 있다. 이들 기업의 엄청난 확장 규모는 아릴라가가 1990년대 닷컴 호황기 시절에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이 역시 동료들의 증언이다).

앤드리슨은 “실리콘밸리 현상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이 장인의 생각이며, 이에 대한 신뢰는 굉장히 깊고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장인에게 “만약 열정이 넘쳤던 창업 초기로 돌아가 다시 투자할 수 있다면 미국의 어느 지역에 투자하겠냐”고 물었다.

아릴라가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실리콘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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