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비디오게임 속에서 어두운 복도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 현실에서 그런 곳으로 들어갈 때와 유사한 생리적, 감정적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만 그런 경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일으킬 정도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세컨드 라이프’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게임에서 살해 또는 성추행 당한 게이머들이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규모 학술연구는 진행된 바 없다. 이와 관련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정신과 전문의 스킵 리초 박사는 설령 게임 내에서 스트레스 경험을 했더라도 더 이상 그 게임을 하지 않거나 온라인 게임 자체를 그만두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가상 체험이 강력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리초 박사 또한 가상현실 환경을 이용해 PTSD 환자들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방식의 치료가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연구자들은 고소공포증 환자에게 육교나 발코니처럼 높은 곳을 가상체험 시킴으로써 공포에 맞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 이후에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와 9·11 테러 생존자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치료가 실시됐다.
리초 박사팀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를 위한 가상체험 치료 시스템을 개발했다. 환자들은 치료사의 통제 하에 중동지역을 배경으로 한 10여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연구팀은 가상환경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자 전투화가 자갈을 밟는 소리, 군인들의 농담, 현지에서 들을 수 있는 새소리 등을 삽입해 현실감을 높였다. 현실감이 높을수록 치료효과도 좋아진다는 학문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참전용사에 대한 연구도 이렇게 미비할진데 온라인 유저 대상의 연구야 말할 나위도 없다. 혹여 누군가 게임이나 댓글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뭐 그딴걸로 고민이야!’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기 일쑤다. 하지만 키르완 박사는 이런 반응에 주눅들지 말고 자신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숨기고만 있으면 심리학자들이 고통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의 필요성을 직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PTSD 환자는 아니더라도 PTSD 환자에게 시행하는 가상현실 요법을 통해 치료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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