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이 새로운 CTS를 선보였다. 캐딜락은 CTS를 럭셔리 중형 스포츠 세단이라고 부른다. 독일차의 성능과 일본차의 안락함에 치여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캐딜락이었다. 새로 선보인 올 뉴 CTS는 캐딜락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과제를 안고 있다. 과감한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실내, 거기에다 훌륭한 성능을 겸비한 건 확실해 보인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1902년 헨리 릴런드가 설립한 캐딜락은 아메리칸 럭셔리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처음부터 프리미엄을 추구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은 캐딜락을 성공의 상징처럼 몰고 다녔다. 이 뿐인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애용했던 자동차 브랜드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종황제 어차로 사용돼 인연이 깊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캐딜락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애매한 상품성에 기름 많이 먹는 미국차라는 딱지를 떼지 못해 외면당했다. 한국에서 캐딜락을 판매하고 있는 지엠코리아(GM KOREA)도 이런 부진을 인정한다. 하지만 미래는 밝게 본다.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경쟁사들을 위협할 것이라며 전투의지를 불태운다.
그 첫 번째 병기가 올 뉴 CTS다. 2002년 첫 선을 보인 CTS의 3세대 모델이다. 몸집을 확실히 키워 체급을 제대로 맞췄다. 2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어 다운사이징 경향도 따랐다. 캐딜락에서 올 뉴 CTS에 걸고 있는 기대는 크다.
화려한 디자인
캐딜락은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변화를 줬다. 2000년대 들어 시작한 변화는 올 뉴 CTS에서 만개한 것처럼 보인다. 올 뉴 CTS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외관을 갖고 있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라디에이터 그릴, 수직으로 박힌 헤드라이트가 단번에 눈길을 끈다. 앞바퀴 위에서 시작해 범퍼 아래까지 이어지는 LED 시그니처 램프는 과거 1960년대를 이끈 3세대 드빌에 대한 오마주다. 거의 수직으로 날카롭게 떨어지는 프런트 라인은 긴 후드와 어울려 매우 역동적인 실루엣을 보여준다. 이 모든 요소가 날카롭고 분명한 단면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
길고 낮은 차체는 시원하게 쭉 뻗은 느낌이다. 차체 옆 허리라인을 올렸고 쿠페 같은 지붕선은 스포츠 세단의 특성을 더욱 강조한다. 날렵하고 세련된 사이드미러와 LED 스톱 램프가 추가된 길쭉한 스포일러는 올 뉴 CTS를 더욱 고급스럽게 만든다.
실내 역시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수작업으로 마무리된 시트와 프런트 패널, 화려한 조명들이 차량 안쪽을 감싸고 있다. 취향에 따라 사펠리 원목과 엘름 원목, 또는 카본 파이버와 같은 각기 다른 소재로 마감한 인테리어 테마를 선택할 수도 있다.
LCD계기반은 운전자 성향에 따라 그래픽과 표시 내용을 바꿀 수 있다. 8인치 화면이 달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CUE)은 진동 피드백을 갖춘 터치식으로 작동한다. 내비게이션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모니터를 통해 각종 차량 정보가 표시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터치식 버튼 반응이 한 박자 늦는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상등을 켜려면 2초 동안 접촉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운전대에 붙은 다기능 버튼은 돌출식으로 돼 있어 운전 중 손쉬운 조작을 돕는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하단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센터페시아가 위로 열리며 숨어있던 수납 공간이 드러난다. 가죽으로 감싼 컵홀더 커버 역시 터치로 작동하는 전동 슬라이드 방식이다.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달렸다. 속도, 길안내, 엔진회전수 등 필요한 정보를 달리해 설정할 수 있다. 공간은 꽤 여유롭다. 5미터에 가까운 전장(4,965mm)과 긴 휠 베이스(2,910mm) 덕에 앞 뒤 좌석 모두 넉넉하다. 운적석 시트는 20개 방향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올 뉴 CTS가 후륜구동 타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뒷좌석 중간 부분(센터터널)이 지나치게 돌출돼 있다. 이때문에 3명이 탑승할 경우 중간 탑승자는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옵션은 가득하다. 뒷창문 수동 커튼과 전동식 뒷유리 커튼은 물론 전용 공조기와 3단 열선 시트를 갖췄다.
부드럽고 강력한 힘
시승차량은 4륜구동 모델이 아닌 후륜구동 모델이다.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버튼을 눌렀다. 묵직한 음색이 들렸다. 기어 레버를 드라이브 모드로 옮기자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올 뉴 CTS는 자신이 스포츠 세단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올 뉴 CTS는 2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다. 2리터 터보엔진은 V6 엔진을 모는 듯 부드러운 느낌이 일품이었다. 힘의 부족함도 전혀 없었다. 가솔린 직분사 방식에 트윈스크롤 터빈을 결합해 최고출력 276마력(5,500rpm), 최대토크 40.7kg·m(3,000~4,500rpm)를 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6.8초다. 고속도로에 올라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았다. 엔진회전수가 5,000rpm까지 치솟았다. 첫 번째 시프트업은 4,500rpm에서 이뤄지고 시속 100km의 속도가 유지되면 2,000rpm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조금씩 오르내린다. 6단 자동변속기는 마그네슘 시프트 패들까지 갖췄다. 변속기 노브 위에는 M버튼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6,950rpm까지 엔진을 돌린 뒤 변속된다. 카랑카랑한 소리를 토해내며 운전자를 흥분시키는 맛이 제법이었다. 공인 복합연비는 리터당 9.6km다.
올 뉴 CTS는 차체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전륜과 후륜에 각각 맥퍼슨 스트럿과 5 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앞바퀴에는 이탈리아 브렘보사의 브레이크를 달았다. 달려보면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네 바퀴의 묵직함이 고루 느껴진다. 무게배분을 50 대 50에 가깝게 맞추고 경량화와 저중심 설계를 통해 이뤄낸 성과다. 고속 주행에서 발휘되는 차체 안정감도 훌륭하다. 꽤 빠른 속도에서도 웬만한 커브나 추월을 위한 급격한 핸들링을 잘 받아들였다.
달리기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터보가 작동하기까지 지연되는 게 살짝 느껴졌다. 이른바 터보랙이 존재하는 것이다. 트윈스크롤 터빈을 달았지만 가속페달에 반응하는 엔진 대응이 반 박자 늦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자연흡기 방식 고배기량 가솔린 엔진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정숙성과 승차감은 매우 우수하다. 한계 속도를 내도 엔진음이나 풍절음, 차체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저주파 소음을 감쇄시키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기술과 바람소리를 막아주는 라미네이팅 코팅 글래스가 큰 몫을 했다.
다양한 첨단 정치들은 올 뉴 CTS 소유자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요소다. 헤드라이트에는 어댑티브 포워드 라이팅(AFL) 시스템이 적용됐다. 속도와 조향각도에 따라서 램프 조사각이 회전되는 첨단 장치다. 저속으로 주차를 할 때엔 조향각이 더 커진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쉽게 빼낼 수 있어 꽤 유용했다.
이 밖에도 차량 전후측방 경고사항을 운전석 시트에서 진동으로 알려주는 햅틱 시트, 후방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알려주는 후방통행차량 경고 장치, 후방 카메라 등으로 구성된 드라이버 어웨어니스 패키지도 매력적인 안전 시스템이었다.
캐딜락 올 뉴 CTS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행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디젤승용차가 던지는 진동과 소음에 지친 이들에게 한번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기에 터보 가솔린 엔진이 선사하는 부드러움과 폭발력은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만하다. 독일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탓에 경쟁이 쉽진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러모로 봤을 때 올 뉴 CTS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럭셔리 중형 스포츠 세단이다. 올 뉴 CTS의 국내 판매 가격은 5,450만 원부터 시작한다. 고급형인 프리미엄은 6,250만 원, 사륜구동은 6,900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