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세계 경제의 화두는 세계화였다. 러시아와 중국이 이야기의 흐름을 급격히 바꿔놓기 전까지는 최소한 그랬다. 이제 서구 대기업들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해피 엔딩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느냐이다.
By IAN BREMMER
홍콩 당국이 지난 9월 시작된 대규모 민주화 운동 진압에 나선 후였다. 시위 당시 홍콩 경찰들에게 최루탄을 제공했던 영국 기업이 판매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는 분명히 기업 PR을 위한 결정으로 보였다. 하지만 긴장 고조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회사는 단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산업에 속한 기업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발생한 여러 위기 이후, 다국적 서구 기업들 역시 전략 재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정학적 불꽃(geopolitical fireworks)’-베를린 장벽 붕괴 후 가장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은 새로운 동·서 분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러시아와의 핵 교착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중국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는 다르게 서구 세계와의 분쟁에 아무 관심이 없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변화로 기업계에 신냉전의 기류가 발생해 기업들이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른 이후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독점’을 단속하겠다며 포춘 500대 기업 중 수십 곳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날로 격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의 제재조치가 강화되면서, 러시아 기업들도 앞다퉈 미국 기업들과 관계를 끊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러시아를 이탈한 자금이 무려 750억 달러에 이르러 2013년의 총 자금 이탈량을 이미 넘어섰다. 러시아는 서구로부터의 식품 수입을 금지했고, 해외 자금을 몰수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서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보편적 가치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 덕분에 이들은 유통망을 개선하고 새로운 소비자들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기업들-정부가 아닌-과도 경쟁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 수많은 기업은 기업활동 방식과 장소에 대한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 시장이 공정하지 않다는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늘어나는 중국의 소비자 층과 풍부한 노동력에 투자하는 것은 서구 기업과 중국 기업 모두에게 압도적인 윈윈 전략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난 35년간 중국에서 부침 없이 성장해온 서구 기업들은 이제 점점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더 많은 분야에서 더 고도화되고, 경쟁력도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예전처럼 자금이나 수준 낮은 기술에 더 이상 목말라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서구 경쟁사들은 이제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전보다 환영 받지 못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외국 기업들이 지난해 41%에서 올해 60%로 크게 늘어났다. 중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도 지난 8월 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중국 정부는 더 이상 환영매트를 깔지 않는다(Beijing Pulls Back the Welcome Mat)’ 기사 참고>
이러한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진행 중인 획기적인 경제 개혁이 서양 기업에 충격파로 다가오고 있다. 구조적 개혁, 반부패운동 및 금융 자유화 덕분에 중국 시장은 앞으로 외국 기업에 더욱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기업 활동 무대의 확실성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경제 개방을 위한 지지층 형성을 위해 시 주석은 정치 단속을 하고, 대중들의 압력을 피할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현재 홍콩이 그 교차점에 놓여 있다. 중국 본토의 급속한 경제 성장 때문에, 홍콩의 경제적 중요성은 예전만 못해졌다. 1997년 중국 총 GDP의 15%를 차지하던 홍콩은 이제 3%도 채 되지 않는다. 동시에 시 주석은 예전보다 정치적 반체제나 서구 스타일의 거버넌스를 더 경계하고 있다. 그는 시위자들이 요구하는 정치적 양보 같은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들도 비슷한 역풍을 맞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경제 개혁으로 피해를 본 자국민을 달래기 위해 서양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러시아는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에 과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다. 러시아의 제재 조치는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러시아 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자본조달 비용은 이미 늘었고, 러시아가 향후 10년간 현재 수준으로 석유를 생산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리고 결과야 어찌 되건, 푸틴은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에서 그의 지지율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식료품 생산업자들은 수입 금지 조치를 기회로 여기지만, 나머지 러시아 시민들에겐 가격 급등과 위험한 지역에서 식품을 수입해야 할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푸틴의 패러독스(The Putin Paradox)’ 기사 참고>
서구 기업들은 자신의 통제를 넘어서는 지정학적 상황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예컨대 최근 발생한 J.P. 모건 체이스 J.P. Morgan Chase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러시아가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이 대거 포착되고 있다.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사건 중 하나로, 8,300만 가구와 수많은 기업에 타격을 입혔다. 러시아 정부가 가진 수단(고도화된 금융 해킹 기술)과 동기(미국의 제재에 대한 보복)를 고려하면, 지금까지의 상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은 앞으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워싱턴은 이 게임에서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 미국 정부는 편파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IT 분야를 통해 국익을 얻으려 했다. 구글은 사이버 공격과 사용자 정보공개 압력, 그리고 중국 정부의 바이두 Baidu 편애로 결국 중국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스노든 Snowden의 폭로에 따르면, 미국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 정부 역시 기술 회사에 압력을 넣어 국가안보국(NSA)이 주도하는 감시 활동에 참여토록 했다. 미 규제 당국은 미국 정보기관의 우려를 기반으로 중국 통신 대기업 화웨이 Huawei의 미국 내 통신 장비 판매를 금지했다.
현재까진 중국에서 활동하는 주요 서구 기업 대다수가 최근의 폭풍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 수익 잠재력을 감안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중국 정부가 애플을 비판하는 미디어 캠페인을 벌이자, 애플 CEO 팀 쿡 Tim Cook이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항복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다른 회사들은 중국에서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해버렸다. 예컨대 어도비 Adobe는 중국에서 R&D 사업을 폐쇄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구 세계와 연결되는 다리를 태워버리고 있지만, 중국 쪽을 향해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러시아는 오랜 협상 교착 상태를 깨고 중국에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공급한다는 협정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서구 세계와의 관계가 악화 되면서, 가격 협상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또 전략적으로 주진하고 있는 동시베리아 반코르 Vankor 석유 프로젝트에 중국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중국 측도 러시아 에너지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반색하고 있다.
규칙을 중시하는 글로벌 시장에 저항하고 있는 두 핵심 국가 러시아와 중국. 그들은 이제 전보다 더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양국이 서로를 향해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미국 기업들-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보편적 경제 가치-의 국제적 입지가 더욱 지키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언 브레버 Ian Bremmer는 유라시아 그룹 Eurasia Group의 회장이자, 뉴욕 대학교 글로벌 리서치 교수다. 그의 트위터는 @ianbremm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