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내수 공략과 수입차 견제를 목적으로 대형 앞바퀴 굴림차 아슬란을 내놓았다. 현대차는 수입차의 맹공격을 받았던 대형 세단 시장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단 아슬란이 지닌 상품성은 합격점으로 평가된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현대자동차가 가솔린 엔진을 얹은 앞바퀴 굴림차 아슬란을 출시했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자리 잡은 아슬란이 출시되기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껍데기만 바꾼 그랜저 아니냐’, ‘아슬란, 잘 팔릴까? 아슬아슬하다’, ‘수입차로 갈아타는 게 정답이다’ 등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아슬란이 맡은 임무는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공세를 막아내는 것이다. 수입차들의 공세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현대차는 안방 사수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현대차 내수 점유율은 2014년 4월 44.6%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낮아지다가, 9월에는 최저치인 37.2%까지 하락했다. 10월에는 41.9%로 반짝 반등했지만 확실한 수성을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수입차가 자사 수요층을 잠식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김충호 현대차 사장은 2014년 10월 아슬란 출시행사에서 “쏘나타와 그랜저 고객이 다음 선택으로 수입차를 선택할 때 가슴이 아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다양한 모델을 내세워 틈새시장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수입차 업계의 전략에 뒤늦게 가슴을 친 것이다.
수입차 내수시장 점유율은 10년 전에는 2~3%대에 그쳤지만, 2012년에 처음 두 자릿수를 달성한 뒤 현재는 14%대를 보이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11월 국내 시장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1만 6,426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1% 증가한 수치다. 2014년 1월에서 11월까지 수입차는 전년 동기 대비 34.6% 증가한 19만 4,154대가 팔려나갔다. 같은 기간 국산승용차는 3.1% 늘어난 106만 7,167대에 그쳤다.
사실 현대차(기아차 포함)는 해외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다. 현대차는 2014년 1월부터 11월까지 해외에서 448만 6,772대를 판매했다. 전년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기아차 또한 같은 기간 해외시장에서 234만 1,658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8.2% 판매 대수가 증가했다.
해외시장에서 현대차의 판매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 공세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해외시장에서도 마냥 안주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내수시장마저 내줄 수 없다는 게 현대차의 판단이다.
최근 수입차들은 3,000만 원대 엔트리 모델을 앞다퉈 시장에 내놓고 있다. 중저가 차량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더 잠식하려는 의도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대형 세단 아슬란을 내놓으며 수입차의 대항마로 소개하고 있을까? 정답은 시장에 있다. 국내 경기가 최악이라지만 그랜저 이상급 준대형시장은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1~8월 말까지 배기량 2,000cc 이상 대형 자동차는 모두 24만 8,785대가 팔려 전년 같은 기간(19만 4,094대)보다 28% 늘어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대수는 91만 5,320대로 전년 같은 기간(80만 475대)보다 6% 증가하는 데 그쳤고, 2,000cc 미만 중소형 자동차 판매는 66만 6,535대로 0.02%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국내 고급차 시장에선 수입차가 내수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아슬란이 경쟁모델로 꼽고 있는 대형차 모델의 경우, 독일 브랜드를 중심으로 매월 수입차가 모델별 판매순위 톱3에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말한다. “경기침체 등으로 시장이 위축되는 와중에서 대형 승용차 판매만 증가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죠. 현대차 제네시스 판매가 좋았던 것도 한 가지 원인입니다. 대형차는 중소형차보다 마진이 크기 때문에 이 시장을 뺏길 수 없다는 게 현대차의 입장이에요. 대형차 아슬란을 새로 시장에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겁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2015년 자동차시장 전망’에서 “메이저 업체들은 고급화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수 업체가 추구하던 고급화 전략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함에 따라 고급차와 대중차의 경계가 허물어져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슬란은 가솔린 엔진을 얹은 앞바퀴 굴림 세단이다. 현대차가 지키려는 대형차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수입차들의 경우 대부분 뒷바퀴 굴림 차량이다. 게다가 디젤엔진 모델이 판매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는 왜 가솔린 엔진을 얹은 앞바퀴 굴림 차량을 대항마로 내놓았을까?
김충호 현대차 사장이 아슬란 출시 현장에서 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독일계 후륜구동 세단에 식상함을 느끼는 고객들을 위해 승차감을 차량 개발의 주안점으로 놓고 개발했습니다. 아슬란은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독일계 후 륜구동 차량에 피로감을 느낀 고객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슬란은 ‘조용하고 편안한 차’를 원하는 40~50대 중장년층과 대기업 임원들이 주 타깃이다. 이에 따라 정숙성을 개발의 핵심 포인트로 잡고 최대한 차량에 반영했다. 이런 현대차의 전략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타케히코 키쿠치 닛산코리아 사장은 자사가 내놓은 신차발표회장에서 기자를 만나 속내를 내비쳤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한국에서 디젤 차량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승용 디젤엔진 기술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아직 가솔린 엔진에 비해 소음과 진동이 상당한 건 사실이거든요. 지금은 연비 때문에 디젤 차량을 선택하고 있지만 소비자 마음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슬란의 성공을 100% 확신하지 못하는 시선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말한다. “국내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자동차의 연료 효율성이 차량 구매 선택에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고 있어요. 아슬란이 상·하위 모델인 그랜저와 제네시스에 비해 뚜렷한 차별성을 부각하지 못한다면 자칫 과거 마르샤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014년 10월 출시한 아슬란의 성공 여부를 지금 예단하긴 어렵다. 현대차는 아슬란 판매목표를 2015년 말까지 2만 2,000대로 세우고 있다. 현대차는 2014년 10월 출시 이후 12월 초까지 아슬란 계약 대수가 약 4,000여대라고 밝히고 있다. 이 중 10월 239대와 11월 1,320대 등 총 1,559대가 고객에게 인도됐다.
아슬란은 기본형(3.0모델인 G300 모던이 3,990만 원, 3.3 모델 G330프리미엄과 G330익스클루시브가 각각 4,190만 원, 4,590만 원)을 기준으로 그랜저보다는 970만 원 정도 비싸고 제네시스에 비해선 670만 원 싸다. 시장에서 제네시스나 그랜저와의 간섭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시장을 분석한 결과 그랜저와 제네시스, 아슬란이 적절히 역할을 나눠 가질 것”이라며 “아슬란은 다른 차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그랜저와 차별점에 대해서도 현대차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지만 사양이나 소음진동 부분에선 그랜저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최고의 승차감과 정숙성을 가진 차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어려운 시장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 예상되는 만큼, 다양한 신차를 내놓아 내수 판매를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있다. 현대차가 수입차 공세에 조금 늦게 대응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또 다시 빠르게 새로운 선수를 발굴해 링 위에 데뷔시켰다. 아슬란이 현대차의 신차 개발과 마케팅 능력을 보여주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다.
아슬란 시승기
조용하고도 강력한 엔진 파워… 박력있는 스포츠 주행 돋보여
차는 직접 타보고 온 몸으로 느껴봐야 한다. 아슬란 G330익스클루시브 모델을 시승했다. 5일 동안 출퇴근과 장거리 고속주행을 하며 가능한한 차량 성능을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 밖’이었다. 현대차가 강조한 대로 ‘조용하고 편안한 차’ 였지만 주행 성능 또한 매우 뛰어났다. 특히 고속 주행에서 그랜저보다 월등한 조종 안정성을 보여줬다.
개인차가 많이 날 수밖에 없는 디자인에 대해선 크게 언급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론 현재 그랜저보다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바뀌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다. 일부에선 신형 쏘나타와 닮아 얼핏 봐선 두 차량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대차는 패밀리룩을 따르고 있다.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가 보여주는 패밀리룩에 대해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운전석을 중심으로 한 내부는 계기반과 센터페시아를 가로로 배치해 깔끔하고 안정적이다. 각종 조작 버튼도 기능별로함 께 배치되어 있어 한 눈에 들어오고 직관적이다. 차량 속도와 내비게이션 길 안내 표시는 물론, 차선이탈경보와 어댑티브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작동 상태 등을 운전석 앞 유리에 보여주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도 전 모델에 기본 사양으로 들어가 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부드러운 엔진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곧 고요해진다. 공회전 시 엔진음과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가속페달에 발을 얹고 처음 차체를 움직일 때 느낌은 매우 부드럽다. 출발 시 앞머리가 들려 올라가는 현상은 이제 현대차에선볼 수 없다. 가속 성능도 시원하다. 속도를 올릴수록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람다2 V6 3.3 GDi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294마력최, 대토크 35.3kg·m를 낸다. 참고로 람다2 V6 3.0 GDi 엔진은 최고출력 270마력, 최대토크 31.6kg·m 성능을 낸다. 시내 주행에선 뭐 하나 크게 흠잡을 구석이 없다.
조용하고 부드럽다. 넉넉한 힘 덕분에 추월 가속 성능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진짜 놀란 건 고속주행을 하면서부터였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달려봤다. 엔진 소리만 요란하게 높아졌던 과거 현대차가 아니다. 스포츠 모드로 바꾼 순간 엔진이 예민해지고 변속타이밍이 달라지는 게 곧바로 느껴진다. 하체도 더 단단해진다. 가속페달을 슬쩍 밟으면 차가 툭 튀어 나간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자 순식간에 옆 차들을 뒤로 보내버린다. 단순히 속도만 빠르게 올라가는 게 아니다. 노면에 달라붙는 자세가 제법이다. 하체가 출렁이지 않고 아스팔트를 누르면서 달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아슬란은 차량 움직임과 노면 상태를 계측해 실시간으로 승차감과 조종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전자제어 서스펜션을 달고 있다.
스포츠 모드에서 고속주행을 하면서 느낀 또 다른 장점은 편안한 가죽시트다. 처음 앉았을 때도 느꼈지만 쿠션이 두껍고 자세를 편하게 잡아준다. 실내 정숙성도 만족스럽다. 고속 주행에서도 풍절음이나 부밍음, 주행소음이 미미하다. 모든 창에는 이중접 합 차음 유리를 사용하고 엔진룸 등 주요 부위에 흡차음재를 대폭 적용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6단 자동변속기는 독일 프리미엄 세단에 비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연비는 8km/l대를 기록했다. 제동 능력도 조금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슬란의타 깃 고객층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긴 한다. 느긋하고 안락한 주행을 하는 경우에 맞게 브레이크 세팅을 부드럽게 잡아놓은 걸로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산 패밀리 세단보다 주행 안정성이 훨씬 나았다. 최고 수준의 정숙성을 갖춘 잘 만든 차였다. 아슬란의 성능을 제대로 알려 소비자의 선입견을 깨는 것만이 현대차에게 남은 과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