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IT 서비스 업체들은 최근 냉혹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대기업 계열사가 대부분인 이들 업체는 모회사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 속에 중소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악의 축’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부당 내부거래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도 더욱 강해졌다. 때문에 IT 서비스업체들은 지금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나서고 있다. 그중 SK C&C는 정부의 규제를 ‘기회’로 탈바꿈시킨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른바 ‘프리미엄 IT 서비스’를 앞세워 차근차근 시장을 공략한 것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특히 중고차, 중고 휴대폰, 반도체 모듈 같은 ‘탈(脫) IT’ 전략으로 고성장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SK C&C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SK C&C의 고유 사업인 IT서비스 사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올려야 합니다. 또 수년간 추진해 온 비(非) IT서비스 분야로의 신성장 동력 창출 역시 지속되어야 합니다.” 박정호 신임 SK C&C 대표이사의 취임 일성에는 SK C&C가 나아갈 방향이 간단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전임 정철길 사장이 이끌어온 SK C&C의 생존전략을 가다듬어 완전한 탈바꿈을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그의 말 속에 담겨 있다.
SK C&C는 지난 2003년부터 ‘4th To-Be’라는 이름의 3년 단위 중장기 사업계획을 시행해왔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첫 번째 단계(1st To-Be)는 IT서비스의 수행역량을 강화하고 체계화시키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기업 역량 강화와 글로벌 진출을 앞세운 두 번째 단계(2nd To-Be), 또 그 두 번째 단계를 좀더 공고히 하는 세 번째 단계(3rd To-Be)를 거쳐 지난해까지 ‘탈 IT를 통한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을 목표로 네 번째 사업을 진행한 바있다.
SK C&C가 변신을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IT 사업의 한계 때문이었다. 국내 사업 만으론 저성장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특히 지난 2011년부터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부의 규제방침이 본격화 되면서 고민이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IT서비스 업체와 마찬가지로 모기업 계열사 전산실로 출발한 SK C&C 또한 당시 상당한 매출을 계열사 내부 사업으로 거둬들이고 있었다.
SK C&C는 그때부터 사업 다각화를 통한 본격적인 변화에 나섰다. B2B 일색이던 사업군을 B2C로 확장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흥 해외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 대형 IT서비스 업체의 발목을 잡아온 내부거래 비중이 절반 이하로 감소하며 긍정적 시그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정호 신임 대표가 내건 경영전략 역시 큰 틀에서 ‘4th To-Be’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업계에선 이 같은 SK C&C의 ‘탈 IT’ 전략이 박 대표 체제 속에서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박정호 신임 대표이사는 SK그룹 내에서 M&A 전문가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SK C&C는 올해 박 대표 체제 속에서 시장 기대치 이상의 성장을 보여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는 “글로벌 IT서비스 기업들은 최근 M&A를 통한 영역확장과 신규 영역 진입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며 “박 대표는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M&A를 통해 SK C&C의 성장한계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박 대표는 정철길 대표가 이끌었던 SK C&C에서 굵직한 사업을 주물렀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초부터 SK C&C 코퍼레이트 디벨롭먼트(Corporate Development·부사장)를 맡아 SK C&C가 추진해온 각종 M&A와 신성장동력 창출을 이끌어낸 바 있다.
박 대표의 이력을 따라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9년 선경에 입사한 그는 한국이동통신 인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등 지금의 SK그룹을 만든 굵직한 M&A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진행된 M&A는 SK그룹의 경영 위기 극복과 동시에 신성장 동력 발굴의 중추적 구실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박 대표는 지난 2001년 최태원 회장의 비서실장까지 맡아 오너의 든든한 신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SK C&C의 ‘탈 IT’ 전략을 이끌어 온 박 대표의 추진력은 이 같은 그룹 내 두터운 신임과 화려한 경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탈 IT서비스 기반 글로벌 시장 전략의 출발점으로 손꼽히는 SK C&C의 엔카 사업 역시 박 사장의 대표 작품 중 하나다. SK C&C는 지난 2011년 12월 SK그룹 내 중고차 매매 업체인 엔카네트워크를 인수하며 탈IT 전략에 시동을 걸었다. 당시 SK C&C는 엔카네트워크 인수의 이유로 ‘신성장 동력 확보’를 내세웠다. SK C&C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고차 판매 영역에 IT서비스 업체가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좀 더 포괄적인 사업 확장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IT서비스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같은 각종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리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SK C&C의 엔카 인수는 3년여가 지난 지금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 C&C가 내세운 ‘탈 IT’와 ‘글로벌 시장 동력 확보’ 전략의 중심에 엔카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SK C&C의 첫 공략지는 거대 중고차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이었다. SK C&C는 지난해 4월 중국 상해(上海) 운봉자동차회사와 함께 중고차 매매 전문 합작회사(JV) ‘상해 운봉엔카 중고차 경영서비스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양사는 이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총 1,000만 위안(한화 약 17억 8,000만 원)을 출자했다. 현재 지분은 SK C&C 청두(成道)법인 49%, 상해 운봉자동차회사 51%로, 합작회사의 총경리(CEO)는 SK C&C가 담당하고 있다. 이후 박 대표는 호주 카세일즈닷컴과의 합작회사인 SK엔카닷컴 출범을 진두지휘하며 온라인 자동차 사업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카 사업이 박정호 대표의 취임 전 성과였다면, 에코폰과 반도체 모듈 분야는 박 대표가 취임 후 내세운 전략 사업의 핵심이다. SK C&C는 중고차 사업 성공 이후 또다른 ‘리사이클링(Recycling)’ 사업 진출을 모색해왔다. 그렇게 활로를 찾은 곳이 중고폰 유통, 이른바 ‘에코폰’ 사업이었다.
SK C&C는 지난해 초 편의점과 대형할인매장, 가전제품 양판점 등 다양한 유통망으로부터 중고 휴대폰을 사들이고, 이를 다시 해외로 수출하는 ‘에코폰 사업’을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1년에 쏟아져 나오는 중고폰은 대략 2,000만 대 수준이다. 이 중 1,000만 대가량이 해외로 수출되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SK C&C는 이마트, 삼성플라자, 하이마트 등 대형 마트뿐 아니라 편의점 CU,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 등과도 연계해 유통 네트워크 구축을 완료했다. SK C&C는 구축된 유통망을 통해 수거한 휴대폰의 분실·도난 여부 식별, 개인정보 데이터 삭제를 진행해 건전한 중고폰 시장 생태계 구축을 꾀하고 있다. 또 법인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 모바일 SI 기반 B2B 회선사업’에 에코폰 유통사업을 결합해 시너지 극대화에도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에코폰 사업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후 변화하고 있는 IT디바이스 유통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SK C&C의 새로운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에코폰 사업에서 핵심역량을 확보해 글로벌 ICT 디바이스 유통사업자로서 성장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리사이클링 사업이 국내시장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한다면,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글로벌 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분야도 있다. 바로 ‘반도체 모듈’ 사업이다. 반도체 모듈 작업이란 반도체 칩을 D램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USB 같은 반도체 완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도체 칩이 IT기기에 탑재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 바로 ‘반도체 모듈’ 작업이라 할 수 있다. SK C&C는 이미 미국 마이크론, 일본 도시바 등에서 만든 반도체를 공급받아 시장에 모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SK C&C 반도체 모듈 사업 진출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바로 SK하이닉스와의 관계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빅3에 오른 SK하이닉스는 그 규모만큼 글로벌 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모듈 분야의 경우, 중화권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SK C&C가 각각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반도체 모듈 시장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을 경우,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이다.
이미 박 대표는 지난해 있었던 홍콩의 스마트 디바이스 유통업체 ISD테크놀로지 인수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일찌감치 이 분야에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또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마케팅전문가 김일웅 박사를 이 회사의 CEO로 영입해 중화권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 C&C는 이 같은 다양한 신성장 동력 확보를 기반으로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도 SK C&C는 비껴간 것처럼 보인다. 이는 SK C&C가 발표한 지난해 3분기 영업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동안 추진해온 사업 및 수익구조 혁신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전년 동기대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는 실적을 올렸다.
SK C&C의 올 3분기 매출액은 6,134억 원으로 지난해 3분기 5,550억 원 대비 10.5%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3분기 598억 원보다 113억 원 증가한 711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3년 4분기 736억 원에 이은 역대 두 번째 700억 원대 영업이익이었다. 이 같은 실적을 이끈 배경에는 그동안 SK C&C가 강조해온 ‘탈 IT’가 자리 잡고 있다. 중고차 서비스인 엔카, 반도체모듈, 중고 휴대폰 유통 등 비IT서비스 부문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SK C&C는 지난해 3분기 매출 중 비IT서비스 부문에서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2,524억 원을 올려 이 부문 가파른 성장세를 입증했다.
SK C&C의 성장은 신규 사업만이 이끈 것은 아니다. 기존 핵심사업인 IT서비스 역시 ‘프리미엄 IT서비스’라는 전략으로 재탄생 하며 실적을 쌓고 있다. ‘프리미엄 IT서비스’ 전략은 기존에 진행해왔던 단순 IT 아웃소싱 수주를 넘어 고객사의 성장과 만족, 그리고 또 다른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SK C&C 관계자는 말한다. “프리미엄 서비스의 핵심은 고객 스스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고객이 생각하는 IT서비스보다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고, 심지어 고객이 느끼는 리스크까지 적극 부담해 사업 성장과 매출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사업에선 매우 중요합니다.”
SK C&C의 프리미엄 IT 전략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글로벌 사업을 펼쳐온 SK C&C는 올해 3분기까지 이 부문에서 2,749억 원의 글로벌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매출액의 15.8%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무려 122.8%나 성장한 수치다. 실제로 SK C&C와 메트라이프코리아가 공동으로 선보인 모바일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플랫폼(MEAP) 솔루션 ‘넥스코어 모바일’은 중국, 베트남 등 아태지역 메트라이프의 핵심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하며 프리미엄 IT전략의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도 SK C&C는 국내외 금융권을 중심으로 IT 아웃소싱 협력사를 다수 확보해 ‘프리미엄 IT 전략’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