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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의 경영방식

[VENTURE/ How I Got Started] The Nuts and Bolts of Restoration Hardware

스티븐 고든 Stephen Gordon은 어떻게‘ 인테리어 업계의 랄프 로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Interview by Dinah Eng


문고리나 손잡이, 경첩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 스토어 Restoration Hardware Store를 방문하면 무엇이든-영국식 랜턴부터 창업주 스티븐 고든(63)이 직접 선택한 샹들리에에 이르기까지-사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한때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던 고든은 큐레이터의 감각 외에도 개조에 대한 오랜 실무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 스토어 1호점을 오픈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파산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회사를 상장기업으로 키워냈고, 현재는 85개 지점을 거느리고 있다. 2013년에는 16억 달러 매출과 1,800만 달러 이익을 기록했다. 이제 고든은 두번째 벤처기업 가이드보트 Guideboat Co.-미국식 빈티지 보트와 관련 제품을 판매한다-를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파란만장한 그의 사업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뉴욕 애디론댁 Adirondacks 산자락에 자리 잡은 플래츠버그 Plattsburgh라는 소도시에서 자랐다. 선친의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했고, 당시에도 3개의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상점에 오지 못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분들은 내가 소매업 대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기를 바랐다.

나는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고, 실용적인 학문보단 이론이나 연구를 더 좋아했다. 어느 날 고객과 상담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 공감하는 일보단 사업적인 아이디어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상담업무를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 목공 일을 시작해 가구 제작기술을 배워나갔다. 나는 밤에는 바텐더로 일했다. 아내는 교사였다. 우리 부부는 당시 캘리포니아 유레카 Eureka에 거주했다.

나는 고급재료로 정교하게 제작된 오래된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할 때 항상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1979년 우리는 앤 여왕시대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3층짜리 고택을 구매했다. 고택 개조를 시작했지만 필요한 철물과 몰딩, 부속품을 구하기 힘들었다.

철물점에서 황동으로 제작된 장식장 손잡이를 찾는 일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이름없는 가게에서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하지만 곧 경제적 구매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상품 카탈로그 사진들을 복사해 묶음으로 만들었다. 또 30달러를 들여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라는 팻말을 제작해 현관 앞에 함께 걸어 두었다. 제품 판매를 통해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당시 어떤 이들은 제품 가격을 두 배로 올려도 괜찮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 후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문고리 여섯 개를 팔면 12개를 주문해 재고를 마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요했던 황동 문고리를 살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6개월 뒤, 나는 이 일이 꽤 괜찮은 사업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빅토리아 양식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올드타운 유레카 the Old Town Eureka 쇼핑 거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월세 300달러에 300평방 피트짜리 공간을 임대했다. 또 800~1,000달러를 투자해 다양한 상품들-문고리, 수건걸이, 조명 기구-을 진열용으로 한 개씩 구매했다. 상점을 연 1980년에 나는 낮 시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밤에는 계속 바텐더 일을 했다.

곧 입소문이 퍼져 사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올드타운 유레카는 사업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주말을 이용해 연어낚시를 하거나 삼나무숲을 찾는 관광객과 거주민의 수가 비슷해 고객층을 확보하기가 쉬웠다. 나는 단단한 놋쇠 촛대, 염소가죽 장갑, 영국식 랜턴 같은 제품들을 판매했다. 2년 후에는 바텐더 일을 그만두고 가게 운영에 전념했다. 그리고 맨도시노 Mendocino에 새 가게를 열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1980년대 중반 재정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휴일 재고를 마련할 돈조차 없어 파산위기에 처했다. 나는 그때 보스턴에 위치한 리갈 씨푸드 Legal Sea Foods 식당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났다.

장인에게 돈을 빌릴 작정이었다. 그때 로브스터를 주문한 나는 집게발을 깨뜨리다가 장모님의 새 실크 블라우스에 국물을 묻히고 말았다. 나는 20만 달러를 빌려준 장인 덕분에 겨우 파산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빌린 돈은 1년 만에 모두 갚았다.

얼마 후 나는 캘리포니아 주 뉴포트 비치 Newport Beach와 마린 카운티 Marin County에 새 상점을 열었다. 그러나 도무지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다. 상점 규모가 너무 작아서, 혹은 너무 커서, 위치가 좋지 않아서...... 거절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나는 투자자만 찾는다면 분명 경쟁력 있는 사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거의 포기 직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댈러스의 하버그-마스인터 Harberg- Masinter라는 한 세입자협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곳에서 카디널 인베스트먼트 Cardinal Investment를 소개해주었고, 1994년 말 250만 달러라는 거액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각종 쇼핑센터에서 이 신선하고 흥미로운 소매점에 투자하고자 몰려들었다.

나는 빠르게 매장을 10개까지 확장해나갔다. 나는 1994년부터 가정용 가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상점에선 장인의 솜씨가 깃든 양질의 미국산 제품만을 판매했다. 단단한 오크 목재를 사용해 도브테일 접합방식(dovetail) *역주: 비둘기 꼬리처럼 끝이 벌어진 모양으로 목공 접합에 쓰이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대량 생산한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다른 가구점 제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나만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내 제품은 한층 업그레이드 된 뉴잉글랜드 스타일이었다.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하고 대칭을 이루면서도 고전적이고 편안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는 빈티지 제품을 동경했지만, 꼭 예전 방식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1920년대 옷을 입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랄프 로렌 Ralph Lauren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고전 의상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 감성에 맞게 재구성했다.

나 역시 그의 생각과 같았다. 이후 10개 매장이 65개까지 늘어났다. 1998년에는 주식시장에도 상장했다. 골드만 삭스가 주관한 기업 공개에는 공모액의 7배까지 투자가 몰렸다. 몇 년간 기울인 고집스러운 노력이 거둔 최고의 성과였다.

물론 사업상의 실수도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실수는 뉴욕에서 발생했다. 뉴욕의 플랫아이언 Flatiron 구역에 위치한 상점은 사업이 잘됐다. 나는 소호 SoHo에도 상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호가 매우 새롭고 색다르며 예측 불가능한 곳이라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소호의 오래된 우체국 건물에 상점을 열고 수백만 달러 매출을 올렸지만, 뉴욕의 부동산 가격 역시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다행히 스티브 잡스 Steve Jobs가 애플 스토어 Apple stores를 열어 상당한 이익을 창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에게 임대건물을 넘길 수 있었다.

2005년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 Robert Redford가 나를 고용해 선댄스 홀딩스 Sundance Holdings의 경영을 맡겼다. 그래서 5년간 내 사업을 뒤로하고 그 회사를 운영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어 2010년에 그 일을 그만두었다. 소매업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일이었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나만의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의 애디론댁 가이드 보트를 타고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완전히 수선된 1892년산 가이드보트를 어렵게 구매했다. 어느 날 보트를 타다가 문득 보트 제작이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2년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 채드 헐리 Chad Hurley와 힘을 합쳐 1년 뒤 첫 가이드보트 매장을 밀 밸리 Mill Valley의 오래된 목재저장소에 개설했다.

초반에는 어떤 일이 앞으로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나는 이 두 번째 사업을 시작하면서 흥분되고 즐거웠다. 가이드보트 사업에 큰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객들이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에 애정을 보냈던 것처럼 가이드보트도 사랑받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다.

My Advice
나의 충고

스티븐 고든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 창업주

세세한 부분을 직접 관리하라.
모든 경영상의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지만, 상품이나 프레젠테이션 관련 결정은 사업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 매장에서 판매할 모든 상품을 직접 승인해왔다.

자신만의 관점을 고수하라.
나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의 역사, 분위기, 예술적 감성을 설명하는 문구를 직접 작성했다. 이를 통해 사업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갖게 됐다. 또 제품은 매출 창출과 더불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할까지 했다.

자본을 잘 관리하라.
리스토레이션 하드웨어를 경영할 때, 나는 가치가 오를 부분에 대해서만 투자를 받았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필요할 때만 투자받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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