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자각몽이 수면을 방해하고, 현실 부적응을 강화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과연 자각몽은 자아실현의 도구일까, 현실도피의 또 다른 모습일까.
시대와 문명을 막론하고 인간은 꿈이라는 생리현상에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 미국 인디언들은 꿈을 영적 세계로 들어가 계시와 수련을 받는 관문으로 여겼고, 호주 원주민은 세상의 기원을 꿈에서 찾았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꿈을 꾸는 메커니즘이나 꿈의 효과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자각몽도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멀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책에서 자각몽을 의미하는 언급을 했고, 티베트의 승려들이 자각몽을 ‘꿈의 요가’라 부르며 해탈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수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신비주의자들은 자각몽이 수면 상태와 각성 상태를 초월한 관조적 의식 상태, 즉 ‘완전한 각성(non-dual awareness)’ 상태라며 중요하게 여겼다.
자각몽(lucid dream)이라는 단어는 지난 1913년 네덜란드의 정신과 의사 프레데릭 반 에덴 박사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자각몽을 직접 경험했다며 그 내용을 기록하기도 한 그는 꿈의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하면서 자각몽을 그중 하나로 넣었다.
이러한 자각몽은 현대에 와서 스탠퍼드대학 출신의 정신생리학자 스티븐 라버지 박사에 의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자각몽 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몰두한 그는 자각몽이 창의성 계발 등 삶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억눌린 자아를 되찾을 무기
자각몽은 수면의 제5단계이자 꿈을 꾸는 단계인 렘(REM) 수면 상태에서 나타난다. 이 상태에서는 신체 근육이 이완돼 눈꺼풀을 제외한 신체 부위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에 연구자들은 뇌전도(EEG)와 근전도(EMG), 뇌파 감지장치를 이용해 렘수면 상태의 피험자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꿈이나 자각몽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자각몽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그 효과에 있다. 일례로 다수의 연구에서 만성적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인위적인 자각몽을 꾸도록 하면 악몽의 빈도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자각몽은 현재 의료적 치료에 실제 활용되고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나 만성 악몽 환자처럼 제한적이기는 해도 말이다.
자각몽 지지자들은 또 자각몽을 통해 현실의 벽에 막혀 억눌려 있었던 자아를 실현함으로써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 극복, 자신감 증대 등 다양한 심리적·정신적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지난 1988년 미국 앨버타대학 토마스 스나이더 박사팀의 논문 ‘자각몽에 관한 개인 차이’에 따르면 학생과 일반인 대상의 설문조사에 기반한 통계학적 분석 결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50% 이상이 평생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자각몽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약 20%는 자각몽을 자주 꾼다고 답했다고 한다.
첨예한 대립
그러나 자각몽에 대한 정신의학계의 판단은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좀더 많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자각몽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 이들은 ‘수면’과 ‘자각’은 양립이 불가능하다면서 자각몽 경험자, 즉 루시드 드리머(lucid dreamer)의 경험담을 판타지나 과장, 기껏해야 하찮은 술책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보스턴대학의 신경학자 패트릭 맥나마라 박사도 그런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그가 자각몽을 부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각몽의 존재 증거는 오직 경험자들의 말 뿐이며, 자각몽이나 경험담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각몽을 반(半)각성상태에서 백일몽을 경험한 것이라고 말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들은 루시드 드리머가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종의 해리성 수면장애 환자들이며, 꿈에 관한 기억이 왜곡돼 자신이 꿈의 내용을 통제했다는 가짜 기억이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렘수면 단계와 각성 단계의 뇌전도 양상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정부분 신빙성을 가진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몇몇 전문가들은 꿈의 자각이 가능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결코 초인지가 아니며, 악몽을 꾸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자칫 자각몽이 주는 행복감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자각몽을 암울한 현실의 도피처로 이용할 경우 현실 부적응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학계에서조차 의견이 팽팽히 엇갈리는 가운데 최근 미국과 독일에서 매우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 두 건의 자각몽 연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실체 규명은 현재진행형
올 1월 독일 막스플랑크 정신의학 연구소와 막스플랑크 인간개발 연구소는 공동연구를 통해 자각몽을 꾼다는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기반성에 관여하는 뇌의 전전두피필 영역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을 이끈 엘리사 필레비치 박사는 “꿈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자기반성적 성향이 강하다”며 “때문에 사고과정과 문제해결 과정을 조절·점검하는 이른바 초인지(metacognitive)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 논문이 공개된 지 3일 뒤 미국 신경과학회지에 예일대 의대 스티븐 노벨라 박사팀의 논문이 개재됐는데, 놀랍게도 결론이 대동소이했다. 연구팀은 자각몽을 자주 꾸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뇌의 전두극 피질을 검사해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회백질(gray matter)의 양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잦은 자각몽 경험자들의 회백질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에 대해 노벨라 박사는 루시드 드리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뇌의 자기반성 기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노벨라 박사는 자각몽을 꿀 때의 상태는 각성 상태와 렘수면 상태의 중간지점으로 보인다면서 자각몽 자체에 특별한 의미나 효용성이 있다고 하기 보다는 자기반성 능력을 가진 인간의 뇌가 빚어낸 특별한 ‘현상’의 하나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현재 미국은 인체의 소우주라 불리는 뇌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를 진행 중이며, 유럽연합(EU)도 지난해 12억 유로 규모의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런칭했다. 향후 두 프로젝트를 통해 뇌의 비밀이 밝혀진다면 자각몽을 둘러싼 논란도 곧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HOW TO HAVE LUCID DREAMS
자각몽 꾸는 법
자각몽을 경험한 적이 있나? 혹시 없다면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세간에는 자각몽을 꾸는 다양한 비책(?)들이 회자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평소 잠에서 깨어난 뒤 꿈의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고 회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씩 자신의 꿈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어느 순간 꿈속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고 한다.
자각몽 연구의 대표주자인 스티븐 라버지 박사도 여러 방안을 고안했다. 그중 하나가 ‘자각몽 연상 유도(MILD)법’이다. 구체적으로 라버지 박사는 잠에서 깨면 꿈의 내용을 최대한 기억해내고, 다음 번 잠을 청할 때 그 내용을 이어서 꿈을 꾸고자 다짐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실제로 꿈이 이어졌을 때를 상상해 현실과 배치되는 증거들을 찾는다. 몸에 날개가 달려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잠이 들 때까지 그 증거들을 리마인드하면 자각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외에 일부러 일찍 일어나서 30분가량 깨어 있다가 다시 잠을 청해 수면과 각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법, 전등을 켜거나 하는 일상적 테스트를 통해 논리적 결과가 나타나는지로 꿈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 등이 있다. 정말 이런 방법들이 통할까? 속는 셈치고 한번쯤 시도해본다고 누가 잡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자각몽에 관한 개인 차이 Individual Differences Associated with Lucid Dreaming.
MILD Mnemonic Induction of Lucid Dre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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