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순식간에 자국 시장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제 발톱을 드러내며 더 큰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BY SCOTT CENDROWSKI
원플러스 OnePlus의 로비는 흰색으로 꾸며져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로비 안은 매우 분주하다. 수많은 고객들이 오가고, 한눈에 보기에도 일손이 부족해 보이는 2명의 리셉션니스트가 맹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지금은 토요일 오전 11시다. 중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선전 Shenzhen 시내의 모든 업체가 이렇게 바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립 첫해에 무려1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팔아치운 원플러스에선 이 같은 풍경이 일상적이다.
원플러스는 피트 라우 Pete Lau(40)와 칼 페이 Carl Pei(25)가 설립한 기업이다. 그들은 지하 철로 네 정거장 떨어진 중국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 오포 Oppo 출신이다. 둘은 직접 회사를 차려 300달러짜리 폰을 팔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원플러스의 글로벌 사업을 지휘하는 페이는 “잘리지 않으려면 3만 대의 스마트폰을 팔아야 했다. 5만 대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10만 대는 꿈 같은 얘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100만 대 판매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뜻 보기엔 원플러스가 벼락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수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구매력지수를 고려한 중국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13억 6,000만 중국 인구 중 다수가 저가의 고성능 휴대폰을 갈망해 왔다. 2012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시장으로 등극했다. 그때 이후 중국의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은 무려 두 배나 증가해 거의 4억 대에 달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국민 모두에게 한 대씩 나눠주고도 수천만 대가 남는 양이다.
글로벌 리더 삼성과 애플은 세계 최대의 휴대폰 시장 중국을 정복할 야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왔다. 그러던 중 중국 내 휴대폰 수요가 폭증했고, 로컬 기업들이 그 수요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급성장했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Counterpoint Research의 이사 네일 샤 Neil Shah는 “중국에는 무려 400개의 휴대폰 브랜드가 있다. 골드러시를 연상시킬 정도다”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캐널리스 Canalys에 따르면, 2011년에는 중국 내 10대 스마트폰 제조업체 가운데 현지 업체는 화웨이 Huawei와 레노버 Lenovo 두 곳뿐이었다. 그러나 2014년에는 10대 업체 중 여덟 곳이 중국 업체였고, 삼성과 애플 두 곳만이 외국업체였다. 3년 만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무려 4배나 성장했고, 휴대폰 제조업체의 판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 Strategy Analytics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10대 스마트폰 브랜드 중 여섯 곳은 중국 업체이다. 물론 이들 중 다수는 내수 판매만 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중국시장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방증한다.
중국의 신생 스마트폰 업체들은 지금 해외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신생기업 샤오미 Xiaomi(시가 총액 450억 달러)는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인도에 투자하고 있다. 선전의 ZTE는 3년 내 미국시장 점유율을 두 배 끌어올릴 계획을 발표했다. 또 다른 선전 소재 기업 화웨이는 베를린 IFA 전자 박람회에서 최신 플래그십 모델 어센드 메이트 7 AscendMate 7을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휴대폰 업체들은 세계 전역에 입지를 확보했고, 본격적인 판매준비도 마쳤다.
루 치안하오 Lv Qianhao ZTE 휴대폰 사업 전략 책임자는 일반적인 업계 추산치를 인용하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지만, 휴대폰 사업 전체 매출 중 70%는 해외에서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전에도 비슷한 광경을 목도한 바 있다. 1970년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일본 기업들의 전자제품이 서구 시장을 석권했다. 소니 Sony, 마쓰시타 Matsushita(지금의 파나소닉 Panasonic), 산요 Sanyo, 샤프 Sharp 및 기타 일본 기업들이 처음엔 모방제품 및 저가 제품으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차츰 기술력을 키워 RCA, GE, 제니스 Zenith 같은 미국 기업들을 앞질러 나갔다. 그리고 2000년대엔 삼성, 현대, LG 같은 한국업체 제품들이 일본을 상대로 같은 상황을 재현했다. 저가전략으로 시작해 혁신을 통해 일본업체를 추월했고, 결국은 높은 수익을 올렸다.
오랫동안 중국 휴대폰 업체들은 노키아 Nokia와 다른 제조업체들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구글 Google이 애플 아이폰 iPhone의 대안으로 안드로이드 Android를 도입하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저렴하고 주문제작이 가능한 이 모바일 운영 체제를 이용할 실력만 있으면 어떤 업체든 질 좋은 대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곧 중국업체들은 OEM 대신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며 사업전략을 180도 선회했다.
지금 우리는 소비자 전자제품의 새 시대, 다름 아닌 ‘중국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전 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수많은 젊고 영리한 기업가 및 엔지니어들이 이 시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들 중 일부는 서구의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있다. 때로는 그대로 베끼기도 한다(거의 모든 이들이 스티브 잡스 Steve Jobs를 모방해 검은색 옷을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진정한 혁신을 추구하며 (저렴하면서도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90년대의 노키아’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모닝사이드 벤처 캐피털 Morningside Venture Capital 상하이 지사의 매니징 디렉터 리처드 리우 Richard Liu는 샤오미의 초기 투자자다. 그는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큰 파도의 시작에 불과하다”고말했다.
메이주 Meizu는 자수성가한 최초의 중국 휴대폰 브랜드다. 홍콩과 인접한, 녹음이 우거진 해안도시 주하이 Zhuhai에 본사를 둔 메이주는 잭 웡 Jack Wong이이란 인물이 이끌고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괴팍하고 내향적이라고 묘사될 때가 많다. 홍보 예산이 없던 웡—웹 포럼 같은 행사의 단골 손님이었다—은 2000년대 온라인 버즈 online buzz *역주: 온라인에서 이슈화된 정보가 짧은 시간 내급격히 퍼지는 현상 를 이용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MP3플레이어를 제작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지 불과 4일 만에, 웡은 메이주가 아이폰 킬러 ‘M8’을 제작할 것이라 떠들어댔다. M8는 아이폰과 매우 유사했다. 원은 아이폰 애호가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M8을 시장에서 철수시켜야 했다. 대신 메이주는 수백만 명의 팬을 얻었고, 그 후 세계가 중국 스마트폰을 주목하게 됐다.
현재 메이주는 중국 내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함으로써 다른 아시아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메이주의 제품은 중국 제품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10대 브랜드에는 들지 못하고 있다. 작년 여름 메이주 본사 회의실은 많은 인원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케터 아널드 페이 Arnold Pei와 게이븐 장 Gaven Zhang이 새로운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아널드는 화이트 보드에 아래와 같은내용을 갈겨썼다.
2013년의 모습:
1. 단일 기종 2. 판매가 2,500위안(400달러) 3. 이익 우선 원칙 4. 잭 웡 소유의 가족 기업
2014년 변화된 모습:
1. 4개 기종 2. 판매가 1,000~3,000위안(160~480달러) 3. 시장점유율 우선 4. 채용 증대 5. 하드웨어 업체에서 모바일 인터넷 업체로 전환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비즈니스의 중점을 수익성에서 시장점유율로 옮기는 것이다. 메이주의한 마케팅 컨설턴트는 작년 가을에 열린 MX4 출시 이벤트에서 필자에게 “문제는 우리가 좋은 제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인 지난 2월 알리바바Alibaba는 5억 9,000만 달러를 투자해 메이주의 소수지분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휴대폰 시장 진출의 발판을, 메이주는 사업 확장을 위한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레이 쥔 Lei Jun은 혁신가 같은 외모를 갖고 있진 않다. 그는 중년임에도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벤처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은 대기업 직원 차림도 잘 어울릴 것같다. 그는 오랫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중국 경쟁사에서 일하며 회사를 상장시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벤처 캐피털리스트로도 활동했다. 기업인이자 ‘민족의 영웅’ 레이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모바일 업체 샤오미의 설립자이다. 베이징에 소재한 샤오미는 모바일 업계를 뒤집어놓겠다는 당찬 포부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2000년대 말 레이는 스마트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디자인, 운영체계는 물론 스마트폰 사업까지 연구했다. 그의 백팩에는 늘 수십 개의 휴대폰이 들어 있었다. 기회를 포착한 레이는중국 벤처캐피털 업계의 인맥을 이용해 파트너를 모집했다. 그중에는 전 구글 차이나 모바일 검색 부문 책임자도 있었다. 레이의 팀은 회사명을 ‘작은 쌀’이라는 의미의 샤오미로 지었고, 곧장 첫 번째 스마트폰 제작에 돌입했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 하청업체가 제작한 Mi1이 샤오미의 첫 제품이었다. 샤오미는 2011년 10월 1,999위안(330달러)에 첫 판매를 시작했다.
샤오미는 린 스타트업 Leanstartup *역주: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해 최소요건의 제품(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 반응을 보고 다음 제품에 반영하는 스타트업 의 전형이었다.매장운영비와 소매업체 마진을 없애고, 오직 온라인으로만 휴대폰을 판매했다. 샤오미는 근사한 중국 브랜드를 찾던 열성적인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초기 투자자 리처드 리우는 “샤오미는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휴대폰을 파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샤오미의 마케팅 비용은 삼성이나 애플에 훨씬 못 미친다. 레이(45)는 작년 여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은 샤오미를 ‘중국의 애플’로 부르길 좋아한다. 하지만 예쁘장한 겉모습을 흉내 낸것 말고는 제품 자체는 비교가 안된다. 애플 제품은 프리미엄 가격에 판매된다. 반면 샤오미 제품은 저가에 팔린다. 애플은 수백 개의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지만, 샤오미 제품은 온라인이나 이동통신사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럼에도 두 브랜드는 모두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올 1월 샤오미는 아이폰 6 플러스 iPhone 6 Plus(975달러)의 대항마 미 노트 MiNote(370달러)의 첫 출시 물량이 3분 만에 동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샤오미의 갑작스러운성공—2014년 삼성과 애플을 제치고 중국 휴대폰 판매 1위에 등극했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 조니 아이브 Jony Ive는 지난해 샤오미를 ‘도둑’에 비유하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메이주의 웡도 한포럼에서 레이가 메이주의 “휴대폰 디자인, 생산, 공급, 마케팅, 심지어 재무관리 방식”까지 베꼈다고 주장했다(샤오미 측 대변인은이를 부인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발 빠른 후발주자에게 (특히 기술 분야에선) 전략적 이점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동그란 얼굴의 루 치안하오 ZTE 휴대폰 전략 책임자는 강렬한 톤으로 영어를 구사한다. 그는 선전에 있는 본사에서 자사 문제를 분명하게 분석해 이렇게 말했다. “ZTE가 유명한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지 혁신 때문이 아니다.”
샤오미와 반대로 ZTE는 업계를 뒤흔들어 놓겠다는 포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 화웨이와 함께 중국의 2대 통신장비업체로 군림하고 있는 ZTE는 세계에서 9번째로 큰 휴대폰 제조사이다. 그럼에도 이름없는 싸구려 폰 제조사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루는 ZTE가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ZTE는 2012년 누비아 Nubia라는 온라인 판매전용 신규 제품군을 출시한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의부인 펑리위안 Peng Liyuan이 이 모델을 사용하는 사진이 퍼지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ZTE는 NBA팀 뉴욕 닉스 New York Knicks와 공식 스마트폰 계약을 하는 등 미국 프리미엄 폰 시장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루는 ZTE의 상황에 대해 ‘잠식되고 있는 사막의 풀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말’에 비유했다.그는 “말이 움직이지 않으면 풀밭은 점점 줄어들고, 사막은 점점 더 커진다. 언젠가는 풀이 완전히 사라져 이 아름다운 말도 굶어죽게 될 것이다. 입문용 제품에만 목을 매다 보면 ZTE도 말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ZTE처럼 화웨이도 중국 내 메이저 제조사에 걸맞게 다량의 휴대폰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화웨이의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 최대의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가트너 Gartner에 따르면, 화웨이는 5년 전 휴대폰 판매 부문에서 글로벌 10대 기업에 진입했다.오늘날 화웨이는 삼성, 애플에 이어 세계 3대 휴대폰 제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 선두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화웨이의 길은 험난했다. 2년 전 미 하원 정보위원회(U.S.House Intelligence Committee)는 화웨이와 중국 군부와의 관계를 이유로 이 회사를 ‘안보위협’업체로 지정한 바 있다(화웨이의창업주 렌 젱페이 Ren Zhengfei는 1983년 인민해방군에서 전역했다). 이후 화웨이는 각종 신문 헤드 라인을 장식했다. 화웨이는 정보위원회 측의 주장을 부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주요통신사납품 입찰이 금지된 상태다.
그러나 소비자 휴대폰 판매는 금지되지 않았다. 화웨이는 새로운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조심스레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회사는 명문 축구클럽 AC밀란 A.C Milan을 포함해 30개의 축구팀을 후원해왔다. 미국 및 다른국가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있는 스마트폰 라인 어센드 메이트 2 Ascend Mate 2도 출시했다. 그결과 작년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기업 인터브랜드 Interbrand가 선정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 처음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맥주브랜드 코로나 Corona와 하이네켄Heineken의 중간 순위였다.
화웨이의 전략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베를린에서 패블릿 phablet /*역주: 폰과 태블릿의합성어로 태블릿처럼 화면이 큰 스마트폰/ 스타일의 어센드 메이트7을 선보였을 때, 일부 블로거들은 애플의 아이폰6보다 낫다는 평가를내놓기도 했다. 화웨이가 기다리던 반응이었다. 화웨이의 마케팅부사장 샤오 양 Shao Yang은 “어센드 메이트7을 출시할 때 우리는갤러시 노트4와 이이폰6 플러스를 분명한 목표로 삼고 있었다”고말했다. 2년 전만 해도 미국 소비자 75%가 모르던 브랜드가 이런관심을 이끌어낸 건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는 글로벌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함에 따라 각국의 거물 기술 기업들과 대결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중국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올해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onsumerElectronics Show·CES)에 참여한 선전지역 업체들만 300여 곳에 달했다.
시장 성장세도 이미 둔화하고있다. IDC에 따르면, 지난 수분기동안 스마트폰 출하량은 세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지만 2014년 3분기에는 15%로 감소했다. 이제휴대폰 제조업체들의 목표는 입문 고객들이 아니라, 기존 휴대폰 보유 고객들이 상위 모델로 업그레이드 하도록 유도하는 데 맞춰지고 있다.
법적 장애물도 이들에게 직면한 또 다른 도전 과제다. 화웨이,ZTE, 레노버를 제외하면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그다지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막대한 금액이 걸린 지루한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에릭슨 Ericsson은 샤오미가 무선 특허에 대한 로열티를 주지 않는다며 제소했고, 작년 12월에는 인도 법원이 샤오미에 휴대폰 판매 중단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휴고 바라 Hugo Barra 샤오미 글로벌사업팀 책임자는 “법원명령은 우리가 성장했다는 방증이라 할 수있다. 다른 업체들이 수년에 걸쳐 도달했을 단계를 단기간에 이룬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도시장 진출 과정에서 이번 소송이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선진 공항에서 필자는 우연히 제리 자오 Jerry Zhao(25) 원플러스제품 매니저를 만났다. 그는 전략적 파트너십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다. 타이트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그는 뉴욕에서나 들을법한 빠른 속도로 영어를 구사했다. 칼 페이로부터 원플러스가다수의 ABC(American-bornChinese,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를 고용했다고 들었었는데, 자오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여섯달 전 그는 월가를 떠나 중국의 모바일 붐에 뛰어들었다.
사업에 대해 얘기하던 중, 자오는 자신의 폰을 꺼내 들었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것 좀 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건 자체적으로 조사한 ‘브랜드 인기도차트’였다. 원플러스의 인기도는하키 스틱 모양으로 증가해 ZTE,쿨패드 Coolpad, 화웨이 및 기타 경쟁업체들을 크게 앞지르고 있었다. 자오는 원플러스가 차트를 휩쓸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다. 애플은 올 1월 최고매출액을 경신했다. 전년 대비 70% 증가한 중국시장 매출에 힘입은 바가 컸다.반면 삼성은 (애플과 샤오미의 선전에 따른) 부진한 매출실적 이후, 모바일 부문을 재정비할 것이라 공언했다.
벼락 성공이 잠자던 사자를 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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