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인터뷰 시작 전 사진 촬영을 위해 들어선 최범석 대표 사무실은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책상 위에는 여러 서류가 흩어져 있었다. 기자를 맞이한 최범석 대표의 눈은 다소 충혈돼 있었고 얼굴도 약간 부은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요즘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는 화장품 사업을 확장하느라 할 일이 많습니다. 사무실이 많이 어지럽죠?"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는 최 대표에게선 술 냄새도 살짝 풍겼다. 그는 말했다. "사업상 밤늦도록 마신 술이 아직 덜 깼는지 정신이 없네요." 그는 매니저가 가져다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신 들이켰다.
인터뷰를 위해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최범석 대표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아이폰5와 G플렉스2였다. 최 대표는 올해 1월 출시된 G플렉스2 곡면 디자인 작업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다. 그는 G플렉스2 출시 이후 한 달 동안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내에 마련된 G플렉스2 복합체험관에서 G플렉스2를 모티브로 제작한 패션 아이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범석 대표는 LG전자의 전략폰이자 최고 히트상품인 G3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G플렉스2 출시 행사 당일엔 직접 제품의 특장점을 소개했다.
최 대표에게 LG전자와의 협업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LG전자의 디자인과 마케팅 능력이 상당히 강화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기술력은 이미 아이폰을 앞질렀다고 생각해요."
최범석 대표는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3'와 '갤럭시 기어' 출시 당시 진행한 마케팅도 협업한 경험이 있다. 그는 "애플에서도 협업 제안을 받았다"고 살짝 귀띔했다. "기왕이면 국내 기업과 협업하고 싶어 애플의 제안을 거절했죠. 국내 소비자가 패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여전히 해외 브랜드를 선호하는 현실이 아쉬워요. 물론 국내 기업들도 이런 현실을 더 고민해야겠지만요."
삼성·LG 등 요청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활약
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 G플렉스2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 내렸다. 그 모습을 기자가 바라보자 다시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곡면이 정말 편하고 좋아요. 오히려 평면 화면은 이제 불편할 정도예요."
최 대표는 G플렉스2 발표 당시에도 "곡면 디스플레이는 곧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곡면 디스플레이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근거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제가 업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곡면 디스플레이가 평면 디스플레이보다 시청하기 편하다는 사실은 저뿐 아니라 주변 사용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얼굴 곡선을 생각한 디자인이라서 통화하기도 편리하고요. 곡면 TV처럼 곡면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스마트폰의 인기도 자연스레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평면 디스플레이에 익숙한 사용자들의 선호도가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죠."
최 대표는 손목에 LG전자의 스마트워치 제품을 차고 있었다. LG전자가 작년 10월에 출시한 'G워치R'이었다. 세계 최초로 원형 플라스틱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주목받은 제품이다. 그는 팔을 들어 G워치R을 보여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스마트워치도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크게 변모시키는 '괴물'이 될 것 같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더라고요(웃음)."
최범석 대표는 IT 제품뿐 아니라 스포츠 의류(푸마, 코오롱 스포츠), 화장품(더페이스샵), 가방(쌤소나이트), 홈쇼핑(CJ오쇼핑), 자동차(아우디코리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을 진행해왔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과 협업하는 이유가 뭘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든 업계가 '패션'을 중시하고 있으니까요. 패션을 등에 업고 젊고 혁신적이며 트렌디한 감성을 뽐내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협업을 통해 배우는 점이 많아요. 기업 경영을 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협업이 필요하더군요. 지금은 협업의 시대입니다."
최범석 대표는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만들어 팔던 중졸 학력의 디자이너였다. 2009년 국내 남성 디자이너 중 최초로 뉴욕 컬렉션 무대에 선 이후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패션디자이너로 성장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디자이너 성공기는 2012년 방영된 드라마 ‘패션왕’의 모티브가 될 만큼 대중의 흥미를 끌었다.
그의 명성만큼 패션사업 실적도 좋을까? 사실 그가 대표로 있는 지아이홀딩스(브랜드명 제너럴아이디어)는 몇 해 전부터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 이야긴 글쎄…"라며 머뭇거리던 최 대표는 말했다. "미국에선 제너럴아이디어가 유명한데 한국에선 최범석이란 이름만 유명해져 아쉬워요. 제 이름을 알린 데에는 성공했지만, 회사 성장에는 마이너스더군요. 제 이름보다 브랜드를 먼저 알렸어야 했는데 제 이름이 브랜드를 가렸어요. 사업하면서 매출 규모를 키워봤지만, 수익성이 낮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직원도 10분의 1로 줄였습니다. 대신 수익성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뉴욕, 파리 등에서는 한류 패션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해외 활동이 활발한 최범석 대표에게 현장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꽤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한류 열풍은 우리 국력이 그만큼 커진 덕분
"한류 열풍에 스타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저는 단지 일부 한류 스타나 미디어 발달로 한류 현상이 일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990년대는 일본 문화가 우리나라를 휩쓸었죠. 여배우 아무로 나미에나 록밴드 엑스재팬 같은 일본 대중스타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 스타가 좋아서 일본 전자제품을 구매하고 일본 패션, 영화, 드라마를 좋아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본의 기술과 자본 등 모든 여건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던 겁니다. 일본 국력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작용했던 셈이죠. 문화가 곧 국력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국력이 문화를 이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역시 국력이 커지면서 국산 제품이나 콘텐츠가 전 세계에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거죠. 그 결과 한류 열풍이 생긴 거라고 판단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류 열풍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기자는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면 꼭 한 가지 질문은 빼놓지 않고 한다. '패스트패션' 브랜드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다. 패스트패션은 지난 몇 년간 패션업계를 주도해온 데다, 정통 의류 브랜드가 불황을 겪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패스트패션이 대량생산과 대량폐기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최범석 대표는 말한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옷을 참 멋지게 만들어요. 알고 보면 환경을 생각하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도 많더라고요. 중요한 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경계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셔츠도 유니클로 제품인 걸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