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바틴 공항. 전 세계 취재진이 운집한 가운데 전폭 72m의 항공기 1대가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2003년 스위스의 탐험가 베르트랑 피카르와 전직 스위스 공군 파일럿인 안드레 보슈베르크가 의기투합해 12년에 걸친 준비 끝에 완성한 유인 태양광 항공기 '솔라 임펄스2(SI2)'의 세계일주 비행이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날 13시간 동안 400㎞를 날아간 SI2는 오만의 무스카트에 착륙, 12개 비행구간 중 첫 구간의 도전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인도 아마다바드와 바라나시, 미얀마 만달레이, 중국 충징을 거쳐 4월 21일 장쑤성 난징에 도착했으며 현재는 하와이를 향한 태평양 횡단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5일간 8,172㎞를 무착륙 비행해야 하는 최장 구간으로, 성공할 경우 유인 태양광 항공기의 최장 비행거리 및 최장 비행시간 기록이 경신된다.
이후 SI2는 미국 피닉스와 뉴욕 등 3개 도시에 착륙한 뒤 대서양을 횡단, 유럽 남부 또는 아프리카 북부를 통과해 아부다비로 돌아오며 세계일주를 매조지하게 된다.
[SPECIFICATIONS]
크기: 21.85×72×6.4m
중량: 2.3톤
전기모터: 13.5㎾급 4기 (각 17.5마력)
동체: 고강도 초경량 탄소섬유
로터: 4개 (직경 4m)
태양전지: 1만7,248개
배터리: 리튬 폴리머 4개
최고 순항고도: 8,500m
최고 시속: 90㎞(해수면)~140㎞(고도 8,500m)
전체 비행거리: 약 3만5,000㎞
야간비행 메커니즘
명칭에서 느껴지듯 SI2는 '솔라 임펄스1(SI1)'의 후속모델이다. 피카르와 보슈베르크는 전장 21.85m의 SI1을 활용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스위스 횡단비행, 미국 횡단비행, 유럽-아프리카 대륙횡단 비행 등 77회에 걸쳐 472시간 이상을 비행하며 세계일주에 대비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았다. 그 과정에서 유인 태양광 항공기의 최장 거리, 최고 고도, 연속 비행 등 8개의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SI1을 통해 얻은 최고의 성과는 야간비행 기술의 확립이었다. 2010년 7월 보슈베르크의 조종 하에 SI1이 26시간 10분 19초의 무착륙 비행에 성공한 것. 이전까지 야간비행은 유인 태양광 항공기의 실용화를 막는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다.
이를 실현하려면 햇빛이 비추는 시간동안 배터리에 충분한 전력을 저장해야 하는데, 현존 최고 성능의 배터리도 에너지 밀도가 기존 항공유보다 턱없이 낮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배터리의 크기를 키우면 항공기 중량이 상승, 그만큼 더 많은 전력이 소모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많은 친환경 항공기들이 무인기를 표방하거나 수소연료전지 같은 보조동력을 채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솔라 임펄스팀은 '고도'에서 해법을 찾았다. 실제로 SI2의 순항 고도는 8,000~8,500m 상공이다. 하지만 해가 지면 로터의 회전수를 줄이면서 조금씩 하강하는 준(準) 활공비행을 한다. 덕분에 단 300W의 배터리 전력만 소비하며 상당한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다.
이후 해가 뜨면 SI2는 천천히 상승한다. 이때는 태양전지가 생산한 전력의 3분의 1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배터리에 저장된다. 그렇게 순항고도에 도달할 때쯤 배터리가 재완충돼 또 한 번의 야간비행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모나코에 마련된 임무통제센터(MCC)의 기상학자들은 매일 아침마다 구름, 풍량 등의 기상조건을 시뮬레이션해 SI2가 상승할 최적의 시점을 조종사에게 알려준다.
불가능을 향한 도전
물론 야간비행은 세계일주의 필요조건일 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때문에 SI2에는 SI1을 능가하는 첨단 기술이 총망라돼 있다. 일단 SI2는 SI1 대비 전폭을 9m 가량 늘려 양력을 높였다. 또 중량을 최소화하고자 종이보다 가벼운 1㎡당 25g의 고강도 초경량 탄소섬유로 동체를 제작했으며, 주날개와 꼬리날개에 부착된 1만 7,248개의 태양전지는 두께가 머리카락 수준인 135㎛에 불과하다.
동력은 13.5㎾급 전기모터 4기로부터 얻는다. 태양전지가 생산한 하루 최대 340㎾의 전력으로 로터 4개를 회전시켜 최대 70마력의 추력을 생성한다. 야간비행을 위해 각 로터의 하단에는 중량 1㎏당 260Wh의 고에너지 밀도를 지닌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배치돼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종석은 영상 40℃에서 영하 40℃의 온도 변화에 견딜 수 있도록 절연 설계돼 있으며, MCC에만 20여명의 전문가들이 SI2와 조종사의 상태, 기후 등 100개 이상의 데이터를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해 실시간 대응하고 있다.
세계일주 기간 동안 두 파일럿은 주기적으로 번갈아 가며 조종간을 잡는데, 남은 6구간 동안 세 차례의 5일 연속비행과 한차례의 4일 연속비행을 수행해야 한다. 자동조종장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3.8㎥의 좁은 조종석에 홀로 앉아 하루 4번 주어지는 20분의 쪽잠으로 버텨야만해 이 구간들이 전체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물론 피카르와 보슈베르크는 충분한 시험비행과 사전 시뮬레이션에 힘입어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앞으로 돌발변수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7월말 또는 8월초쯤 3만5,000㎞의 비행을 마치고 금의환향하는 SI2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류가 화석연료시대를 넘어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나아가는 하나의 확실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26일 솔라 임펄스2의 세계 일주 기간 중 조종사의 휴식시간을 제외한 실제 비행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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