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ETH KOWITT
PHOTOGRAPHS BY ANDREW HETHERINGTON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라는 조건에 딱 맞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의 부지를 찾아내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매장 면적이 월마트 슈퍼센터 Wal-Mart Supercenter 평균의 3배인 약 5만 8,000㎡에달했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큰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아동 매장 면적을 결정해야 하는 등 어려운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한국의 독특한 가전제품인 김치냉장고가 들어간 부엌 쇼룸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에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금속 젓가락 선호 같은 한국인의 취향을 섬세하게 파악하는 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첫 실사(實査)부터 이케아 한국 진출의 첫 교두보인 광명점을 개장하기까지는 총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케아는 지난해 12월 열린 개장 행사에서 리본을 자르는 대신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한국의 전통이라기보단 이케아의 전통이다).
이처럼 느린 행보는 이케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유통 전문 컨설팅업체 캔터 리테일 Kantar Retail의 데이비드 마코트 David Marcotte는 이케아에 대해 "과도하게 빠른 확장은 어떻게든 피해 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6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이케아의 아태지역 소매부문을 총괄하는 미카엘 팔름퀴스트 Mikael Palmquist는 이에 대해 "진출 국가가 많아질수록 할 일이 복잡해진다"는 말로 답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객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했는데도, 이케아는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적절한 주차 공간 면적 계산에 실패했고, 언뜻 봐선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던 지도 한 장이 일부 소비자들의 분노를 샀다. 한반도 동쪽에 위치한 바다의 이름을 한국인이 선호하는 '동해' 대신 '일본해'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 대다수는 이케아를 용서한 듯하다. 매장 면적 기준으로 이케아의 세계 최대 매장인 광명점은 2015년 매장별 매출액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운으로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회사는 이케아 제품 판매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고 있다. 조립식 가구, 운송, 재조립이라는 독특한 스웨덴식 스타일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케아는 월마트 Wal-Mart, 까르푸 Carrefour, 토이저러스Toys “R” Us보다 더 많은 국가에 진출했다. 그중에서 세계 최대 매장 10곳 중 8곳이 위치한 중국은 이케아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시장이다. 모로코에도 조만간 매장 하나를 열 예정이며, 브라질 진출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이케아는 인도에서도 미트볼 *역주: 이케아 매장 내 푸드코트의 대표메뉴 판매를 준비 중이다. 향후 10년간 이곳에 약 20억 달러를 투자해 매장 10곳을 연다는 계획이다.
이케아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성장 중인 중산층을 공략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야 2020년까지 매출 500억 유로를 달성한다는 이케아의 목표 달성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4년 회계연도 기준 이케아의 매출은 287억 유로(회계연도 종료 시점 기준 평균 환율로 계산할 경우 미화 390억 달러)였다. 이는 2005년 매출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현재 이케아 그룹은 약 50개의 가맹점 매장 외에 318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까지 직영점 수를 50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순익은 지난 5년간 31% 상승한 33억 유로(45억 달러)를 기록해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타깃 Target과 로우스 Lowe’s를 능가했다. 각자 다른 시장 상황, 언어, 문화를 지닌 여러 국가에서 낮은 가격을 유지하며 대량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유통업계의 가장 힘든 과제 중 하나를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다. 이케아는 (물론 약간의 조립은 필요하지만) 유통업 부활의 좋은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케아의 사례는 해외에서 고전 중인 월마트와 캐나다 진출 대실패를 겪은 후 최근 완전 철수를 결정한 타깃(지난달 포춘 기사를 확인하라)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케아 모델의 핵심은 대량생산이다. 한 가지 제품을 대량으로 제조해 공급업체에 지급하는 단가를 낮게 유지하고, 소비자가도 낮춘다. 이케아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인 '빌리 Billy' 책장은 10초마다 한 개씩 팔린다. 매장 수가 늘면 그만큼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을 더 낮출 여지가 생긴다. 그 결과 이케아는 작년에 평균 1% 정도 가격을 낮췄다.
대량생산은 이케아에게 분명 사업모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중 소비자들'과 '얄팍한 지갑의 고객들'을 돕는 일은 이케아의 미션이다. 크로아티아부터 카타르까지, 전 세계 이케아 직원들이 이 미션을 아침마다 복창하고 있다. 이케아 그룹의 CEO 페테르 앙네피엘 Peter Agnefjell은 "전 직원이 수많은 소비자의 일상생활을 개선한다는 비전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직원들로 하여금 비전에 따라 행동하게 하고 그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케아에서 20년째 근무하고 있는 그는 2013년에 CEO에 올랐다. "우리에게 성장은 의무나 다름없다."
의무든 아니든, 이케아는 한때 사업 확대에 서툴렀다. 1985년 미국 시장 첫 진출 당시, 이케아는 유통업체의 본분을 망각하고 수출업체처럼 행동했다. 필라델피아 인근의 첫 매장에 대강 놓인 침대와 옷장의 치수는 미국식 도량형으로 변환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판매량의 많은 경우에도 그 이유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미국 소비자는 이케아 꽃병을 이상하리만치 많이 구매해 물컵으로 사용했다. 얼음을 가득 담는 미국인의 취향으로선 유럽식 물컵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아케아 중역을 지낸 스틴 캔터 Steen Kanter는 "다 잘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결과는 지옥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현재 유통 및 브랜드 컨설팅 회사 캔터 인터내셔널 Kanter International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92년 이케아 이사회는 미국 시장 철수를 고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이사회는 전에 없던 시도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바로 철저한 시장조사였다.
바로 그 시장조사가 현재 이케아 확장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연구 부서를 이끄는 미카엘 이드홀름 Mikael Ydholm은 "본국 문화에서 멀어질수록 이해하고, 배우고, 적응할 필요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문화 간 차이보단 공통점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일례로, 이케아는 8개 도시에서 시민 8,292명의 아침 일과를 추적했다. 그 결과 상하이 시민들의 출근 준비 시간(56분)이 가장 짧고, 뭄바이(2시간 24분)가 가장 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뭄바이는 기상 알람도 가장 많이 사용했다(1회 이상 누른다는 응답이 58%였다). 뉴욕과 스톡홀름 시민들은 욕실에서 볼일을 볼 확률이 가장 높았다(16%). 그러나 어떤 도시를 막론하고 남성보단 여성이 옷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상당수가 옷을 고르는 일이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케아는 뒷면에 옷과 액세서리를 걸 수 있는 입식 거울을 출시했다. '크내퍼 Knapper'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아침에 서두를 필요 없이 전날 밤에 미리 입을 옷을 코디해둘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케아는 또 다른 연구를 통해 도시 거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거주 공간 면적은 좁아졌다- 다기능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케아는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기기 무선충전 기능이 내장된 전등과 침실용 협탁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전등 담당 사업 매니저 이예아네테 스키엘모세 Jeanette Skjelmose는 이에 대해 "전선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8,292명을 조사해도 때론 정답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늘 설문에 정직하게 대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드홀름은 이를 좀 더 우아하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은 반드시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멋지게 눈에 띄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 함정을 피해 가는 한 가지 방법으로, 이케아 연구진은 직접 체험에 나서고 있다. 이케아는 고객 가정을 자주 방문한다. 연구와 현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심지어 신청한 가정에 인류학자를 보내 직접 살아보게 하기도 한다. 이케아는 소비자의 소파 사용 방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스톡홀름, 밀라노, 뉴욕, 중국 선전 Shenzhen의 일반 가정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드홀름은 "앉아 있기와 TV 보기 외에도 온갖 다양한 활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케아의 탐정들'은 선전의 연구 참가자들 대다수가 소파를 등받이로 삼아 바닥에 앉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드홀름은 "이케아가 바닥에 앉아 등받이로 쓴다는 것을 가정하고 소파를 디자인한 적은 없었다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문화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이유는 국가별로 다른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케아 모델의 핵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량생산에 있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단일 모델 전략을 최대한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케아는 하나의 제품으로 서로 다른 시장을 공략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이케아 매장 내 실제 방 크기의 쇼룸에선 가끔 소비자들이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쇼룸은 소비자들에게 이케아 제품을 일상에서 활용하는 법을 보여주는 비밀스럽고 핵심적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 센다이와 암스테르담의 쇼룸에 똑같은 침대와 수납장이 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매장에는 다다미를 깔고 암스테르담 매장에는 비스듬한 지붕을 설치하는 식으로 현지 건축 양식을 반영한다. 미국 매장에선 침대에 베개를 잔뜩 올려놓는다.
카탈로그의 목적도 쇼룸과 비슷하다. 이케아의 카탈로그 전략도 포괄적인 방식이다. 32개 언어, 67개 버전으로 간행되는 카탈로그는 각각 현지의 특성과 풍습을 반영한다. 벨기에판 카탈로그는 프랑스어와 플랑드르어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어가 우세한 몬트리올 지역용 카탈로그는 위니펙 Winnipeg과 캘거리 Calgary 시 소비자용을 다르게 제작하고 있다.
이케아 카탈로그 최신 호는 2억 1,700만 부 발행됐는데, 카탈로그 분야 전 세계 발행 부수 1위라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인쇄는 스웨덴의 엘름울트 Elmhult에서 이뤄진다. 들어가선 안 될 요소가 전부 빠졌는지 검수를 책임지는 직원이 판본별로 한 명씩 있다. 대만판 카탈로그에 중국 본토에서 생산된 유리 제품이 들어가지 않고, 이스라엘판 카탈로그에 이란산 카펫이 있어서는 안 되는 식이다.
그렇지만 지역별 미묘한 차이를 100%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판에서 여성의 모습을 포토샵으로 지웠을 때나, 러시아판에서 레즈비언 커플을 삭제했을 때 이케아는 한 번씩 큰 홍역을 치렀다. 카탈로그 제작을 담당하는 이케아 커뮤니케이션즈의 홍보 담당 직원 카이사 오르바르손 Kajsa Orvarson은 "실수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고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좀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또 한 가지 어려운 숙제는 소비자 가격 결정이다. 이케아 브랜드의 매력 중 하나는 이상하리만치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소비자 인식이다. 이케아에선 이를 '충격적인 상품(breath-taking itemsㆍBTI)'이라고 표현한다. BTI는 이케아 사업 모델의 일부이자, 이케아 제품 전체의 가격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런던 북동부 웸블리 Wembley 지점의 충격적인 가격표가 중국에선 시큰둥한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중국 물가는 워낙 낮아 이케아 소프트아이스크림이 1위안(16유로 센트)에 팔리고 있다(이케아는 중국 매장의 상품가를 낮추기 위해 공급 제품의 약 80%를 현지에서체 생산해 운송비를 절감하고 있다).
이케아가 개도국 시장에 신규 진출할수록 BTI 달성은 점점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엘름울트의 디자인 매니저 마르쿠스 엥만 Marcus Engman은 69유로(77달러)라는 놀라운 가격표가 붙은 진열대의 '크노파르프 Knopparp' 소파를 예로 들었다. 스웨덴에서는 이만하면 굉장히 좋은 가격이지만,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이케아가 인도에서도 성공하려면 인도인이 BTI를 느낄 가격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엥만의 말처럼 "인도에서 싼 가격이면 미국에선 더 저렴하게 느껴질 것"이다.
가구업계에서 흔히 인용하는 통계가 있다. 소비자는 소파보다 차를 더 자주 바꾼다는 것과 식탁을 바꾸는 횟수는 배우자를 바꾸는 횟수와 같다는 것이다. 가구는 일종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거라서, 혹은 바꾸기에 너무 비싸서 새로 구매하지 않는다. 이케아는 초기부터 이런 패러다임을 흔들어 놓았다. 20여 년간 이케아의 경쟁업체 여러 곳을 이끌었던 마틴 투굿 Martin Toogood은 "이케아는 가구 유통업계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케아는 가격에 대한 집착으로 판매가를 계속 낮춰왔다. 사람들이 보지도 사용하지도 않을 테이블 아래쪽의 래커 칠을 한 번 덜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노동력의 투입을 구조적으로 최소화하기 위해 판매자의 노동을 소비자의 몫으로 돌렸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들고 갈 수 있도록 가구를 조립식으로 바꿨다. 그 결과 재고 보유와 상품 배달 비용이 크게 줄었다(1956년 '레베트Levet'테이블을 산 디자이너가 자동차 짐칸에 싣기 위해 다리를 잘라내는 모습에서 조립식 가구 아이디어가 태동했다).
이케아 제품의 3분의 2는 유럽에서 생산된다. 자체 공장은 전체 생산량의 12%를 차지하며, 1,002곳의 외부 협력업체가 나머지를 공급한다(타깃이나 월마트와 달리 이케아는 일부 식품을 제외한 전 제품에 자체 브랜드를 부착한다). 이케아는 총 9,500종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가별로 규격이 다른 플러그처럼 여러 가지 변경사항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제품 수는 5만 개가 넘을 듯하다.
그렇다 보니 매년 이케아 제품 포장에 사용되는 골판지 면적만도 8억㎡에 이르고 있다. 포장 담당 부매니저 앨런 디크너 Allan Dickner는 이에 대해 "자랑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포장을) 최소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크너는 한 스탠드 조명 제품의 포장법 변천 과정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초기에는 제품을 비닐로 싼 후 사각형 박스에 넣었기 때문에 빈 공간이 상당 부분 발생했다. 디크너는 최종 버전을 "운송업계의 환상이 이뤄진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출 있는 L자 형태의 박스였다. 초기 디자이너들은 미적인 이유를 들어 스탠드 조명을 반으로 자르는 데 거부감을 보였지만, 이제는 전 제품이 조립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는 조립식 제품이 컨테이너 박스에 한 치의 빈 공간도 없이 꽉 찰 수 있게 된 비결이다. 공간 낭비는 곧 돈 낭비일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나쁘다. 다크너는 이를 "공기가 싫다"는 말로 표현했다. 2000년대 초 이케아는 직원들을 상대로 티 라이트 tea light *역주: 양초의 일종 포장 속 공기 없애기 대회를 열었다. 1등에겐 태국으로 2주간의 포상 휴가를 제공했다. 당시에는 자루 안에 대충 담는 식이었는데, 한 네덜란드인 직원이 줄을 맞춰 쌓은 후 진공 포장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빈 틈 없이 차곡차곡 쌓을 수 있도록, 양초를 감싼 금속 용기의 디자인을 수정했다. 디크너는 이에 대해 "최첨단 과학이었다"고 감탄했다. 이케아는 포장용 기계를 제조하기 위해 또 하나의 북유럽 산업과 손을 잡았다. "우리는 피시 스틱 fish stick *역주: 생선살 튀김 포장법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때때로 압축 포장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소비자에게 과도한 불편을 안길 때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작고 저렴한 물건의 조립에 3시간씩 걸리는 일이 없도록, 조립 설명서 팀이 종종 나서고 있다. '조립 인간(assembly figure)'이라 불리는 중성적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는 설명서를 매년 1,400종가량 제작하는 이 팀의 조언은 제조 과정에도 반영된다. 설명서 팀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 직원들은 조립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케아에는 조립 시간이 너무 긴 제품을 지칭하는 별명도 있다. 디크너는 "애꿎은 '남편을 잡는 제품(husband killer)'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눈치채지 못한 이들도 있겠지만, ‘남편 킬러’의 숫자는 최근 몇 년간 많이 줄어들었다. 이 작은 성취의 일등 공신은 제품 디자인의 변화다. 시장조사와 물류에 대한 투자를 두 배로 늘린 이케아는 디자인 개선에도 꾸준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엥만이 이끄는 이케아 디자인 팀은 기존 제품의 개량버전을 포함해 매년 2,000종의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마리안네 하그베리 Marianne Hagberg와 크누트 하그베리 Knut Hagberg 남매는 이케아에서 디자이너로 36년째 근무 중이다. 이들의 최대 성공작 중 하나인 3단 서류 수납장의 디자인은 3번 수정된 바 있다. 마리안네는 이를 "늘 있는 일"이라 말했다. 디자인이 바뀔 때마다 수납장 지지대의 형태가 편자 모양, 삼각형, 사각형으로 계속 바뀌어왔다. 크누트는 조만간 바꿀 모양이 없어질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본보기 제품 작업실은 개발 중인 디자인의 시제품을 빠르게 제작해 실제 제품 형태가 (최소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을 때) 어떤 모양이 되는지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 포춘이 찾아갔을 때는 4대의 3D 프린터 중 한 대에서 변기용 솔이 제작되고 있었다. 평범한 제품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본보기 제품 작업실 담당자 헨리크 홀름베리 Henrik Holmberg는 "괴상한 제품도 많이 다룬다"고 말했다. "괴상한 아이디어를 밖에 퍼뜨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작업해본 시제품 중 가장 괴상했던 물건으로 달걀 포장 팩 재료로 만든 램프를 꼽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공기는 포장에겐 적일지 몰라도 디자이너에겐 친구다. 엥만은 "제품은 공기가 많을수록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10대 때 매장에서 카트를 끌며 이케아 생활을 시작했다(이케아 제품 개발자였던 그의 부친은 자기 아이들이 가구를 망가뜨리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캐주얼 스타일의 원형 소파 '클리판 Klippan'을 고안했다). 디자인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엥만은 선반 두 개를 결합한 탁자를 보여주었다. 중간이 비어 있어 그만큼 재료가 절약되는 디자인이었다. 조립 과정을 단순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탁자 다리가 나사 없이 결합해 있었다. 고정용 부품은 전체 제품가격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불편감을 준다.
이케아 디자이너들은 생산원가 절약을 위해 가구업계 외부 전문가들과도 기꺼이 협력하고 있다. 예컨대 신형 테이블의 대량생산은 쇼핑카트 제작업체에 의뢰하고, 의자는 양동이 제작업체에 맡기는 식이다. 엥만은 나무통 가격이 떨어지자 통 제작 업체에게 원형 테이블 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코르크 같은 일부 원자재도 상황은 비슷하다. 와인 병에 코르크 마개와 플라스틱 스토퍼 stopper *역주: 마시다남은 와인을 보관하기 위한 마개 를 쓰는 경우가 늘면서 코르크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이케아는 다양한 곳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고 있다. 엥만은 중국 전역의 술집과 음식점에서 사용되는 접이식 탁자에 주목했다. 그는 "공짜나 다름없이 싼 다리미판 구조의 이 탁자는 가장 스마트한 테이블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케아가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수입해 오는 아카시아 목재도 그를 기쁘게 하는 자재이다. 아카시아는 티크 나무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소나무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수종은 자라면서 뒤틀림이 심해지는 데다, 특히 마르면 뒤틀림이 더 심해져 접착이 힘들다는 단점을 지녔다(가구업계에서 합판이 인기있는 이유 중 하나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모든 조각이 균일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엥만은 자신의 팀이 아카시아 목재의 작업 및 건조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디자인 센터를 한 바퀴 돌고 있으니 미래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디자이너 중에는 2019년 신상품을 제작하고 있는 직원도 있었다. 엥만에 따르면 일부 시장에선 전기자전거의 시장성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상호교류와 놀이를 장려하는 제품들도 긍정적 전망을 보이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통한 교류로 하나라는 소속감이 사라지고 있지만, 소속감이 가정생활의 핵심 가치인 만큼 이케아에도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케아가 가전제품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이케아는 오래전 TV 시장에 진출했지만 역사상 최악의 실패를 맛본 바 있다. 엥만은 "우리는 실수를 하는 데 있어 세계 최고"라며 "그러나 실수를 바로잡는 데에도 무척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케아의 사업 구조]
이케아 매장은 캄프라드 가문과 이케아 그룹의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이케아라는 브랜드 '콘셉트'에 대해 매출의 3%를 사용료로 지급하고 있다. 이는 이케아 로고, 쇼핑 경험, 이케아 고유의 가치를 포괄하는 것이다. 사용료는 전세계 매장을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 세금을 두 번 절감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종류의 소득 세율이 제로에 가까운 네덜란드 소재 인터이케아시스템스 Inter Ikea Systems에 사용료를 납부하면, 모국에서의 과세 대상액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다국적 기업들이 이케아의 이런 시스템을 모방하고 있다.
[잉바르 제국]
스웨덴의 작은 마을 출신인 이케아 창업자는 자사의 조립식 제품보다도 더 복잡한 기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는 지난 1943년 열일곱의 나이에 이케아를 창업했다. 잉바르의 I, 캄프라드의 K, 가족 농장 엘름타뤼드 Elmtaryd의 E, 고향 마을 아군나뤼드 Agunnaryd의 A를 따 사명을 지었다. 이케아의 초기 로고 중에는 국제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E’ 위에 악센트가 붙은 버전도 있었다. 세계를 향한 캄프라드의 야망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70년이 넘은 현재, 캄프라드는 여전히 이케아의 신화적 존재로 남아 있다. 이케아 문화의 상당 부분이 캄프라드로부터 시작됐다. 한 가지 예가 제품명이다. 가벼운 난독증을 앓던 그가 여러 제품의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침대는 노르웨이의 지명에서, 커튼과 천 제품은 스칸디나비아 소녀, 꽃, 식물의 이름에서, 책꽂이는 직업명에서 따왔다. 이름을 지은 이유는 숫자보다 이름이 기억하기 편해서였다. 엘름울트에 있는 이케아 박물관의 가이드 유니 반베르그 Juni Wannberg는 "캄프라드가 즐겨 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캄프라드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티백 재활용, 비행기 이코노미석 탑승, 오래된 볼보자동차 운전 등 그의 철저한 검소함에 관한 것들이다. 이런 그의 면모는 이케아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과거에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역사를 다룬 책 '디자인으로 이끌기(Leading by Design)' 저술에 참여한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독일인 할머니가 '히틀러의 열성적인 지지자'였기 때문에 자신도 젊은 시절 파시스트 단체인 신스웨덴 운동(New Swedish Movement) 집회에 참석했다고 해명했다. 90년대에 이 사실이 밝혀지자 캄프라드는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이케아는 '캄프라드가 이케아와 회사의 민주주의적 이상에 평생 헌신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헌신이 그의 엄청난 부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자산 추정치는 최저 35억 달러에서 최대 420억 달러까지 다양하다(이케아는 전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혼란이 생긴 이유는 이케아 매장을 운영하는 이케아 그룹과 이케아 브랜드를 소유한 인터이케아 Inter Ikea 어느 쪽도 캄프라드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도표 참조). 이케아 및 (여러 재단을 포함한) 다른 법인체 간 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구축된 터라 회사의 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포춘도 규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절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그의 세 아들이 부동산, 호텔 체인, 은행, 신용카드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캄프라드 제국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지난해 88세의 캄프라드는 40년 가까이 살던 스위스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케아는 아내의 사망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귀환은 스웨덴 세금 제도 완화 시점과 겹쳤다. 한 해 전 캄프라드는 인터이케아 홀딩 Inter Ikea Holding의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막내아들 마티아스 Mathias가 의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잉바르 캄프라드의 존재감은 엘름울트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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