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디자인 전문가가 사장으로 왔으니까 한샘의 가구와 인테리어가 멋있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겠죠. 물론 그것도 열심히 하겠지만, 저는 지금 한샘의 미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주 바쁩니다." 서울 원서동 한샘디자인센터 4층 집무실에서 만난 권영걸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유리문을 통해 창덕궁 비원이 보였다. 신록으로 반짝이는 나무들이 근사한 화폭을 만들고 있었다. 길쭉한 한쪽 벽면에는 권 사장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권영걸 사장은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지난해 2월 한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현재 한샘의 디자인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권 사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샘이 만들고 있는 가구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경쟁사와 어떻게 맞서 싸우려고 하는지, 회사 경영 현황은 어떤지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사안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그는 보다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권 사장은 지난해 한샘 사장 취임 후 '신문명디자인대학'을 기획했다. '신문명디자인대학'은 사회 각 분야 전문가와 디자인 전공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다. 권 사장은 말한다. "온갖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지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서구 문명을 더 이상 따라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뼛속까지 서구화된 우리 삶과 그에 따른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한샘은 4대 과제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제를 공론화하고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어가기 위한 논의의 장이 바로 '신문명디자인대학'입니다."
권 사장이 말한 4대 과제는 '동서양의 가치를 융합해 보다 나은 제 3의 디자인을 지향한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디자인 사고를 바꾼다', '디지털 기술을 선용해서 생활문화 혁명을 이룬다', '격변하는 중국을 이해하고 동아시아적 가치에 기반을 둔 디자인을 만들어 세계화한다'이다.
한마디로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얘기다. 거대 담론이다. 가구회사가 던지기엔 너무나 큰 화두로 보인다. 이에 대해 권 사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과하게 들리세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디자인된 사물입니다. 현재 일류 디자이너, 몸값이 높은 디자이너로 인정받기 위해선 사람들의 욕망을 부채질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허기와 갈증을 만들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채우게 만들어야 하죠. 욕망의 만성화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디자인 방식입니다. 한샘이 지향하는 4대 과제는 디자인 혁명입니다. 디자인 혁명이 일어나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샘이 만드는 제품에는 이런 디자인 철학을 담을 겁니다."
삶을 바꾸는 디자인
한샘은 '신문명디자인대학'에서 논의한 것들을 실제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창신(創新)'이란 이름의 국제 디자인 공모전과 '디자인 클러스터'가 그것이다. 창신 공모전 참가자들은 한샘이 제기한 4대 과제에 대한 강연을 먼저 들어야 한다. 그 후 작품을 제출한다. 6월 2일 공모 마감 후 심사를 거친 뒤 7월 11일 선정작 시상식과 강연을 함께 연다. 한샘은 공모전 당선 작품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권 사장은 설명한다. "내년 3월이면 한샘의 4대 과제가 녹아 있는 제품을 보시게 될 겁니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당선작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듭니다. 그런 다음 한샘 생산부서가 다시 손을 보죠. 그 후에는 주부 체험단이 직접 사용해봐요. 이렇게 최종 제품이 나오면 선정된 작가의 이름을 제품에 붙여줍니다. 한샘은 (수상자에게) 제품 판매에 대한 로열티도 줄 겁니다."
디자인 클러스터는 규모가 크다. 일종의 디자인 도시를 만드는 작업이다. 현재 입지 선정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고 있다. 현재로선 경기도 일대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권영걸 한샘 사장은 말한다. "100만 평 규모에 세우는 국제 디자인 도시라고 보면 됩니다. 이 곳에 들어서는 모든 것에 대해 국가별로 비율을 정해놓았어요. 한국 35%, 중국 35%, 일본 10%, 미국 10%, 유럽 10%죠. 자본, 구성원, 건축물 모두 이 비율에 따라 유치할 겁니다." 한샘은 디자인 클러스터에 혁신 디자이너 500명, 혁신 디자인 스튜디오 300개, 디자인 관련 기업 500개, 디자인 교육기관, 전시 컨벤션센터, 로펌, 디자인과 관련된 정부 부처 출장소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권 사장은 디자인 클러스터가 글로벌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디자인 클러스터에 모인 모든 구성원이 상호작용할 수 있으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독립 디자이너와 규모가 작은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요. 이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시장과 연결해주는 게 디자인 관련 전문 기업이 할 일입니다. 디자인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전시 컨벤션센터가들어와야 하고요. 엔젤 투자자도 필요합니다. 디자인 불법 복제를 막으려면 로펌도 있어야 하고요."
서양에서 동양으로
권 사장은 서울대 교수 정년을 3년 남겨놓고 한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샘 창업자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한샘에서 같이 일하자며 그를 불러들였다. "고민 끝에 제안을 고사했어요. 그랬더니 조 명예회장님이 중국 여행을 가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10일 동안 함께 중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들은 상하이(上海)에서 시작해 쑤저우(蘇州)~항저우(杭州)~저우좡(周莊)~홍춘(宏村)을 거쳐 시안(西安)으로 갔다. 시안에서 다시 옌안(延安)으로 들어갔다. 옌안은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성지다. 권 사장은 말한다. "옌안에는 마오쩌둥,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등 중국 공산혁명 영웅 8인의 동상과 그들이 살던 움막이 보존되어 있어요. 거대한 마오쩌둥 기념관도 있고요. 조 명예회장님이 그 자리에서 말하더군요. '봐라, 사람이 많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도 같이 디자인 혁명을 해보자.' 그건 제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샘에서 일하는 걸 수락했죠."
조 명예회장과 권 사장의 첫 만남은 2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한샘이 주방가구 메이커에서 종합 인테리어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려던 때였다. 조 명예회장은 권 사장이 교수로 재직할 당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여러 번 그에게 맡겼다. 제품을 예쁘게 디자인해 달라는 주문이 아니었다. 인구학적 변동과 사회 문화적 변화에 한샘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주로 과제로 내줬다. 권 사장은 말한다. "핵가족 시대, 맞벌이 부부 시대로 넘어가는 사회변화에 따라 주거형태나 가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주제로 주셨어요. 저는 한샘이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한샘은 매출 100조 원을 꿈꾸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시장만 잘 공략해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한샘은 특히 중국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샘은 동서양을 융합한 디자인으로 중국인의 정서를 표현한 제품을 도입해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한샘 사업보고서에는 권 사장이 서울대 교수 재직 때 의뢰받은 연구과제가 적혀있다. '한 · 중 ·일 전통공간의 유형학적 비교분석에 의한 디자인 전략수립'이다. 권 사장은 말한다. "미국, 이탈리아, 한국 디자이너 세 명이 있다고 칩시다. 셋 중 누가 중국인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 디자이너입니다. 물론 세부로 들어가 보면 중국은 우리와 많이 달라요. 그렇더라도 크게 놓고 보면 우리와 정서상으로 동질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거죠." 권 사장이 이끄는 디자인혁신본부에서는 현대는 물론, 명·청·근대 중국인의 생활상과 문화·예술 등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모으고 있다. 그들이 어떤 것들을 선호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권 사장은 '한 · 중 · 일 전통공간의 조영(造營·가꾸고 세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신과 방법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 중국과 일본을 각각 세 번씩 다녀왔다. 권 사장이 한 · 중 · 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적 가치에 눈을 뜨게 된 데에는 조금 긴 배경이 있다. 권 사장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서당을 다니고 천자문을 떼는 등 유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권 사장은 1988년부터 인류 건축문명권 탐사를 시작했다. 최근까지 75개국 680여 개 도시를 다녀왔다. 권 사장은 말한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하루 종일 돌무덤 천지인 폐허만 보고 내려온 적도 많았어요. 그런 돌무덤을 자꾸 보니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마을과 도시를 구축하고 살았는지 추론할 수 있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런 생활을 15년 정도 하고 나니까 결국은 한·중·일로 관심이 가더라고요. 거대한 흐름이 아시아로 오고 있음을 느꼈어요. 귀소본능 같은 것도 작용한 것 같아요." 권 사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중·일 주거문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새로운 디자인 시대
한샘은 기업 성장동력을 디자인에서 찾고 있다. 4대 과제에서 밝혔듯이, 동서양의 가치를 융합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진출하는 것이 기본 목표다. 하지만 이미 서구 문명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한샘의 디자인 방향이 얼마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권 사장은 한국의 아파트 거실을 예로 들었다. 그는 아파트 거실 형태가 30~4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사장은 말한다. "집에 손님이 놀러왔어요. 거실에 놓인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누군가가 슬그머니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앉죠. 그러면 하나둘 따라서 내려와 앉기 시작해요. 나중에는 티 테이블에 옹기 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바닥에 내려와 앉았을까요?" 권 사장은 말을 이었다. "다른 방식으로도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한샘이 생각하는 이유는 이겁니다. 유전자 속에 있는 조상들의 DNA가 그들을 내려와 앉게 한 거죠.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온 조상들의 경험이 DNA에 쌓여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린 겁니다."
우리가 DNA와 맞지 않는 공간에서 억지로 살고 있다는 얘기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틀에 박힌 공간에서 살면 삶의 질도 향상되기 어렵다. 권 사장은 "제품이 내 몸에 맞을 때, 내 감성과 기억에 부합할 때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양파껍질 벗기듯 핵심까지 파헤쳐서 디자인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미 한샘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 혁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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