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르노자동차에서 닛산 부활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파견된 인물이 지금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CEO이다. 곤은 1999년 취임 직후 ‘닛산 리바이벌(Revival·부활) 플랜’을 발표했다. 닛산 리바이벌 플랜에는 ‘ 영업이익률 4.5% 달성, 유이자 부채 50% 삭감, 신형 차 22종 발매’라는 세 가지 목표가 제시됐다.
그는 이 계획을 그대로 실천해 닛산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닛산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영전을 거듭한 곤 CEO는 2009년 르노 CEO겸임에 이어 2014년에는 르노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곤이 승승장구하자 일본에선 그의 경영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곤을 관찰한 끝에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모호한 표현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곤은 닛산 경영활동에서 비용 절감, 수익성 제고, 흑자 달성 같은 피상적인 내용을 완전히 도려냈다. 대신 그는 숫자로 표시된 목표를 제시하고, 또 숫자로 실적을 점검하는 등 닛산에 숫자경영을 도입했다.
곤 CEO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숫자경영을 소개하며,경영목표를 숫자로 제시할 땐 다음의 세 가지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첫째, 숫자가 많아선 안 된다. 많은 숫자를 제시하면 초점이 흐려진다. 2009년 닛산의 사업목표에는 ‘영업이익률 4.5% 달성, 유이자 부채 50% 삭감, 신형 차 22종 발매’ 단 세 개 숫자만 등장했다. 이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이 회사의 목표를 명확히 알 수 있었고, 또 그 목표에 집중할 수있었다.
둘째, 숫자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 영업이익률 4.5%, 유이자 부채50%, 신형 차 22종’ 등 목표에 나온 숫자는 매우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의미를 지닌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의미가 없는숫자는 추상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숫자라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저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식으로 조직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남다르게 된다.
셋째, 목표치를 실제 예상치보다 약간 높게 책정한다.그래야 의욕이 생긴다.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한다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곤은 숫자경영으로 당장 망할 것 같았던 닛산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곤은 닛산이 안정화된 이후에도 특유의 숫자경영을 지속했다. 그는 5년 단위 중장기 계획에서도 ‘해외 자동차 판매량 100만 대 달성, 영업이익률8% 달성, 유이자 부채 제로’ 라는 세 가지 숫자 목표만 제시했다. 일본에선 이를 ‘닛산 180 계획’이라고 불렀다. 곤은 닛산 180 계획도 모두 달성하면서 불과 몇 년 만에 닛산을 도요타나 혼다를 위협할 정도로 환골탈태시켰다. 숫자경영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또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숫자경영은 조직이 커질수록 유용한 측면이 있다. 가족이나 팀 같은 조그마한 조직은 숫자경영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큰 조직에선 관리자의 정보력과 퍼포먼스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제반 사항을 다 알 수 없고, 안다고해도 의사결정에 이를 모두 반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때 숫자경영은 명확한 목표 설정과 성과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가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고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한 걸음더 나아가 ‘관리되지 않으면 개선할 수도 없다’고까지 했다. 숫자를 통해목표를 세우고 숫자를 통해 결과를 점검하며 이에 따라 보상을 제공하는것이 합리적인 경영이라는 뜻이다. 숫자를 통한 평가는 여느 평가 방법보다 공정성 담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 평가 대상자도 결과에 쉽게 수긍하는 장점이 있다.
숫자경영의 유용성은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군대 조직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례가 좋은 예이다.
이순신 장군의 숫자경영은 전쟁 동안 군영에서 일어나는 일을 빠짐없이 기록한 난중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회고하면서 그 일에 동원된 목수나 군졸의 수, 물자 변동의 양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군사들에게 술 1,080동이를 먹였다’라든지 ‘ 무씨 2되 5홉을 심었다’ 등의 내용이 그 예이다. 이 기록들로 보건대 이순신 장군은 군대 살림살이에 필요한 보급품 내용을 그 수량까지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경영자적 자질도 훌륭했던 듯하다. 이순신 장군은 제대로 된 보급이 이뤄지지 않자 직접 병졸들을 데리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마련하는 등 솔선수범의 행보를 보였다. 여러 기록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수군은 보급에 의존하기보단 자급자족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순신 장군은 전장의 지배자이자 뛰어난 경영자였던 셈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훌륭한 군인일 뿐이었다면, 당시의 빈약한 보급상황을 고려했을 때 임진왜란의 결과는 크게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 아무리 훌륭한 장군이라도 굶주린 병사들을 데리고 연전연승을 하긴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이순신 장군은 부산으로 출병하라는 선조의 거듭된 명령을 거부해 파직 처리되는 과정에서도 군영의 물자를 정확히 계산해 인수인계하는 숫자경영의 치밀함을 보여줬다. 이순신 장군은 그가 파직당할 당시 진영에 군량미 9,914석, 화약 4,000근 등이 있어 이를 인계했다고 기록했다. 이순신 장군은 다른 소소한 물품에 대해서도 꼭 숫자로 기록을 남겼는데, 평소에도 군영의 각종 보급품 수량을 항상 점검하는 숫자경영의 습관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조 어느 대 어느 장군의 기록에서도 이순신 장군만큼 물품 재고상황을 상세히 정리한 이는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이라는 전승의 기록을 남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숫자경영이 큰 역할을 한셈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노라면 철저한 기록정신과 숫자경영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너무 큰 예만 들었지만, 이런 숫자경영은 기업이나 군대 등의 조직 운영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필자는 학창시절부터 항상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 열심히 공부하자’ ‘ 착하게 살자’ 같은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 이번 주에는 학과 이외의 공부를 50시간 하자’ ‘학기 중 사회봉사 활동을 최소 2회 이상 하자’ 등의 구체적인 목표였다. 목표를 세운 다음에는 실천한 수치도 꼭 기록해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그렇게 삶에서도 숫자경영을 실천하며 살아온 것이 부족한 필자가 (아직 부끄럽기만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된 나름의 비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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