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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정관영 카네이 테이 대표

업사이클링에 뛰어든 루키 디자이너 미군 텐트를 명품으로 둔갑시키다

국내 신규 브랜드 카네이 테이KANEI TEI는 업사이클링을 콘셉트로 한 패션 브랜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됐던 미군 텐트를 소재로 한 패션 제품들을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비(非) 디자이너 출신인 정관영 대표는 포춘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약점은 버리고 강점에 집중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 했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지난 1월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인근에서 운영하는 해외명품편집매장 분더샵에서 패션 브랜드 ‘카네이 테이’ 발표 행사가 열렸다. 카네이테이는 이 브랜드를 만든 재일교포 3세 정관영 대표의 일본 이름이다. 이날행사는 몇 가지 이유로 패션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았다.

우선 이날 선보인 카키색 가방과 지갑 등의 제품들은 2차 세계대전과 중동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했던 텐트 천으로 만들어졌다. 제품을 기획 디자인한 정관영 대표가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신선했다. 정 대표는 이혜경 21드페이21Defaye 대표에 의해 패션업계에 입문했다. 이혜경 대표는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콜롬보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인물. 콜롬보의 대표적인 제품 악어가죽 가방은 국내 재벌가 사이에서 혼수와 예단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2011년에는 이서현 당시 제일모직 부사장 지시로 제일모직이 콜롬보 본사 지분 100%를 인수해 국내외 패션업계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던 이혜경 대표는 2011년부터 1년간 콜롬보 총괄 디렉터로 일한 후 독자적으로 패션 브랜드 21드페이를 설립했다. 카네이 테이는 21드페이의 패밀리 브랜드다.

해외 명품들만 입점해 있는 분더샵에 처음으로 국내 브랜드, 그것도 신규브랜드가 입점했다는 사실도 업계 관계자들에겐 상당한 화젯거리였다. 카네이 테이는 신진디자이너 후원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분더샵 관계자의 눈에 띄어 브랜드 발표와 동시에 분더샵에 입점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기자는 카네이 테이 론칭과 관련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정관영 대표를 만났다.

못하는 것, 자신 없는 것 빼고 강점에만 집중
정관영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제품 제작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가방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정한 과정도 그랬지만 그 후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기왕이면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명품은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이 조건들을 놓고 고민하다 보니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명품 업체들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 좋은 가죽을 들여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가져오더라도 가격이 높다는 게 문제겠더라고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가 가방을 처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에르메스나 샤넬과 비교해 비싼 가격을 닮기보단 그들 브랜드가 추구하는 특별한 가치를 닮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못하는 것, 자신 없는 것 빼고 제가 가진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죠. 제 강점은 무엇이든 일단 도전해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밖으로 가방 소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정 대표는 서울 시내와 외곽지역의 공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처음엔 폐자동차의 가죽 시트, 페르시아 산 카펫도 소재 후보군에 포함했다. 하지만 수요와 제작 환경 등 여러 이유에서 제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태원의 밀리터리숍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정 대표는 말한다. “밀리터리룩은 꾸준히 성장해 온 패션 아이템이라 눈길이 가더군요. 당시 저는 ‘사람들은 더 리얼한 걸 원한다. 최근 체험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다. ‘더 리얼한’ 밀리터리 패션 아이템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제 군인들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소재를 사용하기로 결심했죠.” 그 후 정 대표는 가방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군용 제품을 찾아 나섰다. 곧바로 동두천 애신시장(구양키시장)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미2사단이 주둔했던 지역으로, 이 시장에는 미군 부대로부터 흘러나온 군용 물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정 대표는 이곳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텐트를 발견했다. 그는 말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스토리가 있는 오래된 텐트를 사용하면 역사성을 지닌 리얼한 밀리터리 패션 아이템을 만들 수 있겠다고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처음부터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슈를 만들자는 계산에서 이 소재를 사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정 대표는 초기에는 동두천에서 텐트를 구매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30~40년 된 폐기 직전의 텐트를 직접 들여오고 있다. 정 대표의 말에 따르면, 카네이 테이는 가죽 원판을 디자인에 맞춰 재단하고 바느질하는 여느 가죽가방과 조금 다른 제작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세척한 텐트를 부위별로 손 재단을 하는데, 이때 버클이 있거나 글자가 인쇄된 부분은 직접 천의 상태를 보고 가방의 어떤 부위에 사용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네이 테이 제품 가격은 60만 원부터 160만 원대로 책정돼 있다. 카네이 테이의 백팩 가격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MCM의 백팩 가격과 비슷하다. 제품 가격이 다소 비싼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대표는 이렇게 응답했다. “카네이 테이 제품에사용되는 지퍼의 가격이 미터당 7만~8만 원정도 됩니다. 가방 한 개당 지퍼를 2미터 정도 사용하니 지퍼 비용만 20만원 가까이 지출되는 셈입니다. 결국 팔아야 가치를 인정받는 건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진 않았습니다.”

카네이 테이는 현재 서울, 부산에 위치한 신세계 분더샵 9곳 모두에 입점해 있다. 예상보다 시장 반응이 좋아 다른 명품 편집숍에서도 입점 제안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미니쿠퍼로부터 협업을 제안받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 대표는 말한다. “예상보다 판매량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내수 시장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점도 깨닫고 있어요. 아직 업사이클링 시장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요. 해외로 진출할 겁니다. 이미 중국, 미국의 주요 매장에 수출하기로 했습니다.

홍콩 최고급 백화점 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에도 입점하기로 했고요.” 업사이클링 산업은 1993년 트럭 덮개로 쓰인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든 스위스 기업 프라이탁Freitag이 개척했다. 제품 가격은 50만 원대로 전 세계 470개 매장에서 매년 40만 개를 판매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밖에도 자동차 폐타이어를 이용해 만든 신발(인도네이사 인도솔Indosole), 베트남 전쟁 당시 투하된 폭탄의 알루미늄으로 만든 액세서리(미국 아티클 22 Article 22), 버려진 티셔츠에서 실을 뽑아 만든 양말(미국 솔메이트Solmate)등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에는 2012년 코오롱FnC가 선보인 업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래;코드 Re;Code’와 2014년 제일모직이 업사이클링 기법을 도입해 론칭한 ‘하티스트 하우스’ 매장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폐현수막을 활용해 가방과 우산을 만드는 터치포굿, 폐가죽과 의류를 재활용해 스마트폰용 신용카드 케이스를 제작하는 리블랭크 등 중소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하지만 정관영 대표는 이 시장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국내 업사이클링 시장 규모는 2013년에 25억 원 정도였어요. 올해는 100억 원 정도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더군요.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나 진출은많지만, 시장 규모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에요. 업사이클링 제품이 패션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네이 테이가 처음부터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닌 만큼 다른 기발한소재를 찾을 생각이에요. 물론 기존의 가죽가방도 계속 제작해서 내놓을 겁니다.” 정 대표는 디자이너 정규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점 외에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은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IT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 한국수출입은행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정 대표는 “일본 국적을 가진 터라 군에 입대할 의무는 없었지만, 진짜 한국인이 되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역 후 정관영 대표는 양말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 ‘신동엽 양말’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반양말 ‘Give by KANEI TEI’가 그의 작품이다. 반양말은 발가락부터 발등까지만 덮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양말을 신고 다닐 때 주로 뒤꿈치 부분이 벗겨지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고안한 제품이다.

그리고 바로그 반양말이 이혜경 21드페이 대표가 정 대표를 디자이너로 영입한 계기가되었다. 정 대표는 말한다. “이혜경 대표님은 제 어머니 친구분으로 어릴 적부터 제가 이모라고 불러온 분이에요. 제가 반양말을 만들고 이런저런 창의적인 제품을 구상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셨죠. 그러다 ‘가방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이 대표님 덕분에 인맥도 경력도 없는 제가 카네이 테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정 대표는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상품으로 책표지를 인쇄해 만든 토트백을 소개 해주었다. 그는 “제 꿈은 작가였다”며 “인상 깊게읽은 책의 표지를 토트백에 프린팅해 조금이나마 위안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카네이 테이의 향후 행보에 대해 말을 이었다. “저는 ‘준비’라는말을 싫어합니다. 그냥 ‘도전’하면 되잖아요. 카네이 테이의 다음 작품 역시 여느 디자이너가 시도해 보지 않은 걸 찾아서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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