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발표된 국제금융센터의 보고서 ‘ 올해 성장 전망, 하방 위험에 유의할 필요’ 는 모건스탠리 분석 자료를 인용해 ‘ 한 달 내에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지 않는다면 2, 3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최근내수 심리를 떠받치고 있는 관광산업의 매출이 20% 정도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티그룹은 2002년 사스(SARS) 출현,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발생 후 관광 산업 관련 주식이 급락했지만, 3개월 안에 다시 반등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메르스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17일 나온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이 보고서는 3개월가량 메르스 사태가 지속될 경우 국내총생산 손실액이 20조 92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부적으론 투자는 3.46%, 소비는 1.23%, 수출은 1.98%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연구원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2.8%로 낮췄다. 연구 기관마다 예상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메르스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관광 관련 업계, 7~8월 성수기 놓칠까 걱정
한국관광공사의 조사발표에 따르면, 지난 6월 1일부터 6월 16일까지 한국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은 중국 관광객을 포함해 12만 명을 넘었다. 이 기간에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도 지난해 동기 대비 9만 명가량 줄었다. 관광공사가 추정한 관광업계 손실액은 이 기간에만 1,221억원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여행 취소가 속출하면서 인바운드 관광업체들의 표정 또한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여행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덩치가 큰 아웃바운드 업체와는 달리, 국내 인바운드 관광업체들은 대부분 중소 규모인 데다 재정상태도 열악하다”며 “당장 예약 취소도 문제지만, 7~8월이 성수기인데 예약이 거의 없어서 더 큰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웃바운드 업체는? 국내 최대 여행업체 하나투어의 오상민 홍보실 대리는 말한다. “아직 아웃바운드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도 메르스로 인한 내수침체가 7~8월 여행 성수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 주시하고 있어요.”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메르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광, 외식업체, 병원, 학 원등 지방 중소기업에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최대 6,500억 원까지 제공한다고 밝혔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고자 한국은행이 연0.5~1%의 낮은 금리로 은행에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이다.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춤으로써 신용도나 자금 조달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자금이 지원되도록 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 관계자도 “한국관광공사, 한국여행업협회와 대책반을 꾸려 관광산업 관련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진 않았다.
관광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쇼핑산업, 특히 면세점 사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국내 최대 면세점인 롯데면세점 매출도 지난 6월 4일부터 17일까지 공항점은 20%, 소공동 본점은 30% 하락했다. 롯데면세점은 올 1월부터 메르스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6월 첫 주까지 매달 전년 대비 5%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70%에서 55%까지 하락했다”며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당분간 매출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동화면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평소엔 하루 300여 대의 관광버스가 중국 · 일본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느라 북새통을 이뤘지만, 6월 들어선 한산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동화 면세점 한 관계자는 “요즘에는 관광버스가 하루 5대 정도 들어온다”며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 맛집, 줄서기가 사라졌다
메르스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굳이 숫자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평일 식사시간과 주말에 홍대, 명동, 압구정 일대의 맛집을 방문해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맛집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지난 주말, 경복궁역 인근에 위치한 사람 많기로 유명한 ‘토속촌’을 직접 찾아가 봤다. 토속촌은 서울에서 삼계탕을 가장 많이 판매한다는 곳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엔 중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아 필수 방문코스가 된 명소다. 세월호 사태로 내수 침체가 극심했던 작년 상반기에도 토속촌 앞은 30미터 이상 길게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토속촌 입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손님들이 가게 안으로 곧장 들어가는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음식점 관계자는 말한다. “단체 관광객들이 예약을 모두 취소했어요. 더 중요한 건 들어오는 예약도 신통치 않다는 점입니다. 내국인 손님도 없으니 세월호 사고 때보다도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며칠 후 점심시간에는 명동을 돌아봤다. 여기도 평소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곳. 인근의 직장인들까지 합세해 평일 점심시간엔 음식점에 발 디딜 틈도 없던 곳이었다. 기자는 먼저 곰창 전문점 '하동관'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평소와는 달리 줄 설 필요 없이 곧바로 식사할 수 있었다. 하동관을 나와 명동 중심거리에 위치한 '명동교자'를 지나쳤다 이곳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명동교자 한 관계자의 말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지 못하지만, 피부로 느끼기엔 적어도(손님이) 30%는 준 것 같아요. 직장인 고객 덕분에 저녁 손님도 많았는데 최근엔 저녁에도 크게 붐비지 않는 상황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한국외식산업연구원과 함께 서울 시내 560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음식점 관계자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메르스 확산 시점인 5월 30일에 비해 평균 매출액이 약 38.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저앉은 내수 시장… 반사 이득 본 업체도
메르스 사태로 사람 모이는 영업점은 하나같이 피해를 보고 있다. 대형 음식점뿐만 아니라 대형 마트나 백화점 가기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마트의 한 관계자는 “지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5월 20일부터 6월 17일까지 평균적으로 4.2% 매출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입은 타격은 더 컸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은 매출액이 전년 대비 무려 25% 줄어들었다. 영화관은 50%, 야구장은 70% 이상 관람객이 급감했다. 영화관 한 관계자는 말한다. “직장과 집, 그리고 꼭 필요한 곳 외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동을 자제하면서 소비자들의 동선이 점점 짧아지고 단순해지고 있어 걱정이 많습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줄면서 운송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마포에 있는 홍성운수 배차 담당자 조성제 씨의 말을 들어보자. “기사들이 사납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울상입니다. 평소 17만~18만 원 정도 벌어 사납금으로 13만 원 내고 나면 4만~5만 원 정도 남았는데, 지금은 딱 그만큼 줄어서 기본급으로 생활한다고 하네요.” 야간에 운전하는 택시기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은 주로 장거리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데 최근 회식과 행사가 줄어 손님이 크게 격감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병원 가기를 더욱 꺼리고 있다. 서울 강북, 강남에 있는 동네 병원 각 4곳에 문의해보니, 8곳 중 6곳이 “진료 환자가 5월 말과 비교해 반 이상줄었다”고 답했다.
종합병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강북지역에 위치한 종합병원의 경우, 암 병동을 제외하곤 대기자 수가 현저히 줄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매출이나 환자 수와 관련된 부분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병원 분위기가 한산해졌다는 점에 대해선 쉽게 동의했다. 그렇다면 제약사는? 메르스 사태로 호황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 제약사 관계자는 “남의 속도 모르는 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 운영이 안 되는데 제약사 운영이 잘될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백신을 만드는 일부 제약사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반사이익을 얻는 곳은 있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식음료나 생필품을 직접 구매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사례가 늘면서 관련 업계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 롯데몰은 이달 들어 16% 정도 매출이 늘어났고, 국내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의 매출도 5%가량 증가했다. 배송업계 역시 덩달아 배달물량이 늘고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6월이 비수기임에도 취급 물량이 20% 늘었다”며 “식음료 주문과 온라인 주문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량이 늘어난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배송기사들은 남모를 속 앓이를 하고 있다. 한 배송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온종일 외부활동을 하는 배송기사 중에는 혹시 메르스 환자를 마주치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배송 요청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철저히 교육하고 수칙을 지키는데도 ‘거기 두고 가시라’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 타격을 입은 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메르스가 현재까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보다 앞으로 끼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가 산업피해와 관련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메르스 확진자와 사망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당장은 정부 역량이 ‘메르스 종식 선언’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메르스로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지 않을지, 경제성장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9일 세계 3대 신용 평가사로부터 메르스 사태에 대한 평가를 듣고 이를 발표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S&P와 피치가 최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데 큰 이슈로 보기 어렵다는 소견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무디스도국가 신용등급을 조정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금융권도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메르스의 영향에 대해 점검하고있다. 임종률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국내 시장전문가, 해외 투자은행 애널리스트 등과 조찬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관계자들은 “메르스 사태에 따른 내수 위축으로 단기적으론 경기회복이 둔화되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메르스 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더라도 최소 1분기 정도 소비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경기둔화 리스크’ 보고서에서 “메르스 사태로 2분기 성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소비회복 흐름이 끊겼다는 점에서 하반기 이후에도 부정적 영향이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2002년 11월에 발생한 사스와 2009년 3월에 발생한 신종플루 사태 등 국내에서 발생한 전염병의 경제적 영향을 비교 분석하면서, 메르스 사태가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과거에 비해 한층 클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메르스의 치사율이 높다는 점, 국내 전파 후 확산속도가 빠르다는 점, 치료제가 없다는 점,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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