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그대( 지난해 방영된 SBS T V 드라마 ‘ 별에서 온 그대’) 열풍이 불고 있는 중국에서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 천송이 코트’ 구매가 어렵다고 합니다.” 지난 3월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 사용을 강제하는 국내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단순화하라는 지적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발언은 국내에서 핀테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즉각 대책을 내놓았다.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 의무화를 폐지했다. 간편결제 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해 사전 보안성 심의 역시 없앴다. 이 같은 규제 철폐에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인 곳은 비(非)금융권인 IT업계였다. 핀테크에 기반을 둔 온라인-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출발한 다음카카오의 ‘ 카카오 페이’와 ‘ 뱅크월렛 카카오’ 는 현재 운영 중인 가장 대표적인 핀테크 기반 금융서비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핀테크 시장의 성장세는 더디기만 하다. 핀테크 시장의 중심에 서 있는 금융권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업계에도 나름의 속사정은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정부의 정책대로 엑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 사용을 없앨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금, 인출, 온라인 결제 과정에서 사고가 터지면 누가 책임을 지죠? 고스란히 그 책임은 금융사에게 돌아옵니다. 현재 몇몇 IT기업이 상용화한 핀테크 서비스에 금융권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현재 금융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의 핀테크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금융권 역시 핀테크 시장에 대한 도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 시장 투자 규모는 2013년 29억 7,000만 달러(한화 약 3조 3,200억 원)였다. 이는2008년 9억 2,000만 달러(약 1조 290억 원)와 비교하면 3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이 같은 투자증가의 중심에 금융업체가 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상반기부터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권의 핀테크 시장 진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다수금융사는 올 초부터 핀테크 사업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 핀테크 사업 활성화를 위한 전략 마련에 고심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금융사들의 핀테크 전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다수 은행의 공통 전략은 기술력 있는 핀테크 기업을 발굴·육성하는 ‘핀테크 지원센터’의 설립과 ‘인터넷 전문은행’의 운영으로 정리 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핀테크 기업 육성의 허브인 ‘ 신한 퓨처스랩(Future’s Lab)’을 출범시켰다. 신한 퓨처스랩은 핀테크 스타트업 및 예비 창업자를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 맞춤형 육성 프로그램이다. 신한은행, 신한카드, 신한금융투자, 신한생명, 신한데이터시스템 등 주요 그룹사가 다양한 금융 분야에 서 다양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사업화될 수 있도록 핀테크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핀테크 스타트업은 전문가 멘토링, 인프라 및 금융테스트 환경뿐 아니라 자금지원, 투자지원등 종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신한금융은 핀테크 육성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한 액센추어와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핀테크 기업 육성 노하우를 공유하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국내 육성 기업의 해외 투자자 연계와 진출도 지원할 예정이다. 신한금융은 신한 퓨처스랩 출범을 위해 글로벌 4개국에 핀테크 이노베이션 랩을 운영 중인 액센추어와 함께 3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신한금융은 하위 조직으로 사업화, 투자지원의 경과를 보고받고 주요 핵심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신한 퓨처스랩(SFL) 운영위원회와 기술개발 및 ICT 관점의 지원사항을 도출하는 기술지원협의체를 만들었다.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소재광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등 그룹 임원진이 참여하는 내부 멘토단과 기술, 특허, 법률, 해외시장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외부 멘토 그룹도 조직했다. 소재광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겸 퓨처스랩장은 “이번 신한 퓨처스랩의 출범은 실체가 있는 핀테크 지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퓨처스랩을 기반으로 핀테크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적극 전개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신한 퓨처스랩은 그룹 차원의 차별화된 육성 프로그램으로 은행, 카드,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분야에서 지원할 수 있다”며 “해외와 비교하면 아직 미진한 국내 핀테크 생태계를 경쟁력 있는 글로벌 산업으로 육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의 경우 ‘ 핀테크 지원센터’ 와 인터넷 전문은행을 위한 ‘ 통합 플랫폼’ 투트랙 전략으로 핀테크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우선 기업은행은 지난 4월 ‘IBK금융그룹 핀테크 드림(DREAM)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핀테크 사업팀 직원 3명이 상주하는 이 센터는 사업추진이 필요한 경우 관련 부서와 자회사를 연결해주는 종합 지원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기업은행이 공개한 핀테크 플랫폼 ‘IBK 원뱅크(ONE Bank)’는 인터넷 전문은행 수준의 통합플랫폼으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원뱅크’는 간단한 자금 이체부터 상담 및 상품 가입까지 스마트폰에서 진행할 수 있는 원스톱 금융 서비스다.
특히 이 서비스는 단순 모바일 뱅킹을 넘어 연령대별 자산관리 서비스와 뱅킹서비스, 상품가입 등 토털 금융서비스를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구현하고 있다. 은행권 최초 바코드결제, 교통카드 충전 등 지급결제가 가능하도록 개방형 오픈 플랫폼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 핀테크 업체와의 상생을 위해 사기거래 방지 솔루션을 보유한 ‘ 더치트’ 등 중소 업체의 기술도 탑재하고 있다. 핀테크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개인 간(P2P) 대출서비스 업체 ‘나인플라바’와 개인자산관리솔루션 제공 업체 ‘텐큐브’의 서비스 탑재도 검토 중이다.
이미 기업은행은 지난 2월 핀테크 선제 대응을 위한 간편 송금 서비스 ‘ 토스’ 를 선보인 바 있다. 토스는 받는 사람 전화번호와 보낼 금액, 암호 등 3단계만 입력하면 돈을 송금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하고있다. 온라인 쇼핑몰 물건 구매, 공과금 납부 같은 가상계좌를 이용한 무통장 입금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이근주 IBK기업은행 스마트금융부장은 “IBK기업은행은 핀테크 기업의 신기술을 접목한 제휴서비스 확대에 나설 것”이라며 “스마트 금융고도화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통합 플랫폼 원 뱅크를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문은행을 시범운영 중이다. 지난해 12월 금융권 최초로 핀테크사업부를 신설한 우리은행은 최근 인터넷 전문은행 ‘위비 WiBee ’를 오픈했다. 지난 2월에는 KT와 업무협약을 맺고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애셋 매니지먼트 동산담보 대출관리 시스템’과 맞춤 신상품 안내 및 쿠폰 등을 제공하는 ‘기가비콘 타깃 마케팅 시스템’ 을 공동 개발해 현재 시범운영 중이다. 지난 3월에는 핀테크 지원센터 ‘우리 핀테크 늘품터’를 개소하고 스타트업 지원 강화에도 나섰다. 이 밖에도 하나 · 외환은행은 핀테크 지원센터 ‘핀테크원큐랩(1Q Lab)’을 오픈하고 역량 있는 핀테크 기업의 입주를 지원하고 있다. 법률 상담, 멘토링을 비롯한 기본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상주 가능한 공간을 제공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빅데이터 분석 기반의 신용평가 기술을 보유한 ‘주식회사 핀테크’와 얼굴 인식 보안 솔루션 ‘파이브지티’가 입주를 마친 상태다.
이처럼 대다수 금융사는 핀테크 지원 센터와 인터넷 전문은행을 기반으로 핀테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는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핀테크 시장에 진출한 금융사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NH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은 국내 금융권 최초로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NH워치뱅킹’을 출시했다. 스마트워치 시장의 성장세를 눈여겨본 농협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NH워치뱅킹은 스마트워치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금융권 최초의 서비스다. ‘NH워치뱅킹’ 앱을 내려받아 설치하면 비밀번호만으로 간편하게 계좌의 잔액, 거래내용 조회를 할 수 있다. 농협은행 측은 올해 내에 간편 계좌이체, ATM 현금인출 등 추가 서비스도 탑재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농협은 농 · 축산물 유통 서비스에 핀테크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NH바로바로 마켓 서비스’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농 · 축산물을 간편하게 주문 ·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신선한 농 · 축산물을 산지로부터 직접 제공받을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국내 금융권 최초의 핀테크 오픈 플랫폼인 ‘ NH핀테크 오픈 플랫폼’ 서비스다. 농협은행의 핀테크 오픈 플랫폼의 가장 큰 장점은 ‘무료’라는 점이다. 핀테크 기업들은 농협에서 제공하는 잔액조회, 이체, 결제 플랫폼을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농협은행 스마트금융부 김봉규 차장은 “기존에는 금융사가 핀테크 회사를 찾아 제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며 “농협의 이번 오픈 플랫폼은 실험적인 시도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이 같은 농협의 색다른 도전에 주목하고 있다. 핀테크 기반 큐레이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A 씨는 말한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가진 공통 고민은 금융업체와의 제휴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결제, 이체 등 금융서비스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은행과의 제휴가 필수인데,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습니다. 농협의 이번 오픈 플랫폼 서비스는 핀테크 스타트업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카드· 증권업계도 핀테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증권업계는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비대면 계좌개설’ 허용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지점 숫자가 적은 증권사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베스트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등 8개 증권사가 컨소시엄 형태의 인터넷 전문은행 운영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태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저금리 시대에 계좌 개설 편의성이 증대되면 자금 이동과 거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비대면 계좌 개설 허용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증권업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 역시 일찌감치 핀테크 사업에 관심을 보여 왔다. 이미 카드업계는 누적된 카드 결제 빅데이터의 분석 조직을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서비스 및 금융 상품 출시를 준비해왔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금융권 빅데이터 활성화 방안’은 카드업계의 핀테크 시장 진출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민 번호 같은 고객 실명 번호를 뺀 비식별 정보에 대해 금융사 간 자유로운 교류와 활용을 가능하게 만든 ‘금융권 빅데이터 활성화 방안’은 카드사의 핀테크 시장 진출에 날개를 달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빅데이터 마케팅 전담 조직을 확대 개편한 삼성카드는 조만간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플랫폼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통신사, 유통사 등 다양한 이종 업종과의 협업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BC카드는 핀테크 사업 확대를 위해 기존 모바일 사업 부서를 ‘핀테크 사업실’로 확대 개편하고, 핀테크 기획팀과 핀테크 서비스팀을 신설한 바 있다. 현재 이곳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마케팅 프로파일링 시스템 ‘아입스(AIPS)’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입스는 카드 이용과 관련한 빅데이터와 소셜 빅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최적의 고객 마케팅 기법을 도출해내는 시스템이다. BC카드는 오는 11월까지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한 후 이를 현장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KB국민카드 역시 조직 개편을 통해 핀테크 전담조직인 ‘M-커머스팀’을 신설하고 블루투스 기반 무선통신장치(비컨)를 활용한 핀테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에쓰오일과의 제휴를 통해 선보인 이번 서비스는 국민카드의 모바일 앱 카드 ‘K-모션’을 설치한 뒤, 블루투스와 GPS를 켜놓은 상태로 주유소에 진입하면 앱을 통해 할인 행사, 쿠폰 등 혜택을 누릴 수 있다. KB국민카드 측은 “시범 운영 후 서비스를 보완해 기능 및 활용 업체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하나카드, 우리카드, 롯데카드 등이 별도의 빅데이터 팀을 조직해 핀테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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