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집, 어느 사무실을 가도 콘센트마다 잔뜩 플러그가 꽂혀 있다. 책상과 테이블 뒤편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쑤셔 박은 전선들이 거미줄을 이룬다. 휴대용 스마트 기기들의 급증으로 초래된 현대사회의 풍속도라 할 수 있다. 휴대기기 자체는 내장배터리와 무선 데이터 송수신 기능이 일반화 됐지만 전원 공급 혹은 충전만큼은 유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과연 선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선사해줄 방법은 없는 걸까.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목표로 다양한 방식의 무선 전력 전송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와이파워 시대의 도래
이 기술이 확보되면 전자기기들과 전기자 동차의 무선 충전은 물론 산간오지의 무선 전력 공급, 우주 태양광 발전 등 꿈같은 미래가 현실이 된다. 또한 무인기나 군용 로봇, 체내 이식된 인공심장 박동기의 무선 충전처럼 군사적·의학적 효용성도 탁월하다. 와이파이에 더해 ‘와이파워(Wi-Power)’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현재 무선 전력 전송 기술 연구는 전기에너지의 변환 및 전송 방식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마이크로파(극초단파)와 전자기 유도, 그리고 전자기 감응 공명(ECR)이 그것 이다. 세 방식 모두 기본적 개념은 정립돼 있으며, 휴대형 I T 기기와 전기자동차를 위한 무선 충전시스템은 이미 본격적인 상용화의 문턱에와 있는 상태다.
이중 마이크로파 방식은 전력을 고출력 마이크로파로 전송하는 개념이다. 마이크로파는 비와 구름을 통과할 수 있고, 무선전파에 의한 간섭도 받지 않 아 전력 대부분을 손실 없이 전송할 수 있다는 게 최대 특징이다. 또한 수십m~수만㎞ 이상의 원거리 전송도 문제없다. 최근 해외 연구팀이 10㎿의 전력을 수백㎞ 떨어진 곳으로 무선 전송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우주에 태양광 발전 위성을 띄워놓고, 생산된 전력을 지상에 무선 전송하는 형태의 연구가 주로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전자기 유도는 도체 주변에서 자기장을 변화시켜 전압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현 기술 수준은 수 십㎝ 범위 내에 위치한 두 개의 코일을 이용해 수㎾의 전력을 전달하는 정도다. 그리고 ECR은 송신 코일에 일정한 자기장을 유도해 수신 코일과 공진시켜 전력을 전송하는 기술이다.
2018년 85억 달러 시장 형성
하지만 가장 진보된 기술로 평가받는 ECR조차 송전 가능 거리가 아직 수m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ECR은 지향성 없이 전방향으로 전력을 쏘아대는 탓에 송전효율이 50%미만이다. 100W를 전송하면 50W는 의미 없이 공중에서 사라진다는 얘기다.
전자기 유도 방식 역시 ECR보다는 상용화에 근접해 있지만 전송거리가 수㎝ 이내로 짧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때문에 갤럭시S6의 무선충전기처럼 1㎝ 미만의 비접촉식 전원 공급에 주로 쓰이고 있다. 마이크로파의 경우 인체 유해성 논란이 아킬레스건이다.
이렇듯 앞으로 극복해야할 기술적 난제들이 많지만 무선 전력 전송은 미래 유망기술을 선정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된지 오래다. 그만큼 사회적, 산업적, 기술적 파급력과 잠재력이 지대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IHS는 오는 2018년 전 세계 무선 전력 시장규모가 무려 85억 달러 (약 9조9,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이중 무 선 전력 수 신기와 발신기 시장만 13억 달러(1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무선 전력 전송 시장이 궁 극적으로 지금의 무선통신 시장 규모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오는 2020년에 이르러 전세계 인터넷 접속 기기가 250억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을 감안하면 그리 허튼소리는 아니다.
무선 어댑터로 진일보한 자유로움
이 막대한 시장의 선점을 위해 세계 각 국은 다각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현재 한국전기연구원 박영진 박사팀이 원거리 무선 전력 전송을 위한 방사형 마이크로파 전송 기술과 중·단거리를 타깃으로 한 ECR 시스템을 연구·개발 중이다. 이중ECR은 전자기 공진기를 활용, 전력 송신 코일의 전자기장에 공진된 수신 코일의 전자기장을 전류로 변환하는 메커니즘이다. 6.78㎒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송·수신기의 배열에 상관없이 일정 범위 내에서 높은 전송 효율을 가진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현재 스마트폰 무선충 전기에 적용돼 있는 전자기 유도 기술이 지닌 거리에 따른 효율 저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여러 기기를 동시 충전할 수도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 수 있다.
박 박사는 “최근 모바일 기기용 무선충전 시스템이 시장에 출시되면서 무선 전력 전송 기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소형 모바일 기기에 내장 가능한 초소형 고효율 수신 코일과 여러 기기에 효율적으로 전력을 동시 전달하는 임피던스 정합기술 개발에 연구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연구팀은 모바일 헬스케어 기기와 인공심장 박동기, 뇌심부 자극 전극 등과 같은 인체 부착·삽입형 의료기기 분야에서 관련수요가 폭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있다. 그리고 이 시장을 공략하는 첫 단계로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는 사용자 친화형 스마트 보청기를 개발하고 있다.
KAIST 연구팀 50㎝ 무선전력전송 성공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임춘택 교수팀도 무선 전력 전송 기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 연구팀으로 꼽힌다. 이미 임 교수팀은 50㎝이내에서 기기의 위치와 방향에 상관없이 배터리가 충전되는 무선충전기술을 개발한 상태다. 10㎝이상의 거리에서는 충전이 어려운데다 특정 방향에서만 충전이 되는 기존 비접촉식 무선 충전 기술의 한계를 극 복한 것이다.
연구팀은 평행한 일(一)자 구조였던 송·수 신코일을 십자형으로 배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하면 회전자기장이 발생, 어떤 방향에서도 전력의 송·수신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부피를 최소화한 송·수신 코일을 구현했으며, 일정 공간 내에서 3차원 위치와 3축 방향에 상관없이 6자유도(DoF) 를 갖는 기술 개발도 성공했다.
연구팀의 실험결과, 면적 1㎡의 평면형 송신기 위 50㎝ 이내의 범위에서 스마트폰 30대에 각 1W, 노트북의 경우 5대에 각 2.4W의 전력이 무선 충전됐다. 최대 전력전달 효율은 34%로 다소 낮은 수준이지만 독자 개발한 자기장 차폐기술을 적용, 자기장의 수치를 국제안전기준 이하로 낮춰 인체와 주변 전자장비에 미치는 유해성을 제거했다.
임 교수는 “기존 무선충전의 고질적 문제였던 거리와 방향 의존성을 상당부분 해결했다”며 “머지 않아 충전에 대한 걱정 없이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사용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KAIST 입주기업인 테슬라스에 이전하고, 카페나 사무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용제품을 개발 중 이다.
1억 5,000만대
올해 전 세계 무선 충전기 시장 규모. (추정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