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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플랜트는 '황금알 낳는 거위'? 알고 보니 '밑 빠진 독 물 붓기'

조선 빅3가 '늪'에 빠진 까닭은...


국내 조선 빅3가 위기에 빠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로만 알았던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조(兆)단위의 영업손실을 냈다. 조선 3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구조조정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대양을호령하던 한국 조선업의 신화가 저무는 것일까?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현대중공업 0.38, 대우조선해양 0.25, 삼성중공업 0.46. 지난 7월 약 5조 원이라는 기록적인 영업손실을 합작한 국내 조선 3사의 8월 현재 주가순자산비율 (PBR·Price Book-value Ratio)이다. 주가순자산비율이 1보다 작으면 시가총액이 기업 청산가치보다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우조선해양을 예로 들면,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부동산이나 기계 등의 자산을 모두 처분했을 때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주식 1억 9,000만주 전량을 총 네 번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대우조선해양이 파산해 청산 절차를 밟을 경우 현재 주식 가격의 4배를 돌려받게 된다는 얘기다.

주가순자산비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기업들의 주가 보통 ‘매우 저평가’되어 있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시에서도 이때를 적극적인 매수 타이밍으로 많이 생각한하지만 이는 조선 3사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오히려 조3사는 최근에도 애널리스트들의 투자 의견이 줄줄이 하향 조정되면서 목표 주가가 더 떨어졌다. 가장 주가 하폭이 컸던 대우조선해양조차도 바닥은 아직 멀었다는견이 나온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상반기까지도 실적 부진이 불가피해 보다”라며 “주가가 5,000원까지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올해 초 1만 8,600원으로 시작한 대우조선해양의 주가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공개한 2분기 실적발표 이후 급락해 8월 현재 5,000원대 후반에서 거래되고있다.



어닝쇼크 우려가 현실로
올해 2분기 조선 빅3의 기록적인 영업손실은 지난해 2, 3분기부터 상당 부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해 1분기 1,900억 원 영업손실에 그쳤던 현대중공업이 2, 3분기에는 그 10배에 가까운 1조 1,000억 원, 1조 9,300억 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조선 경기 불황과 해양플랜트 부문에서의 막대한 적자가 대규모 영업손실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역시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현대중공업이 손실을 선반영하며 먼저 매를 맞았을 뿐, 나머지 두 기업도 조 단위의 손실을 떠안고 있을 것이란 의혹이 팽배했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현대중공업이 막대한 영업손실을 발표한 지난해 2, 3분기에도 1,000억~2,000억원 규모의 영업 흑자를 냈다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지난 7월 있었던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선 각각 3조 원, 1조 5,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손실을 공개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흑자전환에 성공하지 못하고 1,700억 원대의 추가 손실을 내면서 조선 빅3의 영업손실 합계는 4조 7,500억 원에 이르렀다.

시장의 충격은 엄청났다. 우리나라에 대규모 조선사가 생겨난 1970년대 이래 조선 빅3가 동시에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건 2005년이 유일했는데, 당시엔 3사의 손실 총합이 겨우 수백억 원에 불과해 지금처럼 큰 이슈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맞은 조선 3사의 동시 영업손실은 5조 원 가까이 치솟으며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대우조선해양의 조 단위 영업손실 우려가 처음 불거진 지난 7월 15일, 대우조선해양의 주가는 30% 하한가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KTB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은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전망이 극도로 불확실해졌다며 잠정적 분석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기록적인 영업손실의 이유
조선 3사의 기록적인 영업이익 적자는 해양플랜트 사업 부문의 손실이 주도했다. 해양플랜트는 바닷속에 매장된 석유나 천연가스 등의 자원을 시추하는 장비를 말한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이 장비의 건조, 설치, 공급 등 전 과정을 아우른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2010년만 해도 유럽발 재정위기 영향으로 상선(商船) 수주가 급감한 국내 조선업계에게 ‘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일반 상선 한 척을 계약했을 때의 수주금액이 3억 달러를 넘기기 힘든 데 비해, 해양플랜트는 종류에 따라 단 한 기만 수주에도 계약금액이 20억 달러를 넘어가곤 했다. 해양플랜트 발주가 절정을 이루던 2012년과 2013년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전체 수주액에서 해양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초대형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들을 무더기로 수주했던 것이 지난해부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이들 조선사는 해양플랜트 사업 부문에서의 잦은 설계 변경과 공기(工期) 지연이 큰 부담이 됐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실력 부족이었다.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사업의 핵심이자 손익 계산의 근거가 되는 설계 부문을 거의 해외 기업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기자재도 절반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설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기자재 공급이 지연되면 넋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연히 공기 지연으로 이어졌다. 공기가 지연될수록 수천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고, 이는 조 단위 영업손실이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난해까지 일괄수주 방식으로 입찰을 따냈던터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설계 변경이나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혼자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앞뒤 생각 없이 수주 경쟁에만 열을 올린 결과였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주요 관계자는 말한다. “지난해만 해도 지식경제부에서 해양플랜트가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며 미래 먹거리로 치켜세우고, 언론에서도 우리나라가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양대서특필하곤 했는데, 그걸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기업 소개 기사에서도 그런 내용이 꼭 들어가곤 했는데 그게 아니었거든요. 해외 발주처에 나가보면 우리나라 조선사들 해양플랜트 설계 능력이 없다고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현장에선 설계 문제 때문에 공사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고요. 그런데도 우리한테 수주가 떨어져요.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냥 싼 값으로 업어온 거예요.”


은행권 압박도 뒤따라
충격의 실적 발표 이후 시장에선 ‘ 조선 3사가 잠재적 부실까지 모두 털어낸 만큼 앞으론 빠른 속도로 정상화 과정을밟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전망도 일부 나오고 있다. 하지만 8월 들어 몇몇 시중은행이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금리인상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상화 과정이 험난할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같이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조선 3사 중에서 부실 규모가 제일 작아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터라 충격이 더욱 컸다.

지난 8월 12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이 같은 은행권의 움직임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하면서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여신 리스크를 줄이려는 은행권의 의지가 확인된 만큼 조선업계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손실 규모가 삼성중공업의 2배에 달하는 대우조선해양 역시 시중은행으로부터 금리 인상이나 대출금 회수 등의 강한 압박을 받았으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방패 역할을 하면서 일단은위기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손실을 선반영한 현대중공업은 비교적 부담이 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 극복 위해 안간힘
이 같은 상황에서 조선 3사는 위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먼저 부실을 공개하면서이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해 현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부실을 공개한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게 현대중공업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현대중공업 구원투수로 나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온 권오갑 사장은 지난 6월 “더 이상의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역시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는 모습이다. 특히 강성노조로 유명한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8월 11일 ‘인적 쇄신’ 항목을 포함한 강력한 구조조정 내용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쇄신안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부장급 이상 직원 1,300여 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있다. 한때 55명에 달했던 임원 수도 40명까지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5월 취임한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취임을 전후해 여러 차례 “인력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던 터라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정 사장은 쇄신안 발표에서 “생산성은 끌어올리고 고정비는 최소로 줄여 어려운 상황을 최대한 빨리 타개하겠다”며 “이번 쇄신안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임직원이 있겠지만, 후배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한다는 대승적인 자세를 가져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쇄신안이 발표된 다음날인 8월 12일 대우조선해양노조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강성노조 특유의 실력행사를 하더라도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내부에서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말한다. “상위 직급 직원의 비율이 높은 게 조선사들 인력 구조의 특징이긴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세 명 중 한 명이 부장급인 곳이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술직으로 가면 정년이라는 게 사실상 별 의미가 없고요. 취업 대물림은 너무나 유명하죠.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이지만, 동시에 이참에 누군가는 각오하고 메스를 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습니다. 40대 이하 사원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에는 정성립 사장이 앞으로 해낼 일에 대해 은근히 기대를 하는 이들도 많아요. 이번 구조조정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나타난 ‘엇갈린 행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전락한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해 업체들이 차별화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2분기 가장 큰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한때 해양플랜트 사업 부문 최강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해양플랜트 사업의 수익성이 생각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해양플랜트를 버려야 대우조선해양이 산다’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역시 지난 5월 취임 직후부터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지속적인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현재 55%인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을 40%까지 줄이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관련 투자비를 늘려 사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근 해양사업본부와 플랜트사업본부 등 관련 사업부를 통합해 업무 효율화 작업을 진행했고, 해양플랜트 관련 연구개발 비용도 크게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중공업은 오는 2018년까지 151개의 해양플랜트 기자재를 국산화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선박 건조 시장이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에 사실상 할 만한 건 해양플랜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으니 앞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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